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4
환희궁의 장로들은 괜히 쳐들어갔다가 못 볼 꼴만 보았다·
심지어 두 명은 폐인이었다·
집법장로는 단전이 상해 늙은이가 되어버렸고 사도의 방식으로 쌓은 내공들이 으레 그렇듯이 급격하게 진기가 새어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수련장로는 손병신이 되었다·
끊겨나간 두 손을 챙겨오긴 했지만 손으로 쥐어짜 뚝 끊어진 부위였으니 접합이 될 리가 없었다·
환희궁의 일대제자 한 명이 스승의 잠자리를 살피러 왔다가 그 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스승을 제압하고 진원을 몽땅 흡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제자가 생각하기를 수련장로를 처치했으니 이를 밝히면 그녀가 다음 수련장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미숙한 주제에 장로 자리에 올라봐야 누군가의 계단이 될 뿐이었다·
아직은 새로 얻은 힘을 갈무리해야 할 때다·
같은 이유로 집법당의 서열 구 위 집행자가 운수도 좋게 폐인이 된 스승을 발견하곤 그녀의 진기를 강제로 전수받았다·
집법장로는 최고 실력자가 가지는 자리임으로 겨우 서열 구 위 집행자가 가지기엔 과분했다·
그래서 집행자도 그냥 힘이나 갈무리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간밤에 범인 없는 시체 두 구가 탄생했다·
—-
삼 대의 막내제자 견포희의 삶은 고단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화풀이로 얻어맞기는 물론이오 겨우 꾀어낸 사내도 날름 빼앗겨 사내 맛을 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덕분에 입궁하여 잡다한 집안일만 일취월장 무공이라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그런 견포희에게 희소식이 들었다·
막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잡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였다·
신입은 다리가 병신이란다!
견포희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막내가 다리가 불편해?
하· 그렇다고 봐줄 줄 아나·
나도 이제 사저로서 위엄을 보여주겠다!
견포희가 청의 방문을 걷어차며 진입했다·
선배들에게 워낙에 당한 것이라 처음 해보는 것임에도 자세가 꽤 자연스러웠다·
“야! 얘! 해가 중천인데 뭐하는 거야!”
청이 실눈으로 창문을 찾았다·
“오잉··· 해 안 떴는데···”
“뭐야 안 일어나!? 이게 빠져가지곤!?”
견포희가 빼액빽 소리를 질렀다·
청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대단히 높은 음정이라 못 들은 척 뭉개기가 힘들었다·
“누구세요?”
“뭐야 옷은!? 왜 홀딱 벗었어!?”
청이 재빨리 이불로 몸을 가렸다·
“이게 편해서···”
“빨리 입고 안 일어나!? 첫날부터 늦장을 부릴 셈이야!?”
“아· 그럼 잠시만 나가 있을래요? 누가 있음 좀 불편한데···”
“내 말 안 들려!? 늦었다고 했잖아! 아침부터 굶고 싶어!?”
“앗· 벌써 조식이? 이 동네는 이렇게 빨리 밥을 먹나? 거기 옆에 옷 좀 집어 줄래요?”
“너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굳이 따지자면 발이?”
견포희가 멈칫했다·
“흠· 흠· 이번만이야· 다리가 병 아니 불편하다고 사저님들은 봐주지 않으니까·”
청이 투덜대며 여기저기 하나씩 널린 옷가지를 줍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151·
이 동네는 멀쩡한 사람이 없나?
심지어 하인조차 악인이야·
하지만 조식은 중대 사항이었다·
아침부터 피를 보는 상쾌함은 좀 아쉽지만·
청이 이불 안에서 비적비적 옷을 주워입었다·
그리곤 당당하게 양팔을 들어올렸다·
“자· 가요· 밥 먹으러·”
“뭐야 갑자기 만세는?”
“그야· 데려다 줘야하니까?”
안아달라는 소리였다·
다리 병신 연기에 물이 올라서 이젠 스스로 다리병신에 깊게 몰입한 상태였다·
현대식으로는 메소드에 잡아먹혔다고 하겠다·
화경 둘과 많은 초절정 무수한 절정의 무인을 속인 기예가 여기서 비롯했다·
청은 사람을 세 성별로 분류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악인·
악업 세 자리수부터는 남녀가 없다·
본래 청은 적대적이지 않은 직접적인 접촉을 기피했다·
사내와 맨살이 닿는 건 사나이의 수치다·
여인하고 닿는 건 조금 기쁘지만 이 외양을 이용한 비열한 수작질 같아서 싫었다·
그러니 악업을 확인한 이후로 견포희는 여인이 아니었기에 거리낌 없이 안길 수 있었다·
“하 이거 아주 돌 아니 정신이 이상 아니 미안 자꾸 심한 말이 나오네· 그런 말만 계속 듣다 보니까 그러나 봐· 얘 혹시 머리가 아픈 애야? 대체 무슨 꼴을 당하려고 이래?”
“왜요?”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청은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하· 됐다! 시간 없거든! 빨리 가야 돼!”
견포희가 청을 안아들었다·
키도 크고 다른 데도 커서 사저들보다 더 무게가 나갔다·
그래도 안기는 품이 익숙한지 덥석 파고들어 옮기기 자체는 훨씬 수월했다·
인간 의자로 사저들을 받칠 때보다는 훨씬·
그렇게 청이 얌전히 식당을 향해 운반되어 갈 때였다·
견포희가 복도에서 유낭랑과 마주쳤다·
삼대제자의 서열 사 위 이대제자의 네 파벌 중 하나의 행동대장쯤 되는 사저였다·
견포희가 즉시 고함을 질렀다·
“사저! 간밤에!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오냐· 사매도 잘 잤고?”
