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4
진가장에 도착한 무림맹 정규 전투단의 이름은 죽협대 대나무처럼 곧게 협을 행하리라는 이름이었다·
거기에 강호행을 겸해서 후기지수의 예비 전투조 하나가 따라붙었을 뿐 본대는 언제까지나 죽협대 무사들이다·
즉 언제까지나 덤인 화룡조다·
도착 첫날 진가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짐은 푸는 둥 마는 둥 대충 던져넣고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가는 만행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후기지수쯤이나 되어서는 깨나 철딱서니 없는 꼴이지만·
사실 진짜로 철이 없어서 그렇다·
애초에 문파의 담장 속에서 수련하면서 지낸 젊은 후기지수들이 철들 일이 무어가 있겠는가·
그냥 몸만 큰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파의 어른들 역시 모두 그러한 유년기를 보낸 너 나 우리다·
그러니 뭐 강호에 나와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때가 아니냐· 지루한 사문에서 벗어나 술판도 좀 벌이고 할 수도 있지·
게다가 애초에 후기지수들이란 그렇게 좀 풀어놓아야 한다·
실컷 놀고 난 견공들이 지쳐서 얌전해지는 것처럼 후기지수들 역시 양껏 놀도록 놔두어야 사고를 안 친다·
좌우 사정도 안 살피고 딱 눈에 보이는 꼴에 격분해서 달려들거나 마두니까 일단 칼부터 들이밀거나 부패한 관리들은 아주 만만해서 자주 때려눕힌다·
그러니 하는 꼴은 괘씸해도 그래 놀아라 지금 안 놀면 언제 놀겠냐고 놔두었더니·
진가장에 다급히 사람이 들어서 알리기를 지금 진해루 꼭대기에서 살월파하고 아주 제대로 한판 붙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가주와 죽협대장 비화불 월량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우르르 진해루로 달려나갔더란다·
그리고 나니 어이가 없다·
왔노라 싸웠노라 그리고 이겼노라·
악독한 사마외도 저 사악한 사파인 살월파 놈들을 무찌른 화룡조 후기지수들의 어깨가 으쓱하다 못해 아주 하늘로 승천한다·
거기에 더해 특실 손님들의 압도적 감사에 힘입어 부어라 마셔라 성대한 승전 연회가 열렸다·
진가주와 진가 무사들 그리고 죽협대 대장과 죽협대가 거친 숨을 뿜으며 난입했을 때는 한참 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고·
당연히 혼났다·
“정신머리들이 있는 게냐? 어째 그렇게 경솔하게 싸움을 벌여? 그러다 누구 다치기라도 했으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생각이더냐? 너희가 너희 한 사람이더냐!? 하나 다치면 다치는 선에서 그쳐도 다행이다· 어디 잘리고 썰려 불구라도 되면 그러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기라도 했더라도 이렇게 태평하게 술이나 처먹고 있을 테냐!”
월량에 일갈에 죄다 꿇어앉은 후기지수들이 고개를 푹 숙인다·
“아주 정신머리가 놀러왔냐? 놀러왔냐고? 오냐 이참에 아주 야간 근무만 줄창 돌다가 갈 줄 알아라·”
그러나 후기지수들의 표정은 불퉁하다·
부상자 하나로 싸움을 끝냈으면 이 정도 축하연은 열 만하지 않은가 하고·
심지어 그 부상자는 살월파 건달의 등을 쫓다가 오리구이를 밟고 나뒹구는 와중에 제 칼로 제 뺨에 칼자국을 냈다·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목격자가 워낙 많은 탓에 묵살되었다나·
불온한 기색을 읽은 월량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불을 토하려는 순간이었다·
“대사님 전부 제 잘못이에요· 화룡조의 협사들께선 그저 절 도우시려고 하셨을 뿐이고 놈들이 제 의매를 희롱하고는 그도 모자라서 명분을 삼아 해코지하려 들기에 먼저 손을 쓰고 말았어요·”
청의 눈썹이 가련한 팔(八)자를 그린다·
사내의 애간장을 녹이는 서글픔이다·
하지만 월량의 별호는 비화불이다·
부처 불(佛)을 쓰는 별호를 보고 월자를 쓰는 법명을 보면 조금만 식견이 있다면 소림의 일대 제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 불심 깊은 소림의 일대 제자다·
맹주 제자로 수양이 덜 된 막내 사제만 빼면 여색에 흔들리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월량에게는 청의 미색이 통하지 않는다!
