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2
“엥? 그런데 태청상방 일을 왜 설가놈이 하고 있어요?”
“크흠· 그야 머리 좋은 놈 뒀다 뭐해·”
“설가놈이 한 개 성의 위대한 지성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려먹어도 돼요?”
“그야 으음 그래! 다 내가 그놈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설가상회야 코딱지만하니 그놈을 품을 그릇이 못 돼· 암· 전부 그런 뜻이지 뭘 부려먹으니 마니·”
얌전히 안긴 채로 청이 고개를 갸웃·
그런가? 설득력이 있어?
“음· 설가놈이 좀 큰 인물이기는 해요·”
“그래· 큰 물고기는 바다로 나가야 하는 법이다·”
그저 크다는 죄로 민물에서 짜디짠 바닷물로 쫓겨나는 큰 물고기의 입장도 들어봐야 할 테지만·
하지만 청이 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딱 청의 취향대로 차려진 호화로운 식탁이 청을 맞이한다·
갖가지 종류의 오래 익혀 부드러운 고기들 달고 짠 양념 맵게 한 양념 싱겁게 하여 본연의 맛을 살린 것들 등등·
“뭐야 뭘 이리 차려놨어요? 밥은 들어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차리기는· 그냥 남은 거나 조금 데웠다· 너 안 먹으면 그냥 거지나 먹게 버리지·”
청은 취향이라고 할 것 없이 오만 음식이 다 맛있는 천하의 개 혓바닥이다·
굳이 말하자면 호극호가 있으니 극호는 살살 녹는 부드러운 고기 종류다·
그리고 부드러운 고기란 본래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푹 녹여내는 것·
그만큼이나 정성을 들인 고급 요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청도 허무맹랑한 소리임을 안다·
남은 것이나 좀 데웠다니?
뭘 먹고 남으면 이 귀한 찜고기가 이렇게 종류별로 아주 푸짐하게 남게 되는데?
하지만 굳이 청이 되묻지는 않았다·
매 중간에 들러 밥 한 끼 안 먹고 신녀문으로 돌아가 버리는 자신이 서운했으리라·
그러니 뭐 어째·
그냥 속아주는 척이나 해야지·
그렇게 모른 척 앉아서 젓가락을 집어들자니 얼굴 모르는 상회의 아주머니 하나가 청의 앞으로 탕국용의 두툼한 연회 용기를 하나 내려놓는 것이다·
“저어···· 아가씨 이것을·”
어쩐지 알싸한? 얼큰한? 익숙한 냄새에 청이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
젓가락으로 속을 휘휘 저어 보고는 앗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모른다·
“엥? 뭐에요? 와 뭐야· 이거 뭐야?”
“천녀가 한번 끓여본 것인데 한 번 잡숴 보시고 어떤지 고견을 좀 들려주시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이 다급히 그리고 한 숟갈 호로록 입에 갖다댄다·
얼큰한데 칼칼한 그리고 진하지만 한편 시원한 국물이 꿀꺽·
청의 눈이 곧장 돌아간다·
낯선 식당에서 고향의 향기를 아니 이 정도면 향이 아니라 혼을 얼을 내재된 민족의 정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뼈가 녹도록 우려낸 육수 물은 적게 양파와 배추를 듬뿍 넣어 야채물이 많이 나오도록 고안한 육수다·
거기에 마늘과 양파와 파를 때려붓고 아직은 값비싼 고추까지 쏟아부은 얼큰한 국물을 내고 거기에 돼지고기와 갖가지 부속을 그리고 부드러운 소갈비살도 채운다·
그리고 야채로는 배추와 무청을 한가득 부었으니 중원에 없던 종류의 얼큰한 고기탕이다·
청의 핏줄의 흐르는 정기가 그대로 담긴 한 그릇이라고도 하겠다·
“아니 밥 밥 밥 없어요? 식은 거 있으면 더 좋고· 빨리 빨리!”
“밥! 밥 대령하라신다! 식혀서 대령하라!”
