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0
방 책사 방점명은 신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여인이 따라주는 미주를 받아 첫 건배가 들기도 전부터 못된 손이 기녀의 가슴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그에 살월문 문주 이왕출이 음 거 기녀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굶기는 오래 굶었던 모양이라고·
안 그래도 남색을 즐기는 놈이 아니냐 어쩐지 날 보는 눈빛이 더럽더라·
아니면 시녀라고 낀 년이 사실은 애첩인데 맨날 절절매는 모양새를 보니 아주 꽉 잡혀 사는 거 아니냐 사내 망신은 아주 다 시킨다느니·
회식에 한 번도 안 나오는 방 책사라서 점점 더러운 소문이 돌던 참이다·
하지만 오늘 하는 꼴을 보니 그러한 소문도 아주 싹 들어가게 생겼다·
다만 무슨 십 년 굶은 야인처럼 치대는 꼴이 방파의 책사로서 체통은 좀 지켜 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어쨌거나 살월파 회식은 즐겁다·
참 즐겁다·
막막 놀고 막막 음란하고 막막 뭔가 되게 불건전하고 위생적이지 못하게 즐겁다·
그야말로 짐승! 짐승들의 연회!
인간 실격! 짐승 합격!
그러다 돌연 방 책사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어이구·”
“방 책사? 어디를 가시오?”
“잠깐 물 좀 빼러····”
그러자 전 총관 현 살월파 교두 왕우가 히죽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아· 그런가·”
그에 살월파 건달들이 낄낄거린다·
사파 놈들은 인생에 있어서 하등 쓸모없는 부분에 집착하고는 한다·
개중에 주량이 있다·
정파 무인들은 적당히 취해 더 취했다간 실수하겠다 싶으면 잔을 덮어놓거나 혹은 바람 쐬러 나가서 주정을 빼내지만 사파 놈들은 그런 거 없이 죽어라 퍼 마신다·
왜냐하면 주정을 빼내는 일은 사나이답지 않기 때문이다·
사나이는 술독이 올라 죽을지언정 굳이 마신 술을 뿜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는 이상한 집착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방 책사의 이마에도 힘줄이 볼록·
“그런 거 아니고 물만 빼러 가는 거요·”
“다들 그리 말해놓고는 안색이 멀쩡해져서 돌아온단 말이지· 안 그런가? 계집처럼 핑계나 대고 기껏 마신 술이나 뿜어내고 오고 말야·”
“흥· 그럼 같이 가서 확인이라도 해 보시던가·”
“내가 사내 좆 봐서 무엇하게· 내 물 빼고 오는데 얼마나 걸리나 숫자나 세 보지· 오래 걸리면 알지?”
“내 오줌빨이 원체 장강처럼 흘러서· 거 같이 가서 소리라도 좀 듣고 있던가· 아주 하늘에 구멍 뚫린 둣이 쏟아붓는 소리에 혼이 쏙 빠지고 말걸· 자 여러분 조금 있다 왕 교두가 허겁지겁 하늘이 무너졌다고 호들갑을 떨면 본 책사의 오줌발이 그런 수준이라고 생각하시오들·”
그에 크하핫 좌중에 웃음이 터진다·
왕우가 돌 씹은 표정으로 찌그러졌다·
무공이면 모를까 머리로 먹고 사는 문사를 말싸움으로 이기려 들면 쓰겠는가·
괜한 시비 걸어오는 왕 교두를 간단하게 제압한 방 책사가 위풍당당 으쓱하니 솟은 어깨로 비틀비틀 장지문 열고 나간다·
좌우를 둘러보고 측간을 나타내는 빈 목판을 확인하고는 한 발짝 두 발짝·
그러다 문득 드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표정 없이 창백한 얼굴이 나타난다·
“한 병 이상의 주류 섭취· 약속을 어겼습니다· 당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아씨! 깜짝이야· 뭐야 언제 여기까지·”
“임무를 수행중이었습니다만· 약조하신 주량을 아득히 초과하셨군요· 이는 심각한 기만행위입니다·”
“흥· 너도 임무 핑계 대고 놀고 있는 거 아니냐? 입가에 묻은 자국이나 지우지?”
