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9
중원의 위대한 말씀들은 거진 춘추 전국 시대에 나왔다·
이는 춘추와 전국 그 몇백 년의 역사가 중원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가혹했던 세상이 그저 악으로 충만했던 끔찍한 시대였기에·
오히려 그러했기에 이러면 안 된다 제발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삽시다 하는 처절한 외침이 바로 제자백가의 말씀들인 것이다·
이 이대에 도척이라는 도적이 있었다·
최고에요 도척도척 도적의 끝판왕·
도적 부하를 구천 명이나 이끌고도 도적질이나 했다는 점에서 그 인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춘추 전국 시대에 강병으로 구천이면 충분히 한 지역을 노려볼 수 있는 패자 혹은 제후 열후 나아가 왕작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거대한 군대였으니까·
하지만 도척이 구천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무엇을 했는가·
그냥 천하를 휩쓸며 도적질을 했다·
심심하면 사람을 죽이고 형제와 자매 부모와 부부를 싸움 붙여 서로 죽이는 꼴을 낄낄거리며 감상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매 끼니마다 사람의 간을 먹어야 하는 특이한 식성까지 갖췄으니 그 어떤 도적의 악독함이 도척과 비하리오·
그리하여 사마천이 사기에서 울분으로 부르짖으며 말하기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잘린 양물이 매우 아팠을 것이다·)
도척은 어찌 죽었는가?
그렇게 평생 사람 죽이기를 취미로 삼아 죽이고 또 생간을 빼어 잡아먹고 살다가 늙어서는 부하들 사이에서 곡소리를 자장가 삼아 아주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더란다·
정녕 하늘이 악을 미워하여 악행에는 응분의 댓가를 내린다면 이 도척은 어째서 평생 사람 죽이는 재미에 지루할 일 없는 일생을 보내다 평온하게 죽었는가!
하늘의 뜻이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하늘의 뜻은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하늘의 뜻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음· 쌍놈·”
그렇게 따지자면 하늘은 아무것도 하질 않는다·
당장 청의 눈에 보이는 숫자들도 그냥 딱 그렇게 눈에 보일 뿐 그렇다고 해서 네가 몇 점 채우라던가 악인들 싹 정리해다가 저 지옥불에 특급 배송을 하라던가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숫자로 띄워서 보여줄 뿐이지·
왜?
음· 모르겠다·
“서문 소저?”
“엥·”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그냥요· 뭐야 강연 끝났나? 그럼?”
청이 잔을 드는 시늉을 한다·
자 강연 끝났으면 꺾어야지·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한 잔·
태원에 도착한 때가 오월 중순이었는데 이제는 무지근하니 방심하면 땀이 죽죽 흘러내리는 칠월 하순이다·
물론 청은 안 덥다·
한심공의 운용으로 더위에서의 완전한 자유를 얻은 청이었으니까·
여름에도 닫힌 소매에 목을 꼭 잠그고 다녀 남들 보기에는 덥지도 않나 스스로 저 안을 찜통으로 만드는 복식인가 하겠지만·
그렇게 소매 죄고 목 죄어 헐렁하게 입은 안쪽으로는 시원한 한기가 들어차 혼자서만 얄미운 피서를 즐기는 청이다·
한림원 학사들이 하는 말로는 절세미인은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 같고 어쩌다 그 옆에 앉으면(경쟁률이 높아 쉽지 않음) 진짜로 서늘한 기분이 든다고도 하던데·
실제로 서늘한 거 맞다·
청은 의외로 한림원에 잘 녹아들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청이라는 인물은 싹싹하니 아무하고나 말을 트는 데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다·
좋게 말하면 싹싹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저 심심하면 주변 사람을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 귀찮고 성가신 년이다·
그리고 천하제일미인 얼굴만 보면 깍쟁이 사내에게 눈길도 안 줄 것처럼 새초롬하니 말 안 듣게 생긴 주제에 남녀의 유별이 없다·
아주 유별나게 없다·
먹고 놀기를 좋아하는데 뭔가 할 때는 또 쉽게 푹 빠져서 열심이 되어버린다·
종합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자! 짠! 오늘도 하루 버텼다!”
“버텼다!”
한림원 학사들이 잔을 들어 후창한다·
한림원 학사가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쥐어짜 밥 같이 머글래요···? 하고 물어보면 의외로 쉽게 그러자는 소리가 나온다·
그에 심장은 두근두근 얼굴은 터질 것 같이 해냈다 하고 정작 점심 시간이 되면 다 같은 표정의 학사들이 청의 뒤를 우르르 따라서 몰려나온다·
안타깝게도 둘이 먹자는 말은 안 했잖아·
“아유 반나절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아주 뒈지겠네· 안 그래요? 한 번씩 서서 몸도 좀 움직여주고 해야지· 키야 쥑인다·”
그리고는 청이 옆자리에 앉은 양 학사의 팔뚝을 팔꿈치로 툭툭 건드린다·
양 학사의 얼굴이 바로 시뻘개진다·
팔꿈치 닿는다! 팔꿈치 닿는다!