돌연 아주머니에게서 어마어마한 위엄이 쏟아져 나왔지만 청은 탕국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식탁 너머에서 염휘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최고 성화 무녀가 왜 부엌데기를 하고 있어? 아낙처럼 하고 있으니 딱 어울리네· 그냥 아낙이나 쭉 하지·
그리하여 숙수가 갓 지은 밥을 굳이 펼쳐 굳이 부채질까지 하여 식히는 만행을 그것도 내공을 담아 휘둘러 태풍 같은 바람이었더란다·
밥이 오자마자 청이 다급하게 한 그릇 풍덩 말아서 세상에 국밥 어떻게 여기서 와 이 좋다!
“끄아아아 이거지 이거지·”
청이 숨도 안 쉬고 그 커다란 연회용 뚝배기를 뚝딱 비운다·
몸이 너무 강해서 땀이 안 흐르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런 건 땀 뻘뻘 흘리면서 먹어 줘야 제맛이 사는데·
“그 입에 맞으신가요?”
“네 최고 최고야· 와 중원에도 이런 탕국이 있었네· 이름이 뭐예요? 어디 가서 시키면 먹을 수 있는 거였나?”
“아····”
아주머니가 대답 대신 비틀거리나 싶더니 자리에 풀썩 쓰러져버리고 쓰려지려는 것을 청이 가까스로 붙들기는 했다·
“괜찮아요?”
“그 후우 괜찮습니다· 입에 입에 맞으신다는 말씀이지시요?”
“그럼요· 최고야·”
“다행···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털썩 고개가 돌아간다·
물론 아주머니 교의 최고 성화 무녀의 입장도 이해해줘야 한다·
이 신앙에 미쳐버린 광신도들에게 있어서 청은 인간이 아니다·
현세에 내려오신 현인신이시니 그것도 그냥 현인신이 아니라 이미 소원을 실시간으로 들어주고 계신 자비로운 주인님이다·
이미 신강으로부터 감숙 섬서 그리고 그 좌우의 도시에서는 어렵지 않게 처음 보는 형태의 불상을 찾아볼 수 있다·
몸매가 부담스럽도록 풍만한 여성 부처 보살상이다·
특징이라면 천을 드리워 가린 얼굴과 또 보통 부처 뒤로 비치는 광배(후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화불이라 불리는 이 근본 없는 부처는 어느새인가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앞날에 따뜻한 기운을 비춰 운을 틔워준다는 효능으로 빠르게 번져나가는 중이었다·
실제로도 그 공능을 보았다는 간증이 줄을 잇는다·
물론 대부분은 교의 요원들이 퍼뜨린 것이고 그 외에는 도시를 장악한 상단의 힘으로 몰래 밀어준 작전의 결과다·
그리하여 신전 본단의 교리학자들이 아예 민간에 나와 성화당 불당을 세워 밝은 태양 아래 교리를 설파하고 있으니 이는 신전이 그토록 꿈꾸던 미래가 현실로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 현인신께 공양을 성공한 무녀는 이제 다 이루었다·
사람은 너무 감격해도 쓰러질 수 있다·
물론 주접도 이런 주접이 없기는 하다·
청이 다급히 맥을 짚어 보지만 음 아주 건강하신걸? 뭐지? 그런데 내 탕국 이름은 결국 뭐였던 건데····
최리옹의 말로는 장안에 머물 때 숙수를 보시던 아주머니인데 청의 식사 결과를 분석하여 끓여낸 탕국이라고·
쓰러진 건 원래 가끔 그러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아· 그럼 어디 가서는 못 먹겠네요·”
“생각나면 와서 먹으면 그만이지·”
퉁명스럽지만 결국 자주 좀 와서 얼굴을 좀 비추라는 소리다·
그 마음 씀이 조금 아주 쪼끔 찡해진 청이 괜히 너스레를 떤다·
“할아범 그러다 매일 와서 거덜 내는 수가 있어요?”