월량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만 청은 소림하고 남이 아니다·
천화검은 여래신장의 전승자이자 소림에 그 무학을 돌려준 은인인 것이다·
무엇보다 무림대회 끝나고 소림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굴 익힌 사이다·
어른에게 청이 하는 태도가 보통 여우가 아니었으니 아이가 후기지수라 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정파의 동량이구나 하고 이미 콩깍지가 확 씌어버린 상태라는 뜻이다·
“흠흠 사파 놈들이 여색에 마구니가 끼는 일이 한두번이더냐· 그래서 의매는 좀 어떠하느냐 괜히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고 하겠구나·”
“저는 괜찮아요 스님· 데려가려 하길래 박살을 내놨어요· 히힛····”
견포희가 헤프게 웃으며 대답한다·
늙은이인가? 아니오·
그렇다면 청과 아는 사이인가? 네·
논리적 사고의 결과로 견포희도 같이 공손함을 취하는 것이다·
“의매는 마땅히 여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손을 썼을 뿐인데 놈들이 그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기에·”
“원래 사파 놈들이 좀 그렇지·”
“화룡조의 협사분들은 그저 소녀를 구하기 위해 칼을 들었을 뿐이니 꾸중을 하시려거든 제게 내려주셔요·”
월량의 분노가 슬그머니 사그라든다·
의매라는 여인을 보니 그 미색이 현세에 내려온 마라와 같이 음란하고 요사한 기색이었으니 안 그래도 유혹을 참지 않는 사파의 말종 놈들이 참지 못할 만도 하다·
음· 가족이 희롱당했다면 어쩔 수 없지·
정파가 한 가족인데 정파의 일원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돕는 일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화룡조 철딱서니 없는 이 놈들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잘 했다고 칭찬이라도 해 줘야 할 판이다·
“아니다· 천화검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사해가 동도라고 정파 무림의 일에 지체 없이 팔을 걷고 도왔으니 오히려 기특하다 할 일이 아니겠냐· 내 야간 근무 건은 없던 일로 해 주마·”
그에 후기지수들의 눈이 번쩍·
역시 천화검! 천화검이 최고다!
천화검이 우리 조장이었으면 좋겠다·
그에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진자강이 한숨을 푹 내쉰다·
진자강은 이미 천화검의 ‘참지 못하고 그만’ 하는 변명을 한 번 겪었다·
저번에는 참지 못하고 그만 망치로 사파 놈들을 때려죽이더니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그만 살월파 문주의 대가리를 깨 버리지 않았던가·
그것도 족발로· 백운저수 흰 족발로·
아이가 참 차분하고 싹싹하니 그렇게 안 봤는데 눈이 뒤집히면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라고·
“싸움이야 그렇다 치고· 여러분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지요? 만약 적들이 태세를 정비하여 다시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이렇게 엉망진창 주취한 채로 적을 맞았겠군요?”
“헛·”
슬그머니 뻣뻣해지던 후기지수들의 목이 다시 버들가지처럼 축 처졌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서·
당장 이겼다고 신나서 퍼먹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한 번 이겼다고 적이 포기하고 물러난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멍청하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미숙함이다·
그에 월량의 눈이 다시 사나워진다·
도우러 온 지원부대인데 진가주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이냐!
“그래 이놈들! 그러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와서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고하고 이후를 논하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다 끝날 일처럼 이렇게 퍼질러서는! 한 번 이기면 싸움이 끝나!? 우르르 다 몰려오면 너네가 이길 수 있어!? 이 멍청한 새끼들 아주 사고 못 치게 야간에 붙박아놔야지 내 도대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그에 후기지수들의 어깨가 축 처진다·
청이 잠깐 망설이다가 역시 최대의 행복을 위한 미운 놈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고·
“그으····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예비 전투조라 해도 엄연히 부대의 형식을 가졌으니 상명하복이 당연한 미덕이 아닐까요? 그러니 조원이라는 입장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을 뿐이실 거예요····”
“엥? 뭐야? 그러고 보니 조학체 이놈은 어디 갔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는가·
조원들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이는 조학체가 저 혼자만 재미 보겠다고 여인을 둘이나 끼고 사라졌다는 얄미움 같은 사심이 전혀 섞이지 않은 정파의 어른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온 이실직고다·
“아니 이 새끼가·”
조장이라는 놈이 뒷수습은 뒷전이고 여인과 나뒹굴겠다고 그것도 둘이나 끼고 혼자 사라졌다니·
“하· 맹주님이 버릇 좀 제대로 잡아달라 그리 부탁을 하시더니· 창빈 파견 동안은 네가 조장을 맡아라· 조가놈은 내가 아주 옆에 끼고 다니면서 기강을 잡아야겠다·”
당연히 자연스러운 분노의 흐름이 조장을 향했다·
그에 후기지수들이 감사 일만 배 천화검 세 글자를 가슴에 깊숙히 새기는 순간이다·
역시 천화검! 믿고 있었다고!
