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3
다른 특실의 손님들이 무수한 감사의 인사를 날려댄다·
사실 순수한 감사의 마음만은 아니다·
특실쯤 되면 보통 손님은 아니고 하루치 술값에 금자를 쏟는 큰손들이다·
이런 이들에게 인맥이란 세상 가장 중요한 보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은혜를 샀다는 명목 아래에 감사 인사도 좀 드리고 빌미로 초대도 좀 드리고 그러다 술 한 잔 술 두 잔 친해지면 좋고 자식 친척 총동원해 인척 관계가 되면 아주 최고고 아니면 아쉽지만 손해는 아니다·
마침 딸자식 대동한 큰손들이 딸년들에게 눈치를 준다·
딸년들 역시 얼굴 모를 정략혼 상대보다는 헌앙하고 멋진 무림의 촉망한 후기지수가 일백 배는 낫다·
부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여인 특유의 촉으로 가장 만만한 사람을 곧장 찾아냈으니 구명지은을 입은 소녀들이 창빈에게 둘 조학체에게 둘이 붙었다·
나머지 후기지수들은 아쉽지만 억울하면 본인 경지를 더 올렸어야 했다·
그러니 조학체의 입이 아주 헤 벌어졌다·
창빈은 많이 곤란해졌다·
“대협대협 여기 제 술도 받으셔요·”
“음·”
“어쩜 과묵하기도 하셔라· 역시 사내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대협? 혹여 오늘 밤에는 달리 하시는 임무가 있으신가요?”
“컥 커헉·”
“어머머 뿜는 것도 호쾌하셔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소녀의 방에 요즘 쥐가 드나드는 것 같아서· 괜찮으시면 대협께서 소녀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오· 늘· 밤· 에·”
“그으· 남녀··· 유별··· 어찌····”
창빈의 눈이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그 와중 색다른 목표에 집중하는 여인도 한 명·
“본 랑랑은 크게 개안하였습니다· 인간의 탐욕이란 이다지도 두려운 것이로군요· 과연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세워 청의 윗배를 콕 찌르는 것이다·
“아씨 뭔데요?”
“찌르면 터지지 않을까 하여 찔러보았습니다· 굉장히 단단하군요·”
승전 연회 중 대충 이 각쯤 지나서 슬그머니 흘러들어온 랑랑이었다·
그리고는 청의 옆 청을 바라보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사람 먹는 광경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오· 와· 굉장한· 따위로 사람같지 않은 무표정을 하고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감탄사를 넣으면서·
“이러다 체하겠네· 구경 났어요? 왜 사람 먹는 걸 뚫어져라 쳐다보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랑랑이 존재해온 시간을 통틀어 이는 상당히 진귀한 구경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랑랑이 보증하겠습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천화검·”
“아씨 저리 좀 가요·”
“천화검은 랑랑의 자유 의지를 강제할 수 없습니다·”
“아 쫌· 슬슬 물리적 수단을 써야할까 고민이 되는 참이거든요?”
“폭력도 좋습니다만 랑랑에게 가해지는 위해는 좋지 못합니다·”
랑랑이 그리 말하면서 재주도 좋게 스으윽 뒤로 물러난다·
딱히 꿇고 있는 무릎을 움직이지도 않는 것 같은데 뭐 아래 바퀴라도 달렸나?
그러던 도중이었다·
좌우로 여인 끼고도 모자랐는지 기어코 둘을 달고도 여인 셋 딸린 청의 주탁까지 껄떡대러 찾아온 조학체가 랑랑을 보고 흠칫하다가·
“그 아름다우신 소저? 혹시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소이까?”
“랑랑은 대답하고 싶지 않음·”
청이 반색했다·
그래 작업 걸어라 작업 걸어·
조 형이 반갑기는 또 처음이네·
나는 이참에 좀 저기 저돌적 육탄 공세에 곤란해 하는 창빈이나 좀 도와줄까·
와 쟤네 좀 봐· 아주 그냥 대놓고다가 가슴을 문지르고 있네·
저러다 창빈이 팔뚝에 가슴 옮겠어·
생각해보니 굳이 창빈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막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부러움에 눈깔 튀어나올 것 같은 화룡조 친구들이나 좀 위로해 줘야겠다·
청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다·
“아! 하후 표매! 나 조학체야! 모르겠어?”
“이 새끼는 여전히 눈치가 없습니다· 또 그런 주제에 여자 얼굴은 잊어먹지도 않습니다· 징글징글한 징그러운 놈입니다·”
“엥· 표매?”
표매는 정확히는 사촌을 말하지만 중원에서 보통 사촌이란 굳이 호칭을 형제와 구분하지 않는 편이다·
굳이 쓴다고 하면 아주 먼 계통의 친척 정도일까·
“둘이 아는 사이에요?”
