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1
돌맹이 하나가 날아 흑의인의 이마를 때렸다·
흑의인이 욕설을 주워삼키며 자루를 내던지며(끕 하는 억눌린 비명과 함께) 검을 뽑아 바로 정면을 겨눴다·
“누구냐!”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흑의인이 긴장감에 떨리는 눈빛으로 정면의 그늘을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톡 무언가 가벼운 것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와락 목에 감기는 억센 손길·
흑의인이 버둥거렸지만 목의 혈류가 막혀서 곧 두뇌로 가는 피가 모자란 탓에 금세 까무룩 눈을 뒤집으며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청이 흑의인을 대충 내팽개치고는 널브러진 자루의 입구를 열었다·
“끄흡·”
“쉿·”
청이 손가락을 복면 근처에 세워 보이고는 이내 바깥쪽을 가리키며 가볍게 찔러댔다·
풀어주겠다는 간단한 손짓에 보쌈당하고 있던 여인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이 여인이 문 재갈과 팔과 다리를 묶은 줄을 풀어주었다·
여인이 허리를 세 번쯤 격렬하게 접고는 그믐 밤 어둠 속으로 숨죽여 달려나갔다·
청이 재갈과 줄을 챙겨 자루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누워 꾸물거리니 입구로 손만 내밀어 자루끈을 잡아 오물조물 묶어내는 것이다·
잘 봉인한 입구 밖으로 자루끈을 살살 밀어 빼내고 뒤집어쓴 복면을 벗고 축축해서 찝찝한 재갈을 차고 팔다리에 어설프게 줄을 묶느라 야단을 떨 때였다·
잠시 기절했던 흑의인이 정신을 차렸다·
흑의인은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변을 휙휙 살펴보고는 아직 땅에 멀쩡히 꿈틀꿈틀 바르작거리는 보쌈 자루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습격 비슷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흑의인이 습격에 당한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자루를 집어들었다·
—-
초대 수라검수는 사람의 본성이 야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사람이 검을 들어서 세상 천지를 지배할 정도로 융성했다·
그러면 야수가 검을 들면 더 강하지 않을까?
곰이 검을 들면? 끝내준다· 바로 만들어보자·
그렇게 백팔수라검은 사람의 숨겨진 야성을 일깨우는 무공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수라검수는 사람의 야성을 너무 얕보고 말았다·
야성이 스민 사람이 본능처럼 피를 탐하니 곧 검을 들어 정신이 홰까닥 돌아버리고 그저 한 마리 살귀가 남게 되는 것이다·
근데 심지어 강했다·
야수가 검을 들었으니 강할 수밖에는·
그렇게 백팔수라검은 천하십대마공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수라마검이라 하면 그 무공을 익힌 자를 말했다·
역대 수라마검들은 이 부작용을 지우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나온 방법 중 가장 온건한 방식이 있었으니 바로 배부른 맹수는 사냥을 하지 않는 데에서 착안한 비법이었다·
미리미리 피를 봐 두면 야성의 폭발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배고프기 전에 밥을 미리 먹으면 시간이 지나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수준의 발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수라마검들이 주기적으로 피를 탐하게 된 것이다·
다만 사람의 야성이 개인의 숨겨진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역대 수라마검마다 피를 보는 취향이 조금씩 달랐다·
현 수라문주 초등남의 취향은 역대 중에서도 잔혹한 것이었다·
처녀의 처녀혈을 취하는 짐승 같은 교접 끝에 상대를 갈기발기 찢어버린다고·
너무나도 끔찍하기에 사방을 빈틈없이 봉한 특별한 처소에서 비밀리에 행해지는 의식이다·
수라마검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 잔인한 교접이 도대체 어떤 광경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특별 처소에 이제 새로운 희생자가 던져진 것이다·
쫘악!
자루가 호쾌하게 찢어지며 바깥이 드러났다·
청이 놀란 눈으로 바깥을 보았다·
“후욱 후욱·”
그리고 새까만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놈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청이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욕을 했다·
고향의 욕설 겸 감탄사 겸 눌라움의 표현 등등 만능으로 쓰이는 그 욕설이었다· 시발!
“우웁!”
물고 있던 재갈 덕분에 욕이 새지는 않았다·
“흐흐 얌전히 있거라· 내 말만 자알 들으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공이 막혀 답답하겠지? 그는 산공독 때문이니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청이 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막힌 방이었다·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구속대들이 스며든 핏기에 검붉은 채로 잘 닦여 번들거렸다
벽면에는 쇠사슬 연결된 수갑들이 여럿이고 놓인 단 위에는 채찍이며 몽둥이 따위의 도구들이 널브러졌다·
청이 그 광경에 바로 후회했다·
아씨· 이거 아닌 것 같더라니·
이거 성인물이 아니라 도살이었잖아·
그냥 바로 빠져나가야겠다·
청이 당장 정체를 밝히고 빠져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청이 물고 있던 재갈을 우물거리며 밀어내고 곧장 말문을 텄다·
“어르신 드릴 말씀이·”
“쉿·”
단도의 칼날이 턱 아래로 드는 바람에 청이 하던 말을 멈추었다·
“미색이 참 곱구나· 신교에 이런 처녀가 아직 남아있었을 줄이야· 담당에게 큰 포상을 내려야겠어·”
“그·”
“쉿· 그만· 살고 싶으면 입을 다물도록·”
청은 살고 싶었으므로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복면인이 의외로 팔다리의 포박을 끊어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겉으로만 멀쩡하고 쉽게 풀 수 있도록 둘러놓기만 한 포박이기는 했지만·
청이 재차 대화를 시도했다·
“실은 소녀가 윽·”
다만 복면인이 몸에 두르고 있던 천 비슷한 것을 끌러내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씨 내 눈!
