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3
진장명이 바동거린다·
하지만 그 항우마저 남청으로 개명시켜야 할 인간 괴력 그 자체인 청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바동거려봐야 단단히 붙든 품새는 산악처럼 굳건하여 흔들림조차 없다·
“이익 놔·”
“왜· 축축하고 찝찝하고 음 별로야· 이런 상태를 하고서는 안기랬다고 진짜로 안기기 있기 없기?”
“내려줘· 빨리·”
“킁 킁 어디 보자 땀 냄새 나나 볼까? 꼬맹이 언제 씻었냐? 내가 귀 뒤도 깨끗이 씻으라고 했지?”
그에 진장명의 발버둥이 더욱 심해진다·
청이 그제야 킬킬거리며 진장명을 내려놓는다·
진장명이 울상을 지었다·
“못됐어·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는데·”
“어허· 열심히만 하면 쓰나? 내가 너만 한 나이 때는 이미 초절정을 이루었단다·”
“···? 한 살 차이잖아·”
“그래· 최연소 초절정 서문청이지· 틀린 말은 안 했거든? 요 꼬맹이가 어디 감히 일류 따위 주제에 초절정 초월 초절정인 초절청 님과 말을 섞으려 들어?”
진장명의 눈이 도끼날 모양을 취했다·
“못돼먹었어· 미워·”
“자자· 농담이고· 내가 우리 장명이 주려고 선물도 사 왔는데· 어디 보자· 여깄다·”
청이 보따리에서 상자를 꺼내들고는 척 열어서 내미려는데·
“엥·”
“왜 그래?”
“뭐지? 불량품이었나? 아씨 광주까지 바꾸러 갈 수도 없는데· 이 아저씨 내가 거 약해 보이지 않느냐니까 분명히 튼튼하다고 그리 난리를 쳐 놓고는·”
조개를 잘 갈아서 오색으로 반짝거리는 작은 가리비 모양의 귀걸이 한 쌍이다·
한 쌍이었었다·
열어보고 나니 한쪽이 토막이 나서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청이 민망함에 뒷통수를 긁적긁적·
“미안· 오다 잘못 부딪쳤나? 안에 솜을 채워서 그럴 리도 없는데· 애초에 불량품이었나 봐· 장명이 선물은 내가 나중에-”
“아냐· 괜찮아· 한쪽만 차면 되지·”
청의 미안한 변명을 뎅겅 자르며 진장명이 혹여 뺏기기라도 할 새라 상자를 빼앗아 든다·
상자를 꼭 안은 진장명이 짐을 푸는 청의 뒤를 졸졸 쫒아다니며 쫑알쫑알 떠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태원에 같이 가는 거지? 또 나중에 가자면서 두고 가 버리는 거 아니지? 그러면 안 돼· 화 낼 거야·”
“음·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무림맹에서도 어지간해서는 연속으로 부려먹는 일은 없다고도 하고?”
“또 두고 가면 싫어· 이번엔 어디 가든지 나도 따라갈 거야·”
“장명이는 너무 연약한데· 음· 일단은 좀 씻고 있어· 나는 문주님 뵈러 갈 테니까·”
제자가 돌아왔으면 당연히 문주에게 먼저 인사를 올려야 하는 법이다·
물론 청 같은 경우는 정확히 따지자면 신녀문 소속이 아니라서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주희를 건너뛰고 쌩하니 서문수린에게 달려가서야 모양새가 영 안 살지 않는가·
물론 스스로를 장문명부에 이름만 올려놓은 장식용 문주로 여기는 왕주희다·
물론 자조 따위의 나쁜 의미는 아니다·
정작 어려운 결정은 스승님께 달려가서 여쭤보면 되다 보니 왕주희 개인적으로는 직무 만족도도 나쁘지는 않다·
어쨌거나 집단에는 집단의 순서가 있는 법 왕주희가 어여쁜 막내 사매를 맞이한다·
“사매 왔구나? 별일 없지?”
“별일이랄 게 있겠어요? 문주님도 잘 지내셨어요?”
“나? 어때 보이니?”
본래 원체 존재감이 없어서 천둔검이라 불리는 타의적 은신의 대가 왕주희였다·
그런데 그 존재감이 무척 커지고 말았다·
뭐랄까 대단히 후덕해지고 마셨는걸·
“어····”
음· 이건 좀 어려운데·
청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에 왕주희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땅을 관리할 마름이 마땅치 않아서 설가상회에 맡겼더니 자꾸 간식거리를 보내오지 뭐니· 안 먹으려고 해도 시간 지나서 상하면 아까우니 하나둘씩 집어먹었더니 아유 이 모양이란다·”
“아·”
다들 겨울잠 직전의 참새들처럼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것이 결국 설가상회가 원흉이었구나·
물론 설가상회는 억울하다·
따지고 보면 마름 노릇 하게 된 원인은 황후 마마께서 땅을 불하하신 까닭이고·
그리고 황후 마마께서는 혹여 제 딸내미가 구박받지는 않을까 싶어서 약소한(약소한) 용돈 겸 뇌물 비슷한 것을 찔러주었을 뿐이다·
결국 돌고 돌면 누구 탓이겠는가·
물론 청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간식이 맛있어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 개인의 탓이 아닐까?
