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완료· 이상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내부 점검이 있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또 검사라고? 어이, 적당히 하고 넘기지?”
NEO-3 성계는 보안을 위해 총 3개의 관문이 존재한다· 성계에 진입하려면 관문 역할을 하는 우주요새를 거처야 한다·
네오 제1관문도시는 이러한 성계의 입구 중 하나다·
대규모 함대를 수용 및 보급할 수 있는 이 거대 건축물에는 오늘도 수많은 방문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불응시 무력으로 제압해도 좋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뭐? 너 어느 캐피탈이야!”
“불만이 있으시다면 에저튼 가문에 정식으로 항의하기 바랍니다·”
“이, 이 자식이···!”
검사를 담당하는 군인의 입에서 나온 에저튼이라는 단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들은 금방 얌전해졌다· 곳곳에서 작은 투덜거림이 들렸지만 방금처럼 큰 목소리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이, 교대할 시간이다·”
배 수십 척의 검사를 끝마친 뒤에야 기다리던 휴식 시간이 왔다· 지친 얼굴의 군인들은 구석진 곳에 몰려가 전자담배를 물었다·
“젠장, 끝도 없이 들어오는구먼·”
“이게 다 미친 괴물 새끼들 때문이지· 괴물 때문에 좆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던데·”
그들이 있는 성계는 아웃스페이서를 잘 막아 내고 있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미디어는 물론이고, 기지 내에서도 공격받은 성계에 대한 얘기로 시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 변방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가족들은?”
“우리 가족은 작년에 트리톤으로 이사했어·”
“트리톤? 태양계의 그 트리톤?”
“어·”
“아니 크래딧도 많은 새끼가 왜 여기서 뺑이치고 있냐?”
“후우, 많기는 니미· 빚내고 겨우 들어갔다· 삐끗하면 그대로 고용인행이야·”
“쯧, 부자 새끼가 배부른 고민은· 로드먼, 너는?”
로드먼이라는 이름의 군인이 동료들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어,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네·”
“미친· 지 부인이 어디 사는지도 기억 못 해?”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나·”
“잠은 지랄· 약 좆나 빨아서 그런 거지·”
“쩝· 난 쟤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나도 매주 송금하는데 연락은 반년에 한 번꼴이야· 이제는 애들 얼굴도 생각이 안 나·”
“한 새끼는 약쟁이라서 마누라도 잊어먹고, 한 새끼는 애들 트리톤에 보내뒀더니 얼굴도 모르고· 가관이군·”
“아니 진짜 약 안 한다니까 그러네·”
기껏 쉬는 시간인데도 군인들은 우울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네오 제1관문도시는 직접적인 공습을 당한 적이 없다· 하나 이들과 함께 지내는 동료들은 그렇지 않다· 군인 중 상당수가 아웃스페이서와의 싸움에 차출되어 목숨을 잃었다·
습격 소식이 들릴 때마다 동료들의 빈자리도 늘어갔다· 가까운 시일 내로 그들도 불려 나가게 될 터· 그 불안감으로 인해 다들 정신이 엉망이 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괴물들· 도대체 언제까지····”
“어이, 거기·”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담배 그만피고 우리 좀 도와줘·”
“에이씨, 휴식 시간도 안 끝났는데 무슨·”
“위에서 이것만 처리하고 퇴근하라더라·”
“진짜?”
‘퇴근’이라는 말을 들은 군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남은 게 뭐야?”
“방금 들어온 구조선 있지? 저거만 검사하고 보내·”
“구조선? 혹시 저거 말하는 거냐?”
“씹, 좆나 큰데· 저걸 우리가 다 검사하라고?”
“걱정할 것 없어· 위에서 얘기 다 됐으니까 약식으로 처리하고 끝내라더라·”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군인들은 각자 피던 담배를 품에 넣고 동료가 말한 구조선으로 걸어갔다·
배 앞에서 선원복을 입은 남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엘입니다·”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조엘이라 소개하는 남자·
웃고 있는 것과 별개로 조엘의 안색은 매우 좋지 못했다· 눈도 약쟁이들처럼 생기가 없었다· 선원복만 아니었다면 병든 환자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어, 크흠· 반갑습니다· 저희는 5구역 검사팀입니다· 그 내부 점검 때문에 그러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예· 제가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상대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업무를 미룰 수는 없는 법·
검사를 맡은 군인들은 조엘의 안내에 따라 구조선 안으로 들어갔다·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더럽다는 뜻이 아니다· 벽이나 천장, 문에 땜질을 한 흔적들이 보였다·
“이건 폭발 자국인데· 왜 이런 흔적이 남았지?”
