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3
죄수 이송 중 환희궁주가 사망했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환희궁의 모든 장로가 침통한 슬픔에 빠졌다·
환희궁주 함월은 결코 좋은 궁주가 아니었다·
성격은 포악해서 장로 대하기를 시녀 다루듯 하고 말보다 손찌검이 앞서는 여인이었다·
거기에 욕심은 또 보통이 아니라 잘생긴 사내 혹은 간혹 흘러들어오는 고강한 사형수를 저 혼자 차지하고 쪽쪽 빨아먹었다·
그래도 함월은 환희궁의 주인이었다·
환희궁의 주인은 소녀환희공의 주인이다·
즉 함월은 소녀환희공을 온전히 전수 가능한 살아있는 비급이었다!
사실 장로들도 뒤에서 함월을 부르기를 서시신녀를 불려 병신년이라 했다·
혹은 애정을 담아 개썅년이라던가·
모두가 함월이 죽기를 바랬다·
하지만 신공은 전수한 이후에 죽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슬픔 속에 장로들이 물었다·
그럼 비급은?
비급으로만 무공을 익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공이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아니면 이참에 장로급 이상이 다같이 연구해 새로운 주석을 달 수도 있을 것이다·
슬픔 속에 그러한 희망의 눈빛이 장로들 사이에서 오갔다·
하지만 비급은 화형을 당했다·
중원에 물리학이 고도로 발달했다면 그래도 비급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열과 빛의 형태로 변이했을 뿐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셈이라고 위로할 수도 있었겠지만·
중원이 아직 미개하여 그저 안타까울 수밖엔·
상실의 다섯 단계 법칙에 따라 장로들은 곧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세상에 이런 현실이 있을 리가 없어!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겠지·
함월 그 병신년이 아무리 빡대가리에 천하의 개썅년이라도 설마 비급을 들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냐·
궁주전승의 무공 비급을 들고 다니다 죽으면 아예 환희궁의 절기가 사라져버리고 말 텐데·
아무리 생각이 없고 이기적인 년이라도····
그런데 재차 생각해도 함월은 그렇게 하고도 남는 나쁜 년이었다·
그 병신년이 아주 사고를 쳤구나!
장로들이 부정의 단계를 논리적인 사고로 극복했다·
그렇게 다음 단계·
다음은 분노였다·
아니 함월만 죽이면 되지 왜 비급을 태워?
천하에 개썅년이 궁주뿐인줄 알았더니 하늘 위에 더 하늘이 있었구나!
내 이 무도한 악적을 가만 두지 않으리라!
환희궁 한 편에 겨우 짐을 푼 청에게 분노한 장로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너냐! 소녀환희공을 불태운 잔악한 년이!”
뭐야 뭔데 이 사람들은?
왜 갑자기 대뜸 나타나서 욕질이야?
청이 잠시 상대의 성향과 취향을 분석한 후에 가장 열받을 만한 해답을 도출했다·
인공 지능에 준하는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청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장로들의 말문이 막힌 사이 청이 후속타를 이었다·
“그런데 늙은 아줌마들은 누구세요? 그런데 주름 관리좀 하시지· 화장으로 가린다고 그게 가려져요? 하긴 늙는 걸 뭐 어쩌겠어요·”
늙은! 아줌마! 주름! 화장! 허억!
집법장로가 뒷목을 잡았다·
줄곧 신경 쓰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 파고든 무서운 혓바닥이었다·
안 그래도 신공의 소실로 심신이 불안하고 울화가 치민 때에 치명적인 일격이기도 했다·
집법장로가 막힌 숨을 꺽꺽 몰아쉬더니 결국 새빨간 선혈을 왈칵 토해냈다·
초절정 초기 고수의 기혈이 뒤틀려 주화입마에 들고 만 것이다·
내공이 새어나가자 탱탱하던 피부의 미부가 순식간의 노파의 형상으로 쪼그라들었다·
집법 장로란 보통 현역 중 가장 강한 장로가 맡는 자리였다·
환희궁도 그러했으므로 궁주가 유고한 지금 궁의 최대 전력이 또다시 탈락하고 말았다·
“와·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네·”
와· 악업만 많은 게 아니라 나이도 많았구나·
청이 신비로운 실시간 노화의 현장의 감상을 내놓았다·
할머니에 충격을 받은 장로가 또 한 명·
“너 너이 년!”
