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7
혈교에는 온갖 괴물을 양성하는 비전이 전해내려온다·
혈강시 혈아귀 혈고독 혈마인 등등·
사실 결과물로 보면 다 닮은 꼴 비슷한 특성의 고만고만한 것들이나 제작의 원리부터 상이한 다른 종이라고 할 것들이다·
왜 비슷한 것들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만들어 대는지 도대체 어째서 괴물 제작에 그리 공을 들이는 것이냐 설마 밥만 먹고 괴물만 연구하냐고 따져 묻는다면 대답은 이렇다·
그렇다·
괴물은 강하고 제작이 편리하며 개체의 원래 인맥에게 더없는 비통을 선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온갖 금제 혹은 아예 이성을 날려버리거나 하는 등 보안 역시 철저하다·
그저 세상이 좆되기만을 바라는 혈교의 말종들에게 이러한 괴물들만큼 효과적이고 또 은밀한 수단이 또 있으랴·
그러니 혈교의 역사가 곧 괴물의 역사
개중 혈귀는 혈아귀의 줄임말로 끝없는 식탐으로 사람의 심장과 피 내장 살점 등등을 탐하는 괴물이다·
물론 식탐만 높은 괴물은 조종할 수가 없다·
그러니 대법을 반복하여 심령을 완전히 제압해야 주인의 ‘먹어’ 한 마디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충견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괴물의 완성 그 완성의 순간이 뭔가 대단히 거창할 것이라고 상상하고는 한다·
온통 찰박찰박 흘러넘치는 피와 장기들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피안개 그리고 짤랑짤랑 요사스러운 방울 소리·
그 속에 매우 사악한 법사가 눈깔 뒤집고 괴성을 내뱉으며 지랄발광을 하다가 돌연 크하하 광소하며 일어나라 내 아이들아!
그러면 누워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눈꺼풀을 번쩍 들어올리며 불길하기 짝이 없는 흉성으로 희번득하니 짐승과 같은 눈깔이 드러나고····
하지만 실제의 악의 탄생은 그렇게까지 막 유난한 것이 못 된다·
“웩 이게 뭐야· 상한 거 아냐?”
살월파 막내 하나가 입에 든 것을 다급히 뱉어놓는다·
“야· 더럽게· 먹는 걸로 투정 웩· 씹·”
“거 봐라· 상했지?”
“이거 왜 이래? 짜고 쓰고 시고·”
“어떤 새끼가 물 다 처먹었냐?”
“술 먹고 싶다·”
“나도·”
“술 가진 사람 없냐? 씹 왜 우리 식탁엔 술도 없고·”
“죄다 상했는데 오 이건 상했네· 으음 진짜 상했어·”
“저 새끼 저거 계속 처먹는 거·”
“와 뭐야 이거· 개맛있는데? 이새끼 이걸 혼자만 처먹으려고·”
“뭐야? 생간? 에이 나 비린 건 못 먹는데· 근데 왜 맛있어 보이지? 야 나도 한 점만· 오·”
막내들이야 소년 초과 청년 이하의 아직 앳된 청년들이다·
그래도 문파의 신입 제자 치고는 오히려 나이가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이 나이대의 애들이 그렇듯이 와글와글 시끌시끌 식당이 떠들썩하다·
“배고파 목말라·”
“나도· 죽을 것 같다·”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음· 술은 안 주나?”
“말이라고 하냐· 온 형님들이 지금 문파에 쫙 깔렸는데·”
“큰형님이 돌아가실 줄은 몰랐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진가장에나 갈 걸 그랬나 봐·”
“하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
“멍청한 소리들 말고· 진가장에 들어가서 어느 세월에 고수가 되냐? 십 년? 이십 년? 태극권? 하 무슨 태극권이야? 우리 엄마도 태극권 고수거든?”
“진가장은 그래도 십 년 이십 년 걸려도 망하지는 않을 거 아냐? 우리 이러다 망하는 거 아냐?”
“그때는 진가장이 망할 줄 알았지·”
본래 입은 만악의 근원이라 했으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고 모용가 말은 모용준이 들으며 살월파 막내들 말은 지나가던 형님이 듣는다·
“이 새끼들이! 잔치 열렸어!? 무슨 잔치라도 열렸냐고!? 빠져가지고는!?”
“헉· 칼치 형님·”
“야 다 대가리 박고 조삼 너 이 새끼 튀어나와·”
“예 옙·”
“너는 이 새끼야 (짝·) 대사형이라는 새끼가 (짝·) 애새끼들 입 단속을 해도 모자랄 때에 (짝·) 엉? 내 어이가 없어서· 뭐? (짝·) 망해?”
