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남은 수 : 452명]
.
.
.
띠딕.
[남은 수 : 449명]
&
갑자기 나타난 돔.
전기장을 두르고 좁혀져 오는 돔의 압박 때문일까.
경쟁 상대를 탈락시키려 했던 사람.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 점수를 획득하려던 사람.
숨어서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했던 사람.
모두 하나 같이 하던 짓을 멈추고 돔의 전기장을 피해 섬의 중앙으로 향했다.
하지만 모든 응시생이 그럴 수는 없었으니.
펑! 펑! 퍼엉!
“야 이 어떤 개새끼야─!”
“으아악! 이게 뭐야아악!!”
“…사 살려주세요!”
숲 지역으로 이동된 응시생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폭탄 주머니와 난데없이 발밑에서 터져 나오는 녹색 가루의 향연에 속속 마비되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응시생들의 한심한 모습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살생이 금지되었기는 하나 이곳은 배틀 로얄로 지정된 시험장이다.
말 그대로 전장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무방비로 그저 달리기만 하다니.
그러니 독에 당하기나 하는 거다.
물론 대비를 한다고 해도 독과 저항에 관련된 재능이나 스킬이 없으면 당하는 건 똑같지만.
‘거의 다 왔다.’
쉬지 않고 계속 달린 끝에 보이기 시작하는 숲의 끝.
그리고 타이밍에 맞게 모두 소진되어버린 폭탄 주머니.
폭탄 버섯이 아직 인벤토리에 남아있기 하지만 폭탄 버섯만으로는 폭탄 주머니처럼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주머니 안에는 폭탄 버섯뿐만이 아니라 폭탄 버섯의 효과를 증대시켜주는 부가 재료도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예 못 써먹는 수준은 아니다.
다수는 안 되더라도 개인에게는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마치는 순간.
“…너 이 새끼!”
한 응시생이 기습해왔다.
그것도 당당히 소리를 지르면서.
“….”
어이가 없다.
애들 싸움도 아니고.
적을 기습하는데 소리를 질러?
“쯧.”
나는 혀를 차며 인벤토리에 있는 한 물건을 녀석의 앞으로 ‘전송’했다.
미량의 정신력과 마나가 소모되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지정된 물건이 인벤토리에서 사라지고.
녀석의 앞에 폭탄 버섯이 들었던 것과 같은 갈색의 가죽 주머니가 나타났다.
“하! 또 독이냐? 근데 어쩌지? 난 독 내성이 있어서 이런 건 안 통하는데!”
비아냥을 담아 외친 녀석이 주머니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거 참 유감이네.”
그리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물건을 녀석의 등 뒤로 전송했다.
“근데 어쩌지? 그 주머니에 든 거는 독이 아닌데.”
“뭣?”
내 말에 녀석의 얼굴이 멍청해졌지만 녀석의 칼날은 이미 주머니를 찢고 안의 내용물을 베고 있었다.
서걱.
무언가 베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퍼어엉!
잘린 주머니에서 큰 폭발음을 동반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녀석의 몸을 뒤로 튕겨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는 녀석.
몇 초의 짧은 비행을 마친 녀석의 등이 그대로 한 두꺼운 나무를 향해 부딪쳤다.
그리고.
“…뭐 뭐야! 왜 등이 안 떨어지는 거야!”
나무에 찰싹 달라붙은 녀석이 크게 당황해하며 허둥지둥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난 한심함을 담아 한마디 해주었다.
“멍청한 놈.”
녀석은 생각이란 걸 하긴 하는 걸까.
아무리 당황해서 생각이 짧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냥 상의를 벗으면 되잖아.’
아직 전송 스킬에 미숙해서 옷 바깥으로밖에 물건을 전송할 수 없었는데.
녀석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
‘그냥 그렇게 탈락이나 해라.’
그리 생각하며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숲의 바깥을 향해 달리며 방금 사용했던 물건들의 개수를 확인했다.
────────────────────
【굉음 주머니(C)】
충격을 받으면 굉음을 내며 터지는 ‘굉음 버섯’과 ‘소리 증폭(D)’마법이 인챈트 된 두루마리가 들어있는 주머니.
────────────────────
굉음 주머니는 두 개 남았고….
────────────────────
【끈끈이 풀】
끈적끈적한 액을 흘리는 풀.