“그리고 사람은 왜 이리 적습니까?”
“귀환 중 선상반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원수가 줄었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가 구조한 사람 중 아웃스페이서 기생충에 감염된 자가 있었습니다· 기생충이 퍼지고 선원들이 날뛰는 바람에 이렇게 됐습니다·”
그제야 군인들은 어째서 배 내부에 파괴의 흔적이 있는지, 조엘의 상태가 왜 저 모양인지 알 수 있었다· 좁은 공간,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습격당했다니· 전투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 해도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저런 상태로 생존한 것이 더 대단해 보였다·
“다행히 저희 구조선은 은사자기사단 소속입니다· 함장님을 비롯한 여러 선원들이 기사단에서 오래 활동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 은사자기사단원이셨습니까?”
상부에서 대충 검사하고 통과시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네오 제1관문도시만이 아니라 성계 전체가 은사자기사단의 관리를 받는다· 검사팀의 상관도 기사단 소속이다· 구조선이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크흠, 이 정도 살펴보면 될 것 같습니다· 통과되었으니 원할 때 출발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사정을 알았으니 이 이상으로 길게 검사를 이어 나갈 필요가 없다· 검사팀 군인들은 대충 검사를 마무리 짓고 배에서 내렸다·
“일도 끝났고· 술 마시러 갈 사람?”
“미친놈· 어제도 퍼마시더니·”
“숙소에서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뭐 어때·”
“쩝· 그렇긴 하지·”
“난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련다·”
“약 적당히 해라·”
“씹, 아니라고· 새끼야·”
상태가 오락가락한 로드먼은 불참을 선택했다·
동료들과 헤어지고 숙소로 가려는 찰나, 그는 어떤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그들이 검사했던 구조선이 보인다· 보급 후 출발하려는 건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 구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나 로드먼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배 안에서 누군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에이, 말도 안 돼·”
최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예민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묘한 느낌을 대충 넘긴 그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군인들이 이용하는 주거단지에 도착한 로드먼은 곧장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상당히 오래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집·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쓰레기 한가운데에 있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청소해야 하는데····”
하지만 부자연스럽게 밀려오는 수마로 인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것을 끝으로 그의 정신은 잠에 빠져들었다·
–
그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로드먼 앞에 어떤 건물이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잠겨 있어야 할 입구는 손님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살짝 열려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그는 모른다· 도시에 근무하면서 와 본 적도 없다· 심지어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딱히 놀라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꿈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로드먼은 이 희한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용도 매번 똑같다· 낯선 건물 지하에 가서 누군가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 그게 끝이었다·
그의 의식이 늘 하던대로 지하로 향한다· 아래로 내려가니 다른 자들이 보인다·
군복을 입은 인간, 상업지구에서 근무하는 컬트 이주민, 도시 정비를 맡은 노동자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는 자들이 모여 있다· 로드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 사이에 섰다·
맞은편에 선 자들의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도 뭔가 말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알 도리는 없다·
아무튼 낯선 자들의 소리 없는 대화를 지켜보는 것이 전부다· 이대로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숙소의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연신 입을 놀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로드먼에게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뒤쪽·
“흥미롭네·”
그때 뒤에서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랄 새도 없이 신체가 극렬히 반응했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막 흘러내렸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느끼는 이 감정, 틀림없이 공포였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서 있던 자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흩어졌다· 뒤늦게 로드먼의 다리도 남자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움직였다·
“내가 알던 기생충과 많이 다른데, 특전 때문에 그런가?”
반대편 계단을 걸어 올라가던 중 그의 다리가 굳었다·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하에 있는 모두가 똑같았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도망치던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상태로 멈춰 있던 자들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로드먼과 앞서 계단 위로 올라갔던 자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지하로 끌려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의 주인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상대는 함장복을 입은 남자였다·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진 그는 한 손으로 분홍색 풍선을 들고 있었다·
“이사벨한테 얘기는 들었지만····”
남자가 로드먼에게 다가온다· 깜빡이는 전등의 불빛 아래에 비친 그의 얼굴은 평범했다· 푸석한 피부를 가진 피곤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중년인·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게 좋겠지·”
그 말이 끝난 순간, 남자의 입이 기괴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형적으로 찢어진 입 안에서 새하얀 비늘을 가진 ‘무언가’가 서서히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걸 본 로드먼은 생각했다·
이건 꿈이라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명 소리가 그의 귀에 꽂혀도, 바지를 적신 소변에서 나는 역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도 그는 확신했다·
보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말이다· 그저 평소보다 살짝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뿐· 곧 있으면 안락한 침대에서 눈을 뜰 것이다·
그 바람은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움켜쥐는 순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