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0
마차 내부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목재의 마감은 어디 한 군데 조그만 거스러미 없이 반듯하고 잘 짜 맞춘 나무들은 동전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정갈하다·
심지어 벽면에는 화로까지 떡하니 자리를 잡았으니 본래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마차의 기본을 무시하는 초호화 구성이다·
그리하여 한 벽면에는 널찍하게 의자 이상 침상 미만으로 귀빈석이 마련되어 있고 반투명한 면사가 드리운 가운데·
나른하니 영 심심한 표정으로 옆구리에 낀 여인의 가슴팍에 손을 쑤셔넣고 연신 주물거리는 인영이 하나·
“혹시 얼마나 더 주물러야 터지는지 궁금하신 것입니까? 의자매를 희롱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천화검· 남들이 볼까 두렵습니다·”
“응? 난 괜찮은데?”
“당신도 문제입니다· 외인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어째서 당연하다는 듯이 젖을 내어주는 것입니까? 어떠한 경우에서도 남의 눈앞에서 벌이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내가 언니니까? 가슴 정도는 만지게 해 줘도 되잖아?”
“본 랑랑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생이 언니의 젖가슴을 희롱하는 행위가 당연하다는 것입니까?”
“사실 몰라! 나도 소매 전에는 자매가 없어서· 하지만 소매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전혀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은근히 강적입니다·”
“응· 그럼! 나도 이제 고수니까·”
“아니 그게 아닙니다· 도대체····”
랑랑이 양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은 무심하게 그저 손에 척 감기는 부드러운 살결을 꾹꾹 찌르고 살살 쓰다듬고 크게 손을 펴서 쥐었다 폈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메우며 들어차는 출렁거림을 즐길 뿐이다·
“그냥 소매는 가슴을 좋아할 뿐인걸·”
“평범한 척 넘어가려 해도 충분히 특이한 장면입니다· 보통의 자매는 가슴을 더듬거나 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타인 앞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냥· 소매는 머리가 좀 복잡한 거야·”
견포희가 상냥한 미소로 툭 던진다·
랑랑이 멈칫 하려던 말을 멈추고 결국엔 고개를 젓고 만다·
“굉장히 치욕적입니다· 본 랑랑의 통찰이 이렇게 두뇌가 청순한 인간에게 뒤쳐지다니· 멍청한 척을 하면서 사람을 바보로 만들다니· 본 랑랑은 당신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천화검의 희롱 행위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발현이다· 천화검 이에 동의하십니까?”
그에 청이 졸기라도 했던 사람마냥 돌연 초점을 되찾아 랑랑을 바라본다·
“응? 뭐가?”
“가슴 말입니다·”
“그러게· 가슴· 가슴은 왜 좋지? 가슴 말고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잖아? 팔뚝 안쪽이나 혹은 뱃살이라거나·”
“본 랑랑은 대화의 맥락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만· 흥미로우니 계속하십시오·”
“들어 봐봐· 가슴 크기도 모양도 감촉도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희매는 왕 큰데 또 엄청 말랑말랑해서 막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만 같거든?”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또 가슴이 작은 사람도 있잖아? 오히려 팔뚝이나 뱃살이 더 말랑하고 부드러운 수준으로?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만큼 만족스럽지 않단 말이지·”
“흠·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가슴은 가슴 그 자체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말씀· 그러니 내가 희매 가슴을 만지는 데에는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거지·”
“창대한 변명이로군요· 그러니까 이 희롱 행위가 천화검의 감정적 불안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이로군요·”
“응· 나 멀쩡한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엄청 평범한데? 평상시랑 똑같은데?”
“일단은 그러한 것으로 해 두겠습니다·”
청의 파견 기한은 겨울까지다·
윤이월이라 예상치 못한 한 달의 여정이 더해지고 말았지만·
이제는 삼월·
춘삼월이라 하는 봄의 시작이다·
청이 원시 고대 중원에 떨어진 때가 얼추 봄이었으니 이제야 비로소 육 년 차 무림 생활이 시작되었다고도 하겠고·
청은 이미 화경의 고수를 여럿이나 때려잡은 준 화경 급의 초고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한 명의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무림맹과 사파련 그리고 혈교가 뒤얽힌 복잡한 사정에 끼어들어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할 만한 위치가 아닌 것이다·
“내 천화검에게는 얼마나 많은 감사의 말을 전하더라도 충분치 않겠군요· 천화검은 진가장의 은인이에요·”
“그 어쩐지 작별 인사처럼 들리는걸요·”
“그야· 천화검도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요? 이제 겨울이 지났으니 천화검도 사문으로 돌아가야겠지요?”