지나가던 형님 칼치가 건들거리며 조삼의 뺨을 연신 쩍쩍 두들긴다·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문이 망하느니 뭐니 입방정을 떤 댓가로는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원래 살월파 막내들은 좀 심하게 조져지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영약 먹고 쑥쑥 자란 놈들이니 나중에 개겨서 잡아먹히는 것 아니냐고 지금 단단히 위아래를 새겨놓겠다는 것이다·
보통은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잡아먹히는 것이지만·
사실 구실만 있으면 누군가 괴롭히고 싶다 내 우월함으로 다른 놈들을 찍어누르고 싶다는 놈들이 사파 놈들의 특징이었으니 그러한 이유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뺨이 아프고 귀가 먹먹하고 몸이 비틀거리는 와중에서도 이조삼은 기분이 심하게 나쁘다·
그야 연신 뺨을 후드려 맞는 와중에 기분이 좋으면 그것도 문제가 될 일이다·
다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장 자기네들은 지난밤 목마르고 배가 고파서 한숨도 못 잤다·
그런데 당장 선배라는 새끼는 맛있는 냄새 풀풀 풍겨대면서 저는 맛난 것 양껏 먹고 냄새 풍기며 여기서 지랄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막내들 식탁에는 상한 음식들만 깔아놓고 형님이란 새끼들이 이 지랄을 해?
이게 맞아?
원래 사람은 먹는 것으로 서럽게 하면 안 되는 법이다·
뭐 그런 걸로 다 라고 하기에는 사람의 음식 취향이 유년기의 추억 혹은 상처로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그 극복이 어렵다·
그만큼 먹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그러니 조삼이 주먹을 휘두른 것은 어찌 보면 깐족거리던 형님들 중 누군가는 겪게 될 일이었다고 하겠다·
다만 막내에게 하극상을 당한 칼치의 입장에선 다른 새끼들은 더 유난도 떨었는데 왜 하필 나야 하고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필 조삼이 젓가락을 꾹 쥐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억울해해서는 안 된다·
밥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밥 먹는 막내들을 괴롭혔으니 젓가락에 푸욱 찔려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헉 형님! 죄송-”
“크아악! 너 너 이 새끼···!”
“제가 그게 아니라”
칼치가 어깨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겨우 젓가락 두 짝이라고 어깨에 푹 박히고 나면 달군 쇠꼬챙이처럼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 것이다·
칼치가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부들대며 겨우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문득 심각하게 드는 이질감이 하나·
뭐야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조용해?
그에 칼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그러자 일제히 칼치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막내들의 모습이·
순간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침 삼키는 소리는 작지만 동시에 모두가 침을 삼키면 크게 울려퍼지기 때문에·
“너 너희 내가 대가리 박으라고····”
굶주린 혈귀 앞에 사람의 피가 흘렀다·
그 비릿한 냄새가 콧구멍에 드는 순간 살월파 막내 제자들은 저들을 괴롭히는 이 끔찍한 갈증 그리고 굶주림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사파의 미덕이란 윗사람 잡아먹고 제껴서 크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가르침이 이제야 그 결실을 맺어 활짝 피었으니·
“형님· 죄송한데 그 한 입만 진짜 딱 한 입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아악!”
칼치가 비명을 지른다·
돌연 달려들어 제 팔뚝을 야무지게 물어뜯는 조삼 때문에·
칼치가 필사적으로 후려치고 또 후려치고 때리고 밀쳐낸다·
우당탕 바닥을 구르는 이조삼·
그러나 이미 한웅큼 뜯어먹힌 팔뚝에선 심장의 박동을 따라 왈칵 왈칵 핏물이 새어 흐른다·
“너 너 이 새끼! 미쳐버린 게-”
칼치의 말이 뚝 끊긴다·
막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으니까·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머니를 어머니라 아주 마음껏 불러대니 ‘홍’의 자격은 없는 주제에 신출귀몰하게 한 번씩 얼굴을 들이미는 염휘영이다·
“음 이건 또 뭐야? 어디서 이런 걸 주워오셨어? 당신께서 자꾸 그 따뜻한 모성을 칠칠맞게 줄줄 흘리시니까 이런 되다 만 것들이 막 따라붙는 거 아냐· 마음이 여려서 버리시지도 못하시면서· 그래도 이런 지저분한 건 좀 치워버리시면 안 될까?”
“도대체 그 모성을 줄줄 흘리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 누굴 말하는 건데? 일단 난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염휘영은 그저 청을 바라본다·
옆에서는 견포희가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열렬히 동의를 표시한다·
청이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기를·
뭐지? 나처럼 냉정하고 비정하며 차가운 무림의 협객이 또 어디 있다고·
“천화검? 이 무례한 인간은 무엇입니까?”
