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1
이초수는 어려서부터 상식을 초월하는 월등한 재능으로 모든 이들의 두려움을 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경외하여 부르기를 일름보 일름보 이초수라고 했다·
이초수가 일러바칠 때면 그 낯빛은 온전한 억울함으로 장이 찢어지고 간장이 터진 것처럼 애절하며 또한 그 목소리에는 세상 가장 억울한 사람의 비련이 한이 그야말로 세상 전체에 소리쳐 절규하는 절절한 비탄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초수의 탄원을 들고 나면 저도 모르게 아 이 녀석이 참으로 억울하구나 이것은 진실만을 말하는 이의 표정과 목소리로다 어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듣는 이가 저도 모르게 그 비탄에 공감하고 마는 설득력이다·
그러고 나면 과거의 사건이 뒤틀려 오로지 세상에 단 한 사람 이초수만이 무고하고 결백하다·
그 외의 모든 이가 가해자로구나·
어찌 세상은 이초수를 낳고 또 비정한 현실을 낳았는가 이러한 현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나라도 이 불쌍한 이를 도와야겠구나 이렇게 저절로 마음이 동하고 만다·
사람의 힘으로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인과 관계를 뒤틀어버리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무시무시한 재능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재능이 사도지존 지엄하신 사도 건아들의 위대한 기수 사도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자 안내자이신 사도련주 패천군 부안평에게 발휘되었다·
“련주님! 너무 억울 억울합니 허억 숨 숨이 죄송 꺼억 그 년만 생각하면 제가 억울해서 숨조차 쉴 수가 어억!”
그에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곱상하니 선이 얇고 둥근 미청년이 눈썹 사이에 주름을 팍 잡는다·
“뭐야 멀쩡한 놈이 왜 이래?”
“련주님· 원래 정신적 충격이 크면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옆에서 거드는 이는 일좌천하 순웅 사도련 낭고각의 주인이자 사도련 총책사를 맡은 인물이다·
“쯧쯧· 사내새끼가 심약해 빠져가지고는· 그게 다 근성이 없어서 그래 근성이· 뭐든 정신력으로 극복해도 모자랄 판에 정신적 충격? 정신적 충겨억? 요즘 어린 것들은 왜 근성이 없어? 나는 말이야 근골이 다 굳고 혈맥이 막혀도 근성 하나로 헤쳐왔다 이거야· 재능? 영약? 신공? 다 필요없어· 오로지 근성 하나면-”
“련주님 일단은 저놈 말이나 마저 들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흠흠 내가 또 주책맞은 잔소리꾼 영감처럼 굴었소?”
“네· 그러셨습니다·”
“그게 다 저 잘되라고 하는 소리지· 이게 듣기는 싫어도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금 같은 조언이야· 내가 나이 먹고 경지에 올라 보니까 저 아래서 헤매는 놈들만 보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서 그렇소·”
“또 그러셨습니다· 일단은 입 좀 다무시고 계속 들어보시죠·”
“그러지· 그래서 그년이 누구야?”
“천화검! 천화검 그년입니다!”
그리하여 이초수가 탄원을 쏟아놓았다·
광주에 천화검이 들었는데 악독하고 잔혹하기가 천살성과 다름없는 년이다·(진실)
처음에는 본색을 숨기다가 되지도 않는 무녀 행세를 하며 정체를 감추고 인망을 사며 그 악독한 성정을 숨기더라·(진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포악한 본성(진실)을 드러냈으니 광주선방에 대뜸 쳐들어가 살육을 벌이는 것이 아니겠나·(진실)
“얼마나 잔혹한 년인지 아예 건물 채로 무너뜨리고는 자리에 서서 겨우 빠져나오는 방도들의 머리를 두더지 내려치듯이 하나하나 깨부수지 않습니까! 세상에 대체 어찌 그런 악랄한 년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는 종래에는 무녀 행세도 귀찮아진 모양·
어떻게 하면 광주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사도련에 조금이라도 더 기여해 사도천하에 한 몫 보탤 수 있을까 근심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방 책사와 문주님(거짓)을 대뜸 기습하여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감히 그년이 문주님을 크흑 아직도 제가 그년만 생각하면 윽 으윽·”
이초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결국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이 정도 되면 일러바침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예술의 경지 탈인간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에 사도지존께서 대답하셨으니·
“아니 사내 새끼가 울기는 왜 울어? 잘 들어라· 사내는 살면서 세 번만 우는 거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사문을 잃었을 때다·”
“련주님·”
“아 본인이 또?”
