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이서연은 인기척 없이 나타났다.
그런 그녀로 인해 나와 아스카는 이번에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
이번에는 너무 놀라서 그런지 입에서 비명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지금 나와 아스카가 딱 그런 상태였다.
그런 나와 아스카를 이서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길.
“둘이 뭐하고 있었어?”
무엇을 하고 있음을 물었다.
“히끅!”
이에 아스카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고.
“에휴.”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서연을 바라보았다.
‘이럴 거 같아서 귓속말로 얘기했던 건데.’
그걸 기어코 듣고 찾아왔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정확히 이 시간에 맞춰 훈련장에 올 이유가 없다.
“아스카 물 마셔 물.”
“가 감사 히끅! 합니다….”
아스카가 내가 물을 건네주자마자 등을 돌리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동안 나는 이서연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아침에 다 듣고 온 거지?”
“…아니?”
[이서연의 재능「검총의 귀재(S+)」가 그렇다고 말합니다.]
음… 네 재능은 그렇다는데?
나는 시스템을 통해 보이는 재능의 메시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듣고 온 거 아니까 거짓말은 하지 말고.”
“….”
거짓말이 들통났다는 것을 눈치챈 이서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표정에서 못마땅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이서연의 재능「검총의 귀재(S+)」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재능이 시스템을 통해 어떤 감정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서연의 재능「검총의 귀재(S+)」가 우리도 볼 쓰다듬을 받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무슨 상태인지도.
‘…우리?’
방금 메시지에 적혀 있던 거 진짜인가?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앞에 이서연이 있는 것도 잊고 대놓고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래도 메시지 재확인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이서연의 재능이 정말 ‘우리’ 라고 말한 것을.
‘허….’
나는 어처구니없는 기분에 이서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
그러자 그녀가 수줍다는 듯이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나는 그녀와 재능의 반(半) 동화(同化) 상태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가 재능의 명칭을 알려줬다고 재능을 진화시키지 않나.’
이번에는 영능단을 먹었다고 벌써 반 동화 상태가 되었다?
이 정도면 아서 제치고 주연급 탑 해도 될 거 같은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왜 이서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아직도 중상위급인 거지?
분명 반쪽이기는 해도 동화 상태가 맞는데?
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이서연의 기운을 다시 느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서 새어 나오는 기운은 중상위급에 불과했다.
‘기운을 숨기고 있는 건가?’
그러기에는 새어 나오는 기운이 너무 일정한데?
‘아 너무 궁금한데….’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반 동화 상태가 맞는지.
아니면 단순히 기운을 숨기고 있는 건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심장이나 얼굴 같은.
[이서연의 재능「검총의 귀재(S+)」가 우리도 볼 쓰다듬을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녀의 재능이 신체 접촉을 원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거리낌 없이 손을 뻗었고.
“…!”
그녀의 볼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시선을 피하고 있던 이서연이 깜짝 놀란 듯 몸을 흠칫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서연은 떨리는 눈으로 내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살며시 눈을 감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얼굴을 들이미는 이서연의 행동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스카 외에 아무도 없는 훈련장인 만큼 이서연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있지만.
진짜 그렇게 하는 순간 배드 엔딩이 되어 버린다.
검성이 아닌 이서연의 손에 의해.
보다시피 이서연은 일정 호감도가 되는 순간부터 이렇게 집착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건 호감도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심해진다.
그래도 집착은 하되 어느 정도 선은 지킨다.
하지만 스킨십까지는 괜찮아도 입을 맞추는 순간부터 그 선은 바로 없어진다.
말 그대로 호감도 상관없이 집착이 극에 달하는 속칭 얀데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서연의 호감도만 신경 쓴다면 상관 없긴 하지만….’
지금 나는 엔딩 퀘스트를 위해 모두의 호감도를 챙기고 있다.
그래야 주연급 인물들의 타락률을 낮출 수 있기에.
하지만 그렇기에 이서연의 스킨십을 아직 받아줄 수가 없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녀의 집착과 질투를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아쉽지만 스킨십은 내가 좀 더 강해지고 난 뒤에.
‘내가 너와 검성을 감당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찐하게 하자고 이서연.’
나는 그리 생각하며 그녀의 볼을 감싸 쥐고 있던 손을 떼었다.