“그래도 이리되니 요즘엔 못 보고 지나치는 아이도 없고· 역시 진작에 좀 풍채를 키웠어야 하는 거였으려나·”
결과적으로는 나름 만족스러우신 모양·
문주님께서 좋다면 좋은 거겠지····
“그래 스승님께서 우리 막내 사매를 아주 목이 빠지시라 기다리고 계신단다· 얼른 가 보도록 하렴·”
그렇게 문주전을 나서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제자들도 전체적으로 살이 붙었다·
문주님은 아예 후덕해지셨는데·
그럼 사부님도 좀 그러시려나?
음 전혀 상상이 안 되기는 하는데·
청의 발걸음이 조금씩 조금씩 점차 속도를 붙인다·
걷던 청이 어느 새인가 날듯이 뛴다·
입에는 미소가 걸린 채로 저 멀리에 늘 열려있던 대문이 기억 그대로 열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쳐대는 것이다·
“사부님! 저 왔어요!”
그리하여 청이 대문을 넘어·
음· 안 계시네·
그러자 드륵·
장지문이 반쯤 열리며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은 귀부인이 드러나며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낸다·
“왔으면 왔지 방정맞게 왜 호들갑이야? 제자는 어째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날뛰기만 해?”
“헤헤· 제자 복귀했습니다·”
“과년한 처자가 징그럽게 애교는· 됐다· 뭐해? 날이 추운데 썩 들어오지 않고·”
그러나 청은 오도카니 서서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입으로는 완만한 미소 그 큰 눈은 뭔가 아쉽기라도 한 양 살짝 찌그러지고 눈썹은 반대로 휘어 섭섭해 보이는 인상이다·
뭔가 미련 가득하니 아득한 미소·
이 년이 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나 하고 서문수린이 눈썹을 꿈틀·
청이 헤헤 웃으며 본론을 꺼내든다·
“사부님? 뭔가 아쉽지 않으세요? 오랜만에 보는 제자와 찐한 포옹이라도 한 번·”
그에 서문수린이 한숨을 푹 내쉰다·
어째 강호행을 다녀오기만 하면 제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경지에서 보이는 어떤 현상이 아니라 아끼는 제자를 돌보는 스승으로서 계속 제자를 봐 온 여인의 통찰이다·
제자가 눈빛이 대체 저게 무엇이야·
눈은 심상의 창이다·
도대체 무슨 꼴을 보았는지 분노가 가득 들어차서 미움에서 나오는 요사한 살기가 본래의 푸름을 혼탁하게 흐리는 상태다
어쨌거나 눈이 마주치자마자 저 속마음이 지금 제대로 된 속이 아니로구나·
그러니 그 속을 채우려고 애정을 청하는 어리광이 점점 늘기만 하는 것이고·
“이리 오너라· 말만 한 계집애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쯧쯧·”
그리하여 어화둥둥 내 제자 서문수린이 팔자에 없는 어미 역할로 금 같은 제자님의 머리를 다리 위에 척 얹어놓고 쓱쓱 쓰다듬는다·
기어코 스승을 베고 눕는 데에 성공한 제자였으니 이게 금 같은 제자인지 금쪽이 제자인지 원·
“헤헤·”
또 좋다고 헤헤 아주 난리다·
그러다 저도 문득 민망해졌는지 멋쩍은 표정이 되어 슬그머니 일어나 무릎을 꿇고 공손히 자세를 잡는 것이다·
“그래서 잘 다녀왔느냐?”
“네·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음 일단은 제자가 남녕으로 향하는 중이었는데요 아 혹시 장가계 그러니까 천자산이라고 가 보셨어요?”
“허·”
무슨 시작부터 숨이 콱 막히는 소리다·
천자산이라니?
산적 새끼들 소굴이 아니던가·
“제자가 거길 구경 중이었는데 웬 산적 놈들이 떼로 달려들지 않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라고·
곧장 튀어나오는 ‘산적 놈들’에 서문수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으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표정 관리를 못 하는 제자의 얼굴부터가 일그러졌을 터·
하지만 그저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자면 딱히 별일은 없는 모양이라고-
“제자가 산적 놈들을 보고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있겠어요? 제자가 곧장 검을 뽑아서 거기 산적 두령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런데 무슨 산적 두목 주제에 화경씩이나 되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누구 제자겠어요? 사부님 제자는 초절정 초월 초절정이니까 그냥 쓱싹·”
“···?”
