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잠시 분위기가 이상해지긴 했지만 작전을 시작하겠다는 내 말에 모두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흩어졌다.
다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기에 사소한 해프닝은 넘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이서연의 조는 서쪽으로 아서의 조는 남쪽으로 노아의 조는 북쪽으로.
나와 박가람 임다희는 동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이쯤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임다희라면 몰라도 체력 최저인 나와 마법사인 박가람이 어떻게 빨리 달리는 것인지.
그건 작전 시작으로 모두 흩어지기 전 노아가 버프를 걸어준 덕분이다.
그가 걸어준 버프는 ‘기력 회복 속도 증가’ ‘이동속도 증가’ ‘육체 강도 증가’ ‘정신력 증가’ 이렇게 네 가지였는데.
노아는 자신이 전투 위주로 성법(聖法)을 배웠기 때문에 배운 강화류의 성법은 고작 이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가 걸어준 버프는 지금 상황에 딱 알맞은 것이었으며 대신전에서 ‘성자’라고 불리는 것답게 효과가 매우 좋았다.
“수 수석. 우 우리 부 분명 버프 바 받았잖아. 그 근데 왜 쟤보다 느 느린 거 같지?”
“…임다희 쟤는 육체파 초인이잖아. 우리와 다르게.”
“아 아하.”
가끔 엉뚱한 말을 내뱉는 박가람 말대로 임다희는 우리보다 조금 앞서 달리고 있다.
나와 박가람이 버프를 받은 것처럼 임다희 그녀도 똑같이 버프를 받은 상태.
그리고 임다희는 전기 스킬로 속도를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육체파 초인이었어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은 같이 활동해야하는 조였기에 속도를 맞춰 달리고 있는 것뿐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앞에서 꺼져─!”
– 끼에에엑?!
쾅 콰앙!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양옆으로 튕겨나가는 마물들.
노아의 버프 효과가 매우 좋은 것도 있지만 이제 전기 스킬을 순간순간 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임다희는 강한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여전사 모드라도 그렇지 성격이 너무 바뀐 거 아냐?
처음 조를 편성했을 때의 의기소침했던 임다희가 맞나?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앞에서 열심히 길을 열던 임다희가 크게 나를 불렀다.
“이유진─! 코어에 거의 근접했나 봐! 네가 말한 대로 마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어!”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마기가 점점 짙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니 느껴질 뿐만 아니라 마기(魔氣) 특유의 불쾌하고 거북한 기운이 안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웩… 기 기분 나빠….”
박가람이 인상을 찡그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마기가 짙어짐에 따라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마력.
마력량이 적은 나와 임다희는 참을만했지만 박가람은 마법사답게 마력량이 많아서 그런지 꽤나 힘들어 했다.
이에 나는 박가람에게 마력으로 몸을 감싸라며 조언을 해주었다.
“…후 후아.”
몸을 코팅하듯이 마력으로 감싸고 나서야 박가람은 다소 편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방법도 원래는 실습이 끝나고 이론으로 배운다.
‘그래도 실전만큼 확실한 건 없지.’
이론도 좋긴 하지만 실력이 빠르게 늘어나는 방법은 실전밖에 없다.
나나 주연급 애들은 몰라도 박가람과 임다희 그리고 이름 모를 10명은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순위를 바꿔야 할 정도로 강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풍경이 이제 흐릿하다 못해 어두컴컴하다.
마기의 안갯속에 깊이 들어왔다는 증거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 정지.”
코어에 근접한 것이기도 하다.
“…수 수석?”
“이유진 갑자기 왜?”
내 지시에 앞에 뛰어가던 박가람과 임다희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로 다가오려는 것을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 대기.”
“…어 어?”
“…왜?”
갑자기 다가오지 말라고 하는 내 말에 둘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둘이 당황하든 말든 상관없이 인벤토리에서 충격파 수류탄 두 개를 꺼내 각각 하나씩 둘에게 던져주었다.
“이 이걸 왜?”
“….”
