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앗 이런! 아스카가 고장이 나버렸다!
그런 한 게임의 문구가 떠올랄 정도로 아스카의 반응은 격렬했다.
고작 머리를 쓰다듬은 것뿐인데 아스카의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를 것처럼 얼굴색이 붉게 물들었다.
“에 에… 저기 수석 씨… 손에서 머리 좀….”
얼마나 당황했으면 머리에서 손을 치워달라는 게 아니라 손에서 머리를 치워달라고 하는 걸까.
나는 점점 붉어지다못해 곧 터질 것 같은 아스카의 얼굴색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치워주었다.
그러던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졌다.
그 기세에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이서연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녀가 화났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 왜…?’
도저히 모르겠다.
아직 나는 그녀의 호감도를 쌓은 상태가 아니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네올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건 호감도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나에게 화낼 이유가 없을 텐데…?
나는 이서연이 왜 화난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러는 건지는 알 수 있었다.
“…엣.”
그래서 다시 핑뚝 아니… 아스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다시 당황스러워하는 아스카를 이어.
찌릿.
가라앉았던 이서연의 기세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여기 에어컨 세게 틀어놨나…?”
“그러게… 나 너무 추워.”
이서연의 무서운 기세에 그녀 주변에 있던 애들이 에어컨 핑계를 대며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들에 나는 히끅 딸꾹질을 하고 있는 아스카의 머리에서 손을 치웠다.
그러자 다시 가라앉는 이서연의 기세.
그런 이서연의 반응에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히끅… 히끅…!”
얼굴을 잔뜩 붉히며 연신 딸꾹질을 하는 아스카의 모습을 보니 머리에 손을 더 올렸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손을 완전히 자켓 주머니에 넣고 나서야 날 바라보던 이서연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나도 곧 시작될 시합에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전에.
“…히끅!”
아스카에게 물 좀 줘야겠다.
&
[C]
[02][아서 펜 드라곤][승]
[08][김우민][패]
C조의 경기는 시작한 지 10초만에 끝났다.
김우민도 순위 8위에 들 만큼 조연급 인물 중에서 강한 애긴 한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몇 합 나눠보지도 못하고 아서에게 털려버렸다.
그리고 지금 치뤄지고 있는 ‘D’조의 시합.
5위 노아 대 6위 박가람.
쾅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주연급과 조연급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성녀 글로리아의 아들 노아.
그가 양 주먹에 황금빛의 성화(聖火)를 두른 채로 대결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보랏빛 머리카락과 보랏빛 눈을 한 여성 박가람이 손에 보랏빛 화염구를 만들어내며 노아를 향해 쏘아 보냈다.
농구공 크기의 화염구가 빠른 속도로 노아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노아는 침착하게 성화를 두른 주먹을 내질러 화염구를 터트려버렸다.
눈앞에서 화염구가 터지면서 뜨거운 열기가 덮쳤음에도 노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박가람을 향해 계속 돌진할 뿐이었다.
“과 과연 대 대성녀 님의 아 아들…. 마 마법이 토 통하지 아 않네?”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노아의 모습에 박가람이 말을 더듬으며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그 그럼… 이 이것도 안 통하는지 보 보여 주 줄래?”
그리 말하며 방금 전의 화염구와 다른 회색의 화염구가 그녀의 손에서 피어 올랐다.
그러자 박가람을 향해 달리던 노아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뛰던 것을 멈추었다.
“그 마력의 색… 회색 마녀의 마력이군요.”
노아의 입에서 나온 회색 마녀라는 말에 관중석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회색 마녀라면 빌런에서 영웅으로 개심했다는 초월자 아냐?”
“정확히는 상위급 빌런 때 무신 님의 종용으로 개심한 거지.”
“…아무튼 그 초월자의 마력을 쓴다고? 설마 쟤 회색 마녀의 제자인가?”
역시 아레나 아카데미의 학생들.
역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약간 틀린 게 있었는데.
‘과연 종용(慫慂)일까?’
악(惡)이라면 치를 떠는 그 무신이?
나는 당장이라도 저 애들이 잘못 알고 있는 역사를 고쳐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설령 알려준다고 해도 학생들의 절대 우상(偶像)이나 다름없는 무신과 관련된 이야기인만큼 제대로 믿지도 않을 것이다.
박가람의 스승이자 빌런에서 영웅으로 개심한 초월자.
회색 마녀 키르케(Kirke).
사실 그녀는 종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용 당한 것이다.
한창 상위급 빌런이던 시절 키르케는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심심하다는 이유로 한 도시의 인구를 전부 동물로 변신시키는 등 악독한 짓을 많이 저지르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악독한 짓은 19일을 넘기지 못했는데.
19일이 되던 날 무신에게 발각되어 잡히고 만 것이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는 무신에게 양자택일을 강요당했는데.
그것이 19일 동안 처맞고 죽을래 순순히 개심해서 영웅이 될래 라는 선택 아닌 선택이었다.
이에 키르케는 기아스 스크롤에 절대적인 맹세를 서약하며 영웅이 되었다.
그 대신 부작용으로.
집 밖을 나가기 싫어한다.