“아· 제 사촌 누이입니다·”
“아닙니다· 랑랑은 저러한 사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의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둘 모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조씨와 하후씨는 대충 의형제 가문쯤 되는 사이라나·
삼국지라고 하면 그림으로나마 휙 넘긴 청이지만 그대로 조씨와 하후씨가 어디서 의형제가 되었는지 정도는 곧장 이해했다·
잘 됐다·
이참에 친척끼리 회포 풀라고 놔두고 나는 또 주탁 순례나 해야겠다고·
청이 그렇게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거릴 때였다·
“랑랑은 랑랑일 뿐입니다· 하후 가문은 멸문했습니다· 하후랑랑은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죽은 사람입니다·”
“그· 유감이다· 가문 일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유감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에 조학체의 표정이 침통해졌다·
아무리 여인에 미친 새끼라도 가족이 떼몰살을 당한 사촌 동생 앞에서까지 여색을 탐할 정도는 아니라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청이 괜히 불편해서 자세를 다시 취하는 척을 했다·
에이씨 분위기 갑자기 왜 초상집인데·
“정말입니다· 랑랑은 이미 연연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일 뿐· 랑랑은 건실한 미래만을 바라봅니다·”
그에 조학체의 표정이 더욱 침통해졌다·
랑랑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는 더없는 진실입니다· 어째서 믿지 않는 것입니까? 아아· 이해했습니다· 랑랑의 표정이 없기 때문입니까? 이는 멸문 이후 감정이 표정으로 연결되어 표현하지 못하는 신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예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니 조가의 색마 놈은 안심하십시오·”
표정은 없어도 조가의 색마 놈이라는 표현에서부터 벌써 전혀 반갑지 않다는 감정을 팍팍 드러내는 중이다·
조학체 역시 그를 읽었는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조가장에 들러라·”
“지금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랑랑은 현재 구명지은은 갚기 위해 천화검을 관찰 아니 모실 생각입니다·”
“엥· 나는 필요없 희매? 왜 그래?”
돌연 청의 팔뚝으로 와락 휘감기는 뭉클한 촉감·
청이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어째서인지 애절하게 쳐다보는 견포희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랑랑은 제 할 말을 한다·
“사양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사양이 아니라 내가 싫다구요· 누구 마음대로-”
“거절은 거절하겠습니다· 랑랑의 마음은 천화검이 강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랑랑의 마음은 랑랑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씨 뭐 이딴 여자가 다 있어·”
“맞아· 뭐 이딴 여자가 다 있어·”
견포희가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랑랑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다·
“됐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랑랑은 현재 유일한 취미인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 많은 양의 금전을 필요로 합니다· 조 오라버니는 속히 랑랑에게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십시오·”
“필요할 때만 오라버니인건 여전하구나·”
“빨리 내놓으십시오 조가의 색마 놈·”
그에 조학체가 품속에서 전표첩을 꺼내 아예 통째로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일백 관쯤 될 거다·”
그에 조학체 좌우로 달라붙은 여인들이 허억 하고 숨을 들이쉰다·
황금 일백 관을 무슨 용돈이라도 쥐어주듯이 간단히 건네는 장면이었으니까·
청도 조금 다시 봤다·
사실 여인이 없으면 존경할 만한 형님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왔겠는가· 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가에 방문하지는 않겠습니다· 랑랑은 과거의 인연을 통해 좋지 못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내가 좀 사라져 줘야겠는데· 소저들 우리 조용한 곳에서 찐하게 이야기라도 나눠보지 않으시겠소이까?”
“넵!”
“좋아요!”
두 여인이 눈을 빛낸다·
“혹시 서문 소저께서도-”
“조 형도 족발로 맞고 싶어요?”
다시 보기는 개뿔·
그냥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여인 둘 끼고 사라지면서도 기어코 다음 기회에 운운하는 조 형의 대가리에 청이 잘 발린 돼지 발톱을 한웅큼 집어 던진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돼지 발톱들이 조 형의 머리카락에 폭폭 박혀 자리를 잡는다·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조 형이 돼지발톱들과 한 몸이 되어 자리를 떠나고 그러고 나니 은근슬쩍 가까워진 랑랑이 남았다·
“랑랑의 과거가 궁금하십니까? 특별하지 않은 일입니다· 하후 가문은 역모죄로 멸문당했습니다·”
“아·”
황제 또 너야? 나라 꼴이 대체 왜 이래?