“양 학사 양 학사 근데 오늘 묵자? 뭐야? 애자 발음이 좀 조심스럽네· 어쨌든 겸애는 뭐고 별애는 또 뭐야·”
“크흠· 겸애는 차별 없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별애는 나와 가까운 순으로 애정에 차분을 두는 일을 말하는 것이오·”
“그런데? 왜 겸애?”
청이 몸을 바짝 기울이며 묻는다·
좋은 향기 좋은 향기가 난다···
양 학사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까운 사람을 아끼는 왕과 모두를 완전히 같은 만큼 아끼는 왕 중 어떤 왕이 어진 왕이 되겠소이까?”
“자기가 왕하고 가까운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에 다른 학사가 급히 끼어든다·
“음· 서문 소저· 대저 충신은 입 안에 든 가시처럼 까슬하게 걸려 넘어가지 않는 법이고 간신이라 하면 꾸며낸 낯을 하고 귀로 들어 취할 만한 달콤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세상 모든 군왕이 머리로는 충신은 아끼고 간신을 멀리하라 해도 마음이 동하기로는 그 반대로 해 버리고 마니 왕이 하는 별애는 결국에 무능한 간신에게 총애가 갈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가?”
“이 학사 하지만 겸애에 왕의 예를 드는 것은 적절치 않지 않소· 겸애란 이러한 것이오 남의 자식을 내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내 자식을 남의 자식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삶· 그리하여 겸애의 가족이란 부부 여러 쌍이 모여 자식을 공유하여 이루는 큰 대가족을 말한다고 하오·”
그렇게 자식을 공유하는 대가족의 탄생·
그리고 대가족은 혼약을 통해 다른 대가족과 다시 맺어지니 두 대가족이 한 공동체로 합가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겸애의 공동체가 천하를 뒤덮을 때 비로소 천하 만민이 겸애로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고·
그리고 이 공동체의 특이한 점·
재물은 분배를 통해 필요한 이가 쓰고 남는 잉여 자원은 사유 재산으로 삼지 않고 모든 재산은 공동체의 소유로 잉여분을 회수하여 또 분배와 회수를···
“뭐지? 좀 붉은데?”
“재미있는 점이라면 묵가의 제자들이란 하나같이 수성의 대가들이었다는 것이라오· 그래서 그들은 당대의 많은 군주들의 빈축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이한 공동체를 잘 지켜나가기도 했지·”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은 입으로만 학문을 말하는 샌님들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걸출한 장수이자 장군 한 무력 집단의 대장들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묵가 사람들은 전쟁을 막는 궁극적인 수단이 수성술 방어에 있다고 했으니 중원의 요새화한 공동 주택 건축술인 토루가 묵가에서 나왔다고 하는 설도 있고·
사유재산 금지 편애 금지 공동체에서 시작하는 소공동체·
그리고 그 소공동체의 모임인 큰 공동체·
그리고 우주 방어····
좀 굉장히 불온한 느낌 아닌가?
사실 청도 나름 고등 교육을 받은 대한의 건아다·
중원 사상가 공부라고?
그러면 나도 코쟁이로 대항해 본다!
그런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하지만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다 모여셔 합친 제자백가 모음집은 사상가만 이백 명이 넘어간다·
그러니 청이 모처럼 반격이라고 저 멀리 서역에 누가 이런 소리를 했는데요 하면 아 그건 누구 누구 누구 누구 성현들께서 하신 말씀이로군 하고 원래 있던 거라면서 청의 한 마디가 모두의 서너 마디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모두의 서너 마디는 합치면 수백 마디다·
음 모르겠다·
역시 인구가 깡패로구나·
사람의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라더니 저 지구 반대편 사람이 한 생각을 여기서도 다 한 번씩 해 보았구나 하고·
당장 도가(유학)의 경우만 하더라도 보라·
순수한 도란 인위적인 모든 것을 배제한 상태이니 이는 저기 서역 코쟁이 플 씨가 말한 이데아와 거의 일치하는 개념이 된다·
그리하여 무위자연의 도 사람이 알지 못해도 당연히 그러하다 즉 이는 선에 해당하니 철인의 정치는 당연한 것 너무나 당연하기에 누군가 다스린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도록 몰라야 하는 것···
어쨌거나 괜히 말 꺼냈다가 깨갱한 이후로 청은 함부로 코쟁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 서역의 니 씨가 말하는 초인이 뭐요?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나로 살라?
아 덕을 말함이로군· 노자께서 덕이 두터운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 하셨으니 그 니 씨 역시 도덕경을 공부하셨군?
하지만 개별의 완성이라니?
그렇다면 그 초인이 개별로 뭐라고 하셨지? 힘에의 의지? 그 초월을 넘어 초인에 이른다 하여도 무슨 의미가 있소?
