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0
“태평단이 불에 탔다고 해서 위로해주러 갔죠· 그런데 갔다 오니 우리 자웅월아대가 불타고 있는 거에요· 보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자웅월아대 생존자 시미평의 증언이었다·
물론 눈물은 안도의 눈물이었다·
직장 잃은 친구를 위로해주겠다고 술 사주고 와서 목숨을 건졌으니 모름지기 사람이 인심을 써야 한다는 말이 과연 이러한 뜻이었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이 공평무사한 신교 최고의 수사관 석훔훔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분명 그 시각에 자네가 번을 서고 있었어야 하는 시간인데? 그런데 위로라?”
“그 그걸 어떻게·”
“습격 당시 뒷간에 갔다 생존한 이가 있었다· 그가 증언했다· 불침번이 아예 자리를 비워? 이러니 악적이 쳐들어와도 알 수가 없지·”
석훔훔이 차가운 눈빛을 뿌렸다·
“상급 수사관의 권한으로 현장 판결하겠다· 근무지 무단이탈로 적을 도운 것과 다름없다· 사형·”
“자 잠깐만요! 수사관님!”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뒷간에 있던 무사도 항전하지 않고 숨었으니 전투 이탈로 사형을 선고했다· 둘이 나란히 매달릴 것이다·”
“수사관님! 저는 억울합니다! 십호장이 불침번때 술을 먹었다고 원래 다들 그러는 일로 사형이라뇨! 수사관님! 수사관님!”
“정말로 네 죄를 모르겠나?”
“그럼 불침번에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도대체 무얼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신병들이 하듯 오밤중에 괜히 눈 뜨고 아무도 없는 입구에서 혹시 누가 쳐들어올까 대비해서 지켜보기라도 해야한단 말입니까! 그건 육년차 꺾이면 안 해도 되는 겁니다!“
시미평은 정말로 억울했다·
육꺾(오 년 반 이상의)의 십호장이 불침번 때 술을 먹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 아닌가·
석훔훔이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군기와 가혹행위 그리고 그걸 방치하는 상관들 사이에 있으면 멀쩡한 놈도 이리 되어버리는 것이다·
석훔훔이 임시 구금소를 나서며 명령했다·
“뇌옥에 아니 뇌옥이 없지· 바로 죽여서 거리에 매달도록·”
“예 수사관님·”
돌아오는 대답이 무척 공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급 수사관 석훔훔은 신교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수사관인 것이다·
석훔훔이 맡은 사건의 범인 검거율은 십 할(100%)을 훌쩍 넘어 무려 사십이 할(420%)에 이르렀다·
사건 열을 맡으면 범인 열을 잡고 그리고도 스스로 범죄자임을 자처하는 범죄 호소인 서른두 명을 더 잡아들인다는 경이로운 기록!
범인을 호소하는 서른두 명의 정체는 도대체 알 수가 없지만 수사를 방해하였으니 사형을 집행하여 그 동기는 영영 알 수 없었다·
수사 과정의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본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호도한 괘씸죄가 더해진 판결이었다·
“그나저나 심리의 허점을 꿰뚫는 영리하고 과감한 범행이다· 보통 놈이 아니야·”
태평단이 불타고 다음 날 같은 범인이 외당 전투단 휘하 풍화대를 습격했다·
습격 다음 날 또다시 같은 수법으로 공격을 해 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풍화대가 당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어젯밤·
자웅월아대가 또 같은 수법으로 당했다·
이틀이나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했음에도 그 다음 날에 삼세 번째 살육을 감행한 것이다·
그야말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신수!
석훔훔은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숙적을 마주했음을 인정했다·
범인은 비열하게도 밤중에 몰래 침입하여 모두가 잠든 때에 학살을 벌인 후 불을 붙였다·
사나이라면 원한이 있더라도 밝은 백주대낮 태양 아래 만인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해결해야 하는 법·
어찌 이리 치졸한 방법으로····
“아! 그런가! 수수께끼를 하나 풀었구나!”
“수사관님?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범인은 계집일 수도 있다· 사나이의 수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신시로 흘러들어온 사내들을 전부 잡아들이라 했던가? 계집들도 같이 잡아들이도록·”
검거율이 사십이 할에 이르는 최고 수사관의 날카로운 추리였다·
그런데 소수마녀는 애초에 여성이고 혈영뇌전도법의 흔적은 내부인 아닌가?
부수사관이자 검의이자 사형 집행인인 와순자는 그리 생각했지만 감히 토를 달지는 않았다·
검거율 사십이 할의 신화 앞에서 감히 누가 기침소리를 내겠는가·
“예 수사관님·”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태평단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을 기억하겠지?”
“예· 고문은 답을 알고 있다· 이미 제 마음에 단단히 새겨 두었습니다·”
석훔훔이 냉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요즘 부쩍 거리에 시체가 매달려 있다니까! 시체 썩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숨쉬기도 힘들다니깐! 벌레도 엄청나게 꼬이고! 그러니까 같이 구경하러 가자!”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왜 갑자기 그런 결론이 나오지?
근거와 결론이 너무 따로놀지 않나?
“왜 굳이 냄새나고 벌레가 드글거리는 시체를 구경하러 가요?”
“그야 돌 던져야지! 팔다리 맞춰 떨어뜨리면 동전이 한 개 목 맞춰 몸통 떨구면 세 개야!”
“아· 네· 신교의 전통 놀이인가?”
“응!”
견포희가 찬란한 미소로 대답했다·
청이 속으로 생각했다·
거 마교 새끼들 아주 가지가지한다·
이제는 시체 훼손이야?
