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4
“외신 그것들이 아해를 인지했노라.”
외신.
찬탈자들이 너를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하는 백유화의 눈은 평소의 권태로움이 아닌 매우 진중한 빛을 띄웠다.
그만큼 무신에게도 심각한 내용이라는 뜻인데.
“아… 결국 그렇게 됐습니까?”
“…음? 결국?”
내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담담히 말해서일까.
예상외의 반응을 본 것처럼 백유화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결국이라고 한 걸 보니 이미 알고 있었나 보구나.”
“예 뭐… 사도가 도망쳤다고 들었을 때부터 대충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예상 못할 수가 없다.
네 번째 사도 놈은 내 치트의 근원이 외신 찬탈자들의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런 놈이 죽지 않고 이곳을 벗어난 이상 다른 사도는 물론 자신이 받드는 외신들에게 내 존재를 알렸을 것이다.
‘보고 안 할 수가 없지.’
가뜩이나 심상치 않은 적이 자신이 받드는 신의 힘을 가지고 있네?
나 같아도 죽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서 윗선에 보고를 할 것이다.
“하긴… 아해는 영리하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겠지.”
백유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아는 것과 별개로 심각성은 별로 못 느끼고 있는 거 같구나.”
어… 아뇨?
‘심각성 매우 잘 느끼고 있는데요….’
내가 담담해 보이는 것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건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해야 잘 듣거라.”
몇백 년을 산 1세대 초월자 무신.
그리고 내가 다니고 있는 아레나 아카데미의 이사장.
그분의 말을 어찌 끊을 수 있을까.
“외신 그것들이 아해를 인지했다는 것은 아해가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요 아해의 안전이 위험해졌다는 신호니라. 그러니 아해는 지금 상황을 우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렇다 보니 나는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일장 연설 그녀의 걱정 어린 충고를 조용히 경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외신의 위협 내 안전의 위험을 시작으로.
사도 타락자 마물 그리고 빌런.
각종 악(惡)에 대한 견해와 정의를 한참이나 듣고 나서야.
“…그래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외신 그것들의 정신 공격을 방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백유화의 입에서 본론이 흘러나왔다.
“내 말 이해했느냐?”
“…예. 이해했습니다.”
이해만 했을까.
백유화가 말하지 않아도 게임으로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외신의 정신 공격이 얼마나 강한지 파장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메인 퀘스트와 위업 퀘스트 두 보상을 정산하면 정신 관련 스킬이나 재능을 얻을 계획을 짜둔 상태다.
그러니 제발.
설교는 이쯤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내 간절한 바람이 전해진 것일까.
“흠 그래?”
백유화가 설교를 멈추었다.
“그럼 내가 약속했던 선물을 무엇으로 줄 지도 알겠구나.”
아니 설마.
지금까지 했던 설교가 선물 빌드업이었다고?
나는 순간 황당한 기분에 멍하니 백유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정신력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금 전까지 내 머릿속에 주입하다시피 한 사도와 외신의 위험성.
그리고 그녀가 몇 번씩이나 정신력의 강화를 강조했던 것을 떠올리면… 선물이 무엇일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그런 내 대답에 백유화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깨에 걸치고 있는 코트의 안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더니.
저번에 받았던 영능단처럼 영약이 들어있을법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었다.
“그래 아해의 말대로 내가 주려고 했던 선물은 정신력 강화에 좋은 것이니라.”
백유화가 그리 말하며 작은 상자를 내게 휙 던졌다.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상자를 받은 나는 이번에도 감사의 의미를 담아 넙죽 절을 올… 리려고 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유백이 그러더구나. 아해가 그랜절? 이라는 걸 아주 잘 한다고.”
갑자기 백유화의 입에서 교장 선생님에게 했던 그랜절이 튀어나왔다.
“나도 한 번 그 그랜절이라는 걸 보고 싶은데 해줄 수 있겠느냐?”
그 말에 내가 숙이지도 일어서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던 백유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싫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이사장님 제 절을 받아주십시오!”
어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려고!
나는 그녀가 서운해하기 전에 냅다 그랜절을 올려버렸다.
&
“절 중에 최고라더니 유백의 말대로 그러하구나.”
내 존경이 잔뜩 담긴 그랜절을 본 백유화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하하 웃으며 손에 쥐고 있는 상자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물론 지금 당장 상자 안에 든 것을 확인해보고 싶다.
