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8
NOX-02, 속칭 녹스·
이 행성은 NEO-3 성계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무용한 자원을 보유한 곳이다·
그건 바로 물· 녹스는 행성 표면이 물로 덮인 바다 행성이다· 성계의 거주민들에게 필요한 수자원을 공급하는 장소다·
메가콥 플레이어들이 밝혀낸 설정을 보면 과거에는 기술 부족을 이유로 우주 개척이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NEO-3처럼 물이 존재하는 극소수의 행성, 성계가 우선적으로 개발되었다·
다만 현시점에 이르러서는 테라포밍 시설을 비롯해 수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생겼다· 그래서 과거보다 물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설정이다·
게다가 스페이스 서바이벌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 중 간소화된 부분이 많다· 물의 소비량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녹스는 그다지 매력적인 행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게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면?’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전자 개조 시술을 받지 않은 인간은 생존에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게임처럼 생존 가능할 정도의 물만 마시고 산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아무리 기술력이 발달했다고 해도 맨땅에 물을 만드는 작업은 적지 않은 비용이 소모된다· 성계 내에 수원지가 있으면 이러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덤으로 거주민들에게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세계에서 녹스의 가치는 내가 알던 것보다 높아졌을 거다·
‘그렇다고 연구시설을 둘만한 환경이 된 건 아니겠지만·’
녹스는 모든 지반이 물에 잠겨 있어서 육지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수심도 평균 수십km에 달할 정도로 깊다· 게임에서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휴양 시설, 행성의 물을 끌어올려 외부로 수송하는 시설만 있었다·
물론 연구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우주요새를 짓는 것과 비슷하게 심해에 수중기지를 지으면 되니까· 다른 좋은 장소도 많은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을 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니라면 말이야·’
왜 녹스에 연구기지를 뒀는지,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지금부터 확인해봐야겠다·
격납고에 엎드려 있던 나는 턱 아래의 보조기관을 이용해 앞에 있는 통신기를 켰다·
“얘기했던 것은 어떻게 됐어?”
「에이모프의 말을 따르니 금방 행성 진입 허가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잘 풀릴 거라 생각 안 했는데· 하여간 남 속이는 전문가라니까·」
평소처럼 단조로운 톤으로 대답한 PS-111· 녀석과 함께 함교에 있는 이사벨도 경멸인지 감탄인지 모를 감상을 남겼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박살난 우주도시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난 지금, 우리는 녹스 근처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운 구조선이 에저튼 가문의 허가를 받은 이상, 성계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은 딱히 문제가 없다·
하나 통행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비밀기지에 제약 없이 들어갈 수 있을지는 불명이다· 녹스에 진입하려면 훨씬 까다로운 검사를 받아야만 하겠지·
당연하지만 그런 귀찮은 일은 질색이다· 그래서 더 쉬운 길, 내가 잘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바로 녹스를 지키는 사람보다 윗선에 있는 자를 속이는 것·
이 배는 겉으로만 구조선이고 실제 맡은 일은 약간 다르다· 아웃스페이서의 기생충에 감염된 생존자를 확보하는 것이 그 목표다·
그리고 이 임무를 하달한 사람이 바로 NEO-3의 지배자 제이콥이다· 배의 함장이었던 블레어에게 감염자를 NEO-3으로 가져올 것을 명령한 사람도 그다·
‘관문도시의 검역을 쉽게 통과한 것도 놈이 수를 쓴 거야·’
