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
또래보다 작은 키는 지승주가 꽁꽁 숨겨둔 속마음이었다·
물론 가끔 속마음이 새는 탓에 신교의 교인 중 모르는 이가 별로 없기는 했다·
그러나 감히 지존의 오른팔을 키로 긁어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주 임자를 만났다·
“그래· 그럼 우리 꼬맹이가 상체만은 길쭉한 걸로 하자·”
“···달리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안돼! 멈춰! 할 말 있거든?”
“뭡니까?”
지승주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청이 살살 웃으며 물었다·
“그 말이야· 신교는 강자존이라고 했지? 강한 사람이 정의고 살아남은 사람이 강자라며?”
검은 손가락을 보고 청은 곧장 속았음을 깨달았다·
날 속였냐고 하는 물음에 청의 실력과 유망한 장래라면 충분히 신교의 핵심으로 권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신교의 강자존을 설명해주었던 것이다·
청에게는 대단히 신기한 이야기였다·
천마신교는 강자존·
강한 힘을 숭배하는 집단이라고·
강자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약자는 도전으로 자신을 증명할 권리가 있다·
어쩌면 청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왜냐면 청은 고수니까·
이제는 좀 뭐랄까 자신감이 조금 꺾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 때에 하필 신교의 율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신교의 간부된 몸으로 율법의 설파를 생략할 수는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곰곰히 생각을 해 봤는데 말야· 그러면 굳이 내가 너희한테 잘못한 건 없지 않아? 그 전진···노도?”
“전진파랑대를 말씀하십니까?”
“그래! 걔네· 걔네 몰살시킨것도 환희궁주를 죽인 것도 다 내가 강해서 그런 거잖아? 너네 식대로라면 강한 내가 죽였으니 문제 없잖아?”
“맞습니다·”
“오잉?”
뒤이어 전진파랑대의 꼴사나움과 그 놈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려던 청이었다·
더 긁어볼 생각이었던 청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문제가 없어? 그러면? 왜?
청이 치미는 부아를 꾹 누르며 물었다·
“문제가 없는데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놔?”
“뻔뻔하시군요· 지존의 물건을 멋대로 가져가시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말대꾸까지 하셨으니 오히려 그 목숨만은 살려주신 지존의 자비에 감사하셔야 합니다만·”
“아· 그쪽이다? 약한 주제에 그 지존 호소인에게 개겼으니까?”
청이 인상을 구겼다·
그 씨발놈·
“지존 호소인이라니 불경한 소리는·”
청이 지승주의 말꼬리를 잘랐다·
“그럼 내가 너네 사람들 죽인 데는 별 유감이 없는 거네?”
“교의 율법은 강자존· 그저 서문 소저께서 더 강하셨을 뿐입니다·”
청이 활짝 웃었다·
어쩐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미소다·
“좋은 거 알았네· 혹시 더 할 말 있어? 이만 마차로 돌아가도 될까?”
“없습니다· 돌아가시지요·”
“아· 여기까지 오는 데 힘이 다 빠져버려서· 누가 부축 좀 해주면 좋겠는데·”
지승주가 무표정하게 하지만 확실히 귀찮음이 드러나는 동작으로 손을 털듯이 휘저었다·
비작부 소속의 살수가 소리 없이 청의 곁으로 미끄러지듯 스며들었다·
청이 안아달라는 듯 팔을 벌렸다·
살수가 허리를 굽히는 순간이었다·
파각!
호쾌한 소리와 함께 수박통 터져나가듯 살수의 머리가 개박살이 나 사방에 흩어졌다·
“햐· 흑살마장? 이거 꽤 손맛이 있단 말야?”
바로 앞에서 잔해를 뒤집어쓴 청이 웃었다·
그러다 제 머리를 더듬더니 붙어있던 시신경이 길게 늘어진 눈알을 보곤 꽉 쥐어 짓이겼다·
지존의 잔혹함을 줄곧 보아온 지승주에게도 오금이 저리는 광경이었다·
평상시 훈련된 무표정으로 감췄을 뿐·
놀란 마음에 고함이 한 박자 늦었다·
“무 무슨 짓입니까!?”
“나? 나는 강하고·”
청이 손가락으로 머리 없는 시체를 가리켰다·
“이거· 약자였던 것· 이게 강자존· 응· 응·”
그리곤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파의 여협이라고? 이게?
살성이 치민 마인이나 할 법할 소리를···!
지승주가 본의 아니게 정답을 맞혔다·
다만 제가 정답을 맞혔음을 모르는 지승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딴 건 강자존이 아닙니다! 강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오잉? 그런 거였어? 캬· 고걸 몰랐네·”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 식이면 세상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알았어· 알았다구· 너무 열내지 말아줄래? 그러게 설명을 제대로 해줬어야지· 나는 강한 사람이면 뭐든 해도 되는 줄 알았잖아·”
지승주가 말문이 막혀 입만 뻐끔거렸다·
지금 내 잘못이라고? 옘병 무슨 이딴 년이!
“힘을 썼더니 피곤하다· 나 좀 옮겨주라·”
“이 참극을 벌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아· 몰랐다니깐? 거 참 째째하게 구네· 그럼 나도 안 가· 승주는 신교에 살아· 나는 여기에 있을 거야·”
“옘병 무슨 이딴 년이····”
“아· 몰랑· 피곤한데 그냥 여기서 잘까?”
