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청이 하반신의 혈도로 진기를 쭉쭉 밀어냈다·
기혈이 막혀 잘 내려가지 않은 탓에 저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였다·
그런데 월녀심결의 진기는 조금 통했다·
막힌 코에 반대편을 막고 억지로 바람을 부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과한 힘에 단전에서 살살 아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하반신의 시원함에 비하면 참을 만한 통증이었다·
월녀심결은 아홉 세상을 어우르는 구천현녀의 심득이었다·
음양과 선악 모두를 중용하는 깨달음이다·
뭐든 ‘가능’을 외치는 극중용의 진기가 혈도에 스민 침투경을 살살 녹여내는 것이다·
그렇게 청이 닫힌 혈도롤 억지로 비집어 열고 있을 때였다·
나이 먹은 목소리가 청을 방해했다·
-흠흠· 노부는 고당상이라고 한다·
청은 본래 노인에게 약했다·
얼굴을 보면 악업이라도 확인했을 텐데 마차 안이라 그러질 못했다·
“오잉? 갑자기? 저는 서문청인데요·”
-노부가 네게 가르침을 내리고자 하니 너는 마땅히 노부를 스승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뭔데 갑자기 스승으로 모시라고 그래?
“저는 벌써 사부님이 있·”
늙은 목소리가 청의 말을 끊더니 대뜸 구결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고당상도 어쩔 수 없었다·
망할 계집이 거절하면 배우라고 사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 거절하기 전에 빠르게 전수해버리고 나중에 생색을 낼 생각이었다·
정파의 계집년이니 성정이 마인들과는 다를 것이오 어쩌면 나중에 신교로 돌아와서 스승 대접을 해 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스승 잡아먹으려는 신교의 잡놈들보단 나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예측도 있었다·
-암흑태양지상여일야 검은 태양이 떠올라 낮과 밤이 다르지 않은 때를 보았으니···
아· 마공 주인인가 보네·
청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대충 지나가다 일식으로 검은 태양을 보고는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소개를 지나 혈도와 진기의 운용 방법 초식과 심상편이 이어졌다·
무공 구결이 대개 이런 순서였다·
이어서 무공창이 반짝거리며 발광했다·
열어보니 금색 테두리의-
에게? 겨우 금색이야?
청이 실망했다·
초식 하나하나 다 써보면서 운용까지 완벽히 한 번은 해야 하는 입문 과정은 귀찮다·
청이 자유 수련점을 부어 일 성을 달성했다·
동시에 뇌 속으로 무단 침투가 시작되었다·
뇌를 파먹는 듯한 뇌를 주물럭거리는 듯한 무언가 뇌를 헤집고 파고들어 비비적거리는 이 감각은 정말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으엑 으긋 으오옥···”
그리고 나면 기분이 정말로 더러워진다·
이 정신 나갈 것만 같은 체험만 아니었더라도 태창이하고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겪어보고 나면 뭔가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어떤 감정이·
사람 인생을 쥐고 흔들려 하는 어떤 악의가·
그러면서도 네깟 것이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무심함을 깨닫게 된다·
대체 뭐지? 어떤 신 같은 건가?
미개한 되놈 새끼들이 믿는 신이면 옥황상제니 붓다베이비니 하는 뭔가 선한 쪽에 가까운 것들 아니었나?
걔네가 사람 취급이 이렇지는 않지 않아?
아니면 진짜로 게임 속인가?
내가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나?
왜 가는 데마다 이런 것들이 엮여?
그래 씨발 무천대제·
그놈에 대해서도 써 놓은 글이 있었는데·
문득 설치 중에 읽은 공략이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르듯 자연스럽고 수치스럽게·
난이도 별 가장 큰 차이가 무천대제였다·
쉬움에서는 무천대제가 정파의 대선배로 황제 조지고 그 외에 분란을 일으킬 만한 위기 세력까지 싹 다 손을 써 놓은 상태라고 했다·
무천대제의 유산을 얻기도 쉬워 사파나 마도 성향으로도 손쉽게 세력을 일굴 수 있는 쉬운 난이도라고·
보통 난이도의 무천대제는 정사지간의 인물로 과거 황실만 핀포인트로 조져놓아서 위기 세력은 훨씬 강력해진다·
어려움 난이도에서는 무천대제를 없던 일로 쳐서 무림 전부를 관부가 꽉 쥐고 있는 데다 강호 무학 수준도 엉망이라 고급 무공의 위력및 입수 난이도가 다르다는 것·
청은 초회차 쉬움 난이도를 선택했다·
그래서 지금 무림의 꼴이 이러한 걸까?
안 그랬으면? 그러면 달랐을까?
그럼? 이 세상은 대체 뭐야?
어· 안되는데· 나쁜 생각· 멈춰야 하는데·
청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이상하다·
요 근래 이렇게까지 심한 적이 없었는데?
왜? 왜? 왜?
그러다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청이 곧장 제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 본좌 호소인 새끼·
그 씨발 놈 때문이구나·
얼굴은 아수라 백작이고 다리는 반병신인데 태창이한테 긁혀서 기분까지 잡쳤으면 당연히 발작이 오지·
놀랍게도 주접 없이 진정이 된다!
그런데 화가 난다!
