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8
“조 공자님· 조 공자님도 안녕하셨나요?”
그러자 조학체가 눈을 무섭게 뜬다·
사내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근거로 웃음기 싹 지우고 눈을 부라리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내의 본능에서 나오는 추측이지만 사실 전혀 멋지지 않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혹시 금일 저녁에 시간 어떠십니까? 제가 친한 동생들과 함께 진해루에 가려고 하는데 아름다우신 천화검께서 참가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 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잔뜩 내리깐 목소리였다·
이 역시 사내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요소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목소리의 결이 높기보다는 낮은 편이 훨씬 낫기는 하다·
목소리가 얇고 높으면 내시나 환관 같은 고자들 같으니까·
“오· 진짜요? 조 공자님이 쏘시는 걸로?”
“하핫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이 조학체! 오늘 아주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음· 제대로 모시는 건 또 뭐야?
접객업 종사자인가 아니면 고향 땅 부산 사내들처럼 놀러만 오면 최대로 대접하겠다는 그런 수식인지·
그에 화룡조 조원들은 웅성웅성·
“어 조장님? 사나이들끼리의 찐한 우정이라고·”
“뭣이 어째? 그럼 지저분한 사내들끼리 땀내나 풍기자는 소리냐?”
“아니 그·”
우물쭈물 어쩐지 실망한 기색으로 서글픈 화룡조 조원들의 표정이다·
그에 청이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끼면 아무래도 불편할 수도 있겠지·
사나이들끼리 나누는 찐한 우정의 자리와 천화검이 자리해 같이 먹고 마시자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중소 방파 출신인 조원들에게 천화검은 애초에 저 까마득한 절벽 위의 꽃이다·
배분으로도 무위로도 상대가 안 되고 또 일정 이상을 벗어난 외모는 경이로울 뿐 막 어떻게 친분이라도 쌓아보고자 할 의지조차 사라지게 만든다·
“아! 아아· 그쪽· 그쪽으로 노시려는 생각이셨구나· 다들 이런· 제가 눈치가 없었나 봐요· 하긴· 모처럼인데 회포도 좀 풀고· 음? 막 사나이답게?”
기녀랑 막막 찐하게 재미나게 건전하게 놀아나려고 했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네·
가서 잘 놀다 오렴 하고·
때로는 배려가 더 비참해지는 때가 있다·
여인에게 듣기에는 좀 뼈아픈 소리다·
청이 그 대신에 표적을 돌렸다·
“아· 창빈이도 거기 가고 싶어?”
“아 그게· 그 그게 아니라 그냥 다같이 어울리는 거니까 그렇게 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그래? 그럼 나랑 밥 먹어? 술은 여인이 따라야 맛있다고? 내가 또 술 따르는 데는 달인이지· 오늘 술잔 마를 일이 없을 줄 알아라·”
“어 우리 둘이? 그건 좀···”
“으윽 창빈 네놈 저주하겠다···”
아드득 하고 들려오는 배경음이 있었지만 청이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하지만 창빈은 쭈뼛쭈뼛 어째 내키는 양이 아닌 것이다·
“뭐야 왜?”
“그 둘이서는 좀 그 남녀가 유별·”
“에이 친구 사이에 뭔 유별이야·”
그러나 청은 굽힐 기세가 아니다·
창빈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둘이서? 안 되는데? 분명 어색할 텐데? 무슨 말을 해야 할 말이 뭐가 있더라? 뭐 재미있는 이야기가 분명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왜 생각이 안 나지····
“그리고 둘 아니거든? 아까 행인두부 먹다가 포도청을 좀 흘리는 바람에 잠깐 얼룩 지우러 갔는데· 아 저기 온다· 의매!”
