EP·416
토목선녀가 떠나신단다!
신녀님이 광주선방을 뒤집어 놓으셨으니 광주의 명물 광주의 특산물 광주의 명소 그 자체인 토목선녀다·
그만큼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거리였다·
어제 신녀님이 백운저수를 드셨다던데 얼마나 깨끗하게 싹싹 발라 드셨는지 없이 남은 족발 뼈가 아주 반짝반짝 광택이 돌다 못해 얼굴이 비쳤다더라·
그렇게 은경(거울)같은 뼈가 사람 명치 높이로 쌓였다던데 앞다리 뒷다리로 돼지 열둘은 잡았을 거라고·
보통 이런 소문이 돌면 피식 웃으면서 비웃을 만한 웃긴 소리다·
무슨 뼈까지 핥아먹는 거지새끼가 떴냐?
돼지 열둘이면 돈족을 마흔여덟을 처먹고 그게 사람이냐 돼지냐 돼지가 돼지 처먹었냐 하고 농담 삼아 낄낄거릴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악독한 고리대자들을 저주로 죽이고 망치로 포악한 광주선방을 징치한 토목선녀다·
신통력과 물리력 모두가 영험하신 신녀님께서는 그를 통해 광주 양민 대부분의 빚을 청산해 주셨다·
겨울철 고리대자에게 빚 없는 양민이 별로 없고 물고기 좀 잡으래도 빚으로 달아놓는 광주선방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벌써부터 골목어귀에 새집만 한 사당 모형을 세워 목상을 모신 토목선녀 사당이 광주에 여럿이다·
그러니 광주 사람들의 신녀님 숭배가 어떠하겠는가·
그래? 영험하신 신녀님이 괜히 백운저수를 드셨을까· 분명 거기에도 큰 뜻이 있는 것이겠지· 뭐시냐 천지의 운행에 맞는 뭐 그런 식단? 영험한 요리? 운수에 맞춘 그런 식사가 아니시겠나·
그럼 우리도 백운저수를 먹도록 하세·
이런 식으로 청의 저녁 식사는 다음 날 광주 사람들의 필수 요리가 되었으니 광주 식 흰 족발 수육인 백운저수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덕분에 무수한 돼지들의 눈물이 흘렀다나 어쨌더나·
그러니 토목선녀님이 식사 자리에 한 쓸데없는 잡담들도 모두 귀를 쫑긋하여 혹시 천기 한 줄이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의매 화도엔 뭐가 있지? 뭐 볼만한 거 있을까?”
“화도? 화도가 뭔데?”
“음· 그야 그렇겠지····”
“난 몰라! 아 이거 맛있네·”
“맛있는데 왜 나한테 다 주는데?”
“헤헤· 의매 많이 먹으라고· 그런데 화도는 왜? 거기 가려고?”
“돌아가야지· 광동 건축도 빠꼼이고·”
“언제? 지금 갈 거야?”
“내일 점심 먹고 출발하려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물론 나름 몰래 엿듣고 있던 양민들이 귀로는 쫑긋거리면서 젓가락이 허공을 휘젓고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일단 입가로 가져다대는 꼴이다·
양민들의 경악한 헉 소리를 듣고 청이 드디어 마음 놓고 제대로 된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청의 진심 식사에 양민들이 또다시 허억헉 연신 숨을 토해내며 그 경이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더라·
그리하여 청이 떠나가는 길목으로 아주 온 광주 사람들이 쫘악 깔렸다·
청이 몰랐다면 무슨 축제라도 열리고 있느냐고 물어볼 만한 인파였다·
“뭐야 무슨 축제라도 열렸어요?”
물론 청은 모르니까 물어봤다·
“신녀님이 떠나신다면서요?”
“뭐야 내 배웅 나온 거에요?”
청이 대로 좌우로 무슨 행진이라도 구경하듯 몰려나온 사람을 보며 한편으로는 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신녀님! 가지 마세요!”
“신녀님! 또 오십시오! 다음엔 저희 채점에 놀러오십시오! 크게 한 턱 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아들놈이 살았습니다! 평생 무병장수를 빌어드리겠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던지는 것이 음 내가 그렇게까지 감사할 정도로 해 준 게 있나 싶다·
사파 하나 치운 걸로 이만큼이나 열렬히 호응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야 원체 시달려왔던 양민들이다·
토목신녀가 원체 소탈하니 대하기 편한 인물인 탓도 있다·
그렇게 떠나는 와중에 길을 가로막고 선 놈팽이들이 한 무더기·
청을 보자마자 부리나케 무릎을 꿇고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눈물로 호소한다·
“아이고 신녀님 이리 가시면 안 됩니다· 저주를 저주를 좀 풀어주시고 가십시오!”
