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1
왁자지껄하던 요리집의 분위기가 갑자기 외딴 숲처럼 고요해진다·
혓바닥 말고는 딱히 재주가 없는 학사들이 발끈하여 감히 성현의 좋은 말씀을 막는 무뢰한들을 노려보려다가 세상에 이크·
일단 딱 봐도 무뢰한처럼 생겼다·
산발한 머리부터가 전혀 정리되지 않고 사방으로 뻗쳤으니 까무잡잡한 피부와 더불어서 딱 봐도 근본 없는 오랑캐 새끼다·
그것도 매우 사나운 오랑캐 새끼들이다·
물론 학사들은 성현의 말씀으로 불의를 보아 지나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공자께서 말씀하셨으니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싸는 놈은 피하라고 하셨다·
하우불이 어리석고 못난 놈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입 아프게 설교하지 말고 그냥 병신으로 살게 놔두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개중에 가장 배움이 딸리는 청만 공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저 불한당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쁜 놈들인데?
하지만 나쁜 놈이라고 다 쳐죽여야 하나?
게다가 이번엔 이쪽의 과실도 명확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요리점이 먹고 마시며 떠드는 것이라고 해도 그 성량이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 수도 있으니까·
나쁜 놈이라고는 해도 그냥 조용히 밥을 먹고 싶었을 수도 있고·
굳이 신경을 거슬러 덤비도록 한다면 그건 악인참이 아니라 살인의 구실이 아닐까·
“저희가 소란하여 폐를 끼치고 말았네요· 제가 사과드릴 터이니 노여움을 푸세요·”
청이 일단은 다소곳하게 사과해 본다·
하지만 공자는 허약한 샌님이 아니었다·
그 처참한 시대에 제자를 이끄신 군벌의 수장으로 인간 자체가 강하고 심지어 십팔반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원시 고대 무림인이기도 하다·
십팔반병기란 활 석궁 검 도 대도 창 단창 낫창 월도 방패 도끼 망치 채찍 몽둥이 봉 그물 비수 그리고 맨손의 열여덟가지 병기(지역마다 조금씩 다름)를 말한다·
과연 하나도 아니고 열여덟 무예의 달인이 상대가 강하기에 피하라고 하셨겠는가·
공자께서 미친 놈을 피하라는 말씀은 비겁한 핑계가 아니다·
말이 안 통하는 새끼는 어떻게 해도 말이 안 통하니 무시하라는 뜻이다·
돌연 무뢰한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보통 교양 있는 사람은 상대가 숙이고 나오면 양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양 없는 병신 새끼들은 상대가 쫄아서 알아서 긴다고 생각한다·
이는 중원 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도 공통적인 쓰레기와 일치하는 인성의 증명인 것이다·
“크흐흐 이미 어르신들의 흥이 깨졌는데 이제 와서 후회하며 사과한다 한들 고작 그 조동아리 나불거려서 되겠느냐? 좀 더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지 않겠어?”
“진심 어린 사과라 하신다면요?”
“너 계집이 몸으로 이 어르신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거지· 계집년이 뭘 그리 꽁꽁 싸매 가지고는 일단 그 거추장스러운 옷부터 벗어놓고 이리로 와서 술부터 따라보거라· 크큭·”
뭐지? 풍류 좀 즐긴 놈인가?
청이 한번 더 꾹 참았다·
참을 인(忍)은 칼날 인(刃)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당장 찔러버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뜻·
그래서 참을 인의 뜻에는 인내하다라는 말과 함께 잔인하다와 무자비함이라는 의미 역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제 일행이 흥취에 취해 목소리가 다소 높았다고는 하나 본래 식사라 하면 목소리 높여 떠들며 즐거움을 취하는 것· 어찌하여 여러분들께서는 그런 무도한 일을 말하시나요?”
“이년이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우리는 공자왈 맹자왈 글월 읊는 소리만 들으면 아주 진저리가 나서 입맛이 뚝 떨어지는 사람들이야· 어르신들의 식사를 단단히 망친 거지·”
“그래서요?”
“우리가 누군지 아나? 건장한 사내조차 오줌을 지리며 경기를 일으키는 병주삼흉 어르신들이라 이거야·”
아 이거 오랜만에 나오는 건가?
청이 숫자를 세 본다· 둘 셋·
“병주삼흉!” “병주삼견!” “병주삼흉!”
