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아까 말했듯이 치명상은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싸우도록 해라.”
강철수의 말에 이서연과 아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시합을 시작할테니 자세를 잡도록.”
이서연이 고고하게 선 자세 그대로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반면 아스카는 오른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숙이고 양손을 교차하며 두 검의 손잡이 위로 손을 올렸다.
그 둘을 번갈아보며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한 강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시합 시작.”
그 말과 동시에 이서연이 고아하게 검을 뽑았다.
그리고 아스카는….
“뭐 뭐야… 쟤 갑자기 분위기가….”
“…전혀 다른 사람 같은데.”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는 순간 언제 해맑았냐는 듯 아스카의 표정이 싹 변하였다.
이서연 못지않은 싸늘한 표정의 아스카.
관중석에선 그런 아스카의 갑작스러운 변모에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들을 보며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저 정도의 변화는 고작에 불과하다고.
‘아스카가 가지고 있는 그 ‘재능’은 좋긴 한데….’
이중인격처럼 사람을 너무 변화시키는 게 단점이다.
그래도 상대가 이서연이니 그렇게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서연은 강하다.
나는 이서연이 아스카의 폭주를 쉽게 해결할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
스릉!
“…!”
아스카가 검을 뽑는 순간 터져나오는 날카로운 기세에 이서연의 눈이 놀람으로 살짝 커졌다.
마냥 발랄한 줄 알았던 사람의 변모에는 그닥 놀라지 않았던 이서연이었지만 이번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찌릿 찌릿.
세 번째 시험 때 맞붙었던 아서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기세.
몸에서 전기가 일어나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투기(鬪氣)?’
아니다.
이서연은 바로 부정했다.
이 기세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류의 기세가 아니었다.
‘이 기세는….’
…포식자(捕食者)의 기세다.
맹수가 먹이를 노릴 때의 그 포악한 기운.
어렸을 때 훈련의 일환으로 맹수를 사냥했던 적이 있다.
그때 마주쳤던 맹수의 기세가 아스카가 내뿜고 있는 기세와 똑같았다.
하지만 기세만 똑같을 뿐 그때의 맹수보다 아스카의 기세가 더욱 포악스럽다.
그리고 느껴지는 감정 또한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살의(殺意) 하나밖에 없었다.
‘…재능?’
이서연은 아스카의 상태를 바로 알아챘다.
아스카 그녀는 지금 재능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조절은커녕 재능에 휘둘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를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할 수밖에.
이서연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아스카가 흠칫 놀란다.
검을 뽑는 순간 재능에 먹혀 이성이 침몰되고 본능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이서연에게서 뿜어지는 기세에 몸을 움츠렸다.
오히려 본능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타닷!
마치 짐승처럼 움츠러들었다는 것에 더욱 분개하듯 아스카가 바닥을 박차며 이서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아스카의 저돌적인 돌진에 이서연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격돌했다.
채애앵─!
아스카의 쌍검이 이서연의 검을 때렸다.
쇠와 쇠가 날카로운 소음이 경기장을 넘어 관중석에까지 퍼져 나갔다.
카가가가각…!
날카로운 소음을 이어 쇠가 갈리는 소음이 연속해서 울려 퍼진다.
아스카가 검을 부딪친 상태 그대로 힘을 주어 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서연은 서 있는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스카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두 손이 아닌 한 손만으로.
챙!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스카가 이서연의 검을 튕겨냈다.
그러고는 더 이상 분홍색이 아닌 피와 같은 검붉은색 눈동자를 빛내며 본격적으로 쌍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채앵!
왼손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채앵!
오른손의 검은 아래에서 위로.
챙 채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채애앵!
대각선에서 대각선으로.
채애앵!
왼손으로 찌르면서 오른손으론 횡으로.
점차 아스카의 호흡이 짐승처럼 거칠어져간다.
점차 아스카의 손놀림이 빨라져간다.
강검(强劍)에서 유검(流劍)으로.
유검(流劍)에서 중검(重劍)으로.
중검(重劍)에서 환검(換劍)으로.
환검(換劍)에서 변검(變劍)으로.
변칙적으로 변하는 검로(劍路)속에 쾌검(快劍)이 더해져 폭풍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폭풍 같은 검격에도 불구하고.
채재재재재재쟁!
이서연의 발은 조금도 밀려나질 않았다.