악업을 보니 멀쩡한 새끼들은 아닌데·
뭔 저주?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염휘영은 혹여 청에게 미움이라도 받을까 두려워서 아주 면밀히 알아보고 이게 죽일 놈인가 아닌가 신중하게 골라 죽였다·
그래서 아직 그 손길이 닿지 않은 고리대자들이다·
“그 제사를 지내 주시면 금은은 얼마든지라도 드릴 터이니···”
“하 악인을 기원해달라 제사를 지내란 말이냐? 피와 눈물로 더러운 부정한 금은을 받아봐야 어디다 쓴다고·”
“신녀님! 잘못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찌 해야 저주를 피할 수 있는지라도 좀 알려주고 가시면···”
아마 그 저주가 아들 호소인 작품인 것 같은데·
결국 제 목숨 살려달라는 소리다·
목숨이 경각에 달해서 비는 잘못은 후회일 뿐 절대로 반성이 아니다·
후회와 반성은 완전히 다른 것이므로·
청이 사나운 목소리를 낸다·
“안 알려주면? 한판 해 볼 테냐?”
청이 망치를 들어올린다·
그에 고리대자들 뒤에 도열해 길을 막고 있던 건달들이 흠칫 놀라며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일단 전주 따라 나오기는 했는데 혼자서 광주선방을 날려버린 토목신녀를 뭐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결자해지· 묶은 놈이 풀어야지· 원한이 쌓인 줄을 알면 왜 쌓인 줄도 알겠지· 그러니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풀어! 내 살다살다 별꼴을 다 보겠네·”
“신녀님! 그러지 마시고-”
따악!!!
순간 버섯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는듯한 환상이 비친다·
모두의 눈 사이에 주름이 확 잡힌다· 어우 아프겠다 하고·
주제도 모르고 무릎으로 기어오기에 청이 결국 열핵꿀밤으로 준엄한 응징을 가하고 만 것이다·
고리대자가 제 머리 붙들고 꺽꺽 비명도 못 지르고 바닥을 구른다·
토목선녀님이 심지어 돌아가시는 길에도 한 건 하는 모습이었다·
저 악독한 고리대자 놈이 빌빌 기면서 어쩔 줄 모르는 꼴 좀 봐라 하고·
그야말로 속이 뻥 뚫리는 청량 그 자체 청량신녀님이다·
그렇게 신녀님은 떠나가셨더란다·
···그런데?
···맞아?
광주 사람들은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진가장의 손님 천화검에게서 어쩐지 매우 익숙한?
낯선 여인에게서 신녀님의 향기를 느꼈다고 해야 하나·
물론 강호의 신성이자 정파의 신룡 그리고 무림의 여협으로 이름이 드높은 천화검이다·
굳이 토목선녀 흉내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다들 생각이 없었다·
아니 강제로 생각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얼굴만 봐도 사람의 생각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열렬한 미모 덕분이었다·
그냥 얼굴만 보면 자동으로 발이 멈추고 홀린 듯이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그 미모를 하염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바라보게 된다·
중원제일미를 다툰다더니 누가 그딴 소리를 해? 그냥 중원제일미인데?
진 소저 옆에 서니까 진 소저가 평범해 보이지 않나?
원래 입만 다물면 우아한 청이다·
단아한 중원 전통 미인상인 백합과 비슷한 부류의 미인이지만 머리가 조금 더 작고 눈코입이 또렷한 청의 고향 말로는 딱 상위 호환이라 하는 청의 미모였다·
물론 중원제일미유 고금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가슴으로 유명한 백합(맨날 까고 다니다보니)에 비하면 육중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살덩어리는 그저 천박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육중한 살덩어리 어디서 본 태가 아니냐?
키도 훤칠하니 크고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아주 극적인 곡선도 그렇고·
저렇게 낙차가 큰 왕궁둥이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어쩐지 익숙한 본 것 같은 기막힌 자태에는 진설 특제 무녀복이 특히나 몸의 곡선을 강조하도록 짜여진 탓이 크기는 했다·
물론 진설이 생각하기에는 감추기에 너무 예쁜 곡선이라 강조했을 뿐이다·
진설의 미학으로는 여인의 옷은 여인의 가장 빼어난 곳을 드러내야 하는 법이다·
진설이 맨날 가슴 반절 위 아니면 아래 아니면 가운데 깊은 골을 훤하게 까고 다니는 이유였다·
거기에 의자매를 옆에 끼고 다니는 꼴도 그렇고·
광주 사람들은 천화검의 의자매라는 그 여인을 요화라고 불렀다·
왜 요화인가· 그냥 딱 보니까 요화던데·
사내를 화나게 하는 얼굴이라서 요화·
끝내주게 야함! 음란함 그 자체!
완전히 결이 다른 두 사람이 붙어다니니 진설의 미모에 익숙해져 눈이 정수리에 달려있던 광주 사람들도 또 미인 구경하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녔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무엇보다 밥!