*무인섬에 가득한 정기로 인해 크기가 커지며 접착력이 강화되었다.
────────────────────
끈끈이 풀은 아직 충분했다.
‘끈끈이 풀….’
이걸 채취하는 데 아주 지랄 같았지.
보통 마법 시약을 만드는 데에 흔히 쓰이는 끈끈이 풀은 식충식물인 끈끈이 주걱처럼 그리 크지도 않고 인간이 만지기에 끈끈함이 세지 않지만.
무인섬에 자생하고 있는 끈끈이 풀은 섬의 ‘정기’를 가득 먹은 것이라 크기도 크고 본드처럼 매우 센 접착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섬의 특산물인 끈끈이 풀이 몸에 달라붙으면 끈적거림을 없애주는 시약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걸 아는 응시생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시약을 챙겨오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아무튼 끈끈이 풀의 자생지를 발견한 건 좋았는데.
이것을 채취하는 데만 가져온 시약을 다 써야 했다.
몸 이곳저곳에 다 달라붙었으니까.
그리고 시약이 부족해져서 장갑도 여러 번 교체해야 했다.
아마 나무에 붙은 녀석의 등에 내 장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어 이 새끼야!”
“너나 죽어 개새끼야!”
챙 챙! 콰앙! 쾅!
숲에서 벗어나고 넓은 평야에 발을 들이자마자 보이는 전투의 현장.
여기저기에서 응시생들이 서로를 향해 마법과 스킬을 사용하며 병장기를 부딪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지나치며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서둘러 중앙 지역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싸우고나 있다니.
‘점점 다가오는 전기장이 안 보이나?’
전기장을 두른 돔이 다가오는 속도가 처음에는 느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빨라진다.
어디서 날라올지 모르는 공격에 시간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충 못해도 10분이 더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눈으로 보아도 돔이 좁혀지는 속도가 꽤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근데도 경쟁자를 줄이고자 뛰어야 할 다리를 멈추다니.
나로서는 아주 땡큐였다.
“죽어라!!”
“…그런다고 진짜 죽겠냐.”
가끔 내가 착용하고 있는 위장 로브의 동화를 간파하고 덤벼드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죽… 어라… 어 어어… 크헉!”
녀석들이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전송으로 끈끈이 풀을 깔아주니 슬랩스틱을 찍는 것처럼 하나 같이 앞으로 넘어지며 바닥에 얼굴을 찍었다.
그런 녀석들을 지나 숨 가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중앙 지역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음에 달리는 것을 멈추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숨을 곳이 없는 평야라 그냥 바닥에 엎드리긴 했지만 위장 로브를 입고 있어서 들킬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위장 로브의 ‘동화’ 효과는 주변 환경에 맞춰 동화하는 것이니까.
그래도 발견되면 뭐… 싸우면 되는 거니까.
그리 생각하며 나는 포복으로 점점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다가갔다.
챙! 채앵!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커져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싸우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서연하고 아서네.’
이서연.
아서 펜 드라곤.
주연급 인물들이 치열하게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주조연 할 것 없이 많은 응시생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스카나 노아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서연이나 아서에게 쓰러진 것 같다.
‘확실히 저 둘은 넘사벽이긴 하지.’
주연급 논플레이어 캐릭터 중에서도 사기급 재능과 스킬 그리고 당장 영웅으로 데뷔해도 될 만큼의 강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이서연과 아서다.
거기다가 이서연과 아서는 처음부터 신화급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서연이 들고 있는 ‘혈마검(血魔劍) 다인슬라이프(Dainsleif).’
아서가 들고 있는 ‘신검(神劍) 엑스칼리버(Excalibur).’
물론 초반엔 봉인되어있어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기는 하지만 봉인되어있어도 두 무기가 신화급이라 사기 아이템인 건 다름이 없다.
채재재쟁!
현란하게 움직이며 검을 부딪치는 둘.
아무리 교장이 나눠준 장비로 인해 다치지는 않겠지만 눈앞에서 칼날이 번쩍하는데도 눈 깜짝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저 둘의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검을 어디로 휘두르려는지.
발은 어디로 움직이는지.
이서연과 아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의 공격을 파악하며 검을 부딪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의 균형은 조금씩 무너져갔다.
“이 이서연이 밀리고 있어?”
“…영국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더니.”
“…이게 응시생들의 싸움?”