마교 들으면 서러울 소리였다·
청은 몰랐지만 원래 중원에서 흘러들어온 풍습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중원 욕을 하기에는 중원도 억울한 바가 있었다·
죄인의 시체를 훼손하여 즐거워하는 행위는 동서양이 아주 자연스럽게 행했던 인류의 본성이었다·
미개한 때에 지배자들이 쓴 지도책이다·
시민들의 준법정신을 기르고 공동체의 의식을 함양하는 데에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청이 질린 표정을 하다 견포희를 바라보았다·
“사저·”
“응?”
“혹시· 중원에 안 갈래요?”
“안 가!”
칼 같은 즉답이었다·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뭐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본인 인생은 본인이 사는 법이었다·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청이 강요하는 대신 그 이유를 물었다·
“왜?”
“내가 그 무시무시한 중원엔 왜 가는데?”
견포희가 오히려 되물었다·
청이 대답할 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애초에 세뇌 교육을 받아 중원을 무슨 인세의 지옥으로 아는 받침대였다·
그래서 청이 간단히 대답했다·
“내가 갈 거라서?”
“그럼 나도 갈래!”
얘는 진짜 오래 못 살 팔자 같은데·
사탕 준다고 하면 쫄래쫄래 따라갈 상이었다·
중원이 많이 험한 줄로만 아는 애가 이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음·
생각해보니 아무 생각 없는 애가 맞기는 해·
그래도 그 마음씨가 조금은 기특하기도 하고·
청이 대신 당부를 해 두었다·
“비밀이니까 어디서 말하고 다니진 말고요·”
“응! 절대 말 안 해!”
그리고 나선 오후에 또다시 강 선생 호소인과 즐기는 정통 중국 안마 시간이었다·
뭔 놈의 호소인이 이리 많은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마교 놈들부터가 신교 호소인들이다·
대가리부터가 자연경 호소인이니 그 아래에 있는 것들이 자기 주장이 강할 수밖에는·
천심화음도 겨우 열 소절 남았다·
대충 시간을 끌면 보름 정도·
이후에는 천마총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청이 생각을 정리하다 문득 중요한 순간임을 깨닫고 다급히 말문을 열었다·
“아· 거기거기! 허리! 선생님 조금만 더 쎄게 눌러줄래요? 늙은이가 왜 힘이 그렇게 없어· 나도 힘 빠져서 피리 못 불겠네· 아 그래요· 딱 좋다·”
청이 꼬리뼈 위를 꾹꾹 눌러주는 강 선생의 세심한 손길에 만족감을 느끼며 다시 생각을 이어나갔다·
설가놈은 그 전에 탈출할 예정이라고 했지·
그때 받침대 좀 데려가라 하지 뭐·
사천에서 만나자고 하면 되겠지?
결국 아미파에도 들려야 하니까·
—-
‘오늘은 그믐이니 수라마검을 죽일 좋은 기회일세· 몹시 예민하고 교활한 마두에다 초절정 후기 곧 화경을 앞뒀다고도 들었군· 물론 위험하니 죽일지 말지는 자네의 선택이다만·’
‘뭐야요 초절정하고 싸우라구요? 설가놈 그 전에 나랑 싸워보고 싶어요?’
‘수라마검은 수라문 문주라네· 문주가 죽어버리면 상을 치러야 하고· 마왕도문에 이어 한 개 문파를 또 치워버릴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청은 종일 고민했다·
그리고 해 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라마검은 마공의 부작용으로 처녀의 피를 봐야 잠에 들 수 있다고 하더군·’
‘매일 처녀를 한 명씩 죽인다구요?’
‘매일은 아닐세· 아무리 마교라 해도 그 많은 처녀를 어디서 구하겠나? 그래서 달에 두 번 보름 간격으로 죽이고 하루를 꼬박 잔다더군·’
‘아· 그럼 잘 때 쓱싹?’
‘글쎄· 다들 수라마검이 취약한 때를 아는데 호위가 보통 삼엄할 것이 아닐 테지·’
‘아니 그럼 어쩌라구요?’
‘그건 알아서 해야지· 생각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네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설가놈은 마교에 소속된 인물이 아니었다·
끈을 잡거나 첩자를 심어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설가놈이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면 이마빡에 변소라고 큼지막한 낙인을 찍어두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리저리 주워들은 식견만으로 나오는 작전이 척척 들어맞았다·
중원 제일의 지성이라고 청만이 생각할 만한 인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전의 세세한 사항이 없다·
청이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무림인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청이 그믐날 밤 수라문 후문 근처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이유였다·
일단 좋은 기회라고 해서 오기는 왔는데·
이게 맞을까?
이거 맞아?
청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흑의인 하나가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기이한 자루였다·
안에 무어라도 든 것처럼 꿈틀대며 올록볼록 연신 솟아오르는 신비한 자루였으니까·
정확한 학술적 용어로는 보쌈이라 하는 행위의 모범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이제 자루 속의 내용물을 청이 대신해야 할 차례기도 했고·
물론 청이 믿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안 되면 튀고 잡히면 정체 밝히면서 협박하면 그만 아닌가·
욕은 좀 먹겠지만 그렇다고 복신적 버려?
천마총 안 열거야?
성공하면 대마두 하나 죽이는 거고 실패하면 욕먹고 그만이 아닌가·
도대체가 안 할 이유가 없기는 한데····
설가놈이 말하기를 처녀의 피를 본다는 게 그 피가 아니라더라·
처녀혈이라나 어쨌다나·
일을 치른 이후에 죽인다고 하니 둘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도 했지만·
청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씨발 몰라· 될 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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