“너 하나 못 먹일 정도로 영세하진 않다· 그리고 그걸로 거덜이 나면 뭐 거덜이 나야지· 뭐 어쩌겠냐·”
그리고 나서는 차를 마시며 조금 노닥거리다가·
“나는 이제 돌아가 봐야겠군? 사실 몰래 빠져나왔거든· 집 나오니 참 좋군· 중원 땅이 생각보다 살기 좋은데 또 생각보다 더 엉망이기도 하고· 이래서 한 번 보는 것이 일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더니·”
“엥· 그 나이 먹고 가출을?”
“내 생각은 아니고· 이모님께서 꼬드기셨으니 내 잘못은 아니지· 어쨌든 만수무강하셔 어머니·”
좀 더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줄 알았더니 염휘영이 의외로 담백하게 훌쩍 떠난다·
“신녀문에 가자는 말입니까?”
랑랑이 고개를 저었다·
“랑랑은 여독으로 지쳤습니다· 더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본 랑랑은 천화검의 상회에서 귀빈급 대접을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내 상회라니· 내 꺼 아니거든?”
“천화검이 그렇다면 그러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본 랑랑은 더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상회의 식객으로 성실한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견포희는 원래 신녀문에 발을 잘 들이지 않는다·
서문수린이 그리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데려가 봐야 기가 죽어서 어깨나 축 쳐져 있을 뿐이니 희매도 일단 상회에 좀 내려다 놓고·
청이 신녀봉 꼭대기를 향해 산비탈을 오른다·
등에 둘러멘 커다란 보따리는 으레 나갔다 들어갈 때면 한아름 챙기는 제자들 선물들이고·
물론 신체가 신체라서 무겁지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벼워 날아갈 것만 같다·
어쩌면 집보다 집에 가는 길이 더욱 푸근하고 편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앗! 나 갑자기 눈이 막 부셔! 밤중에 막 찬란한 빛이 뿜어진다!”
“아닛 이 광채는 태사숙조님의 광채! 태사숙조님! 어서 오세요! 와 태사숙조님 오랜만에 뵈니까 제 기억보다 더 예뻐요!”
“완전 마라! 마라탕!”
“마라탕 좋아! 완전 신세계!”
“태사숙조님도 좋아! 완전 마라탕!”
꺅꺅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두 제자 연서와 사랑이다·
청이 픽 웃으며 주접을 받아준다·
“너희는 항상 내가 올 때만 번을 서는 것 같다?”
“헤헤 그러게요· 신녀님께서 태사숙조님 마중드리라고 근무를 잡아주셨나 봐요·”
“근데 마라탕? 공양에 마라탕이 나와?”
“꺄아악 너무 좋아요! 그런데 한 달에 한 번만이래요····”
“매일 나왔으면 좋겠는데·”
“안 돼· 그럼 설거지가 큰일이란 말야· 너 마라탕 나올 때 당번 안 해봤지? 그거 빨간 기름이 진짜 악질도 그런 악질이 없는데 말야-”
“몰라! 그런데 뒤에 선물! 선물이죠!?”
“일단 좀 들어가자· 문주님하고 사부님께 인사부터 드려야지·”
“앗 넵! 그럼 있다가 갈게요!”
“짠! 태사숙조님 받아라! 천하제일미녀가 돌아오셨다!”
야단을 떠는 둘의 꼴을 보니 늘 심심한 신녀문 생활은 여전한 모양으로 새로운 저녁 식단이 들어선 것 말고는 딱히 특이 사항은 없는 모양이다·
“사숙 왔어? 아유 더 고와진 거 아냐?”
“에이 뭘 더 고와진다고· 별일 없죠?”