함장이 남긴 기록을 보면 제이콥은 돈을 벌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듯했다· 감염자 머리에 있는 신종 기생충을 연구해 신무기를 만들려는 속셈이다·
따라서 제이콥에게 중요한 건 아웃스페이서 기생충이다· 프라임캐피탈스러운 성격의 놈이라면 명령을 받은 부하가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을 거다·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감염자만 무사히 손에 들어오길 바랄 터·
더해서 놈은 이틀 전에 우주도시 하나를 잃었다· 어떻게든 그 손해를 만회하려 할 테니 속이기 어렵지 않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미 죽은 블레어를 대신해 조엘을 시켜 제이콥에게 통신을 보냈다·
함장이 관문도시 탈출 도중 전사해서 자신이 함장직을 승계했으며 녹스에 들려 함선 수리, 물자 보급을 받고 싶다고 말이다·
결과는 보다시피 예상대로 됐다· 제이콥은 의심 없이 우리에게 행성 진입 허가를 내려줬다·
「그러면 행성 진입을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할게·”
통신을 종료한 직후, 격납고 내부의 벽에서 얕은 진동이 느껴졌다· 녹스에 접근하기 위해 함선이 가속하는 중이다·
「큰애기야, 이거 움직여·」
진동을 감지한 26호가 의문이 담긴 파장을 흘렸다· 녀석은 갖고 놀던 컬트식 사이킥 단말기를 몸에 도로 집어넣고 내게 다가왔다·
「우리 어디 가?」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물이 가득한 바다행성에 갈 거야·)]
「바다?」
바다라는 단어를 들은 녀석이 몸을 반짝 빛냈다·
「나 바다 잘 알아! 편하고, 포근하고, 움직이기 쉽고, 착한 친구 많아· 착한 친구 괴롭히는 못된 친구도 있지만 내가 혼내줄 수 있어!」
[즈(그래)]
아는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26호는 분홍색 촉수를 열심히 흔들며 설명했다·
「바다」「별로야」
반면, 아드하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내 곁에서 발톱과 날개를 손질하던 녀석은 불편한 감정을 담은 사념파를 발산했다·
「물」「쓸데없이」「많아」「땅」「없어」「비행」「도중」「쉬는 거」「불가능」
「아니야· 둥둥 떠다니면 편해·」
「물」「착지」「가라앉아」「안 좋아」
「내가 작은애기 가르쳐 줄게· 공부하면 돼·」
아드하이는 생각만 해도 별로라는 듯 머리를 가볍게 털었다·
사실 녀석 입장도 이해가 간다· 갤러곤의 서식지는 화산 행성이나 얼음 행성 같이 극한지다· 액체화된 물이 가득한 환경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나마 아드하이는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바다를 접한 적이 있지만, 그때도 딱히 좋은 경험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게 컬트의 성지에 갔었을 때였나·’
당시 부득이한 사정으로 26호, 아드하이와 따로 떨어지게 됐었다· 그때 녀석은 심한 부상을 입은 채로 바다를 횡단했다· 그러니 싫어할 수밖에·
‘뭐 지금은 녀석에게 피해를 줄 만한 생물이 거의 없지·’
내가 아는 수중생물 중 아드하이에게 피해를 줄 만한 존재는 없다· 심해 최상위 포식자 씨 데몬도 갤러곤의 제왕과 맞서는 것은 버겁다· 아마 시간을 끌다가 도망치는 게 전부일 거다·
물론 갤러곤의 체형 자체가 수중 생활에 맞지 않다 보니 아드하이도 제대로 싸우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바다에 맛있는 밥 많아· 애기들이랑 어른들이랑 다 좋아해·」
「먹이?」
「응· 딴딴한 밥 부셔서 먹으면 맛있고, 작고 몰려다니는 밥도 한 번에 먹으면 맛있어!」
「먹이」「사냥」「좋아」
내키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던 녀석은 낯선 사냥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반응을 보였다·
「강적」「사냥」「큰어른」「줄 거야」
[즈(나?)]
「선물」
아드하이는 그렇게 말하며 꼬리 끝으로 내 갑각을 슬쩍 쓸어내렸다·
원래도 사냥을 좋아하는 녀석이다· 아무래도 새로운 사냥감과의 싸움이 기대되는 것 같다·
「나도 큰애기한테 선물 줄게!」
26호는 활기찬 파장을 보내면서 내 머리 위에 폴짝 뛰어 올라탔다·
「제일 맛있는 밥 줄 거야·」
[즈즈즈(고마워)]
「응!」
「나」「가장」「큰 먹이」「선물」「큰 먹이」「맛」「좋아」
[즈으으으 즈즈즈(아드하이도 고마워)]
「작은애기는 바다 싫어하니까 안 그래도 돼·」
「작은어른」「가르침」「약속했어」
「작은애기는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 할 거야·」
「사실」「공부」「불필요」「나」「강해졌어」「혼자」「사냥」「가능」
[즈(응?)]
「밥들 도망 잘 쳐· 아무리 세져도 못 찾아·」
「나」「속도」「빨라」「도망」「못 쳐」
「빨라도 숨으면 소용없어· 밥들 꼭꼭 잘 숨어·」
「부정」「나」「수색」「사냥」「다」「잘해」
[즈즈즈(잠깐만?)]
