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8
– 끼에에에에엑!
– 끼기긱 끼기기긱!
– 키킥킥키키키킥!
회색빛이었던 벌판이 마물이라는 물감으로 인해 검게 물들어간다.
‘끝도 없이 올라오는구만.’
지상에 생긴 구멍에서 꾸역꾸역 마물이 올라오는 광경이란.
마치 벌레 소굴에 연기를 집어넣은 것만 같다.
‘…이제 헤아릴 수도 없겠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만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대충 못해도 수백만 정도 되는 거 같다.
그리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자… 어떠한가. 나의 군세가.」
언제 꺼냈는지 모를 화려한 의자에 앉은 그리드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턱을 괴며 기대와 설렘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을 보아 나와 아서가 마물과 싸우면서 마력은 물론 체력과 기력이 고갈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헛된 망상이지.’
무한 아이템이 강제로 비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니 저러는 거겠지만.
그리 생각하며 비소를 머금었다.
헬멧 때문에 보이지 않겠지만 비웃음을 안 머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함을 발견했다.
‘…뭐지? 방어 아이템 종류가 비슷비슷하네?’
철옹성처럼 그리드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방어 아이템.
형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전부 비슷비슷했다.
방패와 수정구.
수백 개의 방어 아이템 절반은 방패 형태 나머지 절반은 수정구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속도 제한 해제가 적용된 총알을 막은 게 수정구 형태였지?’
아 대충 알 거 같다.
놈의 방어 아이템의 효과를.
‘지금 보니까 동글동글한 게.’
흡수 아주 잘할 것처럼 생겼네.
나는 피식 웃으며 총을 들어 올렸다.
철컥.
「음?」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어 아이템 때문에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총을 겨누니 이해를 못 한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우선.
우르르 콰앙─!
슈퍼 정확도만 적용된 총알을 쏘았다.
한 줄기 뇌성과 함께 쏘아진 섬광이 그리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놈의 주변에 날아다니는 방어 아이템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역시나.’
하지만 아쉽지 않다.
내가 총을 격발한 이유는 놈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니까.
콰아아아앙─!
그리드의 앞을 가로막은 ‘방패’가 굉음과 함께 쩌적 금이 갔다.
‘방패는 아이기스와 같은 대미지 흡수.’
그리고 완전히 부서지지 않은 걸 보아 A등급이다.
슈퍼 정확도와 성탄(A) S등급 아이템의 대미지가 더해진 공격에 파괴되지 않고 금이 갔다는 건 A등급밖에 없다.
B등급이었으면 단번에 박살이 났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S등급이었으면 금은커녕 흠집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S등급 아이템은 대부분 ‘파괴 불능’ 옵션이 붙어 있으니.
‘물론 ‘파괴 불능’이 붙었다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무수히 많은 아이템이 있는 만큼 ‘파괴 불능’ 혹은 ‘불멸’을 무효화하거나 없앨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
예를 들어 북유럽 신화에서 발두르를 죽였다는 ‘미스틸테인’ 같은.
아무튼 그리드의 방어 아이템 중 하나인 ‘방패’의 효과를 알게 되었으니 이번엔 ‘수정구’를 알아볼 차례다.
속도 제한 해제 [ON / OFF]
띵동 치트가 활성화되는 소리가 들려오고.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힘을 주자.
쿠르르르르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뇌성과 함께 세상이 일순간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손가락에 새로 껴놓은 아이기스가 퍼석 퍼석! 빠른 속도로 소멸해갔다.
그리고 총구에서 쏘아진 거대한 푸른 섬광이 그리드를 향해 궤적을 그렸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뒤이어 엄청난 전기 소리와 함께 전뢰가 섬광이 그린 궤적을 따라갔다.
슈우우우우욱!
섬광과 함께 수정구 형태의 방어 아이템에 모두 빨려 들어갔지만.
쪼각.