“다들 겨우내 아주 잘 먹어서 살이 찐 정도지 뭐·”
신녀문은 황후 마마의 기습 방문 이후로 인근 모든 땅의 주인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모자라지 않은 재정이 이제는 아예 풍족하게 철철 넘쳐버리는 바람에 이 금은을 어찌하나 하다가 일단 식단이 대폭 풍성해지고 말았다고·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는 신녀문이나 원래 겨울에는 땔감 줍기 이외에 딱히 스스로 할 일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 밥은 맛있어져서 몽창 퍼먹는데 활동은 줄어 다들 살이 많이 올랐다고·
“앗 사숙조다! 언제 왔어요? 사탕?”
“사탕·”
“사탕!”
사탕을 맡겨 놓은 듯이 손을 내미는 이대 제자에게 청이 맡아 두었다는 듯이 사탕을 내민다·
그런데? 사탕을 찾는 제자가 별로 없다?
내 귀환은 당연히 사탕 아닌가?
식단이 도대체 얼마나 잘 나오길래 사탕도 안 찾지?
언제나 단것에 목마른 너 나 우리 신녀문 아니었던가?
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은 신녀봉 꼭대기쯤 제 집으로 향한다·
짐부터 간단히 풀고 문주님 뵙고 사부님 뵈러 갈 요량이다·
그렇게 신녀봉을 오르고 있자니 바람이 아주 쌩쌩 부는 것이 그래 이 바람 이걸 맞으니까 집에 온 기분이 드네·
신녀봉 정상쯤 그것도 장강을 발아래 두고 있는 청의 거처는 일 년 내내 쌩쌩 칼 같은 바람이 분다·
물론 추위로는 이제 어디 던져놓더라도 별 탈이 없는 청이다·
어유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네 하는 그저 단순한 감상 정도로 거친 바람에 파라락 도복 자락을 흩날리며 계단을 세 개씩 성큼성큼 오른다·
그러자 청의 인간 초월 청력에 바람 소리에 섞인 다른 소음이 마치 부웅 부웅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다·
청이 모퉁이 돌자 코딱지만 한 모옥이 한 채·
그 앞마당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아주 쪼끄마니 덜 자란 꼬맹이도 하나·
여전히 코딱지만한 진장명이다·
쟤는 왜 여기서 검을 휘두르고 있지?
일과 시간이 끝났으니까 자유 시간이기는 한데 왜 굳이 여기서?
혹시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이 대 제자의 막내로 막강한 권력에 휘둘리고 있던 진장명이었다·
체구가 딱 품에 안기 좋다는 구실로 아주 늘상 제자들 품속에서 떠나질 못하던데·
그래도 검술은 좀 늘었나?
여인의 검술 치고는 투박한 강격으로 이루어진 신녀검결의 초식이다·
노르스름하게 검기가 얼핏 비치는 초식마다 담긴 힘이 제법 강맹하다고 하겠다·
그보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진장명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에 보이는 유형의 기세다·
마치 마음에 내기가 동하여 내공이 발현되는 듯한 경지에 든 이가 전력으로 수련에 매진하기 때문···은 아니라·
그냥 어둑하니 추운 저녁에 뜨거운 땀을 뽈뽈 흘리고 있으니 수증기 굳이 말하자면 땀증기를 뿜어내고 있을 뿐이다·
“오· 꼬맹이· 일류 무인· 중기? 후기?”
그에 진장명이 홱 뒤를 돌아보고 눈을 크게 부풀리며 동그랗게 만든다·
그리고는 곧장 우다다 달려오니 청이 그에 맞춰 팔을 벌려 맞이한다·
하지만 충돌 직전 진장명이 한 걸음을 두고 멈춰서고 만다·
“엥· 뭐야?”
“땀· 많이 흘렸어·”
“누가 신경이나 쓴데? 이리 온·”
“축축한데·”
“재회의 장면을 망칠 셈이야? 어서·”
그제야 진장명이 뚱한 표정을 풀고 풀쩍 뛰어 청에게 매달렸다·
청이 진장명을 꼭 부둥켜 안고 그 귓가에 속삭인다·
“음· 근데 좀 축축하긴 하다· 좀 많이· 꽉 껴안으면 땀 나오겠는데? 주르륵 쏟아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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