“예! 감사합니다!”
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아침부터 소리를 이리 빽빽 질러?
하인 중에 말단인 모양인데 쟤로 바꿀까?
청이 또다른 하인을 보았다·
이백 점이 조금 넘는 악업이었다·
그래도 이백따리보단 백오십이 낫지·
청이 그냥 한숨이나 푹 쉬고 말았다·
“어쭈? 방금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는데?”
“앗 아앗···!”
“뭐야 그건 왜 껴안고 있어? 아 새로 들어왔다는 그 다리병신이야? 이야 세상 참 좋아졌다· 어떻게 사저 품에 이렇게 떡하니 편하게 안겨있고· 사매도 그래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길래 이게 이 꼴이야?”
“그게 다리가 불편하대서···”
“하! 아주 쌍으로 병신년이네· 내가 봤을 땐 후임 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킨 병신년이 훨씬 병신년인데 내가 교육이 뭔지 알려줄 테니 잘 기억하렴·”
유낭랑이 사납게 웃으며 손을 치들었다·
삼대제자가 익히는 환명십이수의 초식을 담은 뺨싸다구가 견포희의 아구창을 향해 날았다·
견포희가 어깨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다만 싸다구는 도중에 막혀 닿지는 못했다·
새까만 손이 팔목을 덥썩 붙잡은 탓이었다·
지금은 급한 조식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방해받은 청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는·
청이 희게 웃으며 말했다·
소수마공에서 첫 글자가 바로 ‘흴 소’다·
본래 흰 것이 사악함과 통하는 데가 있어서·
“저기요· 손이 없는 사람을 한 글자로 줄이면 뭔 줄 알아요?”
“하아? 무슨 개소리를···”
“땡· 개소리는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정답은 ‘너’ 입니다·”
어제와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지지대 잃은 손이 뚝 떨어지고 비명이 크게 터지고·
그리고 살과 뼈를 짓뭉개는 황홀한 촉감은 어제 맛봤지만 다시 맛봐도 어?
어··· 어···? 기분이 으앗· 너무 너무·
아· 너무··· 좋은데···!
“으극·”
청이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청을 안고 있던 견포희가 정신을 차렸다·
방금 벌어진 일에 잠시 정신이 이탈했었다·
품안에서 누군가 몸을 떨어대는 바람에 이탈한 정신이 다시 몸을 찾았다·
왜 이래!? 이거 간질이지!? 여기서 발작을!?
어떡해!? 의당 의당으로 가야 하나!?
하지만 수저통 수저통 갖고 가야 하는데!
견포희가 어쩔 줄을 모르고 그냥 청을 들어 꼬옥 껴안았다·
예전에 동네에서 누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 이렇게 꼬옥 안아주는 것을 본 것도 같아서·
그게 통했는지 막내의 발작이 잦아들었다·
“야!?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후우···· 후우우···· 후우우우····”
청이 연신 심호흡했다·
아직도 잔떨림이 남은 신체가 아찔하다·
심장이 쿵쿵쿵쿵 뛰었다·
고수가 된 이후로 이렇게 심장이 거칠게 뛴 경험이 없었다·
고대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전력질주해 끝내 한계 끝에 웃으며 숨을 거둔 고대의 한 병사가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심장의 두드림이 온몸을 부술 기세다·
그러나 대단한 성취감 같은 만족감에 오히려 정신은 온전히 맑고 깨끗했다·
뭔가··· 굉장했지·
그리고 되게 뭐랄까 개운하네?
청의 눈빛이 참으로 맑고 온화해졌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고승과 같은 눈빛이었다·
어디 보자·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어쩐지 하찮은걸····
청의 신체와 정신 상태 모두 전력질주 후에 우승하여 나뒹구는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였다·
“어 저기 그 있잖아·”
“응? 왜?”
“혹시 마무리 말야· 사매는 이미 강하니까 혹시 괜찮으면 내가 그··· 안 될까?”
청이 견포희를 올려다보았다·
바닥을 나뒹구는 이백 점 넘는 하인을 연신 흘끗거리는 중이었다·
청이 그 뜻을 알아차렸다·
아· 너도 살육 좋아하는구나?
“재미 좀 보시겠다?”
“사매만 괜찮으면···”
“뭐 그렇게 해·”
지금은 대단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여기서 더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 진짜!? 그럼 얼마나 남기면 돼?”
얼마나 남기냐니?
무슨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도살 과정을 거칠 예정이길래?
막타는 남겨준다는 건가?
궁금해진 청이 대답했다·
“그냥 마무리까지 다 해요· 대신 구경은 좀 해도?”
“어? 아! 좀 쑥쓰러운데··· 어쩔 수 없지·”
견포희가 사저의 치맛단을 북 찢어 짓이겨진 환부를 꽉꽉 눌러 싸맸다·
오· 지혈부터 하시겠다?
혹시 고문 전문가 같은 건가?
시작부터 남다른걸·
오늘 어쩌면 한 수 배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저가 서 있던 방문을 열어 안으로 밀어넣고 청을 들어 함께 들어가 문을 잠갔다·
청이 눈을 빛냈다·
오 아예 방까지 잡고?
해체? 해체인가? 해부 견학이 되는 건가?
청이 잔뜩 기대했다·
그리고-
아· 살육이 아니었구나·
청이 터무니없는 오해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야 눈앞에서 생생한 채음보음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청도 억울했다·
아니 내가 이걸 어떻게 알 오? 오우····
아니 저기서 저길 저렇게 비비면····
옴매나· 남사시러라·
와 이거 동영상이랑은 완전 박력이 다르네!
청이 애매한 곁눈질로 견포희의 ‘마무리’를 안 보는 척 유심히 관찰했다·
힘세고 강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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