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0
지난 유월·
강서성 태화현에서는 오천만(사도련 측 추산) 사도 건아들이 모여 마음을 하나로 단합하는 무림 대회가 열렸다·
다음 대의 사도 연맹을 이끌 사도련 후기지수들의 비무회로 사도용봉 사룡 십 인의 명예로운 후배들을 뽑기도 하고·
요즘 부쩍 세를 키운 동남부 사파들의 새 현판 및 중간 거점 발대식도 하고·
무인은 무를 숭상할 뿐 다른 정치적인 요인 예를 들어 협의와 같은 것으로 결국 칼 든 강도라는 무인의 본질을 흐리고 천하 군중을 속이려 든다면서 정파 무림을 단체로 규탄하기도 했다·
물론 정파의 무림 대회와는 달리 관계자 외 구경꾼이 거의 없는 행사다·
정파의 무림 대회야 어차피 일반인들이 구경해도 저들이 해코지당할 일이 없으니 온 중원의 행사로 유람객들이 넘쳤지만·
천하의 사파 놈들이 죄다 모여든 도시에 구경을 자처한다?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꼴이다·
당장 사도련 무림 대회 내내 태화현의 딸자식 가진 부모들에게는 비상이 걸렸으니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꽁꽁 싸매 숨겨놓았다는 후문도 있다·
그리고 이 사도 건아들의 축제가 그 열기를 그대로 모아 ‘천하 무림에 고한다’ 행사에서는 서로가 하고 싶은 말로 사도 건아의 의기를 드높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천하 무림에 고한다에서 단연 화제가 된 인물은 녹림채주의 셋째아들 왕대양이 되시겠다·
일단 등장부터가 범상치 않았으니 등 뒤로 긴 장대에 거대한 깃발을 매달고서 누런 상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겠나·
그리하여 깃발에 걸린 네 글자·
매신장부!
이는 옛날 옛날 한옛날 정확히는 한나라 시절 옛날에 동영이라는 유명한 효자에게서 나온 말이다·
동영은 엄청난 효자였지만 능력은 없었던 모양으로 그의 집은 가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영은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잣집에 찾아가 스스로를 노비로 팔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마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저 장례를 치르겠다고 몸을 판 아들놈을 내려다보며 피눈물을 흘리셨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라면 애초에 장례비가 없어 몸을 팔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무식하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효심만 깊은 동영은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
뭐 옥황상제의 딸이 그 인품에 반해서 도와준 덕분에 노비 생활을 끝났다고는 하던데·
그 정도로 멍청한 새끼는 옥황상제의 딸 정도가 나서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매신장부라고 하면 스스로의 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고 하는 효행의 끝판왕쯤 되는 숭고한 행위다·
참고로 이러한 효 늙은 부모가 심지어 죽어서도 장례와 삼년상 등으로 살아있는 자식의 발목을 잡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동아시아의 효행 문화 양민을 계속 양민으로 있게 만드는 검증된 통치 도구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는 사도 건아의 무림 대회다·
효는 개뿔 천하의 패륜아들이 모인 장소에 무슨 매신장부란 말인가?
“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여기서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녹림은 녹림은 패배했습니다! 바로 저 가증스러운 천화검 그 사악하고 비겁한 계집의 수작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놀랍게도 어디 한 군데 거짓이 없다·
참담하고 부끄러운가? 예·
녹림이 패배했는가? 예·
천화검이 사악하고 비겁한가? 예·
그 놀라운 진실에 사도 건아들이 헛숨을 삼킨다·
뭐라고?
이제 스물 하나 그때는 스물 먹었던 계집에게 왕철군이 죽고 거기에 더해 녹림의 고수로 (사파에게는)유명한 도우삼까지 베고 산채를 태웠다고?
그게 말이 되나?
그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도련 책사들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두 극대노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막장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느날 첫째 형님이 연인이라 소개하여 나타난 정파의 여인 천화검·
그러나 지고지순한 순애를 보이는 첫째 형님과는 달리 영 불순한 눈빛으로 둘째 형님과 도우삼을 살피는 천화검의 모습·
그리고 악녀가 형제를 이간질하고 도우삼을 꾀어 제멋대로 치마폭에 넣고 주물거리니 우물에 독을 타 큰 참사를 일으키고·
누이를 잔인하게 참살하고 그 모습을 본 총채주는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첫째 형님은 천화검을 믿었기에 둘째 형님에게 소개시켜줬고 그런 만남이 있은 이후로부터 우리는 서로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 것뿐인데 그런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왕대양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그리하여 일가가 악녀의 손에 철저하게 파멸당하는 그 순간 왕대양이 피눈물을 흘리며 비통하게 절규한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그러자 천화검은 차갑게 비웃을 뿐이다·
-그냥· 녹림을 토벌한 협객 멋있잖아?