수류탄을 받은 박가람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반면 임다희는 내 행동에서 무언가 눈치를 챘는지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 지금부터 아주 쉬운 문제를 낼 거야.”
“무 문제?”
“…갑자기?”
그래 당황스럽겠지.
코어를 찾으려고 열심히 뛰다가 갑자기 멈춰서서 이상 행동을 벌이니.
나 같아도 ‘이 새끼 미쳤나?’ 라고 생각이 들 거다.
그런데 이 미친 행동이 나만의 확인 절차다.
그러니 잘 따라줬으면 좋겠네.
나는 싱긋 웃으며 전술 조끼의 홀스터에 꽂아두었던 ‘홀리 건’과 랜턴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랜턴을 들고 있는 왼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이 랜턴은 건전지가 아닌 마력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물건이야.”
“조 좋은 거야?”
“…그래서.”
순수하게 묻는 박가람과 다르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듯 퉁명스럽게 보는 임다희.
나는 그런 임다희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마력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물건은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
나를 바라보는 임다희의 시선이 퉁명스럽다 못해 점점 적의를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 치명적인 단점을 이렇게 알고 있더라고.”
마력을 충전하지 못하면 사용하지 못한다.
“맞아 그것도 맞는데 그건 치명적인 게 아니야. 마력을 다시 충전하면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게 어떻게 치명적인 단점이야.”
“…이유진 너 지금 이상한 거 알아?”
임다희가 수류탄을 바닥에 버리며 나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한시라도 빨리 코어를 찾을 생각을 안 하고 너 진짜 이유진 맞아?”
“마 맞아. 수 수석. 너 지 지금 이상해.”
박가람도 임다희의 말에 동의하듯 나를 향해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그런 둘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틱 티딕.
갑자기 멀쩡하던 랜턴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치명적인 단점은.”
다시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티디디디딕.
랜턴이 점멸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꺼질듯 말듯하는 랜턴의 점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기(魔氣)를 품고 있는 생명체가 가까이에 있으면 이렇게 망가지려고 한다는 거야.”
“….”
임다희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표정이 인형처럼 딱딱하게 변하였다.
그리고 점점 모습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마물 구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히 히에엑!”
갑자기 옆에 있던 임다희가 마물로 변하자 박가람은 기겁하며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임다희… 정확히는 임다희로 변한 변종 마물 ‘따라쟁이 구울’은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들켰네?”
입을 쭉 찢으며 말하는 구울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어 들켰어.”
그러곤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구에서 쏘아진 총알이 내가 표적으로 삼은 곳을 향해 쇄도했다.
팅!
따라쟁이 구울이 바닥에 떨어뜨렸던 수류탄의 핀이 뽑혀져 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파.
콰아앙!
– 키에에엑…!
충격파에 튕겨져 나간 따라쟁이 구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가람이 내게 다가오려고 했는데.
나는 다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왜 왜?”
박가람이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대답해주었다.
탕! 팅!
“아 아니… 나 나는 마 마물이….”
“응 너 마물 맞아.”
콰아앙!
– 키에에엑!
박가람으로 변해있었던 따라쟁이 구울이 이번에도 충격파에 맞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티디딕… 틱.
“이제야 정상 작동하네.”
랜턴의 점멸이 멈추었다.
나는 다시 랜턴을 전술 조끼에 끼우며 인벤토리에서 섬광탄 하나를 꺼내 위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빛이 있으라.”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삐이이이이익─!
강렬한 빛에 어둠이 사라진다.
– 키에에엑!
– 끼아아아악!
– 크아아악!
어둠이 사라지며 빛에 노출된 마물들이 괴로운 듯 눈을 부여잡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따라쟁이 구울에게 덮쳐지기 직전이었던 박가람과 임다희를 발견했다.
“…에 에? 수 수석이랑 이 임다희가 아 아냐?”
“…둘 다 마 마물이었다고?”
어벙한 표정으로 따라쟁이 마물을 보고 있는 박가람과 임다희.
박가람은 같이 있던 놈들이 마물이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눈치였고.
