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7
“…그리드.”
모습이 다르다.
하지만 저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시선.
그 속에 담긴 진한 탐욕이 그리드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아…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리드가 몹시 흥분한 얼굴로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토하며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 시선은 계속 내게 고정하고 있었는데.
붉은 안광이 흘러나오는 역안은 탐욕이 진하다 못해 질척질척했다.
정말 역겹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아서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정말 역겹군.”
가뜩이나 혐오스러운 타락자이건만.
하는 행동까지 역겨워서 그런지 평소 적과 싸울 때는 조용한 아서가 결국 한 마디 툭 내뱉고 말았다.
그런 아서의 행동에 나는 심히 동감했다.
‘그리드 미친 새끼.’
자체 TS를 하면서 탐욕이 더욱 심해졌나?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일 수가 있지.
이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넘어 속이 울렁거린다.
그래서 나는 나와 아서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열 손가락에 아이기스를 착용했다.
방패로 전환한 아이기스를 아서의 주변에 전송 바닥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아틀라스 아머로 변화되어있는 아스트라를 썬더볼트로 변화했다.
촤르륵.
양어깨에 있던 미사일 포트가 흘러내리며 아틀라스 아머가 기존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오른손에 썬더볼트가 쥐어졌다.
「…음?」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내 손에 쥐어진 총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아 아무래도 ‘스틸’을 사용한 거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은 외형만 썬더볼트일뿐.
실제로는 S등급 무기 아스트라다. 그러니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스틸이 안 될 수밖에.
「하아… 이유진.」
그리드가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너는 존재뿐만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도 모두 탐스럽구나.」
와… 진짜 징그럽다.
탐욕을 넘어서 집착을 보이는 그리드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안 되겠다. 더 이상 내 시야에 놈을 담아둘 수가 없다.
그리 생각하자마자 라이브 포커스를 발동했다.
띵동.
이어서 속도 제한 해제를 활성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조합으로 그리드를 공격했다.
쿠르르르르르 콰아아아아아앙…!
뇌성이 느리게 울려 퍼지며 세상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갔다.
동시에 총구에서 번개로 이루어진 섬광이 궤적을 그렸다.
퍼석 퍼석!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아이기스가 하나둘씩 빠른 속도로 소멸되어갔다.
‘역시 S등급 무기.’
아스트라가 형태를 변화하는 무기라고 해도 아이템 자체의 대미지가 높아서 그런지.
아이기스에 흡수되는 대미지가 어마어마하다.
그리 생각하며 전송으로 새로운 아이기스를 보충하자.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섬광과 함께 했어야 할 소리가 뒤늦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나는 먼지처럼 사라졌을 곧 마지막 남은 죽음 회피 아이템이 사용될 그리드를 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
놈이 멀쩡하다.
푸른 궤적이 놈에게 이어져있음에도 죽음 회피 아이템이 사용되기는커녕 멀쩡히 서 있었다.
뭐지 왜 놈은 가루가 되지 않은 거지?
이상함을 느낀 나는 다시 한번 총을 격발했다.
그에 따라 원래의 색을 되찾아가던 세상이 다시 번쩍 푸른빛으로 물들어갔다.
동시에 거대한 뇌성이 느리게 울려퍼지며 푸른 궤적 옆에 새로운 궤적이 그려졌다.
‘…진짜 뭐지?’
하지만 놈은 여전히 멀쩡했다.
새로운 궤적이 놈에게 닿았음에도 여전히 가루가 되지 않았다.
이에 총을 격발하는 대신 옆으로 살짝 움직여 놈을 살폈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두 궤적이 놈을 꿰뚫은 것이 아닌 놈이 손에 들고 있는 수정구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세상에서 정확히 나를 인지하고.
뚜벅.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그리드의 모습을.
「표정을 보아하니 꽤 놀란 거 같군.」
그리드가 큭큭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놈의 비아냥을 무시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아서를 보았다.
‘…느린데?’
자세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매우 느릿하게 움직이는 아서.
그 모습을 보아 라이브 포커스는 여전히 발동 중이다.
그런데 놈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거지?
속도 제한 해제를 활성화 중인 나처럼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리드의 모습에 나는 의문을 품었다.
‘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능력도 무언가 변했나?’
아니면 강탈한 육체가 가지고 있던 능력?
‘…아니 시간 관련 능력을 사용하는 초인이나 타락자 중에 저렇게 생긴 모습은 없어.’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없지.
사도.