고고하게 선 자세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스카의 검격을 막아낸다.
강검에는 강검으로.
유검에는 유검으로.
같은 검로를 그리며 검을 부딪친다.
“…허억 허억.”
“….”
아스카의 거칠어진 호흡.
그에 반해 이서연의 호흡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고요한 폭풍의 눈처럼.
넘을 수 없는 벽이 아스카의 앞을 가로 막았다.
&
끝났다.
이서연의 검이 아스카의 검을 완전히 파악했다.
능력치의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검로까지 파악당했다.
이제 아스카에게 남은 것이라곤 패배밖에 없다.
‘애초에 상대부터 틀렸지.’
이서연이 가지고 있는 S등급 재능 중 ‘검의 귀재’ 라는 것이 있다.
그 재능은 ‘검’에 한정하여 미친듯한 보정을 준다.
검을 처음 잡아도 ‘검의 귀재’의 재능을 갖고 있으면 오랫동안 수련한 검사처럼 능숙하게 휘두를 수 있고.
그 누구든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휘두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검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더 나은 검로를 만들어낸다.
지금 보는 것처럼.
채재재재재쟁!
“…?!”
아스카의 검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생기기 시작하는 상처들.
본능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아스카가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분명 똑같은 검로다.
비록 자세는 틀리더라도 같은 검로를 그리며 부딪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조금씩 이서연의 검로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씩 조금씩 아스카의 검로보다 나은 검로를 그려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챙강!
아스카의 오른손 검이 부서졌다.
강검으로 휘두른 검이 강검에 부서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왼손의 검 또한 부서졌다.
“…아.”
검이 부서짐에 따라 이성이 돌아온 아스카가 탄식을 흘렸다.
그런 아스카의 모습에 이서연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직도 검을 쥐고 있는 아스카의 손을 향해.
퍽 퍽!
“…악!”
검날이 아닌 검등으로 친 것이긴 하지만 손에서 강제로 검자루를 떨구게 할 만큼 강하게 친 것이기에 아스카가 아픈 소리를 질렀다.
“힝 아파.”
아스카가 울먹이는 얼굴로 제 손을 감쌌다.
이서연이 그런 아스카를 바라보았다.
검을 쥐었을 때부터 바뀌었던 눈동자를 확인했다.
피와 같은 핏빛 눈동자가 아닌 벚꽃을 닮은 분홍색 눈동자.
제 눈동자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이서연은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상대의 맹수 같던 기세가 완전히 사라졌으니 더 이상 검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B조는 이서연의 승리다.”
강철수가 그리 말하며 스마트 워치를 조작하자.
띠링.
[B]
[03][이서연][승]
[04][슈헤이 아스카][패]
B조의 대진표 결과가 날라왔다.
강철수가 아스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실력 잘 보았다 슈헤이 아스카. 과연 쌍검룡의 계승자다운 검술이었다.”
하지만 이라고 덧붙이는 강철수.
그가 진지한 얼굴로 아스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재능을 조절하지 못하더군. 그리고 오히려 잡아먹힌 것 같은데 맞나?”
“…네.”
아스카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아스카의 모습에 강철수는 이마의 흉터를 긁적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우리 같은 초인에게 재능이란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지. 그런 정체성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초인에게 기다리는 것은 오직 파멸(破滅)뿐이다. 그러니 슈헤이 아스카. 너는 그 재능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너도 언젠가 타락자(墮落者)가 될 테니.”
그런 강철수의 말에 아스카는 물론 관중석에 있는 모든 애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영웅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재능에 잡아먹혀 타락자가 되는 것이다.
타락자가 되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쉽다.
재능에 완전히 잠식(蠶食) 당하면 된다.
초반엔 재능에 잡아먹혀도 아스카처럼 재능이 발현되는 주체를 손에서 놓게 되면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서 점차 재능에 잠식되어가면 가진 성향이 뒤틀리면서 빌런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빌런이 되고 개심(改心)되지 않은 채 완전히 잠식되어버리면 결국 타락자가 되어버린다.
타락자가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영혼이 바뀐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타락자가 되면 재능은 정반대의 효과로 변한다.
그리고 성향이 뒤틀린 것을 넘어 악(惡) 그 자체가 되며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쾌락과 희열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타락자는 보이는 족족 멸(滅)해야 할 정도로 인류의 공적(公敵)인 것이다.