무표정한 랑랑의 입가는 온통 고추 기름으로 주황색 얼룩이 번지고 왼쪽 뺨에는 진득한 검은 액체가 길게 아마도 꼬치구이라도 빼 먹은 모양새였다·
“이는 임무 수행을 위한 체력 보충에 불과합니다· 어쨌거나 본 랑랑은 이를 적극적인 기망 행위로 간주하겠습니다·”
“크흠 그래서 내가 지금 주정 빼려고 하는 거 아니냐· 어쨌거나 취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냐·”
“그러시던가· 알아서 하십시오·”
그와 동시에 랑랑이 문을 탁 닫는다·
방 책사가 혀를 쯧쯧 찬다·
“뭐야 삐졌나? 하· 어이가 없네· 인간도 아닌 괴물 강시년 주제에 기분 나쁘게 인간 흉내나 내고· 강시 주제에 비싼 요리나 처먹고 말야·”
방 책사가 그리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어나간다·
그러다 문득 측간에서 스윽 빠져나오는 여인이 한 명·
방 책사가 요의도 잊은 채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여인을 바라본다·
음란 그 자체인 미색을 보아하니 기녀인 모양인데 세상에 광주 촌구석에 이런 특급 아니 특특급 기녀가?
방 책사의 오해는 특별하지 않다·
중원의 미학으로 음란한 외모라고 하면 여인에게 굉장이 부끄러운 일이므로 위에 화장을 칠하여 감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여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내를 홀리는 꽃들 기녀들이다·
“너 너· 이름이 무엇이냐?”
견포희가 대뜸 반말을 찍 싸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견포희 식의 사고가 펼쳐진다·
당신은 반말을 들었다·
늙은이인가? 아니오·
아니라면 아는 사람인가? 아니오·
그도 아니라면 고수인가? 아니오·
“나? 견포희인데? 넌 누구야?”
견포희는 당한 만큼 그대로 돌려준다·
좋게 포장하면 거울 청이 보기엔 그냥 유치해 빠졌다·
“크흠 나는 살월파의 책사 방점명이다· 책사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이인자라고 할 수 있지·”
“살월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응 그래서? 왜?”
“지금 손님을 받고 있느냐? 아니 됐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얼마면 되느냐? 내 금자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자아·”
그리고는 견포희의 팔목을 덥석 쥔다·
“아니 무슨 계집년이 힘이 이렇게· 뭐해 왜 목석처럼 가만히 있어?”
견포희는 고수다·
간신히 이류나 될까 싶은 놈팽이가 손을 뻗으니 반격하지 않았을 뿐이다·
견포희가 제 팔을 잡아당기는 연약한 힘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딜 가?”
“크흐흐 남녀가 만났으니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크크크·”
견포희가 또 고개를 갸웃·
“남녀가 만나면 뭘 해?”
“아니 몰라서 물어? 와서 술도 좀 따르고 입도 좀 맞추고 엉?”
“왜? 난 싫은데?”
“아니 이게 왜 모자란 년처럼 굴어? 이 어르신께서 가자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따를 것이지 내 정녕 억지로 너를 취해야겠느냐? 좋은 말로 할 때 따르지 못해?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텐데 어느 쪽이 이득인지 모르겠느냐 이 멍청한 계집아·”
방점명이 그리 말하며 손을 확 잡아당기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의 저항은 온데간데없이 당기는 손이 허공을 휘젓는 것처럼 무게감 없이 훅 딸려들어온다·
그리고 그 흐름이 멈추지 않고 돌연 일천 근 거력이 되어 팔목을 돌린다·
그 회전력은 팔꿈치에서 어깨를 타고 점점 증폭되어 불어나더니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몸을 휘두른다·
방점명의 몸이 팔을 축으로 삼아 물레방아처럼 빙글빙글 회전했다·
마치 위와 아래를 붙잡아 돌리는 듯한 하늘과 땅이 마구 휘돌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방점명이 아득하게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와 같은 원리의 전설적인 신공 하나를 간신히 떠올린다·
건곤대나이·
하늘과 땅을 붙잡아 뒤집어 옮기다·
그 순간 제게 끼치는 차가운 목소리·
“내가 멍청한데 뭐 보태준 거 있어? 그 나는 매력있지만 멍청하고 하찮은 백치 백치 몰라?”
방점명이 겨우 붙들고 있던 의식을 한 방에 놓아버리게 만드는 지자를 후려치는 멍청한 소리였다·
방점명이 까무룩 날아가는 의식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생각한 바는 이와 같았다·
백치미겠지 멍청한 년아····
다행히 방점명이 오래도록 찬 바닥에 방치되지는 않았다·
물 빼러 간다던 방 책사가 도대체 소식이 없으니 살월문 문주가 누가 가서 방 책사좀 찾아 보라고·
술도 약한 서생이 만취해서 변소에 빠지기라도 했으면 큰일이 난 것이 아니냐고·
의외로 그에 찾아보겠다고 일어난 이는 다름 아닌 전 총관 왕우였다·
“왕 총관 아니 왕 교두? 네가?”
