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
강철수는 자신이 했던 말과 나와 한 약속을 모두 지켰다.
타락 신봉자의 사지를 모두 찢되 죽이지 않는 것.
하지만 오히려 그 약속이 타락 신봉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제발 제발 죽여 줘…!”
“음 나도 당장 네 대가리를 터트려 주고 싶지만 제자의 부탁이 있어서 말이지.”
강철수가 그리 말하며 아공간 반지에서 회복 물약을 하나 꺼내 들자.
“아 안 돼…!”
타락 신봉자가 주사 맞기 싫은 아이처럼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오뚜기처럼 몸통만 남은 그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
“안 돼 안… 그르르륵…!”
결국 입에 회복 물약이 쑤셔 박히고 말았다.
꿀꺽 꿀꺽.
물약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타락 신봉자의 팔다리가 있던 부위가 치료되어 간다.
그에 비례해서 놈의 얼굴엔 절망 고통 분노 등 각종 부정적인 감정들에 물들어갔다.
그 모습에 나는 놈이 죽여달라고 애원한 이유가 사지가 찢겨서가 아닌 물약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지가 찢기는 고통에도 꾹 닫혀 있던 입을 여는 물약이라니.
…너무너무 무섭다 이 세계 물약!
‘그나저나… 정신력이 높아져서 그런가?’
사지 분해가 되어 있는 놈의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가 않다.
나는 분명 빙의하기 전만 해도 잔인한 영화 같은 건 잘 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비릿한 피냄새에 인상은 찡그려져도 속이 울렁거린다거나 보기 힘들다는 그런 건 전혀 없다.
마치 마네킹을 보는 것 같은 무감각한 기분이다.
‘설마 나 사이코패스가 된 건가?’
그 생각에 나는 여태까지 보았던 공포 영화와 스릴러 영화를 떠올려봤다.
그리고 살인마에게 사람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나타나는 순간.
‘아 이건 좀.’
단번에 속이 거북해졌다.
이에 나는 다시 물약 고문을 당하고 있는 타락 신봉자를 보았다.
그러자 언제 거북했냐는 듯 속이 편안해진다.
‘아아… 이런 건가?’
정신력이 높아져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무의식이었든 의식이었든 애초에 놈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였다.
말 그대로 강철수처럼 놈을 보기를 이 세계에서 없애야 할 쓰레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혼란스럽던 내 마음이 순식간에 평온해졌다.
‘괜히 걱정했네.’
나는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타락 신봉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강철수를 향하던 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주 죽여 줘….”
물약의 효과가 어지간히 괴로웠는지 죽여달라 말하는 놈의 목소리는 더욱 간절해졌다.
그런 놈의 앞에 쭈그려 앉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죽고 싶어요?”
“…죽여 줘….”
강철수와 다르게 내가 말을 받아주자 놈의 눈에 약간이지만 희망이 깃들었다.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알겠습니다. 죽여드릴게요.”
“…!”
“단 이것만 알려준다면요.”
하지만 희망을 이루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말해라.
네가 숭배하는 타락자.
탐욕(貪慾)이 언제부터 활동하고 있었는지.
&
게임에서는 알 수 없었던 비하인드라 그런지.
타락 신봉자가 털어놓는 정보는 아주 쓸모있었다.
스토리 초반부터 아카데미에 영향을 주고 있던 네임드 타락자가 ‘탐욕’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 첫 번째.
한 달 전에 타락 신봉자에게 접촉했다는 것과 타락의 심벌을 통해 ‘탐욕’이 명령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 두 번째.
아카데미가 한창 바빴던 입학 시험 때를 골라 모의 균열과 이중 균열을 연결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 세 번째.
그렇게 총 세 가지 정보를 알아낸 나는 이제 볼 일을 다 봤겠다 자리를 떠났다.
타락 신봉자가 뒤에서 ‘나를 죽이고 가야지 어디 가!’라며 애타게 불렀지만.
이제 더 이상 타락 신봉자에게 볼 일도 없었고 직접적으로 내가 죽이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었다.
놈이 멋대로 착각해서 정보를 술술 분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 안 했다.
놈은 바라는 대로 죽게 될 것이다.
강철수가 화풀이를 좀 하고 난 뒤에.
그렇게 교관 님에게 뒤를 부탁한 채 내가 향한 곳은 ‘제작부’였다.
돈이 생겼으니 더 이상 고무탄을 사용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저번에 강철수가 얘기했던 제작부의 담당 교관을 만나 실탄 제작 의뢰를 맡길 생각이다.
물론 내일도 쉬는 만큼 오늘 전부 처리할 필요는 없지만.
이왕 움직인 거 다소 바빠지더라도 전부 처리하고 쉬는 게 낫다.
그런 생각으로 건물의 안내도에 따라 이동하니 보급부처럼 부실이 아닌 한 공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제작부라는 명칭에 맞게.
위이잉 철컥 철컥.