나를 환영에 가두었던 그리고 차원 균열에서 무신과 싸우고 있는.
네 번째 사도 그 놈이 그리드에게 무언가 했다는 것밖에 없다.
「큭큭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그리드가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날카로운 이빨을 씨익 보였다.
그런 놈의 모습에 나는 마력 회복제가 든 주입기를 작동하며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쿠르르르르 콰아아아아아앙…!
느리게 울려 퍼지는 뇌성과 함께 섬광이 놈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섬광은 궤적만 그릴뿐 놈이 들고 있는 수정구에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에 나는 쯧 혀를 찼다.
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드가 들고 있는 수정구는 ‘보이드’라고 불리는 S등급 아이템으로.
한 달에 한 번 반경 10km 내의 모든 대미지를 10분 동안 흡수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플레이어들은 저 아이템을 통칭 평화의 구슬이라고 부른다.
「어이쿠 그렇게 열 내지 말라고.」
놈이 무섭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행동과 달리 얼굴은 비웃음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무엇을 노리고 있길래 싸우지도 않고 처음부터 보이드를 사용하는 걸까.
분명 자신 또한 공격해봤자 소용 없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큭큭.」
나는 수정구를 쓱쓱 쓰다듬으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그리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라이브 포커스를 종료했다.
느려졌던 세상이 원래의 속도를 되찾았다.
띠링.
속도 제한 해제 [ON / OFF]
치트도 비활성화했다.
라이브 포커스를 종료한 이상 사격을 하는 것 외에 움직일 수 없으니 굳이 치트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물론 놈의 보이드가 활성화되어있는 것도 있다.
「응? 벌써 끝인가?」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시간 능력 계속 사용하지 않고.」
…아니 진짜 뭐지?
나는 전혀 이해 되지 않는 그리드의 행동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간 능력 정확히는 내 인지 능력을 빠르게 가속시키는 라이브 포커스.
왜 그 능력을 사용하라고 권유하는 거지?
그리고 네 번째 사도 그 놈은 그리드에게 무엇을 한 거지?
‘하… 모르겠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쌓이고 쌓여 머릿속에 안개가 끼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해답은 나중에.’
머리가 복잡하지 않은 일부터 해결해야겠다.
‘어차피 보이드 때문에 서로 공격을 해봤자 소용 없으니.’
이참에 이면 세계 어딘가에 있을 코어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 생각하며 천리안을 발동하려는 순간.
「아 이유진. 혹시 코어를 찾을 생각이라면 포기해라.」
“…뭐?”
어떻게 안 것인지 그리드가 갑자기 코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오 진짜 그러려고 했나?」
그리드가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런 놈의 행동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놈을 향해 철컥 총구를 겨누며 물었다.
“왜 찾지 말라고 하는 거지?”
내 물음에 그리드가 자신의 심장에 손을 척 올리며 말했다.
「이곳 이면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코어가 바로 나라서 그렇다.」
“아 그래?”
「그래 그러니 코어를 찾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응 못 믿어.
아니 설령 맞다고 해도 안 믿어.
나는 그리드의 말을 무시하며 천리안을 발동했다.
시야가 솟구치며 이곳 이면 세계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네.’
산이나 강 바위 생명체.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테마에도 해당되지 않은 허허벌판이었다.
마치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든 것처럼.
‘…아니 진짜 없네.’
그리드의 말대로 서브 코어는 물론 메인 코어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코어가 작은 것도 아니고.’
작다고 해도 훤히 다 보이는 허허벌판에서 숨길 곳이 어디 있을까.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귓가에 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러면 땅속에 숨겨져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이면 세계가 없는 건 아닌데 여기는 확실히 아니야.’
내 확언에 순간 당황했는지 테라의 말이 잠시 끊겼다.
하지만 이내 이유를 물어왔다.
– 어째서입니까?
나는 그런 테라에게 친절히 알려주었다.
‘마기가 안 보이잖아.’
– 아… 확실히.
일반적인 이면 세계라면 몰라도.
타락자가 간섭한 이면 세계의 코어는 무조건 ‘마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구에 균열을 열기 위해 마기를 뿜어낸다.
그만큼 방대한 양의 마기를 뿜어내기에 코어가 땅속에 파묻혀 있어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드에게 납치당한 이곳 이면 세계는 천리안으로 전부 훑어봐도 마기가 보이기는커녕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잠깐.’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아니 설마… 그리드 이 새끼.’
처음부터 보이드를 사용한 것도 그렇고.