청이 진심으로 질색하는 표정이 되었다·
차라리 알몸이라면 덜했을 것을·
청도 고향에서 목욕탕 가면 사내의 알몸 정도야 으레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광경이다·
그러나 검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그리곤·
차마 묘사할 수 없는 끔찍한 의상이었다·
그러자 복면인의 드러난 눈이 부릅떠졌다·
“허억! 그 표정! 완벽해! 더 더 경멸해라! 더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어서!”
“그·”
“좋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얼굴을 가린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나를 만족시켜 준다면 무사히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금자를 잔뜩 싸들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소녀는·”
“자· 받거라·”
그리고는 손에 든 채찍을 내미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받으라는 뜻이라서 청이 얼떨결에 착 받아 들고 말았다·
“이건···?”
“후욱· 후욱· 그걸로 이 몸을 내리쳐라· 어서! 이 몸은 놀라운 고수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는데·
씨발 내 눈!
청이 재차 인상을 찌푸렸다·
가죽끈 처먹은 늘어진 알궁둥이가 정신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것이다·
청이 평범한 중원의 처녀였다면 이 망측한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몰랐을 터다·
그러나 정보의 바다 온갖 성적 취향의 홍수를 살다 온 청이 곧장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거 그냥 그쪽 취향의 변태 새끼였네·
“뭐하나! 어서!”
짝!
청이 일단 장단에 맞춰주기로 하고 대충 채찍을 휘둘렀다·
부드러운 가죽을 여러 갈래로 엮은 것이라서 무기보다는 회초리같이 그냥 아프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하윽 제법 힘이 좋구나! 그러나 아직 모자라다! 더 더 쎄게!”
짝!!
“더 쎄게!”
짝!!!
“좋구나! 더 더 더!”
짜악!!!!
“하으으··· 더 더!”
청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뭐? 처녀를 잔인하게 강간하고 찢어 죽여?
이 한심한 꼴이 알려지느니 차라리 잔인한 대마두 강간 살인마라는 편을 택했겠지·
어차피 잔인한 걸로는 딱히 문제삼지도 않는 동네가 아닌가·
중원은 보수적이었다·
그런데 이 꼴이 알려지면 그냥 사회적 매장을 넘어 사회적 죽음 이상의 부관참시가 될 테다·
그러니 즐길 거 다 즐기고 나면 입을 막겠지·
청의 추측은 반쯤 맞았다·
어쨌거나 백팔수라검의 야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피를 봐야 했으니 성욕을 채우고 나면 잔인한 도살 시간으로 이어졌다·
“무엇 하느냐! 빨리! 빨리!”
청이 바닥에 몸을 비비는 수라마검을 내려다보았다·
오냐· 원한다면야·
전 교인의 총무장화가 이루어진 마교에서는 무공 모르는 양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까 산공독 어쩌고 한 것이 내공을 전부 흩어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 아닌가·
내공도 없는 계집 하나가 뭘 해봐야 초절정 끝에 있는 무인을 어쩔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청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연신 내려치는 채찍질이 매섭기 그지없었다·
수라마검의 훤히 드러난 등짝에 쭉쭉 줄이 가더니 어느 순간 몸과 다리를 뻣뻣하게 펴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었다·
“시발·”
청은 강 선생하고 놀아주느라 채찍질의 기본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기본이란 내공을 주입해 뻣뻣하게 세우거나 휘게 하여 원하는 곳을 치는 정도를 말했다·
청이 단전에서 진기를 잔뜩 끌어올렸다·
정사마를 통틀어 잡다하게 뭉친 진기들이 그 의지를 받들어 해일처럼 거대하게 밀려들었다·
청의 내공은 신녀문을 떠날 때에 이미 초절정 수준에서도 중상을 이루었다·
마교에서 그에 더해 온갖 마기들을 더했으니 이제는 그 용량만으로는 화경에 준했다·
칼날처럼 꼿꼿히 선 채찍에 오색 빛깔 편기가 어리고 응축되지 못한 진기가 편사로 넘쳤다·
이제는 실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허벅지만한 두께를 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진기는 거의 산불과 같은 형상이었다·
“아니 이건!”
수라마검의 경지는 초절정이었지만 신체와 정신이 채찍 맞고 절정을 이룬 직후였다·
몸과 정신이 일시에 힘이 빠진 때에 빠르게 대응을 한다면 그야말로 탈인간의 초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탈마에 들지 못했으므로·
“늦어·”
채찍이 칼날이 되어 바닥을 휩쓸었다·
바닥에 짐승의 손톱자국이 깊게 팼다·
도마에 칼자국이 남으면 그 위에 있던 몸통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수라마검의 몸통 부분이 회처럼 얇게 썰렸다·
뼈째로 썰렸으니 굳이 말하자면 다른 회라고 할 수 있겠지마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고전적이었나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