대충 세 명중 하나 꼴로 나오는 걸 보니 제법 유명한 놈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뒤에 흉이니 견이 붙어서 제대로 된 놈이 없는 법이기도 하고·
그에 청이 싱긋 미소짓는다·
“혹시 이런 말씀은 못 들어보셨나요? 무림에 나가면 노인 여자 아이를 조심하라고·”
“크하핫! 네년이 무슨 절세 고수라도 된다는 소리···시구나···· 헤헤 말씀이라도 좀 해 주시지·”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
인세에 강림한 별빛이 속삭인다·
“꿇어 이 새끼들아·”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왜?
좋게 말로 해서는 안 되는 건데?
내가 고수니까 상황이 우습게 된 거지 그 아니었으면?
옷부터 벗고 술을 따르라는 새끼들이다·
울고불고 제발 봐 달라고 용서를 빈다고 한들 넘어가 주었을까?
“자· 할 말 있어요?”
“저희가 대인을 몰라뵙고···”
“내가 대인인지가 중요한가? 대인이 아니었으면 어쨌을 건데? 왜 사람이 좋은 말로 하면 알아듣지를 못하지?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아니 뭐 학사님들이 목소리에 내공이라도 담아서 떠들었어? 그렇게 목청 큰 분들도 아닌데 이게 애초에 미안할 일이기는 한가?”
“그것이····”
청이 꿇어앉은 세 사람 앞에서 한숨을 푹 내쉰다·
“생각해보니 누가 고수인지도 몰라보고 막 나댔으니 언제 죽어도 자연사야· 나한테 걸린 거 아니어도 언젠가 그리 껄떡대다가 사람 잘못 건드려서 사달이 벌어졌겠지· 뭐 그러니 교훈 겸 해서 팔 하나씩만 놓고 가는 걸로 해요·”
“아이고 대협 무인이 팔을 잃으면···”
“병주삼흉이라면서요? 뒤에 흉 붙은 새끼들이 뭐 얼마나 멀쩡한 새끼들이야· 그런데 천화검이 그런 놈들 놔 줬다고 소문이라도 나 봐· 나중에 내가 그 원망을 들어야겠어요? 내 죽이지는 않더라도 마두의 팔 하나씩은 걷어놔야 두 다리 뻗고 잘 거 아냐·”
천화검· 병주삼흉이 눈을 빛낸다·
천화검이라면 초절정 초기가 아닌가·
셋이서 기습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병주삼흉이 슬그머니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보이지 않게 입을 뻐끔뻐끔·
다만 청은 공기를 읽는다·
분위기를 잘 읽는다는 소리가 아니라 유체역학을 예민함으로 통달하여 좁은 범위 안의 모든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여간· 도대체 왜 좋은 말로 안 되지?
그냥 팔 하나 놓고 가면 안 돼?
지금까지 나쁜 짓 신나게 하고 다녔으면 팔 한 개? 내가 한 일에 비하면 굉장히 싸게 값을 치르는구나 하고 신나서 한 팔 내놓고 가면 안 되냐고·
청이 다시 한숨을 푹 내쉬는 순간이었다·
“죽여!”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듯이 놈들이 제법 강맹한 속도로 화살처럼 쏘아진다·
번뜩이는 쇠붙이의 광택·
순간 청의 신형이 여덟 방향으로 제각기 뛰고 걷고 떠오르고 공중제비를 도는 등의 잔상으로 분리되어 흩어진다·
능파미보는 다 좋은데 굉장히 어지럽다는 단점이 있다·
자연의 기를 뒤틀어 공간을 접는 그야말로 인세의 실존하는 축지법이니까·
남들이 보면 멋진 신공이지만 본인에게는 세상이 모든 방향으로 펼쳐지며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는 듯한 아찔한 경험이다·
신체가 인간을 초월한 청이기에 부담없이 쓰는 것이지 평범한 초절정이었으면 당장 비틀거리며 먹은 것들 다 게워내며 극심한 멀미에 시달릴 터다·
하지만 청의 육신은 버틴다·
그렇게 짠 적을 등지고 멋지게 나타난 청이 손을 뻗는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 첫째인지 둘째인지 셋째인지 모를 어쨌거나 병주삼흉 중 한 놈의 뒷머리가 콱 틀어잡힌다·
셋이 기습을 모의했지만 한 놈은 곧장 등을 돌려 도망치다가 딱 붙잡힌 것이다·
여항적의 우악스러운 힘이 사내의 뒷머리를 붙들고는 휘둘러 뒤로 메친다·
쾅! 단단한 요리점 바닥이 부서져나간다·
놈의 다리가 개성 있는 방향으로 꺾여서 크아악 커다란 비명이 터진다·
한 놈 끝·
뒤늦게 몸을 돌리는 놈들에게 쾅 곰팡이 휘날리며 쭉 늘어나 뻗어나가는 청의 신체·
청의 오른손 왼손이 낫처럼 굽어진 채 옆구리 뒤로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진다·
그리고 둘 사이로 막 들이치는 청의 팔이 일시에 쭉 펴진다·
아래로 늘씬한 손가락을 펼친 손바닥이 두 놈의 아랫배에 깊숙이 파고든다·
소수마공 제 일 초식· 절대희소·
적의 대를 끊고 기뻐하며 웃다·
두 놈이 짜기라도 한 듯 나란히 무릎을 턱 떨구고 배를 붙든 채로 왈칵 붉은 피를 쏟아낸다·
청이 그 사이에서 짝짝 손을 털었다·
“하여간 한 놈은 도망치는 것도 개성이 없어 개성이· 양심도 없고 의리도 없고 심지어 실력도 없고· 자 여기 견문이 넓으신 분들 중에 이 병주삼흉이 어떤 놈들인지 제게 설명해줄 수 있는 분이 계실까요?”