“아니됩니다! 계재장로 정신을 차리십시오!”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수련장로가 급히 계재장로의 맥문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계재장로가 간신히 주화입마를 면했다·
청이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하나 더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그런 청에게 장로원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감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아줌마네 대장 죽인 거요? 죽일 년 죽인 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나요?”
청이 계속 긁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함월의 죽음은 그런 것 취급이었다·
심지어 아무래도 좋기까지 했다·
이러니 사람이 평소에 인심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였다·
“감히 신공을 불태우다니!”
아· 그쪽이었나?
청이 잠시 반성했다·
이전에도 살인으로는 ‘죽은 놈이 나빠’ 소리를 듣고서도 아직 그 강자존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뭐야 진심?
진짜로 천마신교의 구성원 전원이 밀고 있나?
그럼 집단이 어떻게 존속을 하고 있지?
갑자기 사회학적인 흥미가 솟아올랐다·
청을 자수성가한 생산직 근로자로 만들어 준 대학의 문풍당당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청이 곧장 흥미를 접었다·
진실로 쓸모가 없었던 과거의 선택이었다·
만약 태창이 이기고 현실로 돌아갈 때 과거로 돌려줄 수 있으면 큰 정보 쪽을 전공할 텐데·
반성을 마친 청이 다시 목표를 정조준했다·
“사악한 마공을 불태운 게 뭐 잘못인가요?”
효과는 뛰어났다·
“저 저! 지껄이는 꼴 좀 봐!”
“사악한 마공이라니!”
흥분한 여인네들이 꺅꺅 익룡 나르는 소리를 내며 지껄였다·
청이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아니에요?”
“어 어찌 그런 참혹한 소리를! 소녀환희공은 정종의 신공이다! 비록 우리가 좌도방문의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억 어억·”
대장로가 비틀거렸다·
환희궁주가 없는 지금 서열 이 위였다·
물론 청은 관심이 없었다·
다른 관심이 생기기는 했다·
“뭐야 마공 아니었 읏샤·”
그때 돌연 뺨을 노리는 손바닥!
청이 반사적으로 그 손목을 잡아챘다·
“놔 놓으란 꺄아악!”
분을 못 이겨 달려들었던 수련장로였다·
청의 새까만 흑수로부터 독이 바짝 오른 흑살진기가 파고들었다·
안 그래도 천대받는 사기 서러움이 마침 잘 만났다며 사나운 침투를 감행했다·
혈맥을 몽땅 찢어발기니 장로의 손목 위아래 눈에 보이는 속도로 새까만 피멍이 내달렸다·
청의 힘은 가히 소녀항우였다·
놀라고 아파 도망가려는 팔목을 단단히 쥐고 살살 흔들릴 뿐이었다·
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마공 썼잖아요· 내가 마공 안 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깜짝 놀라서 써 버렸네·”
“끄흑 놔 놓지 못해! 놓으란···!”
“이 아줌마 웃기네· 내가 뭐 놓으라면 놓고 잡으라면 잡는 사람이에요? 애초에 부탁하는 태도가 못돼먹었어· 공손하게 놔 주세요· 해도 생각을 해볼까 말 읏샤·”
청이 다급하게 날아오는 다른 팔도 붙잡았다·
수련장로의 양 팔이 다 잡혔다·
어쩔 수 없이 마주 보게 된 두 여인이었다·
청이 숫자를 보았다· 삼백이십사·
하여간 이 동네는 왜 이 모양이야?
대가리가 대장 호소인이라 그런가?
청이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철도 우그러뜨리는 손아귀였다·
아주머니의 연약한 팔목 따위 쥐어짠 두부와 같이 짓뭉개져 청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샜다·
“꺄아아악!”
수련장로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허우적거리는 양 팔에 팔뚝 아래가 짓뭉개져 뚝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휘두르는 팔이 사방으로 피를 뿌렸다·
그 사이에서 청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지? 뭐야? 이게 뭐야?
청이 감동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보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살이 짓눌려 터지고 튀어 새어나가며 손가락을 간질이며 재잘거렸다·
바로 이 손안에서·
뼈가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으스러지는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은 것만 같았다·
“하으아···”
청이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그 꼴을 본 장로들이 안색이 창백해졌다·
“미 미친 것···!”