“아· 거기에 화경이 한 놈만 있는 게 아니라 더 있더라고요· 도와라? 도와줌?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런 실력을 갖추고도 죄 없는 양민을 괴롭히며 도적질을 하다니· 역시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라 제자가 척 해치워 버렸어요·”
“···?”
“알고 보니 거기가 아주 산적 소굴이더라구요· 그래서 제자가 죄다 불태워버렸어요· 헤헤 잘했죠?”
서문수린이 일단 차를 한 모금·
뭔가 단단히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말았는데·
“지금 제자가 녹림 놈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총채주의 목을 베고 나머지를 불태웠다는 소리더냐?”
“네!”
“음·”
서문수린이 음 이게 무슨·
솔직히 말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감도 안 잡힌다·
제자가 저에게 거짓말을 할 리도 없으니 사실이라는 말인데·
겨우 초절정 계집애 하나가 쳐들어간다고 박살이 날 놈들 같았으면 녹림이 어찌 지금의 성세를 이룰 수 있었겠는가·
“대단히 위험한 일을 벌였구나·”
“사실 산적이라고 좀 얕봤는데 의외로 고수가 있더라구요· 깜짝 놀랐지 뭐예요·”
“음· 일단은 잘했다· 세상에 하등 도움이 될 것들이 아니니 치운다고 해서 세상이 칭송할지언정 그래 제자가 녹림을 불태운 사실을 누가 알고?”
“음· 도망친 놈들이 알지 않을까요?”
“그래· 그리고 또 그리고 나서 바로 남녕으로 향했겠지?”
“그게 제자가 가는 길에 웬 군사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요·”
“아니 왜 가는 데마다· 아니다 일단은 쭉 이야기를 해 보거라·”
그리하여 청의 여정이 쭉 펼쳐졌다·
위험에 빠진 친왕을 구하고 지난날 사천에서처럼 이상한 대법 잔뜩 받은 금의위들이랑 맞서 싸우고·
그러다가 제자가 힘에 부쳐서 마공을 하나 익혔는데····
청이 슬쩍 서문수린의 눈치를 살핀다·
서문수인이 한숨을 푹 내쉰다·
“일단 넘어가자꾸나· 그래서?”
남녕 땅에 들렀더니 계림검파가 멸문의 위험에 처했길래 또 도움을 주고·
그리고 나서는 가만히 놀기도 뭐해서 광동으로 이동 광동진가에 들었는데·
그리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 삼대 사파 그리고 혈아귀 혈교·
그래도 광서 땅 계림검파의 머물던 이야기로는 좀 평범한 강호행을 했나 싶더니만·
서문수린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제자의 운명이 기구한 탓인지 아니면 천살의 업을 가졌기에 가는 데마다 소동이 따르는 것인지 어찌어찌 잘 해결이 된 것을 보면 또 천운이라고 해야 할지·
심지어 혈아귀 이야기를 할 때는 스승 앞에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천살의 흉험한 요기를 흘리던 제자가 아니었던가·
듣고 나니 충분히 마음이 상할 만한 일이기도 하고·
또 제자가 기특하기도 하고·
“선악이란 누군가 답을 내려줄 수 없는 문제란다· 그리고 대단히 어려운 문제기도 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될 것이나 그 마음이 방향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니 제자는 계속 궁리해 보도록 하거라·”
“네····”
“그런데 마공을 익혔다고?”
올 것이 왔구나·
청이 살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으 전륜마겁이라고 하는데요·”
서문수린의 이마에 핏대가 볼록 목에도 핏대가 볼록 그리고 주먹은 콱 쥐어 불끈·
또 천하십대마공이냐!
아니 무슨 천하십대마공을 다 모으려고 작정한 년도 아니고 온 무림에 악명을 떨치는 마공만 골라서 주워온단 말이냐!
하지만 제자의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서문수린이 핵 투발을 꾹 참았다·
고생하고 돌아온 제자인데 좀 모자라고 그리고 좀 많이 아니 그냥 많이 모자라기는 해도 착한 제자인데····
“하아· 그래· 잘했다· 잘했어·”
서문수린이 결국 핵꿀밤 참기에 가까스로 성공하는 그 순간이었다·
청이 거기에 굳이 한마디를 기어코 덧붙이는 것이다·
“그래도 사부님 마공이기는 해도 되게 편리한데 이것 보세요· 강기가 막 움직이는데요 짠! 회전 강기!”
그에 겨우 가라앉던 서문수린의 분노 막대가 단숨에 치솟았다·
쿠웅···!
태상문주전 지붕에서 지친 날개를 쉬던 산새들이 일시에 놀라 포로로 날아오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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