너희 사파 따위 내 명성을 위한 깔개일 뿐이지·
-겨우 그런 그런 이유로!
왕대양이 복수를 위해 검을 들었으나·
-공자님! 공자님은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이 진실을 알리고 저 간악한 마녀를 처단하셔야 합니다! 원수를! 부디 원수를!
-안 된다! 놔라! 놔!
죽음을 알고서도 천화검에게 돌진하는 부하들과 수하에게 붙들려 끌려나가는 왕대양의 처절한 비명을 끝으로 이야기는 암전·
“어찌 세상에 그런 악독한 년이!”
대부분은 그러한 반응이었다·
근데 예쁘긴 예쁜가 봐? 하는 소수의 반응도 존재했지만 사도련 책사들의 ‘말 되는’ 녹림의 파멸담이 그래도 그래야 좀 말이 되었으니까·
아니면 뭐 겨우 그 해에 초절정에 오른 애송이가 정면으로 쳐들어가서 화경 둘 죽이고 무수한 산적을 베어낸 다음에 당당하게 불을 지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뭔가·
“그리하여 이 왕 모가 사도의 건아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천화검을 천화검만 처리해 주신다면 이 몸을 팔 터이니 종으로 부려먹건 대자로 거두시건 데릴 사위로 쓰시건 평생 따르겠습니다!”
그때였다·
저 높은 단상 위에 앉아있던 사도련주께서 짝짝 손벽을 치시는 것이 아닌가!
천하십대고수 중 삼 위 본인이 생각하기에 일 위 사파 무인 중 일 위의 신위로 막대한 내공을 담은 박수 소리다·
짝! 짝!
아니 무슨 박수를 육합전성으로 쳐?
육합전성은 전음의 끝판왕쯤 되는 수법으로 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바로 곁에서 선명히 들리도록 하는 것이다·
앞 뒤 좌 우 위 아래 여섯 방향에서 동시에 들리는 목소리라서 육합전성이다·
저 까마득히 높고 먼 옥좌에서 치는 박수가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귓가에 방향을 알 수 없이 사방에서 속삭이듯 선명하게 들린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신위!
그도 모자라서 사도련주의 목소리가 크지 않으나 선명하게 모두에게 울려퍼진다·
“내 자네의 효심에 정녕 감탄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원수를 처단하지 못했으니 아직 자네는 효자라고 할 수 없네·”
사도련주가 한 박자 쉬고 말을 잇는다·
“만약에 원수를 처단하고 부친의 장사를 지낸다면 과거 동영의 고사에서도 하늘이 감동하여 도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 역시 그 효행의 정성을 보아 녹림의 재건을 전력으로 도울 것이다! 이는 내가 부안평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이다!”
그에 사파 무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천화검을 처단하면 왕대양을 종놈으로 부려먹을 수 있다·
천화검을 처단하면 사도제일인이 녹림의 재건을 도울 것이다·
종놈의 재산은 주인의 재산이다·
즉 녹림의 주인이 된다!
천화검이 악독한데 뭐? 당한 놈이 병신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도 건아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느낌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겨우 사연 팔이로는 움직이지 않는 사파 쌍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마지막 한 수!
거기에 효를 앞세운 명분까지!
사도 무인들이 단숨에 비장해지며 비열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빛을 살핀다·
그에 부안평이 천단 위에서 그러한 좌중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툭·
“이보게 총책· 어째 군중의 숫자가 많이 줄지 않았나? 사룡비무회 끝났다고 벌써들 집에 갔나? 분명 끝까지 자리들 지키고 있으라고 공문 안 보냈소?”
분명 무림 대회를 개최할때만 해도 광장을 가득 메워 빡빡하니 선 군중이었는데·
인제 보니 허술하니 군중 사이의 간격도 넓거니와 심지어 광장 끝부분에는 아예 사람도 없고 확연히 머리 숫자의 차이가 크다·
“보냈습니다만 일부만 놔두고 복귀한 것 아닙니까? 사실 구역을 오래 비우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되긴 할 것이니·”
“쯧· 이렇게 단합이 안 돼· 단합이· 정파 놈들은 뭐만 하면 똘똘 뭉치는데 우리는 왜 다 지 밥그릇부터 챙기고 본다니까·”
부안평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총책사 순웅의 말도 일리가 있다·
어디 가도 안심하고 자리를 비우는 정파 놈들과는 달리 사파란 오래 자리를 비우는 만큼 불안함이 커지고 마니까·
그리고 며칠 뒤 칠월 초순에 폐막식을 마지막으로 사도련의 무림 대회도 종료·
참고로 사도지존 부안평이 제안하고 모든 간부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사도련이 야심차게 준비한 폐막식의 마지막 행사는 이러했다·
흰 복숭아를 베어 물며 사도 천하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의기를 다잡는 것!