반 동화 상태인 것과 중상위급인 것을 확실히 확인했으니 더 이상 그녀의 볼을 감싸 쥐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서연과 재능은 그것이 못내 아쉬운지.
“….”
이서연은 무표정이 아닌 뾰료통한 얼굴로 나를 보았고.
그녀의 속마음이나 다름없는 재능은.
[이서연의 재능「검총의 귀재(S+)」가 흥칫뿡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실망했음을 귀엽게 알려주었다.
이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체능단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뾰로통한 얼굴에서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이서연은 자신의 손에 쥐여진 영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능단이라는 영약인데 몸에 좋다더라.”
원래 오늘 아침에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서연의 집착으로 인한 대련 때문에 깜빡 잊고 말았었다.
그래서 내일 주려고 했었는데… 이왕 왔으니 지금 주기로 했다.
“그건 아는데… 이렇게 영약을 줘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너도 어제 봤다시피 나 영약 엄청 많아.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먹어.”
정확히는 무한에 가깝지만.
아무튼 내 말에 어제 일을 떠올렸는지 이서연은 말 없이 영약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입에 영약을 집어넣었다.
“하아….”
영약의 효과로 체력이 증가했음을 느낀 이서연은 열기를 띤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마워.”
이서연이 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껴안으려고 하는 순간.
“수석 씨! 저 딸꾹질 멈췄어요!”
아스카가 내 몸을 잡아끌었다.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스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히히.”
아스카가 기쁜 듯 귀엽게 웃음을 흘리며 내 손길을 만끽했다.
나는 그러면서 이서연을 향해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
이서연이 빛이 사라진 것 같은 눈과 무표정한 얼굴로 아스카를 물끄러미 보고 있음을.
그래도 트리거가 당겨지지 않았기에 이서연은 아스카를 바라보기만 할뿐 머릿속에 있는 여러 가지를 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스카는 이서연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나?’
나는 의아한 눈으로 아스카를 바라보았다.
“히히… 좋아요….”
이젠 아예 눈을 감고 내 쓰다듬을 즐기고 있는 아스카.
내가 잠시 손을 멈추기라도 하면 아담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스스로 쓰다듬었다.
마치 이서연의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이.
그런 아스카의 행동에 이서연은 결국 한 발 물러서기로 했는지.
“…이유진 나 이만 자러 가볼게.”
내게 자러 가본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잘 자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훈련장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서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갔나요?”
아스카의 감긴 눈이 떠졌다.
“어 갔어.”
“…히유우우.”
내가 갔다고 알려주자 아스카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아스카가 이서연의 시선을 못 느낀 게 아니라 애써 무시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히잉 무서웠어요….”
아스카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서연이 자신에게 보냈던 기세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는 못 느꼈었는데?
그렇다는 건 그녀가 아스카에게만 기세를 쏘아 보냈다는 뜻.
‘…이것이 캣파이트?’
아니 아니지.
캣파이트라기보다는 맹수인 이서연이 소동물인 아스카를 일방적으로 잡아먹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리거가 당겨지지 않아서 선을 지키고 있는 것일뿐.
“…그래 고생했다.”
“힝.”
나는 고생했다는 의미로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인벤토리에서 영능단과 체능단을 꺼내었다.
“자 이거 받아.”
“…이게 이서연 씨에게 주었던 영약들이에요?”
“어 영능단하고 체능단이라는 건데….”
“헉! 이게 영능단이랑 체능단이에요?”
아스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의 손에 쥐여진 두 영약을 보았다.
“저 말로만 들었지 처음 봐요!”
“이거 A등급이라 네 가문에서도 구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서연도 영약 쉽게 구할 수 있지 않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검성이 운영하는 미리내 길드는 한국의 대형 길드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에? A등급 영약을요? 수석 씨도 농담도 참 B등급 영약도 구하기 힘든데 이걸 어떻게 구해요?”
아스카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구하기 힘들다니?”
“에… 모르셨어요? A등급 영약은 매물이 엄청 없어서 제 가문은 물론 이서연 씨의 길드도 쉽게 못 구하는 물건이에요.”
“….”
말이 안 되는데.