청이 의매를 외치며 손을 흔들자 화룡조 조원들의 고개가 일시에 돌아갔다가-
다 같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헉·
상고시대의 은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희대의 요녀 달기가 저러했을까·
그야말로 인간 음란 그 자체 사나이를 화나게 만드는 색기 천재 달기재림 천하요녀의 등장이다·
등장만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요녀가 돌연 붉은 입술을 벌려 흰 치아를 훤히 드러내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와 같이 사납고 또 다른 방식으로 잡아먹기라도 할 양으로 음란한 미소를 짓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만 청이 보면 그냥 순도 최대치 반가움의 표현이다·
“여기는 내 의매 의저 견포희야·”
참고로 언니를 말하는 자(姉)는 중원에서 잘 쓰이지 않는 한자로 이는 같은 부모를 둔 손위 누이만을 말하는 좁은 말이라서·
처첩을 여럿 두는 중원에서는 어머니만 달라도 쓸 수 없는 한자라서 그냥 저(姐)를 쓴다·
사저 사매 할 때 그 저다·
“생각해보니 둘이 이미 봤었던가?”
“아니? 처음 보는데?”
“아 그땐 현이었나?”
“현? 그건 또 누구?”
“그 있잖아· 키가 엄청 크고 근육이 막· 이렇게 우락부락한·”
“아· 그 말 많은 동생·”
“아· 그땐 현이었구나· 어쨌든· 여기는 내 친구 창빈이· 화산파의 매화검수고·”
“반가워· 나는 견포희야·”
초면부터 말을 탁 놓는 견포희였다·
달리 이유는 없고 그냥 동생 친구니까?
그러나 창빈은 눈앞이 또 깜깜해졌다!
“그 서문 소저 설마 이렇게 셋이 식사를····”
“응· 이야 창빈이 좋겠네· 양손에 꽃·”
아드드득 창빈 네놈 죽인다 저주로 죽일 것이다····
또다시 배경음이 들려왔지만 청이 또다시 못 들은 척했다·
“이야 창빈이 아주 오늘 호재다 호재·”
효과는 굉장했다!
창빈은 의식이 아득해진다!
청 하나만으로도 둘이 마시려면 어색할 것 같아서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데 이제는 모르는 여인까지 하나 더 끼게 생겼으니까·
창빈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본다·
“그 그! 그·”
“응? 왜?”
“그래! 진 소저! 이렇게 되면 진 소저도 권유해 드려야 하지 않나 하고····”
“앗·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맞다· 진 소저 빼고 우리끼리 가면 좀 그렇지· 이야 창빈이 둘로도 모자라서 셋이다 이거야? 이야 화화공자 마성의 사내·”
창빈이 진땀을 흘리면서도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적어도 여인 셋에 사내 하나가 끼는 구도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그냥 자기는 조용히 술만 마시면 되겠다· 하고·
“네놈 진 소저까지·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한 것이냐 용서 용서 못 한다·”
어쩐지 새까만 증오가 촘촘한 부채살처럼 퍼져나가는 형상이 된 조학체의 모습이다·
청이 더 무시할 수는 없겠다고·
“아· 조 공자님· 아직 계셨구나· 여기는 제 의매 견포희에요· 의매 여기는 조학체 공자님이고 어· 그냥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조학체의 가슴을 푹 찌른다·
“크흑·”
“아· 그냥 아는 사람이시구나· 음 의매? 그냥 아는 사람한테는 뭐라고 인사하지? 그냥 반갑다고 하면 돼?”
“크흐윽·”
조학체가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에 견포희가 고개를 갸웃·
“어디 아프세요?”
“그건· 견 소저를 보고 심장이 쿵쿵 아주 거칠게 날뛰어 주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끓어오르는 맥동·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도저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진부한 소리에 우우 하고 야유가 깔린다·
그에 견포희가 또다시 고개를 갸웃·
“아· 심장이 안 좋으시구나· 저런· 무인이 심장이 약하셔서 어떡해·”
“···? 아니 그게 아니라 아름다우신 견 소저를 보고 두근거린다는 뜻에서···”
“심장이 많이 안 좋으신가보다· 힘내세요· 그 뭐라고 하셨지· 의매 아시는 분?”