“하지만 혈교 놈들도 있고···”
“본래 혈교 놈들이란 아주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면 곧장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리는 놈들이에요· 이미 놈들의 음모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부터는 맹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할 테지요·”
“하지만 아직 진가장에 제자들이 든 것도 아니고····”
그에 진자강이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
“따지고 보면 혈교의 음모를 저지한 일 역시 천화검의 솜씨로군요· 대모께서 그리 자랑하시던 것도 이해하겠어요· 이렇게 잘 자란 제자를 두고 어떻게 조용히 있겠어요? 오히려 자제하셨다고 봐야겠지요·”
“헤헤· 그렇게까지는요·”
“내 정파의 어른으로서 천화검을 볼 낯이 없기도 하고· 그러니 앞으로의 일은 어른들에게 맡겨두도록 하세요·”
사실 그렇다는데야 광주에 더 눌러앉아 시간을 때워봐야 어차피 할 일도 없다·
광주 사파들은 개박살이 나서 아주 기둥 채로 뽑혀버린 상황·
역시 사파에 들어가 봐야 좋은 꼴을 못 본다고 아주 단단히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상황이니 진가장이 제자를 들이는 데에도 큰 문제가 없을 터다·
그러니 더 있어 봐야 볼 것이라고는 음·
진 소저의 파격적인 단흉 의상 정도?
라고 생각했지만·
“천화검의 의복을 몇 벌 지어 보았어요·”
“와· 고마워요! 뭐 이런 걸 다·”
“제아무리 의상의 완성이 얼굴이라고는 해도· 그저 미모 하나로 윽박지르고 있을 뿐이지 도대체 옷을 고르는 감각이 있기는 한 건지· 특히 가슴이 큰 여인은 안 그래도 옷이 안 받는데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요· 천화검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옷을 못 입는 사람이에요· 솔직히 최악 아니 죄악 수준이야·”
진설이 딱 못을 박았다·
그리하여 청이 일단 시착을 해 보는데·
“음 진 소저? 이건 좀· 이게 무슨 그냥 그냥 벗은 거랑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가슴 아래의 흉강까지 얇은 유군(치마)을 올려서 죄고 그 위에 민소매 조끼를 건친 청이 민망함에 몸서리를 친다·
앞에만 비단을 덧대고 위와 뒷면으로 바람 숭숭 들도록 면사인 조끼는 심지어 그 기장이 명치까지밖에 안 온다·
안 그래도 육중한 가슴이라 아래의 둥근 곡선을 만천하에 훤히 드러낸 꼴이다·
이게 무슨? 이건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라 그냥 노출증 아닌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꼭지도 보이겠어·
아니 애초에 이런 걸 입고 어떻게 뛰어?
하늘하늘한 게 그냥 뒤집어질 텐데 그럼 그냥 젖가슴 까고 다니는 변태 탄생이잖아·
그러나 진설은 진지하다·
“올여름은 특히 더 덥다고도 하고 예년 끄트머리에 엄청나게 과감한 표현이 유행했잖아요? 옥기린 공자께서 단흉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 같다면서· 그러니 다가올 여름의 의(衣)풍 역시 더 과감하게 그리고 아름다운 곡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겠지요? 특히나 천화검처럼 가슴이 큰 여인이라면 봐요 허리가 그대로 드러나잖아요?”
그리하여 몇 벌 지었다는 의복들을 차례대로 입어보는데·
“진 소저? 이거 너무 파인 거 아니에요? 너무 그 좀 적당히 파야·”
“서문 소저는 무슨 춘추전국시대를 살다 왔나요? 아니 공자님도 그 정도로는 그냥 보기 좋다 하시겠어요· 겨우 윗가슴 좀 나왔다고·”
“어 진 소저? 이거 왜 명치를 가려주는 천이 없어요? 가운데 줄만 두 개 남는데? 내가 잘못 입었나? 뭐지? 뒤집어 입었나?”
