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9
랑랑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가문이 불타던 날 비명 피 엄마 아빠 그리고 뱃속으로 치밀고 들어오던 날붙이의 뜨거운 온도·
야 이 새끼야 다짜고짜 찌르면 어떻게 해? 반반한데 맛좀 보고 처리하지·
왜 지금이라도 맛을 좀 보지·
시체에 박는 취미도 있냐? 배때기에 구멍이 뚫리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아· 대감집 딸년 한 번 품어보나 했더니·
랑랑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리고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모두가 내게 그렇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선녀 같은 마음씨라고 길림 땅의 모두가 내게 감사할 거라면서·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내가 도움이 필요한데 너무해 배신자들·
그리고 그 사람·
불타는 세상에서 홀로 희게 질려서 그저 우아하게 선 사람이 있었다·
“어머· 밀종의 냄새가 나서 와 봤더니· 황궁에도 주술사가 있는 걸까요? 그런데 참 어설프기도 해라· 아가씨? 몸은 좀 어때요? 그냥 죽어가기엔 체질이 아까우신걸·”
“도와 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런· 미안해요· 도와줄 수는 있지만 살려줄 수는 없답니다· 저는 사람을 살리는 방법 따위는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답니다? 만약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살 수 있다고 하면?”
“네 도와 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
그 사람이 단아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럼 한숨 푹 자고 죽어가도록 해요· 일어나고 나면 세상이 바뀌어 있을 것이랍니다·”
그렇게 하후랑랑은 죽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연하게 닿는 듯한 그때의 감촉 새까만 물에 잠기는 듯한 그 서늘하게 편안하던 안식이·
그리고 랑랑이 눈을 뜬다·
정신이 들자마자 든 생각이란 아 내가 더는 인간이 아니로구나·
하지만 살아있다·
살아남았다·
멍청하게 사람만 좋아서 실컷 이용당하다 버려진 하후랑랑은 이제 없다·
랑랑은 랑랑을 위해 살 것이다!
랑랑의 결의!
“이제 랑랑이 뭘 하면 돼?”
“아무것도요?”
“어째서? 보통 이럴 때는 목숨줄 잡고 협박하지 않아? 모처럼 살아난 목숨이 아깝거든 내 말을 들으라던가?”
그 사람은 그저 온화하게 웃는다·
“당신은 자유랍니다· 간혹 제가 부탁을 드릴 때가 있겠지만·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제가 조금 서운할 뿐이랍니다? 히잉· 나흘 밤을 새우고 황금 일백 관을 쏟아부었는데 매정하시기도 하셔라 흑흑 하고·”
“왜? 그러면 랑랑을 왜 살렸어?”
그 사람의 미소가 짙어진다·
“우리는 세상에 우리뿐인 가족이랍니다? 당신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예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괴물이란 아니 으음· 스스로 깨달아야만 진실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못다 누린 삶의 즐거움을 양껏 누려보도록 해요?”
그리고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 맞다· 당신의 몸에 여러 가지 편리한 기능들을 숨겨놓았답니다? 왼쪽 약지를 비틀어 빼내면 짜잔· 화섭자가· 어디서든 불을 붙일 수 있는 신기능이랍니다?”
“···!?”
랑랑이 깜짝 놀라 제 약지를 비튼다·
그러나 약지는 단단히 붙어있을 뿐이다·
후후 맑은 웃음소리가 번진다·
“농담이랍니다· 순진하기도 하셔라· 다만 진짜로 원하신다면 말씀하세요? 가슴 속에 술주머니를 달아도 되고· 다만 술이 빠지면 쪼글쪼글해져서 푸훕 수아가 그걸로 꺄흑 꺄하하 하아아· 그래요· 추천은 못 드리겠어요·”
“필요 없어· 그딴 기능·”
“팔뚝을 빼면 칼날이 나온다던가?”
“필요 없습니다·”
“그럼 가문의 복수를 바라신다던가?”
랑랑이 멈칫했다·
“황실도 어차피 손을 보기는 할 테지만 하는 모양이 궁금해서 기대 중이랍니다? 죄송하지만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그에 랑랑이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대답을 내어놓는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제 나하고 랑랑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랑랑?”
부르는 소리에 랑랑이 문득 정신이 든다·
“아· 본 랑랑이 어디까지 말씀을 드렸었지요? 혈아귀 줄여서 혈귀라고 하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던가요·”
랑랑의 신분은 조학체가 보증한다·
그 조학체가 슬그머니 묻는다·
“표매 강시 비슷한 건가?”