심장이 쿵쿵 뛰고 손이 덜덜 떨렸다·
원래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면 이후 미워할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더욱더 증오하게 되는 고약한 생물이었다·
세상 모든 불합리를 담은 분노가 한 사람에게 향했으니 본인은 억울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 일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예의를 갖춰 친절해야 하는 이유였다·
청의 장심이 애꿎은 마차의 벽면을 때렸다·
이미 절정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심후하기 짝이 없는 내기를 품은 한 수였다·
내벽과 철심 외벽까지 한 방에 뻥 뚫려 청의 손바닥이 마차 밖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흑살마장의 구결을 세 번째 반복해 읉어주던 고당상이 깜짝 놀라 그 광경을 보았다·
길쭉한 손가락 끝의 한 마디만 새까맣다·
흑살마장에 제대로 입문했다는 증거였다·
—-
대충 일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청이 비틀비틀 식탁을 향해 움직였다·
오른쪽 다리는 후들거리고 왼 다리는 들지 못해 질질 끌었다·
지승주가 그 꼴에 감탄했다·
볼 때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역천혈류대법을 맞고도 제 발로 걷다니?
물론 기어가는 속도나 다름없지만 지존께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으니 그냥 앉은뱅이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들었다·
호신경 하나는 거의 완성 직전이라면서·
역천혈류대법은 혈교에서 유래된 사술이다·
금제술 중 두 번째로 강력한 것이라고 손꼽히는 혈교의 비전이다·
겨우 절정 후기의 무인이 지존의 대법을 맞고 버텨냈다고?
“아휴 힘들다· 재활이라는 게 순 엄살인 줄 알았더니· 아주 인간 승리였던 거네·”
청이 마침내 자리에 앉아 허벅지를 주무르며 유난을 떨었다·
그러다 젓가락을 뽑아들고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요리는 먹어야 한다·
왜? 요리가 눈앞에 있으니까·
지승주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흡입하는 청을 유심히 살폈다·
누가 보면 음식에 원수라도 졌냐고 할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승주가 바라보는 대상은 음식에 한이 맺힌 아귀가 아닌 그 손이었다·
길쭉한 손가락 전체가 새까맣다·
흑살마장이 삼 성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구결을 전수한 지가 겨우 일주일 전이다·
고작 일주일 일주일 만에 삼 성의 성취라니?
지승주는 이류에 겨우 발이나 걸쳤다·
고작 이류의 경지로 비각의 주인을 차지한 그 두뇌로 신교도들의 인정을 받았다·
지승주의 명석한 머리로도 청의 흑살마장을 익히는 속도란 무림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성취였다·
차라리 내공심법이라면 그 극의로 인해 곧장 대성에 이르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흑살마장은 장타 위주의 장법이다·
검이나 쓰던 검객이 어찌 장법을?
본인도 모르던 본래의 재능이 장법에 있었던 것일까?
지승주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청이 여래신장과 소수마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래신장은 장법 중에서도 가장 고절한 신공이며 소수마공 역시 수많은 분파 마공을 낳은 뿌리 중 하나였다·
흑살마장의 묘리가 장법이라는 종류에 속하니 결국 여래신장이 품은 것과 같았다·
게다가 흑살의 침투경이 애초에 소수마공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러니 운용과 초식이 이미 아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굳이 수련점을 쏟아붓지 않아도 이해가 쏙쏙 될 수밖에는·
어느새 접시를 다 비워버린 청이 의자에 기대 앉으며 지승주를 불렀다·
“야· 꼬맹아·”
“지랄· 꼬맹이는 무슨·”
‘말씀하시지요·’
아뿔싸· 말이 반대로 나왔다·
지승주가 아차 싶었다·
하필이면·
그에 청이 이쁜 눈웃음을 쳤다·
“맨날 표정도 안 변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더니 은근 키를 신경쓰고 있었나 봐?”
“가끔 헛소리가 나오는 병이 있습니다·”
“그래· 꼬맹아· 내가 봤을 때는 영 먹는 게 시원찮아서 그래· 좀 팍팍 먹어야 크지·”
지승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먹는 게 시원찮다니! 누구 때문인데!
중원의 고급 식탁은 빙글빙글 돈다·
요리를 덜어 먹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뭔가 좀 먹을라 치면 식탁을 돌려 제 앞으로 요리를 몽땅 덜어간 청이었다·
지승주가 뭘 먹을래도 방해를 받았던 것·
“소저는 키가 크셔서 좋겠습니다·”
나름 멕이겠다고 꺼낸 소리였다·
중원에서 키 큰 여인이 인기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청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럼· 우리 꼬맹이도 키가 좀 크면 알 텐데· 위쪽 공기가 얼마나 상쾌한 줄 아니? 이렇게 앉을 때마다 아래쪽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숨이 다 막힌다니까?”
“····”
“그런데 앉으면 우리 또 눈높이가 맞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지? 다린가? 아니면 다리?”
“···옘병·”
‘옘병·’
지승주의 겉과 속이 모처럼 일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뭔가 늘어지는 것 같아 두편으로 속도를 좀 올리겠읍니다··
굳이 두편인 이유는 작가놈이 새 글카를 사고 싶어서입미다·· 크큭··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