“형님 저라고 언제까지 계속 으르렁거릴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살월파 우리 한 식구인데 이쯤에서 한 번 져 줘야지·”
물론 왕우도 뭐 죽여버리겠다느니 그런 흉악한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분명 술 꼴아서 변소나 아니면 어디 빈 방에서 골아떨어져 있을 것이 뻔하지 않나·
그러니 변소에 푹 담갔다가 건져오려고 똥통에 빠진 놈이라고 하면 책사고 뭐고 그냥 병신새끼 되는 것도 순식간이라고·
어찌 보면 그냥 죽이는 편이 낫다고도 할 생각이지만·
적어도 문주가 괜히 덧붙이기 전에는·
“그래 아우야 잘 생각했다· 거 한 주먹도 안 되는 새끼다마는 그래도 딱 필요한 인재인데 좀 살살 어르고 달래주고 그래야지· 그게 사나이 아니겠냐· 자 그간 서운한 거 다 안다· 한 잔 받아라· 방 책사가 원체 속이 좁아놔서 내 들어주는 척 했는데 내 금방 다시 총관 자리에 돌려놔 줄 테니까·”
이왕출이 대견하다는 듯 술을 건넨다·
그에 한입에 확 들이킨 왕우가 히죽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새끼가 지랄해서 총관 자리가 날아갔다 이거지·
그간 심증로만 추측하던 강등의 원인이 명확한 증거를 갖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복도로 나오니 저만치 바닥에 드러누운 진상 취객이 한 명·
한복판에서 잠이나 자는 줄 알았더니·
눈깔은 휙 돌아 흰자위를 드러내고 입가에는 부글부글 거품이 끓고 팔뚝은 대체 어떤 수법인지 배배 꼬여 아작이 난 상태였으니까·
왕우가 입꼬리가 귀에 가까워졌다·
사파인에게 동료의 비명횡사는 늘 일어나고는 하는 일상에 가깝다·
이 새끼 딱 보니 고수 잘 못 건드려서 아작이 났구만· 하고·
왕우가 잘 되었다며 단도를 뽑아든다·
그 순간 방 책사가 정신을 차린다·
“으윽 왕 교두···?”
“씨벌 놈이· 그래 왕 교두다· 사람 으매해서 교두로 만들어놓으니 속 시원하더냐? 너 이 새끼 사람 잘못 건드렸어·”
“으매가 아니라 음해 컥·”
순간 뜨끔하게 목을 스쳐가는 칼날에 방 책사가 온전한 손으로 제 목을 틀어쥐었다·
“으매인지 음해인지 미안하다는 소리가 먼저 나왔어야지· 이 씹새끼야·”
그에 왕우가 침을 탁 뱉고는 바닥을 바르작거리는 방점명의 등짝을 호되게 퍽 걷어차고는 몸을 돌린다·
“크륵· 끄르륵·”
방점명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려 하지만 목이 제대로 베여 피가 기도로 치미는 와중에는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우당탕 거의 부술 듯이 문을 여는 소리 그리고 다급한 왕우의 목소리·
-형님! 큰일 큰일입니다!
순간 방점명의 눈앞에 위치한 장지문이 소리 없이 스르륵 열린다·
열린 문 아래 발치에 무표정하니 방점명과 눈을 마주치는 표정 없는 얼굴이 하나·
바닥에 누워 바닥에 붙인 두 손바닥에다 턱을 괸 랑랑의 얼굴이었다·
“이래서 상호간의 신뢰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배신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끄륵···”
“안타깝게도 본 랑랑은 사람의 표정으로 대화를 유추하는 능력은 없습니다만· 입의 모양을 보니 살려달라 라고 하시는 모양입니다만·”
그에 방점명의 눈이 간절한 빛을 띄고 베인 목으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까닥거린다·
그리고 나선 방점명의 동공이 확장된다·
항상 표정 없이 사람 같지 않던 실제로 사람 아닌 강시년이기는 하지만 랑랑의 얼굴이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기에·
랑랑의 입꼬리가 귓불 밑까지 쩍 벌어진다·
그 사이로 뾰족하니 날카로운 괴물의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면서·
“싫습니다· 인간도 아닌 괴물 강시년은 이제 기분 나쁘게 인간 흉내를 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니 기분 나쁜 강시년 말고 같은 인간에게 부탁하십시오·”
그리고는 천천히 장지문이 닫힌다·
방점명이 연신 거품을 물고 그르륵 피 끓는 소리를 낸다·
꺼져가는 의식 속에 웅웅 어쩐지 아주 멀게 느껴지는 다급한 목소리가 쨍쨍하다·
방 책사! 이 무슨! 정신 좀! 피가 젠장 지혈이 씹· 이거 제대로 된 칼잽이가 쑤셔놨잖아 이런 썅· 사도련에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살월파의 짐승 합격 회식씬은 작가에게 관련 자료 및 사료가 없어서 생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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