“강시보다 훨씬 열등한 종류입니다· 혈귀를 강시와 비교하는 것은 송충이와 사람을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촛불과 태양만큼이나 큰 격차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는 고등한 강시에 대한 아주 심각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가 놈은 당장 랑랑에게 사죄하십시오·”
“···?”
“흠흠· 어쨌거나· 완성되지 못한 혈아귀는 그야말로 아귀 식탐조차 참지 못하는 열등한 괴물입니다· 모든 행동 원리가 식인에 맞춰져 있는 상태이며·”
랑랑이 한숨 쉬고 나서 본론을 꺼냈다·
“혈아귀를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에 아아 하는 탄식이 터졌다·
일 차 합류 지점에는 꽁꽁 묶인 혈귀들과 그 외 살월파 건달들이 엄중한 감시를 받는 있는 중이었다·
혈아귀라고 해도 제대로 완성된 물건도 아니고 최후의 대법을 빼먹었으니 경지도 거기서 거기 해 봐야 절정 수준이다·
물론 겨우 석 달이다·
석 달만에 입문이 늦어 근골이 굳은 청년들을 절정의 경지에 올렸다·
이래서 혈교가 괴물을 만들지 못해 안달인 것이다·
절정 스물이면 전력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마다 사람 잡아먹겠다고 눈깔이 뒤집어져 저마다 제 취향 따라서 인육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 인 일조로 대형을 짠 무림맹 전투단이 제압하는 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가는 데마다 끔찍한 비명이 터지고 사람들이 몰려나오니 혈귀의 위치가 매 순간마다 파악이 되기도 하고·
그에 진가주 진자강이 한편에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는 살월파 전 총관 현 문주 대리 왕우에게 다가간다·
정파 무인이 손을 쓴 것이 아니다·
이미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살점이 뜯어져 나간 상처가 가득하니 오히려 정파의 무인들이 혈아귀에게서 왕우를 구출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자네· 할 말이 있는가?”
“억울! 억울합니다! 저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새로 받은 제자들은 전부 방 책사가 사도련 수석 책사인 방점명이 관리했단 말입니다!”
“자네는 말을 잘 골라야 하네· 지금 자네 입으로 사파련이 혈교의 사악한 괴물을 만들고 있었다고 고발하는 셈이야·”
왕우가 멈칫했다·
하지만 왕우는 정말로 억울하다·
사도련은 무슨 사파련 새끼들!
우리를 속이고 본 파를 가지고 놀았구나!
저도 모르게 이가 으득 갈리며 천불이 솟는다·
“맞습니다! 사파련 놈들이 광주를 접수해야 한다면서 영약 한 궤짝과 방 책사를 보냈습니다! 본 파에 스무 명 금적방과 광주선방에 열다섯씩 총 오십의 무사를 지원하고 이후에 다시 오십을 더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가가 제자를 들이지 못한 이유다·
일단 영약 들여서 오십이나 모집하고는 그 이후에 또다시 오십을 모은다고·
광주 청년들이 사파의 다음 모집만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이다·
그에 진자강과 전투대장 소림제자 월량이 시선을 교환한다·
이건 진짜로 보통 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혈교 놈들이 패악을 부린 도시마다 사파련 새끼들이 지원을 보내 영역을 날름 삼킨다는 소문이 도는 때다·
만약 사파련이 혈교와 손을 잡았다면?
정녕 무림의 오랜 평화가 이렇게 깨져나가고 마는 것인가?
“일단 팔다리를 부러뜨려 제압하고· 음· 맹에 이송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그에 정파 무인들이 검집이나 도집 등의 병집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크흐 조금만 조금만 더 와라!”
혈아귀들은 전혀 주눅이 든 기색이 없이 오히려 침을 줄줄 흘리며 입맛을 다신다·
그때였다·
“아이고 나리! 안 됩니다! 뭔가 착오가 잘못 아신 겁니다! 하성이는 그럴 만한 아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군중들 사이에서 늙은 여인이 하나 뛰쳐나와 제 아들을 가리고 서서 우는 목소리로 애원을 시작한다·
이미 축축한 애걸 아예 무릎을 꿇고 양 손을 싹싹 비비며 제발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착하기로는 멍청하도록 착한 놈이었다고 이놈이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 비켜서십시오· 아드님은 이미·”
“아이고 나리! 잘못을 했으면 단단히 타이르면 되지 이 어미가 아니 아예 관아에 끌고 가서 곤장을 맞게 하겠습니다요· 이 늙은 것이 늘그막에 아들 하나 보고 사는데 이러시면 어찌 차라리 저를 베십시오 이놈아 아이고 뭐해? 당장 빌지 못하고! 빨리!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란 말야!”