아이기스처럼 즉사급 대미지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는지 섬광을 모두 흡수한 수정구가 반으로 쪼개지며 사라진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효과 확인 끝.’
방패 형태는 일반적인 대미지 흡수.
수정구 형태는 치명적인 대미지 흡수.
그리드의 방어 아이템 공략을 끝낸 나는 속도 제한 해제를 비활성화하며 놈에게 겨누었던 총을 내렸다.
그러자 그리드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알아서 힘을 빼주는 건 좋다만…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이해를 할 수 없군.」
하긴 내 입장에선 필요로 한 행동이었지만 놈의 입장에선 불필요한 행동이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넘어 미련해 보였을 것이다.
‘어휴 멍청한 새끼.’
병신 같은 짓을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총을 두 번이나 쏜 것인지 전혀 눈치 못 챈 그리드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불온하군.」
그리드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런 표정도 잠시.
씨익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는 그리드.
「이유진 이제 시간이 되었다.」
그러고는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양팔을 활짝 벌리더니.
「나의 군세가 너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으니….」
마물의 소환이 끝났음을 말했다.
그 말대로 벌판을 검게 물들이던 물감이 멈춘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저 멀리 내 시야에 보이는 벌판은 회색빛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물들로 가득했다.
「…너의 한계를 보여다오.」
그리드가 그리 말하며 주먹을 쥔 손을 팔걸이에 쿵 내리쳤다.
그러자 그 신호를 시작으로.
– 끼에에에에에에엑─!!
– 끼아아아아아아악─!!
– 키아아아아아아아─!!
마물들이 흉포한 괴성을 내지르며.
우르르르르르르르──!!
나와 아서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마물들이 한꺼번에 달려오니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린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서는 땅에 박아넣은 검의 폼멜에 두 손을 올린 채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푸른 눈으로 달려오는 마물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서의 눈동자에 황금빛 마력이 감돌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점점 형태를 갖추어가더니.
철그럭.
원탁에 보관되어 있을 기사왕의 갑옷.
그 형태와 같은 화려한 갑옷이 되었다.
물론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 진짜는 아니다.
하지만 아서의 황금 마력으로 만들어진 만큼 방어도는 확실하다.
아니 확실한 것을 넘어 웬만한 갑옷보다 튼튼할 것이다.
“이유진 나는 준비되었다.”
아서가 그리 말하며 땅에 박아넣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머리에 구현한 투구의 바이저를 내려 얼굴을 가렸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전투 태세를 갖추는 아서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스트라의 형태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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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 「변화」
[변화 중인 형태 : 죽음의 천사(+썬더볼트)]
[등록된 아이템 개수 :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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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의 형태가 순식간에 미니건으로 바뀌었다.
검은색 코팅이 아닌 썬더볼트처럼 푸른색과 하얀색으로 코팅되어 있는.
묵직하면서도 조금 날카롭게 변한 미니건으로.
그와 동시에.
‘전송.’
달려오는 마물들의 머리 위로 수류탄 박스들을 전송했다.
하지만 내가 박스를 터트리기도 전에.
「내가 보고 싶은 건 너의 한계다 이유진. 이런 폭탄물 따위가 아니라.」
그리드가 박스들을 스틸로 훔쳐가 버렸다.
‘아 젠장.’
순간 까먹고 있었다.
놈에게 스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수류탄이 A등급이었다는 것을.
스르르….
놈에게 스틸 당한 수류탄 박스들이 무한 아이템의 제약으로 인해 사라진다.
그 현상을 본 나는 이번엔 땅 밑으로 박스를 전송했다.
「내가 방금 말했을 텐데 내가 보고 싶은 건 폭탄물이 아닌 너의 한계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놈은 스틸로 박스들을 훔쳐가 버렸다.
‘아니… 분명 마력의 유동은 미미할 텐데? 그걸 감지했다고?’