청이 그러고는 아예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다리를 가누지 못하니 뛰어내렸다는 표현이 아주 정확했다·
그리고는 피가 흥건한 바닥을 굴러 머리 없는 시체의 몸통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그럼 출발할 때 깨워 주라·”
지승주의 이마 사이에 골이 패였다·
교인이라면 누구라도 놀랄만한 대사건이었다·
비각주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하고·
“개 같은 년! 누가 이 년 좀 데리고 가!”
그러나 비작부의 살수들이 서로 눈치나 볼 뿐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그도 그럴만 했다·
방금까지 함께 밥을 먹었던 동료가 고깃덩이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뭐 해!”
“마자마자· 한 번 실수한 거라니까? 강자존이 뭔지 제대로 몰라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쫄지 말구· 응?”
청이 추임새를 넣었다·
지승주가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후우· 소저를 모셔드려· 어서·”
지승주의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었다·
결국 불운한 막내가 선배들의 눈치를 견디지 못하고 싫은 기색이 역력한 채로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왔다·
막내 살수가 떨리는 손으로 청을 안아들었다·
그러자 들리는 목소리·
“오· 너는 백오십 점· 좀 준수하긴 하지만· 사라져라 머리머리· 얍!”
살수가 마지막으로 들은 현세의 소리였다·
머리가 없으면 더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팍!
청이 바닥을 굴렀다·
받쳐주는 이가 더는 살아있지 않아서였다·
머리 잃은 막내가 그 위로 쓰러졌다·
흐억 졸지에 깔려버린 청이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바동거렸다·
“무 무슨···!”
청이 시체를 밀어내며 대답했다·
“읏차· 왜? 뭐?”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분명 실수라고”
“아니 내 말 좀 들어봐바· 생전 처음 보는 사내새끼가 감히 여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더라니까·”
지승주의 말문이 턱 막혔다·
대체 무슨?
“약한 놈이 감히 강자를 희롱했으니 죽인다· 이건 강자존 맞죠? 인정하십니까? 네· 인정합니다· 그럼 무죄· 땅땅땅·”
청이 천연덕스럽게 말하고는 데굴데굴 굴러 다시 사체를 베고 누웠다·
온몸은 피투성이고 점점이 튄 희고 누런 것이 두뇌였던 조각이었다·
“그딴 건 강자존이 아닙니다! 대체 무슨 개 같은 소리로 신교의 율법을 더럽히려 드는 겁니까!”
청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지존 호소인은 겨우 한 마디 대들었다고 눈 한짝 다리 두개 가져가려고 하던데· 걔가 하면 강자존이고 내가 하면 약자를 괴롭히는 건가?”
“지존께 감히···!”
청이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그에 맞춰 시체의 목에서는 피가 푝푝·
“거 봐· 지존은 되고 누구는 안 되는지 명확하게 설명을 해 줘야 내가 알아들을 거 아냐? 기준이 뭐야? 초절정 이상부터는 막 죽여도 돼? 화경부터? 현경은··· 아니겠고·”
“지존께서는 신교의 숙원을 풀어주실·”
“아씨· 누가 지존 물어봤어? 그래서 강자존이 대체 뭔데? 신교의 율법이라면서? 그 율법이 지존만 빼고 다 같이 지키는 뭐 그런 거야?”
“강자존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청이 지승주의 고함을 고함으로 마주 제압했다·
“꽥!! 그래서 뭔데? 소리만 지르면 단가?”
“강자존이란 강자존이란···”
막 대답하려던 지승주의 말문이 막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신교의 율법이다·
신교는 그렇게 강함을 정의로 숭상했으며 그 결과 무림을 도모할 만한 전력을 얻었다·
무려 네 차례에 달하는 침공의 역사가 그를 증명했다·
천마신교가 단일한 단체로 중원 무림 전체와 전쟁을 벌였다·
하나 대 전체의 싸움임에도 결국 패배하고 말았음에도 역사에 네 번을 새긴 족적이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할 수 있다·
생사를 손에 쥔 완전한 지배다
그러나 약자는 저항할 권리가 있다·
그리하여 강자를 먹고 자라나 또 다른 지배자로 그 권세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러면 이 여자는?
강자존의 율법대로라면·
지승주의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지존의 손속이 과하셨는가?
그 누구도 과하다 하지 않을 것이다·
말단 전투단이라고 해도 한 개 부대가 전멸했으며 복신적이 사라져 대계는 멀어지고 환희궁주는 죽고 한 문파의 정수가 불타 사라졌다·
그렇게 따지면 지존께선 오히려 자비를 베푼 셈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지존께서 모든 행동이 그러하셨나?
다른 각주들 마인들은 어떠한가·
죽은 환희궁주는 지나가다 반반한 사내를 보면 곧장 겁탈해 진원을 취하고 죽였다·
마의는 요즘 강시 제조에 재미를 붙였다·
수라마검은 하루에 처녀 한 명을 베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는 광인이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 모두가 신교의 최고 전력이자 중원 정복의 선봉장이니·
강자존의 율법 아래에 완성된 전력이다·
지승주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청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비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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