결국 아서의 ‘요정안’의 사기성에 이서연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표정한 이서연의 얼굴에 살짝 금이 간다.
점점 공방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이서연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우웅.
이서연의 검에서 검명이 울리며 검붉은색의 검기가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서의 검에서도 황금색 마나가 모여들며 검기를 형성했다.
그 행동들에 나는 경악했다.
‘아니 주변에 쓰러진 애들도 있는데!’
교장이 나눠준 장비가 좋긴 하지만 팔찌의 등급은 기껏해야 ‘B’등급.
시험장에 있는 응시생들의 공격을 대부분 막아주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특히 저 둘의 검에 맺힌 검기는 절대 막아주지 못한다.
검기(劍氣)는 최소 중상위(中上位)급의 영웅이 사용하는 힘이다.
장비로 따지자면 A급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A등급도 아닌 B등급의 장비가 저 둘의 검기를 막기에는 만무하다.
둘이 저 검기를 두른 검을 부딪치는 순간 검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갈 것이고.
그 파편들은 모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응시생들을 난도질할 것이다.
“멍청한 새끼들!”
생각좀 하고 싸우자!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소음 차단 발찌’의 효과를 발동하며 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 10초.
인벤토리에서 남은 ‘굉음 주머니’ 두 개를 꺼내 각각 양손에 쥐었다.
– 9초.
무슨 아이템을 전송할지 생각했다.
– 8초.
아직 저 둘이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 7초.
거리를 벌렸던 둘이 자세를 잡았다.
– 6초.
둘의 발이 앞으로 나왔다.
– 5초.
몸이 앞으로 쏠리며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 4초.
바닥이 파이며 둘의 몸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 3초.
굉음 주머니를 던졌다.
– 2초.
굉음 주머니가 날아감과 동시에 둘이 내 스킬의 반경에 들어왔다.
– 1초.
둘의 등과 팔 다리에 끈끈이 풀을 마구잡이로 전송했다.
– 0초.
– 소음 차단 해제.
“”…!””
드디어 나를 눈치챈 둘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리고 서로에게 향하던 검을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휘둘렀다.
서걱!
무참히 베어지는 두 주머니.
그리고.
퍼어어어어엉!
두 주머니에서 터진 커다란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둘을 뒤로 튕겨냈다.
털썩.
그대로 등에 바닥을 붙여버린 둘.
“…?!”
“…?!”
끈끈이 풀로 인해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자 무표정을 고수하던 둘의 표정에 대놓고 황당함이 깃들었다.
참으로 볼만한 얼굴들이다.
“어! 3위 씨다!”
“…첫 번째 시험 때 5위로 통과하셨던 분이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엉성한 자세를 하고 있는 아스카와 노아가 날 보며 아는 체 했다.
엉성하게 서 있는 것을 보아 이서연과 아서의 검에 피어오른 검기를 보고 나서려고 했지만 내가 둘을 순식간에 저지해버리자 목표를 잃고 허둥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스카와 노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고는 날 빤히 바라보는 아서와 이서연에게 다가가 둘이 누워있는 중앙에 서서 말했다.
“너희들이 애냐? 장소 구분없이 날뛰게?”
각자 가문에서 절제하는 훈련을 했을 텐데 서로 비등한 실력에 신난 건가.
짐짓 훈육하는 어투로 둘을 향해 일갈한 나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싸워봤자 1등은 너희들이 아냐.”
그리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하늘에 떠 있는 홀로그램으로 향했다.
[점수 현황판]
1위 : 이유진 : 17800점
2위 : 아서 펜 드라곤 : 4900점
3위 : 이서연 : 4600점
4위 : 슈헤이 아스카 : 2500점
5위 : 노아 : 2400점
.
.
.
“”…?””
점수를 확인한 모두의 얼굴 위로 갈고리가 달린다.
어벙한 표정을 짓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고 씨익 웃어보였다.
“치킨은 내 거다.”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스마트 워치에서 알람이 울리며 홀로그램의 화면이 바뀌었다.
[시험 종료]
마지막 시험이 종료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7800점]
– 숨겨진 아이템 발견 : 1200점.
– 탈락시킨 응시생의 수 : 83명(16600점)
마비독이긴 하지만 그것도 엄연한 공격.
주인공에게 당한 응시생들은 전기장에 HP가 모두 소멸되면서 탈락했고 주인공의 맛있는 점수가 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