A+ 이상의 영약이라면 모를까 A등급까지는 재료와 레시피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구하기 쉬운 물건일 텐데….
그런 영약을 쉽게 구할 수가 없다니?
‘그게 무슨….’
나는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곳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 그런 걸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연금술사나 레시피는 달라지지 않을 텐데?
‘…연금공방에 꼭 가야할 이유가 생겼네.’
어차피 돈 때문이라도 연금공방에 가려고 했었는데 잘 됐다.
이번 주말에 연금공방에 들려서 무엇이 달라졌고 왜 영약이 구하기 힘들어졌는지 알아보리라.
아무튼 주말에 계획을 잡은 나는 정말 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스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먹으라 권유했다.
이에 아스카가 매우 기쁘다는 듯이 나를 꼬옥 껴안았다.
“수석 씨 정말 고마워요!”
그러고는 포옹을 풀며 자신의 입에 두 영약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다람쥐처럼 볼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나는 그런 아스카의 볼을 눌러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영약이 녹아내려 볼록 튀어나왔던 볼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화아아악!
이번에도 어제의 이서연처럼 아스카의 몸에서 뿜어지는 마력 폭풍.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부드럽게 감싸던 이서연 마력 폭풍과 다르게 아스카의 마력 폭풍은 나를 튕겨냈다.
나는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아스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마력이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력이 뭉치며 어떤 형체를 이루었다.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네놈은 뭔데 자신을 방해하냐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거대한 용의 머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스카의 저주받은 재능 ‘광룡혈’의 근원이었다.
용의 머리가 살의를 담아 나를 노려보았다.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이런다고 자신의 그릇을 놓아줄 것 같냐고 말합니다.]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자신은 반드시 이 그릇을 통해 강신할 거라고 말합니다.]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계속 나를 방해한다면 슈헤이 가와 함께 네놈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용의 머리가 그리 말하며 내 앞으로 날아왔다.
그러고는 으르릉 하고 살기등등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런 용의 머리에게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곧 없어질 놈이 큰 소리는.”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합니다.]
“아 모르는 건가?”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어서 말하라고 말합니다!]
“그건….”
나는 말을 흐리며 용의 머리를 확인했다.
점차 색이 푸른색으로 바뀌며 흐려지고 있는 것이 영약의 효과가 끝나가고 있는 거 같다.
[아스카의 재능「광룡혈(S)」이 자신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말하라고 말합니다.]
그 재촉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가 알 필요는 없지.”
그 말과 동시에 용의 머리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아스카의 몸으로 모든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영약의 효과가 끝난 것이다.
“와 몸이 한결 가벼워진 거 같아요!”
방금 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지 아스카가 방방 뛰며 자신의 날렵함을 보여주었다.
“어때 재능의 제어는 좀 되는 거 같아?”
“잠시만요!”
아스카가 자신의 목걸이를 매만졌다.
그러자 목걸이 주변의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검 손잡이가 나타났다.
“휘우우우….”
아스카가 심호흡을 하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스스스스슷!
아스카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재능 광룡혈이 발동된 것이다.
하지만 이서연과 대련했을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기세만 뿜어낼 뿐 내게 적의나 살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제어 되고 있어?”
“….”
아스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핑크빛에서 핏빛으로 변한 눈동자가 내 눈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후아아아!”
아스카가 검 자루에서 손을 떼며 긴 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여태까지 숨을 참고 있었나 보다.
“수석 씨!”
아스카가 울먹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고는 나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저 조금이지만 제어에 성공했어요! 바로 이성을 잃지 않았다고요!”
“오!”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인데?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발전을 칭찬했다.
“그럼 저 머리 쓰다듬어줘요!”
“그래 그래.”
나는 웃으며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볼도 만져줘요!”
“아 그건 좀.”
“아 왜요! 만져줘요!”
“안 돼 큰일 나.”
그 말랑말랑한 것을 만지면 당기고 싶어진다고.
“힝!”
아스카가 울상을 지으며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고는 우물거리듯 말했다.
“…고마워요.”
“고맙긴.”
나는 웃으며 아스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아 머리 쓰다듬는 것도 중독되는데.
볼 잡아당기면 못 헤어 나오는 거 아냐?
나는 그리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 님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오늘도 아스카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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