“크윽 용서할 수 없다 창빈 네놈···!”
“아니 왜 나한테·”
창빈은 억울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에는 화룡조가 다 같이 진해루에 가기로 결정이 되고 말았다·
이제 와서 따로 방을 잡아 놀기에도 영 민망한 상황이다·
너네는 기녀 끼고 너희끼리 놀으랬다고 진짜로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예 들키지 않았으면 모를까 들키고 나서 진짜 그리하면 체면이 뭐가 되겠냐고·
진해루는 네모반듯한 오 층 누각이다·
다만 한 층의 층고가 한 장 반 쯤으로 매우 높다보니 실제로 그 높이만 따지자면 구 층 마천루와 비슷하거나 더 높다·
거기에 월수산 언덕 위에 지어져 있으니 그 위에 올라서면 막힌 곳이 없어서 천리 밖까지 들여다보인다고·
물론 진짜로 천리 밖이 보이지는 않고 본래 중원인의 표현이 이런 식이다·
애초에 그러한 용도로 지어진 망루 겸 병영이기도 하고·
그러나 군사와 행정이 철저하게 분리가 되고 나서는 민간에 나와 주루로 그것도 광주제일주루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저 남해까지 아주 훤히 들여다보이는 절경을 자랑한다고·
장지문 둘러싸인 진해루 특실에서 화룡조 특별 회식이 열렸다·
참고로 화룡조는 조장 조학체의 흑룡조가 부조장 창빈의 화산파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굳이 흑산조가 아니라 화룡조인 이유는 사내들끼리는 참 대형인 조학체가 첫 글자를 흔쾌히 양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나이 조학체는 지금 천하의 소인배가 되어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냥 흑룡조로 할 걸 하고·
“자자 한 잔 받으시고· 미안하게 됐어요 원래는 좀 쭈물쭈물하고 놀고 계셔야 하는데· 눈치 없이 끼어들어서·”
“아니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소운산파 제자 소호가 척 정중하게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천화검은 천화검 자체로도 너무 미인이라 어렵지만 도가 장문인 항렬의 큰어르신을 겸한다·
공손히 술잔을 받쳐 드니 술병을 감싸 쥔 희고 길쭉한 손가락이 너무나 고워서 그야말로 섬섬옥수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하고 크게 외치는 듯하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든 소호가 고운 미소(요리와 술이 앞에 있어서)로 상냥한 청의 해로운 얼굴을 딱 마주한다·
그 순간 소호는 모든 미련을 놓았다·
천하제일미가 따라주는 한 잔이면 수백의 기녀가 아양을 떤들 감히 비교할 것인가·
화룡조에 오기를 잘했다·
아니 태어나기를 잘했다····
“소호 네놈···”
아드득 이를 가는 조학체의 방해만 아니었다면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겠지만·
청이 일일이 한 바퀴 돌아 술잔을 채우고는 아예 술자리 간사처럼 분위기를 잡는다·
“자자 그러면 건배사 한 번 합시다· 화룡조 조장님 건배사 한 번 들어봐야죠· 자 조 공자님 드십니다· 모두 박수· 환호로 맞이해 주세요 짠짠·”
“크흠·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고 또 이리 자리를 빛내주신 서문 소저 참으로 아름다우시고 호수같이 아름다운 눈빛에 이 조학체 부끄럽지만 이미 빠져버린 모양으로 귀한 자리 함께하셔 주셔서 참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진 소저께서도 여기 참가해 주셨으니 무림육화의 아름다우신 두 분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아 견 소저께서도 물론 그에 견줄 만큼 아름다우신데 아 그러니까 덜하고 더하고가 아니라 천화검께서는 우아하고 아름다우시고 진 소저께서는 단아하신데 또-”
“아이고 팔 떨어지겠다! 어쨌든 건배! 정파 무림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
“건배!”