복숭아가 무엇인가·
도원결의에서 시작되는 중원에서 의리 그것도 으리으리한 의리의 상징 그 자체다·
이 자리에서 사도 건아 합종 연합회의 우리 모두가 한 형제로 의를 맺어 단합하자는 그러한 의미다·
거기에 흰 복숭아 즉 백도!
이는 백도 무림 즉 정파를 씹어먹겠다는 창대한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사도의 결집과 포부를 한 방에 드러내는 그야말로 위대한 의식이었다·
청이 알았다면 아 저거 알 것 같다·
영문 두 글자로 된 모 기업에서도 삼성산 정상에 올라 사과를 씹어먹는 의식을 치르지 않았던가·
삼성을 발아래에 두고 사과를 씹어먹겠다는 다짐을 한 거랑 똑같네!
아주 놀고 자빠졌네 하고 말았겠지만·
—-
사내들은 항상 말한다·
나는 서시 같은 절세미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소박하게 말이 잘 통하는 여인과 친구처럼 편하게 백년해로하고 싶다고·
물론 이는 전혀 소박하지 않다·
특히 한림원 학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단 유림이 황궁의 눈 밖에 나 태원으로 쫓겨난 지금 상황을 보면 여기서 배우는 유학자들의 장래도 사실 그리 밝지는 않다·
청이 중화의 역사에 조금만 정통했더라면 아마 이 무림 세상에서는 고황제가 맹자를 태울 때 아무도 안 말렸나? 하고 어느 역사의 특이점을 떠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고황제가 맹자를 읽다 한 대목에서 노발대발 화를 낸 일이다·
바로 ‘임금이 신하를 하찮게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로 여길 것이다’ 라는 한 줄이었다·
이 당연한 소리에 왜 화를 냈느냐?
그야 황제니까·
황제는 심심해서 신하의 가족을 불태우고 고문하며 죽이더라도 신하는 황제를 제 어버이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황제는 제아무리 인간 말종이라고 해도 어떠한 조건 없이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고황제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중원의 모든 지배자들이 그리고 또 앞으로의 미래 지도자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의식 수준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러니 한림원 학사들의 앞날은 그렇게 창창하지 않다·
거기에 평생 배운 것이란 글줄밖에 없다·
그 말은 친구처럼 편하게 백년해로하는 그 소박하게 말이 잘 통하는 여인에게도 할 말이 맹자왈 공자왈 성현의 말씀밖에는 해 줄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시 정도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 못생겨도 괜찮다고는 안 했다·
제갈량처럼 똑똑하기만 하면 천하의 추녀인 황월영이라도 넙죽 부인으로 들이는 위인이 못 된다는 소리다·
그러니 한림원 학사들의 이상형이란 사실 과거 역사를 통틀어서도 몇 명 없다·
해봐야 채염 정도·
채염이 미인이라는 기록은 딱히 없지만 생애에 수많은 사내를 홀린 마성의 여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보통 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 정도야 당연한 상식으로 취급받지 않던가·
그리고 또 굳이 더 꼽으려면?
바로 서문청이 있었다·
그야말로 한림원 학사들의 심장을 꿰뚫는 선녀다·
지루한 경전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듣기만 하랴 아니라 추임새 넣어가며 와 대단해 너는 똑똑한 친구로구나 반응도 해준다·
거기에 몸가짐은 활달하여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돌고 권유하지 않으면 그저 눈알만 굴리는 소심한 학사들에게 기꺼이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다·
단점이라면 너무 예뻐서 스스로 자괴감이 든다는 정도·
적당히 평범하게만 생겼더라도 용기를 좀 내 볼 텐데 아예 인간 초월의 미모를 가진 탓에 나 따위가 일만 배다·
한림원의 오전 강연이 끝나면 점심에는 그보다 더 치열한 점심 강연이 펼쳐진다·
천화검에게 누가누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하느냐 하는 대결이다·
“서문 소저 혹시 서자서아자아라는 말을 아시오?”
모름·
“무용지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이오···”
처음 들어봄·
“당랑포선의 고사를 아십니까? 이는···”
당연히 모름·
다만 청이 생각하기는·
근데 얘네들은 사람 밥 먹는데 왜 자꾸 말을 시키고 그래····
그래도 뭐든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듣기 심심한 것은 아니다만·
성격 좋은 청은 그러한 이야기를 죄다 들어준다·
물론 떠드느라 다들 요리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청에게도 이득이었지만·
하지만 성격 안 좋은 사람은 밥상머리에서 밥맛 떨어지게 공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야 잘나신 학사 나으리들은 밥 대신 말씀이라도 드시나? 아주 밥집인지 경전집인지 고상한 말씀들만 나누시는구만? 앙?”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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