세상에 밥을 저렇게 먹는 아니 처먹는 여인이 어떻게 두 사람이나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
먹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밀어 넣어 삼키려는 목적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미모에 가려서 와 저리 처먹어도 되게 복스럽고 아름답네 하다가·
음 어쩐지· 그 신녀님 맞겠지···?
하지만 본인이 아닌 척을 하니 어쩔 수 있겠는가·
굳이 숨기려는 사실을 캐어물을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고 또 받은 은혜가 있으니 그냥 모른 척 해드려야지 하고·
사실 숨길 생각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무슨 무림의 여협이 복구 공사에 직접 팔 걷고 나서서 뚝딱거리며 대장 목수급의 실력을 발휘한단 말인가·
비슷한 키· 비슷한 태·
맹한 의매가 있음·
신녀님 아들하고도 종종 어울려다님·
숙련된 목수· 소탈함·
존나 처먹음·
음· 그냥 신녀님이시구나·
그러니 진가장의 복구공사가 속속들이 진행되어 건물이 외양은 그대로 그 내용물만 쏙쏙 뒤바뀌며 점차 지난날의 서글픈 시취가 빠져 사라져갈수록 광주 사람들도 의심에서 심증으로 심증에서 확신으로 그 마음을 굳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신녀님이 복귀하시고 보름·
마침내 진가장 복구 공사가 완료되었다·
—-
진가장이 공사의 끝을 기념하며 잔치를 열어 먹고 마시는 때에 반대로 초상집처럼 축 처진 분위기가 깔린 장소도 있었다·
바로 살월문이다·
광주 협사 혈사가 아니라 협사다·
광주 사람들이 마땅히 죽을 놈들 잘 죽었다고 휘몰아친 피바람을 협사라고 부르고 다니는 것이다·
이 협사로 광주선방이 망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라 소속된 단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꼼꼼하게 학살을 벌였다·
그리고 금적방도 망했다·
금적방 소속 전금당의 주인들이 매일같이 제 처소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으니 이제 남은 이들이라고는 빚문서 태워버리고 가산 털어서 베풀고 알거지가 된 일부뿐이다·
세 사파가 모여 광주를 지배하겠다·
진가를 꾹꾹 눌러 압박하여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셋이서 하나를 상대한다는 계책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광주의 주인은커녕 잘못하다간 이대로 현판 내리고 도망쳐야 하게 생겼다·
진가가 광동성 전체에 무사와 제자를 모집하겠다고 방문을 날렸으니 광동제일의 예전 성세까지는 아니더라도 광주 제일의 성세를 되찾기는 금방일 테니까·
그러니 살월문 문주 이왕출은 아주 똥줄이 탄다·
“방 책사 사도련 사도련에서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합니까?”
“걱정하지 마시지요· 제가 이미 전갈을 보내 두었으니 머지않아 사도련의 금급 전투대가 지원을 올 것입니다·”
“오오 방 책사! 역시 방 책사뿐이오!”
금급 전투대는 사도련의 최정예들이다·
이왕출이 조금만 자기 객관화가 되는 인물이었다면 고작 살월문 하나 돕겠다고 금급 전투대가 편성될 리 없다는 사실을 알 터다·
각 사도방파에서 지정된 고수를 차출하는 금급 전투대는 한 번 운용하려면 사도련 입장에서도 금은은 물론이거니와 영향력까지 소모해야 하는 큰 결심이니까·
하지만 사도련에서 지금까지 해 준 지원이 보통이었던가·
낭고각의 수석 책사를 척 보내주고 또 진가의 제자 모집을 방해하고 동시에 세력을 키우라면서 영약을 궤짝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 그 계획이 위험한 때에 금급 전투대까지 편성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냐고·
“역시 방 책사는 나의 장자방이오!”
그러나 이왕출은 진심이었다·
얼마나 고마우면 그 비싼 서필을 사다가 과거 준비한다는 방 책사의 아들내미에게 보냈겠는가·
당장 생색을 낼 수 있는 선물도 아니고 나중에 사도련에 복귀해서야 알아주게 될 늦은 선물까지 날렸다는 것이 이왕출의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수석 책사라는 방점명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측면이 더 크기는 하지만·
영약을 궤짝으로 끌어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책사라면 나중에 복귀하고서도 이 이왕출과 살월문을 잊지 마시라고 아들에게 미리 뇌물을 쳐 놓은 것이다·
“방 책사가 아니었다면 내 여기까지 감히 올 수가 있었겠소? 그야말로 음 음 그러니까 장자방 장량의 화신이시오!”
이왕출이 진지한 표정으로 방 책사를 추켜세웠다·
방 책사는 저놈의 장자방 타령이 이제는 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지만·
아니 이 새끼는 책사를 장량 한 명밖에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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