임다희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은데 두 놈 다 마물이었을 거라곤 생각을 못한 듯 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외쳤다.
“둘 다 이리 와!”
“…엣 수 수석!”
“…이유진!”
내 부름에 박가람과 임다희가 섬광탄의 빛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마물들을 뚫고 내게 다가왔다.
“지 진짜 수 수석 맞지?”
“너희 둘 다 마물 아니지?”
따라쟁이 구울에게 당한 게 있어서인지 불신이 담긴 눈으로 나와 서로를 바라보는 둘.
나는 그런 둘에게 불신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
그리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다시 섬광탄을 꺼내 위로 던지며 총을 쏘았다.
탕!
삐이이이이익─!
수전증으로 마구 흔들리는 총으로 섬광탄을 맞추는 기예를 보여주자 그제야 박가람과 임다희는 나를 진짜로 인식했다.
그리고 내가 알려준 대로 각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박가람은 마법을.
임다희는 전기 스킬을.
“…지 진짜 수 수석하고 이 임다희구나.”
“…너도 진짜 박가람이고.”
모인 사람들이 진짜인 것을 확인한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유진. 너는 어떻게 알았어? 저 이상하게 생긴 마물이 모습을 따라한다는 걸?”
임다희의 질문에 나는 적당히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론적으로 많은 공부를 했다.
따라쟁이 구울은 코어 근처에만 있는 변종 마물로 이에 대해서는 마물 사전에서 보았다.
아포칼립스 테마의 코어가 마기를 뿜어내서 모습을 감추는 거는 균열 서적에서 보았다 등등.
진실과 거짓을 섞어 알려주었다.
‘사실은 내가 게임에 3만 시간을 꼴아박은 고인물이기 때문에 알고 있던 거다 라고 어떻게 말해.’
…창피해서 말 못 하는 게 아니다.
절대 안 믿을 게 뻔하니까 말 안 하는 거다.
“수 수석 또 똑똑해.”
“…그래?”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박가람은 감탄하면서 나를 보았지만 임다희는… 눈치가 빨라서 그런지 말속에 거짓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아챈 거 같다.
그런데 네가 뭘 어쩔 건데.
내가 고인물인 걸 네가 어떻게 알 건데.
“…아무튼 알겠어. 그럼 저게 코어라는 거네?”
임다희가 창끝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창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섬광탄의 눈뽕에 정신을 못 차리는 마물들 사이에 심장처럼 생긴 것이 거세게 맥동하며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 맞다.
저게 바로 코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코어는 다 저렇게 징그럽게 생긴 거야?”
“아니 여기 아포칼립스 테마만 그래. 다른 이면 세계의 코어는 마정석처럼 생겼어.”
“…그래?”
임다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정석처럼 예쁘게 생긴 코어도 아니고 처음 보는 코어가 저런 거라니.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파지직!
“…여기서 얼른 나가자.”
임다희가 창날에 전기를 부여하며 그리 말하자.
“마 맞아. 어 얼른 여 여기서 나 나가자.”
박가람이 극적으로 동의하며 손에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이에 나는 권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 소총과 유탄 발사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총알과 유탄을 퍼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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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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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유웅….
남쪽에서 조명탄이 쏘아지는 것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서쪽 북쪽에서 조명탄이 쏘아 올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있는 동쪽에선.
콰직!
이제 막 코어를 갈기갈기 찢은 상태였다.
“속 시원하네.”
주변에 널린 마물들의 시체와 더 이상 마기를 뿜어내지 않는 코어.
그런 코어 위에서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임다희와 박가람을 보며 나는 인벤토리에서 조명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위를 향해 조명탄을 쏘았다.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섬광이 위로 치솟았다.
이로써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는 모든 서브 코어가 파괴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메인 코어 하나.
그것만 부수면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 있다.
“…하 힘들다.”
아카데미 생활 하루 째인데 이거 맞냐.
가슴이 아주 그냥 웅장해진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갸아아아악!! 오늘도 늦게 올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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