술자리에서도 사람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그 태도가 다른 법이다·
예를 들자면 창빈은 본래 움직이는 법이 없고 여인이 자리에 없을 때에는 그 용기와 목소리가 대호와 같으나 여인이 위치하면 기대어 놓은 빗자루 비슷하게 쪼그라들고 만다·
물론 이는 다른 요인이 아니라 여인이 함께한 술자리는 유달리 술맛이 너무 뛰어나서 그래서 주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진설은 본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듣는 편이다·
용봉지회 의복의 유행을 선도하는 진설이라서 가만히 있어도 재잘재잘 진설의 고견을 구하는 여협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기도 하지만 본래의 성정이 남의 말을 듣는 쪽으로 진중하니 무게가 있는 편이라서·
그리고 견포희는 본래 울타리 바깥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
환희궁 때는 환희궁이 울타리였고 이후 현재는 가족과 설가상회가 새 울타리다·
그러니 그냥 청을 따라왔을 뿐 정파 무림의 젊은 사내들이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랑 별 차이가 없다·
당난아와 제갈이현과 함께 여행할 때도 둘과는 데면데면하니 별 교류가 없던 이유기도 하고·
그러니 청 바라기 오직 청 옆에만 졸졸 붙어 다니며 술잔 비우고 나면 안주 집어다 입속에 채워주기 바쁘다·
그리고 청은 술자리가 열리면 인간 메뚜기 그 자체가 된다·
한 자리에 붙어있는 경우가 없으니 이 식탁 저 식탁 아주 요령도 좋게 자연스레 끼어들어서 술 주고 술 먹고 파바박 술술술 네다섯잔 빠르게 밀어넣고 빠르게 떠들고는 아 저쪽 가 볼게요 하고 농지를 털어버린 황충마냥 휩쓸고 사라진다·
그래서 창빈은 불편해졌다·
진설과 청과 견포희가 그래도 여인 삼인방이니 셋이 할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조용히 술이나 마셔야지 했더니만·
청이 쌩하고 자리를 뜨고 견포희가 의매 따라 일어나버리니 식탁에 진설과 창빈이 남아 침묵이 내려앉는다·
진설은 듣는 편이라서 입을 열지 않으니 창빈이 그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진 소저가 불편하신 것이 아닌가 지루하다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뭔가 말을 해야 할텐데 뭔가 뭔가 뭔가 입을 어떻게 떼야·
“그 진 소저?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네?”
진설이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만다·
방금 무슨 소리를? 광동 사람한테 광동 음식이 입에 맞느냐고?
하지만 창빈은 큰 성취감을 느끼는 상태·
좋다! 말문을 텄다!
“아무래도 남방 요리는 진귀한 식재를 쓰지 않겠습니까? 여기 팔보만 해도 해삼에 오징어에 새우 전복 이건 음 이건···”
“그건 옥돔이에요·”
“아· 잘 아시는군요·”
“그야 광동 사람이 광동 요리를 모르겠어요?”
“아· 맞다· 그으· 실례했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꾹·
청은 언제 오나 괜히 눈동자를 데굴데굴·
그 청은 아주 살판이 났지만·
“자자 자리 하나만 만들어 주시고· 반가워요 나 알죠? 천화검· 자자 한 잔씩 뭐야 이건 뭐예요? 잔에 찰랑찰랑? 어떻게 잔에 물기가 남아있지? 이야 호탕하게 잘 드시네· 자 그럼 한 잔 받으시고· 반가워요· 아 유현 도사님 여기는? 상 공자님? 자자 반가워요· 자자 우리 짠?”
—-
그리고 진해루의 또다른 특실·
여기에서도 성대한 연회가 열렸으니 바로 살월문 간부들이 대거 몰려나온 살월문 문파 회식이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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