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5
그냥 닮은 것도 아니고 똑 닮았다는 그레이의 말에 나는 당혹스러운 것을 넘어 혼란스러웠다.
‘뭐지… 내 존재 자체가 빙의한 거 아니었나?’
분명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육체는 빙의하기 전의 세계의 육체와 같은 것일 텐데?
‘설마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고 사실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있는 건가?’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여전히 나를 신기하게 보고 있는 그레이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저 어떻게 생긴 건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갑자기?”
그레이가 살짝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팔짱을 끼며 내 이목구비를 살피기 시작했다.
“흠… 일단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오빠… 아니 네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어.”
마치 귀여운 조카를 보는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계속 이어 말했다.
“그리고 네 어머니처럼 눈매랑 코가 날카롭고.”
확실히 두 사람의 아이라서 그런지 샤프하게 잘생겼네 라고 말을 덧붙인 그레이에게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무슨 특징 같은 건 없습니까?”
“특징? 흐음….”
그레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내 이목구비를 살펴보았다.
그런 그레이를 보며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특징이 나오기를 바랐다.
그래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육체가 남의 것이 아닐 테니까.
빙의되기 전의 세계에서 사용하던 내 육체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이목구비를 살피던 그레이의 입이 열렸다.
“아 하나 있긴 하네.”
그레이가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으로 내 오른쪽 눈썹 끝을 톡 건들였다.
“여기 아주 미세하게 작은 흉터가 있어.”
“아… 정말입니까?”
하 다행이다.
내 육체가 맞구나.
남의 것이 아니구나.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른쪽 눈썹 끝에 있는 작은 흉터.
그건 빙의하기 전의 세계에서 생긴 흉터다.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내 밥을 탐내던 놈과 싸우다가 식판에 찍혀서.
‘그 때의 일이 아직도 세세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기억 또한 온전하다는 건데….’
그런데 그레이는 왜 내게 부모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걸까.
‘…설마하니 지금 이 몸이 평행세계의 나라는 건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은… 없지는 않다.
아니 솔직히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읽었던 소설이나 만화에서도 평행세계의 몸으로 빙의 빙의한 세계가 사실 출신지 등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
‘확실히… 그 가능성들이 지금 상황에 맞긴 해.’
하지만 그러기엔 이곳의 기억이 전혀 없다.
마치 데스크탑의 드라이브가 바뀐 것처럼.
“으음….”
확실치 않은 것들을 너무 생각해서일까.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욱신거렸다.
이에 나는 침음을 흘리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레이에겐 부모가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걸로 보였는지.
“그래 충격을 받을 만하지. 20년 동안 천애고아인 줄 알았는데 사실 부모가 있었다고 하니.”
그레이가 측은하다는 듯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해. 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꺄아아아악!”
“…이런.”
내 부모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려는 순간에 들려온 비명.
그 비명소리에 그레이가 난감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겠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의 썬더볼트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난간에 몸을 기대며 비명이 들려온 인질들이 있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인질들 사이 한 시민이 덩치 큰 타락자의 손에 머리채가 잡혀 허공에 들어올려져 있는 것을.
“꺄아아악! 제 제발 살려주세요!”
“크르르… 배고프다. 너 잡아 먹는다.”
“이 새끼는 아까 신호 안 온다고 참으라더니 자기가 먼저 저 지랄을 하네.”
“그래서 너는 안 먹을 거야?”
“아니? 나도 먹을 건데? 킥킥!”
신호를 기다리다 못해 결국 사람들을 잡아먹기로 한 것인지.
하위 타락자들이 시시덕거리며 덩치 큰 타락자가 잡고 있는 시민을 향해 다가갔다.
그 광경에 나는 옆에서 같이 상황을 보고 있는 그레이에게 말했다.
“놈들의 몸에 폭탄이 착용되어있다고 하셨죠?”
“정확히는 몸에 심어져 있지.”
그레이가 그리 말하며 품속에서 작은 휴대용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내게 확인해보라는 듯 망원경을 내밀었다.
나는 망원경을 받아 하위 타락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놈들의 몸속에 폭탄으로 추정되는 이물질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새끼들.”
씹어뱉듯 나온 내 욕설에 동의하듯 그레이가 말했다.
“타락자가 괜히 타락자겠니?”
그래 저 말이 맞다.
그러니 타락자들은 전부 멸절(滅絕)시켜야 한다.
“그레이 님 놈들을….”
“님이 아니라 누나.”
“그레이 누나 놈들을 위로 띄우게 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아직 딱딱하네… 그래도 그건 차차 바꿔가면 되는 거니까….”
그레이가 그리 중얼거리며 난간 위로 올라갔다.
“위로 높이 띄우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네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을 정도로요.”
“그건 매우 간단하지.”