드르륵 드르르륵!
무척이나 시끄럽고.
“어이 거기 조심해!”
“야 임팩트 갖고 와! …아니 이 임팩트 말고 임팩트 렌치로 갖고 와야지!”
“이거 만든 놈 누구야! 나사가 제대로 안 조였잖아!”
무척이나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 살벌한 현장에 나는 감히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차마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공장 밖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 거기 서서 뭐하냐?”
뒤에서 한 여성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뒤를 돌아 확인해보니.
“뭐냐 너? 교복 보니까 1학년 같은데 수업 안 받고 뭐하냐?”
한 여성이 삐딱한 자세로 곰방대를 빨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사자를 보는 것만 같다.
샛노란 눈동자에 샛노란 머리카락.
심지어 머리카락은 사자의 갈기처럼 거칠고 풍성했다.
그리고 작업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저 흉포한 제작 주머니를 보아.
강철수가 말했던 제작부의 담당 교관이 틀림 없다.
그래도 확인 차 그녀를 불러보니.
“혹시… 제작부 담당 교관 님이십니까?”
“어 맞는데. 너는 누구냐?”
역시 제작 교관이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교관 님. 저는 1-A반의 이유진이라고 합니다.”
“…이유진?”
내 소개를 듣자마자 제작 교관이 입에서 곰방대를 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냅다 하는 말이.
“총은?”
“네?”
“총 어딨냐고.”
총을 찾는 거였다.
이에 나는 다소 당황스럽긴 했으나 일단 인벤토리에서 권총 ‘홀리 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제작 교관이 재밌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새끼 진짜 총 쏘네?”
강철수의 말대로 화기에 관심이 있는지 총과 나를 번갈아 보는 그녀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 실탄 때문에 온 거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수 교관 님이 제작 교관 님을 찾아가면 된다고….”
“어 맞아. 잘 찾아왔어. 그러니 따라와.”
제작 교관이 곰방대로 내 어깨를 툭 치며 공장 안으로 걸어갔다.
뭔가 대화가 통하면서도 통하지 않는 기분이다.
마치 특이한 성격을 가진 명장을 보는 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교관 님 오셨습니까!”
“교관 님 좋은 아침입니다!”
“애들아! 교관 님 오셨다! 다들 와서 인사 드려라!”
누군가의 그 한마디에 열심히 작업하던 사람들이 모두 하던 거를 멈추고 우르르 달려왔다.
그리고 내 앞에 걸어가는 제작 교관의 양옆으로 줄을 서더니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교관 님 오셨습니까!””
…나 잘못 들어왔나?
여기 분명 제작부인데.
왜… 조폭들이 보이는 거 같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제작부 사람들은 제작 교관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멈췄던 작업들을 재개하러 달려갔다.
그런 누아르 같은 광경은 나와 제작 교관이 어느 한 장소에 들어서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철컥.
제작 교관의 개인 공방으로 보이는 공간에 들어가고 나서야 조폭… 아니 제작부원들의 우렁찬 인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애들이 좀 깍듯하지?”
“…아 예. 많이 깍듯하네요.”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제작 교관이 피식 웃으며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그러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
나는 순간 이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다가 설마하고 총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게 정답이라는 듯이 총을 받은 제작 교관이 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총을 살펴보던 제작 교관이 곰방대를 한 차례 빨아들이고는.
“후….”
허공을 향해 훅 내뱉으며 곰방대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총을 보며 말했다.
“이 총 그냥 총이 아니라 아이템이네?”
“…아 네. 그거 아이템인데 무슨 문제라도…?”
“아니 문제는 아니고. 총 종류의 아이템은 정말 오랜만에 봐서 그래.”
그 말에 나는 의아한 얼굴로 제작 교관을 바라보았다.
제작 교관이 되서 총 종류의 아이템을 오랜만에 본다니?
…설마하니 이 세상이 냉병기 위주라 화기 종류의 아이템은 별로 없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제작 교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네가 생각하는 대로 총 종류… 정확히는 화기 종류의 아이템은 별로 없어.”
“…아 표정에 드러났나요?”
“어 너 표정 관리좀 해야겠다. 생각이 너무 잘 보이네.”
제작 교관이 그리 말하며 내게 총을 돌려주었다.
“아무튼 실탄 제작 때문에 온 거지?”
“네 그것 때문에 온 겁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봐.”
그러고는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며 작업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건 고무탄이 들어있는 박스와 같은 종류의 탄약 박스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데?
“저기 교관 님.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데요?”
내가 그리 묻자.
“이제 생길 거야.”
제작 교관이 열었던 탄약 박스를 다시 닫았다.
그러고는…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로 박스를 툭 치더니.
“자 됐다.”
갑자기 다 됐다며 다시 탄약 박스를 열었다.
그러자 내 눈에 보이는 건.
“아니 무슨….”
탄약 박스에 가득한 실탄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우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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