또 무시무시한 살성이 들어오고 말았구나!
장로들이 속으로 한탄을 삼켰다·
다만 마교에 미친 자가 워낙 많았기에 새삼 오줌을 지리거나 토악질을 하지는 않았다·
식인과 시간을 동시에 즐기는 새끼도 있는데 사람 터뜨리며 즐거워하는 년쯤이야·
하지만 그년에게 무공을 가르쳐야 하는 처지가 되면 아무래도 핏기가 가실 수밖에는 없다·
여운을 곱씹던 청이 슬그머니 바깥으로 퇴장하려는 장로들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아줌마들은 대체 뭐야?
왜 우르르 몰려와서 나한테?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아주머니들이야 나가든 여기 있다가 조져놓든 별 상관은 없었다·
다만 듣던 건 마저 들어야겠다·
“그래서 소녀환희공이 마공이 아니란 건 또 무슨 소리에요· 한 명만 남아서 마저 설명하고 가요·”
—-
본래 방중술은 도가의 양생술이다·
성별 불문 두 사람(혹은 이상!)의 거사를 통해 진기를 교환하는 운기법이었다·
겸사겸사 쾌락도 좀 즐길 수도 있는 거고·
본래는 이렇게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이끌어내기에 양생이었다·
그러니 채음보양이니 채양보음이니 하는 것이 본래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사내와 여인이 수련하여 사내는 채음보양이 여인은 채양보음이 되는 식이었다·
그러니 방중술을 주로 수련하면서도 상대를 해치지 않는 문파들은 멀쩡하게 잘 살았다·
심지어 천하제일홍루 이화승천문의 제자들은 그 막대한 수입으로 밥 대신 영약을 먹는다고 하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환희궁은 사내가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했다·
당연히 무림공적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소녀환희공은 방중술의 비전으로 정사 이후 몸 안에 담긴 여러 기운을 순환시켜 융화하는 방식으로 단전을 키웠다·
빼앗는 방중술의 단점은 명확했다·
잡다한 기가 모여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소녀환희공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심법이었다·
그래서 오로지 궁주만 익힐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환희궁주는 혼자 독보적인 무위를 가지고 궁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소녀환희공의 상실이 장로들에게 정말로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소녀환희공은 도가의 적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명 남은 장로가 그리 설명하고 도망쳤다·
청이 그 설명에 만족했다·
뭐야· 그럼 익혀도 되는 거였네·
청이 망설이···다가 수련점을 투자했다·
입문에는 뇌를 파먹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망설임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구결이 머리에 강제로 스며들었다·
으레 그렇듯이 도입부는 내가 누구고 무엇을 보고 만들었다 하는 심상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사람이 상생의 도리를 즐거움으로 누리니 그 사랑이 너른 궁창을 날고 떨어지며 자유자재로 노니는 쾌락으로 운우지락이라 한다·
그러나 본 선녀가 태어나기를 천형으로 석녀라 하여 즐거움을 몰랐으며 지아비에게 같은 슬픔을 줄 뿐이니 천세의 한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본 선녀가 이 구결 이백육십구 자를 만들어 신세계를 노닐었음이라·
연자 역시 이로써 삶에 모르던 진정한 여인의 즐거움을···
누군가 두뇌를 난폭하게 주물럭거리는 끔찍한 감각 속에서도 청이 이상함을 느꼈다·
이거 구결이 뭔가 뭔가 이상하지 않나···?
힘이 약해서 남아 설명했던 계재장로가 소녀환희공의 효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으니까·
게다가 물어본 질문이 왜 마공이 아니느냐는 것이었으니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왜 굳이 이름이 왜 소녀환희공이겠는가·
여인이 익히는 방중술이기에 소녀 즐거움을 크게 해주기에 환희공이었다·
기본적으로 선녀공의 성질로 여인의 미모를 끌어올렸다·
또한 유연함을 크게 길러주어 도가의 온갖 기상천외한 체위를 가능하게 해 준다·
추위와 더위에 강해지고 피부는 질겨 생채기가 나지 않으며 햇빛에 타지 않아 야외에서도 방해받지 않도록 해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능이 있었으니·
여인이 느끼는 쾌감을 매우 크게 증진시키는 영험한 무공이었던 것이다·
석녀가 그 한을 담아서 만든·
불감증을 치료할 정도로 엄청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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