“서문 소저는 가슴이 그리 큰데도 앙가슴이 선명하니까요· 아름다운 가슴의 요건이기도 하고· 보기 좋아요·”
하나같이 사람을 중증의 노출증 혹은 그 태에 자신을 가져 자기 과시에 열중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만드는 종류다·
“어 진 소저? 저는 단흉은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상의야 아무래도 좋으니까요· 정 어렵다 싶으면 다른 저고리를 구하시면 될 테지요· 어차피 의복의 완성은 치마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차려입고 다니도록 해요· 이렇게 예쁜 태를 가지고는· 아깝잖아요·”
중원의 여인 복식은 유군(치마)과 나머지로 나뉜다·
청의 고향처럼 상하의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치마를 입고 나머지를 채우는 식인 것이다·
그러니 중원의 치마란 어깨에 걸거나 가슴 위로 싸매어 단벌로도 입고 가슴 아래로부터 복부며 골반 위에 걸쳐놓는 등 온갖 길이가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일자로 떨어지는 것 주름이 많아 찰랑거리는 것 펑퍼짐하나 나풀거리는 것 크게 접어 단아한 것 엉덩이 아래를 죄어 둔부를 강조하는 것 등등 모양 역시 천차만별이다·
일단 치마부터 갖추고 어울리는 나머지를 갖춰 입는 의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진설이 지어준 의복 역시 단흉은 언제까지나 부가적인 요소고 결국은 온갖 종류의 치마에 그 진가가 있는 것이다·
사실 진설의 수제 치마란 정파 무림의 여인 누구나 바라마지않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사소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진설이 지으면 뭔가 아주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뭔가 그 태를 살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음· 잘 입을게요· 단흉은 좀 그렇지만·”
“마음 같아서는 더 지어드리고 싶었지만 근무가 많아서 시간이 없던 통에·”
그에 청이 양손으로 안아야 하는 커다란 옷 보따리를 내려다본다·
청이 옷을 지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옷을 지으려면 그냥 근무 때를 빼고 모든 시간을 바느질에 힘썼겠구나 하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인간 재봉틀이야?
내내 옷을 지었을 진설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가 번지는 것 같기도 하고·
“고마워요· 잘 입을게요·”
“제가 더 고마운걸요· 여러모로·”
그리고는 청이 분위기를 읽었다·
아 이거 포옹해야 하는 순간이네·
그에 청이 의기양양하게 팔을 벌린다·
진설이 그 꼴에 풉 웃음을 터뜨리고는 곧 품으로 들어와 꼬옥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당일 염휘영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의 마부석에 앉아 의기양양하게 엄지로 제 뒤를 척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나·
아니 어디서 이런 걸 구해왔는데?
마방에서도 이런 건 안 빌려주는데?
하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리하여 귀가 시작·
하지만 중원 땅이 원체 넓어야지·
광주에서 북상하여 청원 양산 연주를 지나 호남성 최남단 의장을 지나 침주 형양···
막 광주 땅을 떠날 때만 해도 혈교 놈들 이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던 청이었다·
그러니 창밖을 보고 눈을 빛내며 어디 지나가는 혈교 놈들 없나 걸리면 아주 다 박살을 내 버리겠다고 형형한 살기를 뿌려댔지만·
애초에 혈교 놈들이 얼굴에 혈교라고 써 놓은 것도 아닌데 열심히 본다고 뭐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현재 혈교의 통신 기술은 시대를 뛰어넘은 상태다·
강시 중에 먼 곳에 위치한 강시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개체가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정작 제작한 장본인조차 도대체 이 아이들은 뭔가요 도대체 어쩌다 이런 능력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여라 어찌 먼 곳에 있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을까요 하고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청이 살기가 충천하여 이 혈교 놈들 다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갈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마차 여행이란 다리가 편한 만큼 엉덩이를 혹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차가 워낙 고급이라서 엉덩이도 편하고 나니 몸이 편하면 저절로 딴생각이 드는 것이 인간의 간사함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청의 뇌리에 두서없는 생각들이 스친다·
착한 사람은 뭐고 나쁜 사람은 뭐고 또 공리적으로 좋은 사람과 개인에게 좋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쁜 놈을 쳐 죽이는 것이 뭐가 문제인지 그리고 또 음 의매의 가슴은 온종일 주무르는데도 왜 질리지 않는지 마약이라도 발라놓은 게 아닐까 그러면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가 아닌가· 원시인들 유물에 가슴이 왕가슴인 조각상들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마차는 계속 구른다·
집 달콤한 나의 집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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