졸지에 ‘이런 것’이 되어버린 랑랑이 무표정 무감정하게 항의를 표시한다·
청이 이걸 뭐라고 소개해야하나 잠시 말을 고른다·
“아 얘는 음· 내 양아들·”
“음· 대단히 놀랍습니다· 랑랑은 경악하였습니다· 천화검은 이리도 장성한 또 불량하고 껄렁한 자식을 두셨군요·”
“하지만 착한 아들이기도 하지· 안 그래 어머니?”
“음· 그 부분에 대서는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현재 상태로 보면 보편적 감성으로는 그렇지 않을까?”
그에 염휘영의 콧대가 하늘로 솟는다·
와 하고 짝짝 박수를 치는 희매는 대체 무슨 축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선업이 또 늘었다·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선업이 늘어?
그런데 밤중엔 또 뭐 하고 쏘다니는데?
설마 그 발랑 까진 계집애가 손주 들었다면서 어머님을 외치지는 않겠지·
뭐 둘이 좋다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럼 오히려 잘 된 거 아닌가·
아예 영영 출가시키면 되겠지?
“천화검의 가족사가 매우 흥미롭습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랑랑을 존중하지 않는 매우 불손한 인간입니다·”
“내게 네 가치라면 내 어머니 곁에 붙어있는 것이 전부다· 재롱을 떨겠다면야 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염휘영의 눈매가 서늘해진다·
랑랑 역시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두 주먹 굳게 쥐고 권법의 자세를 잡다가·
“해 보자는 것입니까 건방진 인간· 본 랑랑의 돌주먹 맛을 보고 싶으신 음 인간 교양인답게 랑랑과 대화로 해결하기를 소망합니다·”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도검 형태의 강기 강검을 목격한 랑랑이 곧장 꼬리를 내렸다·
“대화라? 무슨 대화 말이지?”
“현경의 귀인이라면 충분히 건방질 자격이 있습니다· 본 랑랑은 천화검의 양아들의 건방진 태도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염휘영이 사납게 미소짓는다·
청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지가 최고다·
나도 현경 찍어서 강기로다가 반짝반짝 작은 검 아름답게 빛냈으면 좋겠다·
“뭐 어머니 곁에 두기에는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해로울 것 같지는 않고· 어쨌든· 어머니 내가 재미있는 걸 봤는데 말야·”
“재미있는 거? 요리 대회라도 해? 아니면 신장개업? 할인권 같은 걸 막 뿌리나? 어딘데? 원래 막 열었을 때가 요리도 제일 맛있을 땐데?”
“아니 잡수는 거 말고·”
“뭐야· 광주에 먹는 거 빼면 재미있는 게 어디 있는데?”
“랑랑은 그에 동의합니다· 삶의 즐거움은 식사 그리고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기 가장 큰 즐거움은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며 식사하는 것입니다·”
원래 광동 지역은 식도락을 빼면 재미없기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다·
“음· 어머니가 이걸 왜 달고 다니는지 조금 이해가 되네· 됐고· 이상한 놈들이 있더라고· 아마 혈귀나 혈마인? 강시? 아니 이제 보니까 강시는 아니겠네· 어쨌거나 질이 나쁜 놈들이던데?”
“혈귀? 혈마인?”
청의 표정을 본 염휘영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아· 어머니께선 마음도 여리시고 머리도 여리시지· 대충 사람 뜯어먹고 사는 혈교의 괴물들이야 어머니·”
“엥· 혈교?”
“금적방에 그런 게 있었으면 다른 데도 있는 거 아닌가? 광주선방은 어머니가 밀어버리셨으니 같이 밀렸겠고· 살월파인가 그 새끼들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음· 혈교·”
혈교라 하면 정사마가 하나같이 치를 떠는 그야말로 무림공적 최악의 인간 말종의 모임이라던가·
청도 개봉에서 한 번 겪어보았으니 그냥 말종이 아니라 이상 성욕까지 가진 말종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술병이 깜박 잊고 있었네·
오랜만에 일 한 번 하고·
얼큰하고 뜨끈하게 퍼지는 독기에 청이 만족스러움을 꾹 눌러 삼키고는 이내 금방 결정을 내렸다·
“혹시 증거 같은 거 있어? 진가주님께 말씀드려야겠는데?”
“이게 놈들 먹는 영약이라던데? 사파련 놈들이 보내줬다던데 아무리 봐도 혈교가 연관된 것 같거든·”
염휘영이 청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환약 한 알을 척 올려놓는다·
일단 색이 시뻘겋고 냄새가 비릿한 것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물건은 아니다·
“음· 일단 진가주님께 말씀을 드려서-”
그때였다·
-전원 전투 준비! 실제 상황이다! 일 각 이내에 헤쳐모여 인원 보고하도록!
-전투 준비! 실제 상황!
-전투 준비! 실제 상황!
바깥에 다급한 목소리들이 소리 높여 비상을 외치는 것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