능력 사용을 권유하는 것도 그렇고.
내 마력이 고갈되길 기다리는 건가?
이 이면 세계에서는 마력을 회복할 수 없으니까?
그런 내 의문에 테라가 덧붙였다.
– 체력이나 기력 소모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네.
그것도 있겠네.
‘그런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잖아?’
기력은 치트로 인해 무한이고.
마력은 마력 회복제를 먹으면 되고.
체력 또한 체력 회복제를 먹으면 된다.
거기다 추가로 배고프면 영약 주스를 마시면 된다.
물론 기력을 제외한 아서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아서라면 기력 조절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리 생각을 마치니.
‘…그리드 이 새끼.’
병신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내 의문이 맞아떨어졌을 때나 적용되는 것.
나는 설마 최상위급 타락자 그것도 네임드가 달린 놈이 그런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하며 천리안을 종료했다.
그러자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그리고 아서의 검격을 그대로 맞아주고 있는 그리드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믿겠나?」
“어 네 말대로 코어가 없더라.”
나는 그리 말하며 아서를 멈춰 세웠다.
“아서 지금 당장 공격해봤자 피해 못 입히니까 잠깐 멈춰.”
“…역시 그런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리드의 급소를 공격하고 있던 아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저 아이템 때문이겠군.”
그리드의 손에 들린 수정구를 가리킨 아서에게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서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검에 불어넣은 마력을 거두었다.
“이유진 어떻게 하면 되지?”
해답을 알려달라는 듯 물어오는 아서.
그녀에게 나는 썬더볼트로 변화했던 아스트라를 기본 형태로 되돌리며 말했다.
“10분 아니 이제 6분 정도만 기다리면 저 수정구가 비활성화될 거야. 그러니 그때 공격하면 돼.”
“6분이라… 다행히 얼마 안 되는군.”
아서가 그리 말하며 땅에 엑스칼리버를 푹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엑스칼리버의 폼멜에 두 손을 올리며 그리드를 주시했다.
그런 그녀를 따라 그리드를 바라보자.
「…이유진.」
비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던 그리드의 얼굴이 조금 굳은 것이 보였다.
「이 아이템의 유지 시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것만 알고 있겠냐.”
나는 천리안을 사용하면서 혹시 했던 생각을 말했다.
“그 아이템의 유지 시간 동안 나와 아서의 마력을 최대한 많이 소모시키려고 한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러자 그리드의 얼굴에 조금 남아있던 비소가 싹 사라졌다.
「…눈치챘나?」
아 진짜였냐고.
나는 진짜 병신 같은 생각을 한 그리드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너는 그게 된다고 생각하고 아이템을 사용한 거냐?”
「….」
내 비아냥에 그리드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 된다면 되게 하는 수밖에.」
그리드가 그리 말하며 바닥을 박찼다.
나와 아서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놈이 공중에 몸을 띄우며 팔을 활짝 펼쳤다.
쿠구구구구구구궁….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바닥.
동시에 그리드 아래에 있는 땅이 마구 들썩이더니.
쾅 콰앙! 쾅!
굉음과 함께 바닥이 터지면서 구멍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 끼에에에에에엑!
– 키아아아아아아!
– 끼기긱 끼기기긱!
엄청난 수의 마물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마물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그리드를 보았다.
“야 그 수정이 유지되는 동안 서로 공격이 먹히지도 않는데 마물들은 왜?”
내가 비아냥을 담아 그리 묻자.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드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자 사람이라면 절대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벌려진 입속에 수정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턱 입을 닫더니.
꿀꺽.
수정을 삼켜버렸다.
그런 괴기한 행동에 나는 순간 벙쪘지만.
이내 헛웃음을 터트리며 속도 제한 해제를 활성화 그대로 총을 격발했다.
쿠르르르르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뇌성과 함께 섬광이 쏘아졌다.
그리고 이번엔 확실하게 놈의 죽음 회피 아이템을 소모….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슈우우우우욱─!
…시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정구를 삼키면서 무방비해졌을 거라 생각했던 탐욕이.
“…저것들은 언제 구해놓은 거야.”
수백 개나 되어 보이는 방어 아이템을 주변에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진짜 제대로 작정했구나.”
내가 기억하기로 그리드는 오직 방어를 위한 아이템은 별로 수집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렇게 많다는 것은 나를 잡으려고 아이템 노가다(초인 살해)를 했다는 것이다.
“하… 미친 새끼.”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그리드 너는 진짜 역겨운 놈이 맞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 님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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