나는 오늘부터 천화검을 누님으로 따르기로 했다· 천화검을 모욕하는 일은 나를 모욕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서문 소저는 눈부신 빛 그 자체 세상에 무림육화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광오화 서문 빛 아니 빛빛빛 소저이시다·
누가 이 꼴을 보면 결국 원인 제공이 청에게 있는데 당연히 수습하고는 인심만 쏙 빼먹은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희매에게 껄떡대다 죽은 놈이 잘못이지 그럼 희매가 예뻐서 혹은 그 때에 하필이면 측간에 간 일이 잘못이겠는가·
청은 당당하다·
덕분에 후기지수들은 행복해졌다·
그 대신 조학체 하나가 불행해지겠지만·
이것이 바로 천하의 공리라고 하겠다·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다들 들어가· 내 조가놈이 언제 들어오나 한번 눈 뜨고 지켜봐야겠다·”
월량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에 청이 생각하기를·
조장이 조 형이라 참 다행이다·
조금도 미안하지가 않네· 하고·
—-
이른바 진해루 협사에 대해 소문이 퍼지는 데에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왜냐하면 누구나 떠들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생생한 증인들 그리고 믿을만한 증인들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특실을 이용할 정도의 손님들이면 저마다 사업이라고 으스댈 만한 일을 벌이는 치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은 그 자체로도 이미 진실이어야 한다·
거짓말이라고 따지다가는 경제적으로 고립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므로·
그리하여 충격적인 소식·
살월파 문주가 죽었다!
그것도 족발에 맞아 죽었다!
광동의 자랑스러운 토속요리 백운저수에 맞아 대가리가 깨졌다더라!
아니 누가 대가리를 깼대?
신녀님 아니 토목선녀 아니 천화검이!
천화검의 정체가 토목선녀라는 것은 이미 다들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인 진실이다·
청이 들으면 토목선녀의 정체가 천화검이면 모를까 왜 반대냐고 어이가 없겠지만·
광주 사람들에게는 천화검보다 이래저래 떠들고 어울리던 신녀님이 친숙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조학체 하나가 불행해져서 화룡조 전체가 행복해졌듯이 광주의 삼대사파가 불행해져서 광주의 모든 인원들이 행복해졌다·
다만 불행해진 당사자 개중 유일한 생존자들인 살월문(나머지 둘은 망했으니까)에서 이를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도련에 알리고 공식적으로 사도공적을 선포해야 합니다! 제가 눈물로 이 참담한 경사를 알리고 오겠습니다!”
“경사가 아니라 으음 어쨌든 경사는 아니지! 이렇게 멍청한 놈을 보내실 겁니까!? 아우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닙니다 문주님! 이 아우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 흉악한 만행을 생생히 알리고 돌아오겠습니다!”
너도나도 사도련에 알리러 가겠다고 난리들이다·
왕우의 표정이 떫다·
그야 언제 정파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사도련에 알리겠답시고 당당하게 도망을 치겠다는 소리니까·
사도련의 지원군을 이끌고 와서 문파가 망하면 그대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거고 안 망해 있으면 사도련의 지원군을 데리고 왔다고 꺼드럭댈수도 있고·
그러니 너도나도 갑자기 충정이 샘솟고 울분에 불타 보내달라고 난리다·
“초수야 네가 다녀와라·”
“예 형님·”
“형님! 어째서 초수 놈입니까!?”
“좀 중량 있는 인사가 가야 사도련에서도 알아줄 것이 아닙니까!?”
“몰라서 물어?”
그에 아우들이 입을 다문다·
일름보 초수· 일러바치는 데에는 도가 튼 놈이라서 별명부터가 일름보다·
지가 잘못하고도 울며불며 흐느끼며 제가 억울하다면서 일어난 사건을 무시하고 아예 역사를 새로 쓰는 놈이었으니까·
“일단 큰형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정파 놈들도 쳐들어올 수가 없다· 그동안 애들 전부 모아 놔· 광주선방이랑 금적방에 남은 놈들도 죄다 끌고 오고· 어차피 오갈 데 없는 놈들이라 좋다고 올 거다·”
왕우의 눈이 번뜩인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번 사태만 어영부영 잘 넘어가면 살월파 전체가 왕우의 손에 떨어진다·
일단은 전 문주의 상을 치른다고 시간을 좀 끌고 다음엔 바짝 엎드려서 사죄라도 좀 하며 시간을 끌면 사도련에서 절대로 외면하지 않을 테니까·
수석 책사 파견에 영약을 궤짝으로 보낼 정도로 들인 공을 헛되이 날려버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 전에 일단 내부의 단속부터·
왕우가 남은 살월파 간부들 앞에 궤짝을 척 내려놓는다·
“자· 사도련에서 보내준 영약이다· 본래는 막내들에게 주어진 분량이지만 문파가 어려운 지금 우리가 먹고 당장 경지를 높이는 편이 낫겠지·”
영약! 사도련에서 보내준 영약!
하나만 달라고 구슬르고 협박해도 방 책사가 절대 내어주지 않던 그 영약!
당장 타오르는 발등의 불길도 잊은 채 살월파 간부들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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