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
“아니 어떻게! 어떻게 한 것이더냐!?”
흑살마군 고당상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흑살마장의 흑수는 공포의 상징임과 동시에 지울 수 없는 마인의 낙인이기도 했다·
고당상이 긴 소매에 장갑을 끼고 다니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니었던가·
그간 아예 방법이 없다 여겨 그저 가릴 뿐이었던 손이다·
그 해답이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당상이 깊은 열망을 담아 소리쳤다·
“대체 어떻게!”
“그냥? 하니까 되던데요? 왜 이것두 못해요? 아· 이거 맛있네· 할아버지 이건 뭐에요?”
“요리가 뭔지도 모르나· 멍청한 년아· 요리는 먹는 것이란다·”
“아씨 요리 이름이 뭐냐구요·”
“그럼 그렇게 물었어야지· 질문도 제대로 못하는 반편이 같으니라고· 디름라마라는 것이다·”
최리옹이 대답은 해 줬다·
근데 욕을 먹기는 해도 사실 욕쟁이 할머니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 할아버지 대마두 치곤 이상하게 친절하다·
근데 왜? 내가 뭐가 이쁘다고?
도대체 속셈을 모르겠네·
어차피 대마두 사정이야 알 것도 없고·
청이 디름라마를 크게 퍼 처먹었다·
야채와 고기를 막 때려놓고 부드러울 때까지 푹 끓여낸 달달한 것이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익숙한 그 맛 갈비찜이었으니까·
거기에 볶음밥!
이쪽 지방 요리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청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곤 요리를 아예 대접 채로 제 앞에 척 갖다 놓았다·
최리옹이 인상을 찌푸렸다·
“못 배워먹은 티를 내지 못해 안달이군· 짐승이나 부릴 식탐이 아니냐· 아주 개새끼보다 더한 년이로다·”
“아씨·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을 해요· 왜 막말이야·”
청이 손바닥만 수저를 놀려 최리옹의 접시 위로 한 무더기 크게 퍼다 놓았다·
“하· 누가 먹고 싶다고 했나?”
“할아범이야말로 늙어빠져서 이빨도 시원찮은 것 같은데 어차피 이것밖에는 못 먹겠네· 부드러워서 씹을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닥치고 좀 드세요·”
“이년이 조동아리에 아주 푹 썩은 걸레를 물었구나· 쯧쯧·”
“걸레 무는데 보태준 거 있어요? 남이사·”
옆 식탁에 멍청하게 서 있는 꼴이 되어버린 고당상이 고함을 치며 청을 노려보았다·
놀랍게도 그 눈빛은 파편육을 끼얹은 요리를 공유하게 된 식탁 식구들이 고당상을 보는 시선과 일치했다·
“지금 노부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청이 귀를 후비작거리며 대답했다·
“지금 여기 어르신하고 대화하고 있잖아요· 낄 데 껴요· 좀·”
“그게 무슨 대화··· 선배님· 죄송합니다·”
막 딴지를 걸려던 고당상이 최리옹을 보고는 곧장 허리를 접었다·
정확히는 최리옹의 전신에서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자색의 날실들 자전기 때문이었다·
자전기는 극양으로 치우친 무공이며 또한 사양의 기운을 다루는 심공이었다·
세상 가장 뜨겁고 사악한 보랏빛 벼락·
자전마공은 벼락을 닯은 진기를 다룬다·
본래 인간이 다루지 못할 그 파괴력을 재현하는 데에 충실했기에 제멋대로 날뛰는 진기를 통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전마공의 소유자는 감정 상태에 따라 자전기가 저절로 일어나고 말았다·
기분 나쁘면 보라색 번개가 튀어 저절로 공격하니 과연 천하 십대 마공에 들어갈 만 했다·
심지어 최리옹은 화경의 고수다·
진짜로 빡치면 자전기가 아니라 자전강기가 공간을 뛰어넘어 도약하는 것이다·
찰나에 천 리를 뻗는 벼락의 성질이 바로 그러하기에·
그리고 고당상은 그제야 깨달았다·
“정파의 여협이라는 년이 어찌 배워먹질 못하고 망종처럼 지껄여?”
“아씨· 나도 배우기는 잘 배웠거든요? 굳이 예의를 지킬 사람이 없으니까 안 하는 거지·”
“예의를 지킬 사람이 없다니? 이 늙은이는 뭐 사람 아니고 허수아비인가?”
“할아범은 사람 아니고 마둔데요?”
“허허· 입방정에 결국 산 채로 불타고 말 년이로다· 그때가 되면 내 기쁜 마음으로 장작 몇 개 보태 넣어주마·”
그리 말하는 최리옹의 자전기가 잠잠했다·
험악한 말과는 달리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유도 곧장 알아차렸다·
자전마군의 딸이 청의 나이 쯤 품 안에서 죽었다·
‘또 노망이 도졌구나!’
그 이후 저렇게 한 번씩 노망이 들렸다·
최리옹의 딸은 싸가지가 없었다·
자전마군은 싸가지 없는 딸을 저리 대했다·
결국 비슷한 나이대에 싸가지 실종된 소녀만 보면 제 딸자식처럼 보는 것이다·
흑수를 어떻게 거뒀는지는 궁금해 죽겠지만 또 발동이 걸려 노망이 난 선배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었다·
나중에 따로 물어봐도 될 일이고·
고당상이 슬그머니 식탁에 다시 앉았다·
그 와중에도 청이 스스럼없이 대거리를 쳤다·
“나보다 노인네 상을 먼저 치르게 생겼는데·”
“그야 젊은 년이 노인네보다 오래 살아야지· 내 보아하니 그 싸가지가 없어서 곧장 제삿날 잡히겠구만· 싸가지만 없나? 예절도 없이 무식한 년아·”
“아씨· 사람 무시하네· 나도 나름 잘 배웠거든요? 할아버지 잘 봐요·”
청이 모처럼 핵폭격 아래 단련된 식사 예절을 뽐냈다·
조신하고 단아한 동작으로 최리옹의 접시에서 고기만 쏙쏙 빼다 오물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서문수린표 중원대표미인식이 펼쳐졌다·
잠시 후·
결국 청이 인상을 썼다·
“에이씨 먹는 것 같지도 않네· 밥은 팍팍 씹는 맛이 있어야지· 어쨌든 봤죠? 뭐야 왜?”