물론 거리와 아이템의 무게에 따라 전송에 사용되는 마력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사용되는 마력과 다르게 외부에 노출되는 마력의 유동은 극히 작기 때문에.
진짜 마력에 민감한 초인이 아니고서야 쉽게 감지할 수가 없다.
하물며 그리드는 마력이 아닌 마기를 사용하는 타락자.
그런 만큼 큰 마력의 유동은 감지할 수 있되 전송처럼 마력의 유동이 적은 것은 감지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전송을 사용하기 무섭게 그걸 감지한다?
그럼 하나밖에 없다.
‘이곳 이면 세계가 놈의 몸이나 마찬가지구나.’
그 생각과 함께 그리드가 아까 내게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 「이곳 이면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코어가 바로 나라서 그렇다.」
자신의 심장이 이곳 이면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코어라는 것을.
그 뜻은 곧 이곳이 놈의 몸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인데.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눈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네.’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마력 회복제가 든 주입기를 작동했다.
그리고 마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생각이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테라 남은 연산력은 얼마나 돼?’
– …계산 결과 골렘 25기와 드론 500기 운용 가능합니다.
‘드론을 빼면?’
어차피 드론은 아이템으로 분류되어 놈이 스틸이 가능하니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모든 연산력을 골렘에 몰빵하는 것이 맞다.
그런 의도가 담긴 질문에 테라가 바로 답했다.
– 그럼 골렘 30기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골렘 30기.
수백만 마물 군단과 비교하면 매우 극히 매우 적은 숫자.
하지만 개조가 되면서 더욱 강해진 골렘인 만큼 별로 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거기다 나와 아서까지 포함되니 더더욱.
그리 생각하며 내 앞에 방어형 골렘 10기 아이언 골렘 20기를 전송했다.
쿵 쿵쿵!
철그럭 철그럭!
방어형 골렘들이 앵커를 바닥 깊숙이 고정하며 방어 모드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런 방어형 골렘 앞에 전송된 20기의 아이언 골렘들이 일제히 인간형으로 트랜스폼을 했다.
– 아이언 MK. 87 출격 준비 완료.
– 아이언 MK. 87 출격 준비 완료.
– 아이언 MK. 87 출격 준비 완료.
– 아이언….
「…음?」
머리 위에서 그리드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골렘 정확히는 골렘들에 장착된 장비들이 스틸 안 돼서 그런 거 같다.
‘당연히 안 될 수밖에.’
이유는 별거 없다.
골렘들은 아이템이 아닌 연금술로 만들어진 비생명체다.
그러므로 ‘아이템’만 훔칠 수 있는 스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덤으로 골렘에 부착된 장비 미니건과 아이기스는 골렘의 부품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아이템이라는 분류에서 벗어난다.
물론 골렘의 몸에서 떨어지면 바로 아이템으로 되돌아오지만.
– 적을 발견했습니다.
– 적을 발견했습니다.
– 적을 발견했습니다.
– 적을 발견….
아이언 골렘들의 눈에 달린 카메라가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위이잉 철컥철컥!
동시에 양 팔목에서 체인 소드와 방패를 꺼내 들고는.
– 적 처단 시작하겠습니다.
쿵쿵 바닥을 부수며 마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 아이언 골렘을 위해 나는 방어형 골렘 뒤에 ‘부서진 용기의 깃창(S-)’을 전송 땅에 박아 넣었다.
퉁!
깃창의 파동이 퍼졌다.
나와 아서 골렘들의 몸에서 붉은색의 오라가 피어오르고.
반경 1km 범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마물들의 몸에 보랏빛의 오라가 휘감겼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위이이이이이이잉─!
방어형 골렘에 달린 터렛 미니건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골렘을 따라 나 또한 미니건의 총열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마물 군단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10기의 방어형 골렘에 달린 20개의 터렛 미니건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지지지지지지직지직──!!
번개가 휘감긴 내 미니건이 불을 뿜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 님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아아 커다란 총.
매우 큰 총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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