싱긋 웃어보인 그레이가 난간 위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고는 아까 전에 보여줬던 것처럼 허공에 발을 차자.
슈숙!
그녀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나타난 곳은 타락자들에게 먹히기 직전인 시민의 앞이었다.
“넌 뭐… 크악!”
“이 개같… 크아악!”
“…끄아악!”
그레이의 삼단 올려 차기에 내가 있는 건물 높이까지 치솟아 오른 타락자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양손에 쥐고 있는 썬더볼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우르르 쾅 쾅쾅!
진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총성이 울려퍼지고.
파지지지지직─!
썬더볼트의 효과(번개 파마)가 적용된 세 발의 탄환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세 타락자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앙─!
대기가 흔들리는 것 같은 폭발을 일으키며 존재가 소멸해버렸다.
“휘유 그 오빠의 아들 아니랄까봐 총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네.”
타락자들을 띄우면서 같이 올라왔는지 그레이가 옆에서 휘파람을 불며 내 사격 실력에 대해 감탄을 흘렸다.
그 감탄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치트 덕분에 가능한 건데.’
아 이걸 말할 수도 없고.
‘그나저나 아버지라는 사람의 무기가 총이었나 보네?’
부자가 똑같이 총을 사용했다라….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아버지가 총을 그렇게 잘 다뤘어요?”
내 물음에 그레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냥 잘 다룬 것만이 아냐 그 오빠가 총을 쏠 때마다 타락자는 물론 적들의 머리가 펑펑 터져나갔었어.”
“…머리가 터져나가요?”
아니 어떻게?
어떻게 총으로 마력과 마기를 뚫은 거지?
설마 그 사람도 나처럼 치트를 가지고 있었나?
점점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또 이러네.’
이상하다.
아까부터 계속 ‘아버지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마치 생각하지 말라는 듯이.
“그렇다니까! 그 오빠가 엉뚱한 곳으로 쏴도 총알이 휘면서 놈들의 머리를 맞췄었어.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레이가 자신의 스타를 알려주듯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머리의 뇌가 익어가는 것처럼 점차 뜨거워져갔다.
이에 나는 깨달았다.
아 이거 제약이구나.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내용을 듣지 않게 하려는 거구나 하고.
‘왜?’
왜 제약이 있는 거지?
왜 부모님의 대한 정보를 막는 거지?
…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나는 타버릴 것 같은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어 어머니는 무슨 능력을…?”
“…너 괜찮니?”
“…괜찮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해….”
그만두세요.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왠지 모르겠지만 나를 말리는 그 목소리에서 그리움과 걱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를 으득 물며 그레이에게 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리며 ‘마력…’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그 순간.
파직!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득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자.
[‘강인한 정신(A)’의 파생 스킬 ‘정심’의 발동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정심’을 발동하시겠… 현재 사용자가 직접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
[‘정심’을 자동으로 발동합니다.]
정신 회복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되었다.
이에 나락으로 떨어지던 정신이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위로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고.
“…허억!”
막혔던 숨이 뚫린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너 괜찮은 거 맞니? 너 지금 얼굴이 너무 창백해.”
그레이가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내 몸을 부축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구부리며 나를 조심스레 바닥에 앉혔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다시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았다.
아니 물어보려는 그 순간.
찌이이이잉….
순간 소름이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에워쌌다.
그와 동시에 조금이라도 더 물어보는 순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레이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품속에서 한 물약을 꺼내들었다.
그건… 해독제… 이 시발! 안 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현기증이 핑 돌며 몸이 휘청거렸지만 눈을 부릅 뜨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안 마셔도 되겠니?”
“괜찮아요! 안 마셔도 되요!”
걱정해주는 건 매우 고맙다.
하지만 해독제는 아니지!
“너 아직 창백한데?”
“하하! 얼굴만 창백한 거지 멀쩡해요!”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의 건강함을 보였다.
물론 속이 울렁거리며 역류할 거 같았지만 그건 해독제를 마시지 않겠다는 근성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잠시동안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야 그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해독제를 다시 코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여기 사람들이 있다!”
“어서 협회에 연락해! 인질들을 찾았다고!”
타락자들을 다 잡아서 이제 인질은 없는데.
뭐 협회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올리려는 순간.
협회 사람들 사이에서 아서를 발견했다.
“아서도 어디선가 싸우고 있었나보네.”
상처는 없지만 옷이 찢어지고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녀도 타락자를 처치하며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랬던 하늘이 어느새 붉은 노을로 변해있었다.
그런 하늘을 본 뒤 나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는 손목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 아스카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금 늦을 거 같으니 먼저 먹으라고.
그러자 바로 오는 답신.
[아스카]
– 우씽! ・(`ヘ´ )・
“하하!”
식사 약속을 잡아놓고 어겨서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zakuti 님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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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렝레기] 님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랜절올리는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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