사람이 도를 깨우쳐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 초인이 천하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오?
반대로 말하자면 천하가 함께 초월하지 않는다면 한 개 초인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이 되겠소이까?
그러면 청이 할 말이 뭐 있겠는가·
그걸 왜 나한테 따져요?
그 말은 니 씨가 했으니까 그 사람한테 따져야지 왜 나한테 그래요?
진짜 별꼴이야 아주·
사실 코쟁이들의 고찰이란 너무 개인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생각나는 것은 교수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개인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에다가 영향을 끼치려 들면 교회의 이단심판관들이 구족을 매달아 화형에 처했을 것이라던가·
실존하는 신의 폐해라고 하셨던가·
청이 그를 설명하기에는 많이 모자라다·
무엇보다 청 역시 한민족이라서 그러한 나 혼자 완성되어 개별의 내가 전체가 되는 개인 주체의 사회에 대해서는 전혀 심정적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 어버버버 어 지나가다 들은 거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씨 교수님도 무림에 들어오셨어야 하는데 내가 불량 학생이라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척척 지식은 쌓고 있는 청이다·
“에라 모르겠다· 자 마셔요 마셔!”
물론 지식이 지혜로 체화되지는 않고 있으니 아무리 창고에 귀한 물건을 우겨넣으면 뭘 하나·
뭐가 뭔지 어디에 쓰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좋다니까 죄다 다 쑤셔 넣는 꼴이다·
창고 정리라고는 나중에 나중에 영영 나중이라 남은 삶의 할 일은 없어 보이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몽창 마시고 또 몽창 다 처먹고 돌아오니 어느새 천가장 지하실에는 천유학이 지도 붙들고 끙끙거리는 중이다·
“사부님 저 왔어요·”
“왔냐? 거기 약탕에 들어가 있어라·”
천유학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서는 대답한다·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천유학은 계속 장보도를 해석하는 중이다·
장보도 해석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거창한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좀 거창하니 암호도 풀고 이리저리 맞대어 지도를 그려냈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으니·
지명 없이 좁은 구역으로 그려진 일부의 지도를 보고 이 넓은 중원 땅 어디에 붙은 동네인지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일일이 비교하면서·
본래 중원의 상세한 지도란 본래 국법에 극비로 취급되는 물건이지만 원래 신투는 국법따위 신경쓰지 않는 도둑놈들(더하기 예비 도둑년)이다·
지하실에 붙은 온갖 종류의 중원 전도만 해도 천가는 구족을 면치 못할 대역죄인에 속하지만·
그러니 축적 모를 장보도 그 작은 지도 쪼가리 들고 중원 전역과 맞춰보면서 이리 대고 저리 대고 여긴가 저긴가 수제로 보물 위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약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던 청이 어느새 투명하게 맑아진 물을 확인하고 스승을 소리쳐 부른다·
“스승님? 약성이 다 든 것 같은데요?”
“벌써? 이렇게 빨리 들 리가 없는데?”
청은 먹는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다·
태원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작해서 보름 간격으로 한 번씩·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어 태원에서만 다섯 번째 유류연련 수련이다·
본래는 사지 관절을 한계 이상으로 조금씩 꺾어 그 한계를 늘이는 스승은 힘들고 제자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수련법이다·
하지만 청의 슬기로운 지혜로 대신 아파줄 정신 내부의 기생체를 이용하는 중·
청은 아직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굳건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다·
“아이고 뒤지 뒤지겠다·”
제자의 관절 조지기를 끝낸 천유학이 헐떡거리며 석실 내부에 드러눕는다·
눈이 멍하니 풀린 채로 침만 줄줄 흘리고 있던 청이 돌연 퍼뜩 초점을 잡아 주변을 휙휙 둘러본다·
아 수련 끝났나 보네·
전신이 무지근하게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구석이 없기는 한데 그래도 잠깐 저 아래로 잠수했다 올라오면 고문 끝이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지 않겠나·
유류연련 수련대에 묶인 청이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대나 싶더니 재주도 좋게 스윽 저 혼자 빠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여섯 번째 시술 그러니까 유류연련이 육성에 이르고 나서부터는 기구가 콱 죄어 관절을 꺾는 상태만 아니라면 혼자 빠져나오는 것도 가능하더라고·
이제는 탈진한 스승을 애타게 바라보며 사람의 최소한도의 존엄성과 방광의 한계 사이에서 제발 나 측간을 외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지도는 좀 어때요?”
“아이고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 며칠만 더 맞춰보면 돼· 팔월까지는 후보지를 다 뽑아놔야 빠짐없이 돌아보지 않겠냐·”
팔월에는 태학당도 쉰다·
애초에 천유학이 이리 남는 모든 시간을 지도 맞추기 놀이에 투자하는 이유 역시 바로 그러하고·
팔월까지는 모든 후보지를 찍어 놓아야 장보도에 기록된 보물을 찾으러 떠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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