청이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썼다·
마교도들이 ‘내가 뭘 본 거지?’ 하는 얼굴로 멍하니 청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건 눈을 하고서도 아직까지 눈을 비비는 마교도도 있었다·
심지어 지승주 역시 입을 떡 벌린 채였다·
사실 놀라운 광경이기는 했다·
사람 대가리를 깨고 드러눕던 년이 아닌가·
갑자기 천상 여인처럼 굴면 당연히 소름이 쫙 돋을 수밖에는 없다·
최리옹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못 하는 병신보다 안 하는 개년이 훨씬 나쁜 년이지· 뭐 자랑이라고 뽐내고 앉았는지· 쯧·”
청이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아씨· 진짜 시끄러워서 밥을 못 먹겠네·”
그리고 다시 냉큼 집어들면서 말했다·
“아· 그렇다고 안 먹겠다는 건 아니구요·”
—-
고당상은 흑수를 지운 방법이 궁금했다·
정말로 궁금했다·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도무지 물어볼 틈이 안 났다·
왜냐하면 그 식사 이후에 최리옹이 청에게 자전마공을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에게 흑살마장을 익히게 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흑수의 새까만 특징 때문에 중원으로 돌아갈 수 없어 결국 신교에 남게 하려던 수작이었다·
그런데 그걸 감출 수 있음을 알았다·
이제 다른 무공이 필요했다·
마침 청의 성격이 아주 개지랄이었다·
그리고 자전마군이 또 그 옆에 있었다·
그렇다!
주인의 기분에 따라 날뛰는 자전마공이라면 흑살마장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번개를 뿌리는 마녀가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지승주가 그리 생각했다·
저 성질에 날뛰는 자전기까지 붙여주는 일이 과연 세상을 위해 옳은 일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마침 최리옹이 노망이 났다·
지승주가 달리 설득을 할 필요도 없었다·
‘자전마군 혹시 서문청에게 대공을’
‘알겠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승낙이 떨어졌다·
이렇게 청이 천하십대마공을 일 더하기 일 (더하기 비밀) 해서 둘(셋)이나 가지게 되었다·
강호 역사에 유례가 없던 큰 성과였다·
다만 지승주가 그 빼어난 머리로도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천하십대마공이라더니 또 금색이야?”
청이 실망했다·
그래도 내공심법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내공은 아무리 넘쳐도 모자라지 않다·
서문수린의 가르침이 아닌가!
청이 수련점으로 자전마공의 일 성을 찍었다·
자전마공의 난폭한 자전기가 새 주인의 몸에 깃들어 자리를 잡았다·
자전기는 위도 아래도 몰라보는 개싸가지 벼락의 결정체였다·
사납게 날뛰며 청의 자제력을 부수고 성질을 난폭하게 바꿔 갈 것이었다···만·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도가의 두 신공이 보통 것이여야지·
주양세심경은 염제 신농이 딸을 위해서 만든 마를 불태우는 신령한 불길의 심상을 담았다·
같은 불이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었다·
날뛰려던 자전기가 호되게 얻어맞고 불타며 소멸의 위기를 맞았다·
그때 아홉 세계를 어우르는 포용력을 가진 월녀심결의 중용한 기운이 나섰다·
자전기를 위로해주며 살살 달래 기운을 불어넣어 되살려낸다·
그리고는 단전 구석 제일 외지고 후지며 더럽고 외풍 드는 곳에 자리를 펴 주었다·
구천현녀는 아홉 세계를 포용하지만 그 위계에 엄격하신 신격이시다·
세계조차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어딜 마공 따위가·
결국 자전기가 한번 날뛰어 보질 못한 채로 청의 단전 구석에 벽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단전 안에서 일어난 여러 기운의 충돌 과정을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묘사하면 대충 이러했다·
청이 뇌 파먹히는 기분에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어떠냐 몸이 짜릿짜릿하지 않으냐? 흐흐 자전기가 날뛰는 것이니 그대로 받아들이거라· 다만 며칠 고생을 좀 하겠지만·”
“고생요? 무슨 고생?”
-몸이 제멋대로 떨리고 튀어 곤욕을 치르고 있지 않느냐? 원래 자전기가 폭급하여 신체를 뛰게 만드는 것이니 운명이다 하고 감내하면 될 것이다· 좀 심하게 아픈 운명이겠지만·
마차 밖에서 하는 최리옹의 말이었다·
청이 눈만 끔벅거렸다·
몸이 떨리고 뭐요? 어디가 아파?
청이 새로 들어선 보랏빛 진기만을 뽑아 혈도 한 바퀴 일주천을 돌렸다·
새색시처럼 수줍은 기운이 조신하게 혈도를 타고 한 바퀴 돌아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어쩐지 혈도에 머물러 단전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 원래 아픈 게 정상이에요?”
-너무 통증이 심해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그 때는 말을 하거라· 내 들어는 주겠다· 흐흐·
무슨 통증?
청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늙은이가 저리 기대를 하고 있으니·
청이 그에 부응을 해주기로 했다·
“아· 아 프 다· 너 무 아 파·”
-···?
“아 파· 앵 속 줘· 앵 속 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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