사람을 동물로 변신시킨 적은 있어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기에 무신에게 죽지도 맞지도 않았지만 무신의 압도적인 기세에 기가 팍 죽어버린 나머지 악독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 보이는 박가람처럼 음침한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무신과 한 기아스에 따라 가끔 집 밖으로 나가 영웅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박가람과의 호감도를 일정 이상 쌓았을 때 알게 되는 사실인데.
키르케가 박가람을 제자로 삼은 이유가 자신과 비슷하기도 하고 박가람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영웅으로서 활동을 하면 그녀를 제자로 삼아 가르친 것으로 영웅으로서 공헌을 하는 것이니 굳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서 그랬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키르케의 제자라고 하니 애들은 박가람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찐따녀에서 초월자 회색 마녀의 제자로.
이래서 배경이 중요한 것이다.
아니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서 격차를 보여주던가.
“히 히힛. 마 맞아. 나 나 스 스승님에게 마 마법을 배 배웠어.”
“…대단하신 분이셨군요. 그 은둔자(隱遁者) 회색 마녀의 제자라니.”
“으 은둔자? 스 스승님은 그 그냥 바 방구석 찌 찐딴데.”
“….”
자신의 스승을 필터링을 거치지도 않고 방구석 찐따라고 말하는 박가람의 순수성에 노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 노아의 모습에 박가람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무튼. 이 이것도 마 막아 볼래?”
막아본다고 대답도 안했건만 박가람은 물음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날리며 손 위에 타오르는 회색 화염구를 노아를 향해 쏘아 보냈다.
화르르르륵!
확실히 회색 마녀의 마법이라고 무언가 다른 것인지.
연신 쏘아댔던 보랏빛 화염구와 다르게 회색 화염구는 농구공 크기에서 점점 커져가더니 이윽고 사람만한 크기로 불어났다.
그리고 경기장 바깥에까지 열기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것 같은데.
“엄청난 화력이군요.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제게도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말만 그렇게 할뿐 여전히 노아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보기 힘든 회색 마녀의 마법을 견식하게 해주셨으니 저 또한 보답을 해야겠지요.”
노아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러자 손에서부터 노아의 전신으로 퍼지는 성화.
노아가 맞잡던 손을 풀었다.
지근거리까지 근접한 커다란 화염구.
그 화염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노아가 말했다.
“임마누엘(Immanuel).”
그리고 빛이 강림했다.
&
“아악! 내 눈!”
“누 눈이 안 보여!”
“교관님 치료실! 아니 응급실에 데려다 주세요!”
노아의 진심 기도 펀치에 경기장은 물론 훈련실 전체에 빛이 쏟아졌다.
그 빛에 눈뽕을 제대로 당한 애들은 전부 눈을 부여잡으며 하늘의 빛을 목격한 소감을 고통으로서 답했다.
물론 나는 노아의 ‘임마누엘’이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눈을 감아서 멀쩡하다.
“…흐엣.”
아스카 또한 내가 눈을 감으라고 신호를 준 덕에 멀쩡하다.
이서연이나 아서는 능력치가 높아서 그런지 강렬한 빛이 눈을 찔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띠링.
[D]
[05][노아][승]
[06][박가람][패]
“D조는 노아의 승리다.”
강철수의 말이 들림과 동시에 빛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경기장이 보였을 땐 노아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박가람은….
“끼… 아아아아….”
…괴상한 소리를 흘리며 바닥에 콩벌레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음침한 마녀의 제자에게 하늘에서 쏟아진 빛은 너무나도 신성했나보다.
그런 박가람의 모습에 강철수는 이마의 흉터를 긁적였다.
“…음 치료실에 데려다 놔야겠군.”
웅크린 자세 그대로 박가람을 들어 올려 옆구리에 낀 강철수가 관중석을 향해 말했다.
“다음 4강전은 정확히 5분 뒤에 시작할 테니 수석 이유진하고 이서연은 미리 경기장에 내려와 준비하고 있도록.”
그 말에 나와 이서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경기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가던 중.
띠링.
손목의 스마트 워치가 아닌 머릿속에 시스템 알람음이 들려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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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퀘스트(Event Quest)
【위엄(威嚴)】
주연급 인물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수석의 위엄을 보여주십시오.
□이서연에게 승리하기.
□아서 펜 드라곤에게 승리하기.
– 보상 : 10000포인트(활약에 따라 추가 보상) B등급 아이템 선택권 B등급 재능 및 스킬 선택권 랜덤 치트 사용권 3장
– 실패 : 모든 주조연급의 호감도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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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상 빠방한 이벤트 퀘스트가 떴다.
&
&
&
“준비는 되었나?”
강철수의 말에 나와 이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연은 아까와 같은 고아한 자세로 검을 뽑을 준비를.
나는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며 언제든지 쏠 수 있게 준비를.
그런 나와 이서연의 모습에 강철수가 자리를 박차며 멀어졌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싸우도록.”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스릉!
이서연이 출검을 하며 바닥을 박쳤고.
나는 그녀를 향해 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벤트 퀘스트… 떴다!
—
임마누엘(Immanuel).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
기아스(Geis).
켈트 신화에 나오는 일종의 맹세로 마법적인 구속이나 저주라고 합니다.
기아스를 통해 맹세를 하게 되면 그 맹세를 지키는 동안은 괜찮지만 어기는 순간 강력한 대가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만큼 강력하다보니 절대적인 맹세라고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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