대화의 흐름이 뭔가 이상하다· 각자의 사념파와 파장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내용이 묘하게 호전적이다·
‘지루해서 그런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나와 조우하고 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답답한 배 안에서 지냈으니까· 사냥은 물론이고,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씨 데몬, 레드 갤러곤 모두 몇 달 굶는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허기로 인한 스트레스만큼은 어쩔 수 없다·
‘내려가면 먹을 만한 것들 좀 찾아봐야겠네·’
그러면 기분도 풀리겠지·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곧 있으면 내릴 거야· 지루해도 조금만 더 참아 줘]
「응·」
「알았어」
나는 날선 반응을 보이는 둘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얌전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그 몸으로 물에 들어가도 돼?”
그때, 밖에서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은 그렇다 쳐도 날개가 너무 얇은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지속적인 개량 덕분에 날개의 내구성은 외장갑의 71%에 달합니다· 심해에서의 활동 역시 문제없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스크리머 자매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며 격납고에 들어왔다·
“에이모프· 함선은 10분 뒤 지정된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PS-111이 함교를 떠나면서 배의 상태를 자동 항해 모드로 전환해놨다· 녹스의 수상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지배를 받는 선원들이 함선 컴퓨터의 운행을 보조한다·
그 사이에 우리는 이 배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대기권 진입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7분 남았습니다·”
녀석 말대로 정확히 7분 후, 배가 녹스의 대기권에 진입했다·
격납고 문이 열리고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선내로 엄습했다·
백색 구름과 푸른색 바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갈색과 녹색 육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즈즈(가자)]
지구보다도 푸른 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그곳을 향해 나는 모두와 함께 뛰어내렸다·
–
삑
“음?”
봉지 속 과자를 집으려던 남자는 낯선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그는 손에 뭍은 부스러기를 대충 털고 컴퓨터와 연결된 단말기를 조작했다·
“운석?”
남자가 탑승한 잠수정이 수면에서 발생한 미확인 충격파를 감지했다·
남자가 탐지 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는데, 그의 동료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왜 그래?”
“방금 이 좌표에서 미약한 충격파가 발생했거든· 오늘 운석 떨어진다는 말 없었지?”
“혹시 번개 아니야?”
“쓰읍, 아니야· 파장 형태가 전혀 달라·”
둘은 함께 컴퓨터 화면을 쳐다 봤다· 충격파가 발생한 지점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는데·”
“쯧, 그래야겠지?”
그들이 탑승한 감시용 잠수정은 바다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심해기지에 소속되어 있다· 그들의 임무는 누군가가 행성에 들어왔을 시, 기지에 보고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말이다·
“그럼 가 보자고·”
감시용 잠수정은 빠르게 해당 좌표로 이동했다·
십여 분이 지나 그들은 이상 현상이 발생한 장소에 도달했다·
“뭐 나오는 거 있어?”
“아무것도· 생명체 반응, 미세 에너지파, 진동, 온도, 죄다 체크해봤는데 전혀 안 나와·”
그들이 탄 잠수정에는 고성능의 탐지 장비가 탑재되어 있다· 장비를 수차례 반복해서 돌려봤지만 걸리는 것은 딱히 없었다·
“이상한데· 왜 이 지점은 공백으로 나오지?”
“공백?”
“봐봐· 여기만 싹 지워져 있잖아·”
“흐음, 그러게·”
“안 되겠다· 이거 맨눈으로 봐야겠어·”
“알았어·”
남자의 동료는 조종 장치를 조작해 탐사용 발광탄을 발사했다·
실드로 보호받는 강화 유리 밖에 작은 태양이 떴다· 깊은 바닷속, 엄청난 빛을 내뿜는 발광탄이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빛에 의해 어둠이 걷히고, 탐지 시스템에서 공백으로 나오던 부분이 그들 눈에 들어왔다·
“저건가?”
“작은 언덕 같은데·”
단단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심해의 밑바닥에 작은 언덕이 솟아 있었다·
높이는 대략 20m 정도 될까? 근처에 열수(熱水)가 나오는 구멍이라도 있는지, 언덕 전체가 검은 수증기 같은 것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 기기 오류인가·”
“마지막으로 정비받은 게 언제였지?”
“하긴 검사할 때가 되긴 했지· 돌아가자고·”
언덕 주변을 여러 번 맴돌았지만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잠수정은 기지로 귀환하기 위해 방향을 돌렸다·
그래서 그들은 보지 못했다·
검은 수증기에 가려져 있던 언덕이 아주 조용히 움직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