청의 표졍이 일그러지자 랑랑이 고개를 젓는다·
“동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역모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아· 진짜로· 그러시구나·”
“하후 가문은 힘이 모자라서 멸문당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실이 당했을 터· 그뿐인 이야기입니다· 랑랑은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 네·”
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그에 랑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러한 랑랑에게 감정적인 도움을 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천화검의 품위 없고 지저분하며 추잡한 식사 장면이야말로 본 랑랑에게 전에 없던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인간의 식사 장면이 이렇게나 큰 즐거움을 제공하다니· 랑랑은 크게 개안했습니다·”
“진짜 부탁인데 좀 가 주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랑랑은 부탁을 들어주기 싫습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실은 전혀 죄송하지도 않습니다·”
“아 쫌· 저기 가라구요·”
—-
멀지 않은 지난날 산 넘고 물 건너 굽이굽이 먼 여행을 떠난 한 노인이 있었다·
일종의 도피행이기에 서두르느라 노구에 쉽지 않은 여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든든한 자식들 자식처럼 기르는 차가운 짐승들이 있어 적적하지는 않았더란다·
품속에 여러 독사를 키우는 노인 강호 사람들은 노인을 사사의 보열이라 불렀다·
덤으로 새로 들인 제자도 있고·
아둔하니 열을 가르치면 하나를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을 잘 듣는 녀석이라 애초에 자질 보고 들이지는 않았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호북성에 닿아 자귀현!
설가상회의 장원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오고 나니 보열의 심경이 복잡해진다·
작은 상회라더니 진짜 작구나·
아니 무슨 진짜로 작은 상회를 소개시켜주고· 고년이 또 나를 속인 건 아니겠지·
일단 서문청 그 아이가 권유하길래 오긴 왔는데 상회의 장원이 너무나 작다·
이래서야 보금자리가 될 리가 없다·
물론 호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사파련이 손을 쓰기는 어려울 터다·
정파의 영역에서 사파 놈들이 무얼 할 수 있겠냐마는 문제는 정파 놈들이다·
이 코딱지만 한 상회가 정파 놈들과의 은원에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아쉬운 사람은 보열이다·
안 되더라도 천화검의 이름을 대면 금전이라도 몇 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못 먹어도 우리 아가들(뱀) 보양식 정도는 한번 해 먹여야지·
광서에 고작 한 철 머물렀다고 벌써 중원 본토의 혹독한 겨울 날씨를 잊어버렸으니 추위는 뱀의 천적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일단 제자에게는 짐 풀라 객잔에 넣어두고 사사의가 설가상회를 향해 점점 다가가는데·
어째?
뭔가?
심상치 않지?
짐마차 끌고 오가는 놈이며 지게 든 놈 야채 수레 미는 여인까지 어째 흘끗흘끗 이쪽을 살피는 모습이다·
몰래 살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놓고 그쪽을 주시하고 있다고 하는 경고에 가깝다·
설가상회로 드나드는 잡일꾼 하나하나가 어째 딱히 숨기지 않는 기세로 절정 고수가 대부분이고 드문드문 초절정이 가끔 일류도 하나씩 섞여있고·
이거 평범한 상회가 아니로구나·
사사의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설가상회에 대문 앞에 도착하니 문을 지키는 놈들도 절정의 고수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께서는 본 상회에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사사의가 조심스레 운을 떼어본다·
“여기가 설가상회가 맞는가? 내 사사의라 하는 의원일세· 천화검 그러니까 서문청이라는 아이와 인연이 좀 닿아서 일손을 좀 도와줄 수 있겠냐며 소개를 좀 받았는데·”
그러자 돌연 문지기의 기세가 돌변한다·
좋은 쪽으로였다·
문지기의 얼굴이 활짝 피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아가씨께서 소개해 주셨단 말씀이십니까? 진작에 말씀해주시지·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아유 올겨울은 아주 날이 독하지 않습니까· 따뜻한 차와 술 중 어느 쪽을 즐기시는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어 차를 즐긴다네·”
“아· 다행히 마침 좋은 노청이 들었습니다· 중앙전 상회주실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노청이라 하면 호북의 특산이자 호북성을 대표하는 차다·
그리고 한 지역을 대표하는 차들이 으레 그렇듯이 굉장히 비싸다·
차예광인 사사의라서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군침이 돌며 미소가 번지는 순간·
“야 들었지? 아가씨 손님이시다! 해산!”
순간 상회 앞 길거리를 지나던 무수한 사람들이 일시에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쫙 흩어져 산개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다들 어째서인지 싱글벙글이라 더 소름이 끼친다·
사사의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일꾼으로 위장한 고수들은 눈속임이오 주 병력은 지나던 사람들로 위장하여 바짝 칼날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보열이 다른 쪽으로 바짝 긴장했다·대체 무엇 무엇이냐·
천화검은 어째서 정파 영역 그것도 제 사문인 신녀문 코앞에다가 이러한 세력을 심어두고 있었단 말이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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