“악독한 도적놈들입니다!”
하나는 다리가 뒤틀리고 둘은 피를 뿜으며 바닥을 구른다·
무력화가 되지 않았으면 모를까 딱 봐도 후환이 없게 생긴 꼴에 사람들의 용기가 샘솟고 고발도 샘솟는다·
본래 병주삼흉은 북방군의 정예였으나 그 약탈이 잔인하기가 도를 넘어 군문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북방의 오랑캐들한테 강도 살해 강간 고문 전시 좀 했다고 무슨 퇴출까지냐 하겠지만 이 새끼들은 같은 짓을 국경 근처의 한족 촌락에서도 벌인 것이 문제였다·
덕분에 군문에서도 수배를 당하고 관에서도 큰 현상금이 걸린 마두들이다·
그래서 국경 근처에서 나라 땅과 나라 땅 아닌 곳을 오가며 추적을 피해 살아가는 놈들이라나 어쨌다나·
그에 청이 고개를 갸웃·
추적을 피해 국경 주변에서 살던 놈들?
“뭐야 그런데 왜 태원까지 기어들어와? 죽고 싶어서 작정이라도 했나? 그게 소원이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자 잠깐! 저희가 그냥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안 내려오면?”
“그것이···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얼마든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대협께도 아마 관심을 가질 이야기온데···”
“관심 없다· 유언은 그걸로 끝이지?”
“아닙니다! 그게! 장보도! 장보도가 있습니다! 그걸 찾으러 내려온 것인데 살려만 주신다면 지도를 넘겨드리겠습니다!”
순간 한 놈이 기겁하며 크게 소리친다·
—-
천유학은 무려 두 달이 넘게 장보도 해석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집념이 결국 결실을 맺었다·
장보도의 유력한 후보지를 다섯으로 줄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는 직접 발품을 팔며 찾아보는 일만 남은 상태·
“스승님 저 왔는데요·”
“오냐 이제 왔느냐? 음? 그 뒤에 끌고 온 놈들은 뭐냐? 뭐야 사람의 팔다리를 왜 그리 접어놨어?”
“그래도 싼 놈이라서요· 사람이라 부르기 민망한 말종들이거든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그런 것보다 말이다·”
한순간에 그런 것이 되어버리고 만 병주삼흉이었다·
하지만 천유학 역시 인간 말종에게는 일체의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착해빠진 제자가 허튼 사람 잡아 해코지하지 않으리라는 절대적인 믿음 역시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니 어련히 잘 했거니·
그런 것보다는·
“크흐 내가 드디어 드디어 장보도의 해석이 끝나지 않았겠냐! 지도와 일치하는 지형이 중원에 다섯 곳이 있으니 일단 요녕 땅부터 시작해서 중원을 반 바퀴 돌며 차근차근 알아보자꾸나·”
“혹시 그 다섯 곳 중에 산동성 즉묵현이라고 있어요?”
“으잉? 그걸 네가 어찌 알아?”
청이 그에 한숨을 푹 내쉰다·
“그 장보도에 뭐가 묻혀있는지는 안 써져 있죠?”
“모르긴 몰라도 굉장한 것이 묻혀있으니 이리 단단히 숨긴 것이 아니겠느냐?”
그에 청이 툭 아무렇지도 않게 해답을 내놓았다·
“흡정마공이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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