아낙이 그리 말하며 제 아들의 머리채를 붙들려는 순간이었다·
아들 하성의 눈빛이 번뜩인다 싶더니 돌연 제 목을 쭉 빼어 어미의 품으로 와락 달려든다·
제 어미의 목덜미를 물어뜯고는 그대로 함께 나동그라져 환부에 머리를 처박았다·
꿀꺽 꿀꺽 액체가 목을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젠장! 멈춰!”
“당장 떼어내!”
정파 무사들이 이미 묶인 팔다리 매듭을 붙들고 낑낑 용을 쓰니 쩌어억 어미의 목덜미가 근육의 결대로 쭈욱 늘어나 자식의 입가와 이어진다·
“크흐 맛있다 어머니 크흑 죄송 근데 너무 맛있어서 놔! 놓으라고! 어머니!”
혈아귀가 웃는 듯 우는 듯 크흐윽 어느 쪽으로도 들리도록 크게 짖어댄다·
정파 무인들 아래 깔려 바르작거리면서도 연신 어머니 놔 내 거 내 어머니 하고 고래고래 포악한 소리를 지른다·
청이 다급히 여인에게 달려든다·
크게 베어 뜯겨나간 목덜미다
차라리 칼에 베였다면 모를까 사람이 이로 물고 뜯어내 너덜너덜한 상처다·
이미 손을 쓸 도리가 없다·
“꺼헉 꺼허억·”
청이 그저 환부로 손을 쑤셔 위아래 핏줄을 잡고 기도를 손바닥으로 막아 채운다·
그나마 가는 길에 마지막 말이라도 하고 가시라고·
“내 아들 아들 어미는 괜찬어 나리 용서 제발 용서를· 우리 애가 원래는 착해 착해요···· 진짜 착한데···”
여인의 초점이 멍하니 풀려버리고 만다·
청이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자박 자박· 청이 천천히 걸어 나간다·
“냄새! 크아악! 냄새! 이게 무슨 냄새야! 내 코! 치워 저리 치우라고!”
“서문 소저?”
음· 아무리 봐도 원래가 태어나기부터 좀 후레자식 같은데·
원래 모든 자식은 원래 부모의 눈에는 함함한 법이라고 하잖아?
남들이 보기에는 망나니인데 어미 눈에는 애가 원래는 착해요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그래요·
아무래도 혈교 새끼들을 사귀어서 그런가 봐요·
아니면 원래 착했다면?
혈아귀? 뭐 그런 게 되어버려서 괴물의 본성을 이기지 못했을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내 진작에 목을 잘라 놓았으면 애꿎은 어머니 한 분 황천길 가실 일도 없었을 텐데·
문득 청이 어떤 안도감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편안함을 슬며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같고·
오라· 이제보니 세상에 생각 없이 마구 죽여도 되는 놈들이 존재하고 있었네·
산 채로 태우고 부수고 비틀어 쥐어짜도 되는 개새끼들이 존재하는구나·
“꺽·”
괴물의 뒷목으로 월광검 십 호의 거대한 검신이 푹 파고든다·
“어머님 덕 본 줄 알아요· 마음 같아서는 손끝부터 조금씩 부숴버리고 싶은데·”
죽기 전까지 그리 끔찍하던 자식이니 뭐 죽은 사람 소원 생각해서 편하게 죽여주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광장에 제대로 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저 설명으로만 듣는 괴물의 특성 그저 식탐에 매달려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아귀·
이미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는 괴물·
그 식탐이 제 어미마저 잡아먹는 꼴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랑랑의 설명이 그제야 체감으로 확연히 와닿아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기 위해 운동하려다 몸살이 들려서·· 일단 수액을 좀 맞아야겠습니다··
아픈 김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한글자씩 처봤는데 몸이 아파서 글이 좀 쳐지나 싶기도 하구요··
천국의 계단 단 15분이 사람을 이리 조져놓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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