하지만 무신이 있는 이 공간에서는 시스템 감정이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선물을 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상자를 개봉하기에는 내가 염치와 예의가 없지 않다.
그러니 선물을 확인하는 그 즐거움은 나중에 퀘스트의 보상 정산과 함께 하기로 하고.
이곳에서 나가기 전에 그녀를 보자마자 생각해두었던 것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안색이 창백한 이유 말이냐?”
“예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합니다.”
그러자 백유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구나. 내 안색이 창백한 이유가 왜 궁금한 것이냐?”
왜 궁금하기는.
반신이나 다름없는 초월자가 2세대 초월자와 힘이 비슷한 네 번째 사도를 놓친 것은 물론 싸우고 나서 힘들어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하지만 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그도 그럴 게 이사장님은 네 번째 사도를 따위로 만들 정도로 강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놈과 싸우신 후로 안색이 좋지 않으시니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 해서….”
내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게끔 그러면서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날것과 같은 생각을 최대한 순화시키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그런 정성스런 내 대답에 백유화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궁금할 만도 하겠구나. 사도 놈들보다 훨씬 강한 내가 사도를 놓치는 것은 물론 힘이 빠져 보이는 게.”
정말 궁금하다.
네 번째 사도는 어떻게 무신에게서 도망친 건지.
무신은 어째서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로 힘이 빠져버린 것인지.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증이 치솟는다.
하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흐음.”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겨있는.
허벅지에 얹은 손을 피아노 치듯 두드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그녀의 입술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아해야.”
드디어 그녀의 붉은빛 입술이 열렸다.
그리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정확히는 알지 못한.
“내가 네 번째 사도 그 잡것을 죽이지 못한 것은 이 세계 정확히는 이 공간에 묶여서 그런 것이니라.”
게임에 나오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주었다.
“…이 공간에 묶여있다는 뜻은 뭔가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겁니까?”
“역시 영리해서 그런지 바로 알아듣는구나.”
“….”
백유화의 칭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떠오른 기억 때문에 입이 다물어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무신의 출현이 드물었던 거구나.’
게임 ‘아레나 아카데미’에서 무신은 외신이 나타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까지 출현 빈도가 매우 낮다.
그래서 나는 물론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하면 무신을 움직일 수 있을지 수많은 방법을 찾아봤었다.
하지만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타락자를 방치해도.
사도를 아카데미에 유인을 해봐도.
플레이어가 해결할 수 없는 세계에 영향을 끼칠 그런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무신은 절대 플레이어를 돕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이 공간에 묶여서일 줄이야.’
나는 마치 세상의 비밀을 푼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잠깐만… 그러면 지금 앞에 있는 무신은 무리하고 있다는 거 아냐?’
외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게임의 무신과 달리.
현실의 무신은 네 번째 사도를 상대하기 위해 제약이 있음에도 이 공간을 벗어났다.
그렇다는 건 제약이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아니 이미 강해졌을 수도.’
나는 그리 생각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물어보려는 순간.
“아해가 생각한 것이 맞느니라.”
백유화가 먼저 제약이 강해졌음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제약이 조금 강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사도 대 여섯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으니.”
사도 대 여섯은 거뜬히 상대한다라….
‘그러기엔 네 번째 사도를 놓치지 않았나.’
거기다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로 힘이 빠지기까지 했는데.
무슨 수로 사도 대 여섯을 상대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또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단 말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저 위대하고 고귀한 무신이 허풍을 친다는 것이.
‘그러면 사실이라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 그건가?’
나는 방금 전에 백유화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세계 이 공간에 묶여있어서.’
차원 균열 다른 세계에서는 힘을 못 쓰는 건가?
그 생각에 그리 묻자.
“그래 맞다. 아해가 생각한 대로 나는 차원 균열 그 안에서 힘을 쓰지 못하니라.”
백유화가 수긍했다.
‘그렇다면… 이사장님의 제약이 심해지기 전에 서둘러 강해져야해.’
어째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감내해야만 한다.
사도가 나타날 때마다 무신이 이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면.
외신들이 나타났을 때 무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면.
내가 빨리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이사장님 제가 빨리 강해지겠습니다.”
“그래 노력하거라.”
백유화가 후후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저번과 같이 내 몸이 뒤로 휙 밀려났다.
띵.
그리고 이번에도 타이밍에 맞게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가게 되었고.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다음을 기약하는 백유화의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내려갑니다.]
두 번째 알현이 끝이 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 님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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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막덕후] 님 15코인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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