“그게 아닙니다· 문주를 잃었으면 부모를 잃은 것과 같은 일이니 울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아· 그렇군? 흠· 어쨌든 네 말대로라면 가만히 놔둘 수 없는 년이로군· 정파의 어린 놈들이 악인참이니 협행이니 난리는 치는 정도야 뭐 귀엽다고 봐도 이렇게 사도 건아의 체면에 정면으로 먹칠을 하고서도 계속 살려둘 수는 없지·”
위대한 사도지존도 일름보 이초수의 역사 개변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게다가 감히 사도련의 책사를 해쳐? 안 그래도 똑똑한 놈이 귀한 판에?”
“음· 련주님? 방점명이는 아직 평책사고 오늘 아침에 멀쩡히 기상했습니다만?”
“음? 무엇이오? 얘는 죽었대잖소· 천화검이 기습해서 목을 쑤셨다는데?”
“방점명이는 무림대회 건으로 낭고각에서 아예 먹고 자고 숙식을 해결해온 지가 벌써 두어달 가까이 됩니다· 아침에 출근했다고 하지 않고 기상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다른 방 책사가 있는 거 아니오?”
“방씨는 걔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광주에 지원나간 책사는 성 상급 책사입니다· 그런데 영약이 궤짝이라니요? 혹시 련주님 사비로 사다 보내셨습니까?”
“난 그런 적 없소? 총책사가 보낸 게 아니고?”
“저도 그런 적 없습니다· 영약이 어디서 나서 한둘도 아니고 궤짝으로 보냅니까?”
“그럼 성 책사? 걔는 어디에 있는데?”
“광주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서야 둘의 시선이 이초수에게 향한다·
“너 뭐야?”
“련주님?”
“이 새끼 일단 가둬 놔·”
“련주님!? 뭔가 착오가 저는 억울 억울합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말씀드렸는데 련주님! 련주님!”
이초수가 사도련 무사들에게 질질 끌려 퇴장하고야 만다·
“그런데 어쨌든 그 천화검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않겠나?”
“사정이야 어떻든 광주의 세 개 사파를 단신으로 격파했다고 소문이 나면 천하가 저희 사도 건아를 얼마나 우습게 알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사람이 말야 원래 한 번 얕잡아 보이면 아주 온갖 잡것들이 다 달라붙게 되어있단 말이오· 안 그래도 후기지수니 뭐니 협행이랍시고 나대는 꼴이 짜증이 나는데 이걸 그냥 넘어가면 개나 소나 아주 난리를 칠 거 아냐·”
“그럼 어찌하시겠습니까?”
“보냈다는 책사는 어디 갔는지 모르고· 보낸 적 없는 책사는 낭고각에 있는데 영문 모를 영약이 궤짝으로 도착했다· 어차피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조사대를 파견하겠습니다·”
“파견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같이 가지· 느낌이 안 좋기도 하고· 내 그 천화검이라는 아이를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겠어·”
—-
그러나 그 천화검은 광주에 없다·
천화검이 광주를 떠난 것이 윤이월 말 그리고 설가상회가 위치한 자귀현에 도착하고 나니 벌써 삼월이 다 지나 사월 초순에 이르른다·
그런데 어째 봄은 점점 깊어가는데 날씨는 점점 싸늘해진다·
중원의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탓에 추운 내륙 기후로 북상한 탓이다·
그리하여 여섯 말이 끄는 거대한 육두마차가 자귀현을 가로지른다·
검은 색에다 장식이 없어 내장과는 달리 외장은 으시시하고 위압감을 주는 마차다·
여기까지 오며 그 흔한 도적 하나 마주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일단 생긴 것 부터가 두려움을 사게 생겼으니 괜히 건드렸다간 목숨이 달아날 것이라고 소리치는 듯한 마차라서·
그러나 이상하게 자귀에서는 마차를 보고 히죽거리거나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설가상회의 대문은 마차가 보이기도 전에 아주 활짝 열린 상태고 청이 마차에서 내렸을 때에는 그리운 얼굴이 떡하니·
청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훌쩍 하늘을 날아 최리옹의 몸통에 매미처럼 달라붙는다·
“할아범!”