“…노력할게요.”
“슈헤이 아스카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제어해야 한다. 알겠나?”
“…네.”
강철수의 신신당부에 아스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나는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게임에서이긴 하지만 아스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왜 저렇게 주눅이 드는 건지 알고 있다.
사실 아스카가 발랄한 모습을 보이는 건 방어기제나 마찬가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능 ‘광룡혈(狂龍血)’.
그 재능은 일본의 슈헤이 가(家)에서 대대로 이어져 오는 S등급 재능이자 저주다.
그녀의 가문에서 익히 내려오는 비전 검술이 하나 있는데 그 검술의 명칭은 ‘용살검(龍殺劍)’으로 말 그대로 용을 죽이는 검술이다.
그런데 왜 용을 죽이는 검술을 익히는 가문에서 용의 핏줄이 이어져 내려오는 걸까.
그건 아스카의 호감도를 80% 정도 올리다보면 왜 광룡혈이라는 재능이 대대로 이어져 오는지 알 수가 있다.
너무 긴 내용이라 간략하게 말하자면 아주 오래 전 슈헤이 가에서 용살검이라는 검술을 만들어 가문의 수호룡이었던 광룡을 죽였고 광룡이 죽으면서 남긴 저주로 인해 가문 대대로 ‘광룡혈’이라는 저주이자 재능이 전해지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스카에게까지 광룡혈이 이어졌고 저주로 인해 검만 뽑으면 이성이 가라앉고 흉포해진 본능만이 남는 것이다.
그래서 아스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인 슈헤이 켄토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광룡혈을 제어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제어를 못할 때마다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은 정신적 두려움.
그 두려움 때문에 아스카는 정신적 방어기제로 언제나 밝아보이는 것이다.
‘당장 도와주고 싶긴 한데….’
그럴 수가 없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아스카의 광룡혈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 아스카의 아버지인 슈헤이 켄토처럼 초월자가 되어 저주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
두 번째 용의 심장을 섭취해 자신의 심장을 용의 심장으로 바꾸는 것.
세 번째 대성녀(大聖女) 글로리아의 해주(解呪)를 받는 것.
이렇듯 거의 불가능이라고 할 정도로 무척이나 어렵다.
그나마 빠른 해결 방법은 세 번째 대성녀의 해주를 받는 것이다.
1세대 초월자이자 신의 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의 예쁨을 받는 여인 글로리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에야 미국의 대신전에 처박혀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나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인 노아와 친해지는 것이다.
남자인 데다가 호감도 쌓기가 좀 힘들긴 하지만.
노아의 호감도를 일정 이상 쌓으면 1학기 후반쯤에 시행하는 결투 시즌쯤에 좋은 친구인 나를 소개시켜주고 싶다며 글로리아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면 결투 시즌이 시작되고 관람석에 글로리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노아의 경기가 끝나고 이벤트 형식으로 글로리아와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그러니 그때를 노린다.
우선 노아와 친해지는 게 첫 번째지만 노아가 좋아하는 건 대부분 알고 있으니 호감도 쌓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만약 이 방법이 안 된다면….’
용을 잡거나 용의 심장을 구해다주지 뭐.
내가 그렇게 계획을 잡고 있을 때 이서연과 아스카가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힘없이 계단을 올라온 아스카가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졌어요.”
힝 하고 울먹거리는 아스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을 지은 아스카의 모습에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실망하고 우울해하는 건 패배해서 그런 것도 강철수에게 쓴 조언을 들은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괴로움에 힘들어하는 것이므로.
나는 감히 괜찮다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슥슥.
“…엣.”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아스카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엣 에엣.”
고장이 나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서연의 ‘검의 귀재’. 정말 사기적인 재능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시험에서 아서에게 밀린 이유는 아서의 ‘요정안’의 효과도 있지만 가진 능력치의 차이도 있죠.
그리고 아서에게 또 다른 재능 덕분도 있지만 그건 후기에서 말씀드리기엔 스포일러라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네요.
하지만 이건 말할 수 있습니다.
아서는 너무 사기야!
—
아 그리고 이서연에 대한 피드백은 안 해도 될 만큼 완벽했기에 강철수는 이유진에게 말했던 것처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스카에 대한 조언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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