“아니 이 년이? 다 큰 처자가 외인 앞에서 남사스럽게 이게 무슨 짓이야?”
다만 최리옹의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주 함박웃음을 짓는 주제에 입으로만 신소리를 하니 세상 누가 봐도 늙은이가 더 신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최리옹이 청을 안아 든 채 곧장 식당으로 향한다·
청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설가놈은요? 아직도 장안에 있대요?”
“말도 마라·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죽어서 사라질 생각을 하고 있단다· 그쪽 공자가 목을 매는 바람에 혼담으로 압력이 거세서 버티기 힘든 모양이야·”
“오우· 설가놈· 마성의 미인·”
“그나마 섬서제일상회의 영향력으로 어찌 버티고는 있는데 관에서 제대로 압박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있나·”
“엥· 섬서제일상회요?”
청이 장안을 휩쓸고 난 후에 상인들의 부도덕함이 큰 화제로 떠올랐다·
그전까지는 원래 상인 놈들이 그런 놈들 금은에 영혼을 판 인간 말종들이라 당연히 패악질을 부린다고 여겼지만·
하지만 청의 계몽이 장안을 휩쓸었다·
상인은 고객이 아껴주어 크게 자라놓고는 정작 큰 상인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객을 하인이나 노비처럼 업신여기며 깔본다·
어째서 그냥 당하고만 있느냐·
그러한 놈들의 물건을 사지 않고 거래를 끊고 적극적으로 남에게 그 사악함을 알려 세상 모두가 그 상인의 물건을 쓰지 않도록 하면 망해버리는 족속이 아니겠느냐고·
천하의 대협 중원제일미이자 상도덕의 새로운 역사를 제안한 적화선녀의 위대하신 령도 사람을 일깨우는 참된 가르침이었다·
이 가르침이 퍼져나가면 퍼져나갈수록 그 진가를 드러내는 상방이 하나 있었으니·
태청상방!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선행을 베푸는 굳이 말하자면 이기적 선행을 실천하는 기이한 단체가 아니던가·
구휼(다만 신교의 교리를 외우면)이나 무료 학당(다만 신교의 교리를 곁들인) 같은 큰 사업을 제하고서도 지나가는 노인의 짐을 들어주거나 길을 잃어버린 아이를 안내하거나 길거리를 청소하는 사소한 일 따위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 결국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
장안 사람이라면 제발 태청상방 물건을 씁시다!
서안 사람이라면 제발 태청상방 물건을 씁시다!
섬서성 사람이라면 제발 태청상방 물건을 씁시다!
당신 뭐요? 방금 장령방 가게에서 나온 거 아니오? 장령방이 장흥상방 아들놈이 세운 상회인 것도 몰라? 어떻게 저 말종들 놈의 물건을 살 수가 있소? 이 파렴치한!
뭐? 고작 몇 푼 싸다고 이런 더러운 상인의 물건을 산단 말이오? 태청상방 물건을 쓰면 그것이 구휼 사업에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당에 반값 의원 나리 지원금에 들어간다는 사실도 몰라?
청의 고향에서나 나올 법한 민족적 소비 행태가 수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중원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니·
이보시오· 조금 값이 싸다고 전부가 아니오· 태청상방 물건은 만듦새가 좋아 그 품질이 뛰어나고 식재와 곡량은 관리가 철저하여 믿을 수 있고 혹여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고 처리해 주니 그깟 몇 푼 아끼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는 것도 모른단 말이오!?
그야 태청상방의 목적이 이익 창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에 어찌 이토록 선량한 상인이 존재할 수가 있나 외인이 들으면 절대 믿지 못할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들릴 지경이다·
태청상방이 빛의 속도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섬서제일상방· 태청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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