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3
113 – 쓰르라미 울적에 # 3
1학기 사이에 내게는 제법 유별난 재주가 생겼다·
바로 내게 있었던 일을 남들에게 쉬이 설명하는 법이었다·
“다들 막 피를 토하고 죽었다니깐! 그러다가 창문을 봤더니 서쪽으로 저물었던 해가 다시 동쪽을 향해 떠올랐고!”
모두에게 내가 방금 겪었던 일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몹시 횡설수설에 흥분해 있었지만 진심만큼은 어떻게든 전해졌으리라·
내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 있던 양주희가 뒤통수를 긁었다·
“이 새끼 방금 졸아서 꿈꾼 거 아냐? 사진 찍을 때도 눈 감고 있더니· 졸았냐?”
내 말을 믿지 못하는가!
물론 나 같아도 갑작스레 “너희들 다 죽었고 시간이 되감겼어·”라고 말하면 “아하 그런 상상을 했구나·”라고 대꾸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진짜로 벌어졌던 일이야· 진짜로· 수아 님 수아 님은 기억 안 나요? 수아 님 막 비명 지르고 피 묻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네 발로 기어 다녔잖아요! 개처럼!”
“제···제가 언제요!”
얼굴을 붉히며 발끈하는 권수아·
남들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부끄러운 모함이라도 들은 듯한 태도였다·
나와 함께 살아남았던 권수아조차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
진짜 나 혼자서 꿈을 꾼 건가 싶다가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의 단면들이 그 사실을 철저히 부정했다·
나는 봤단 말이다·
심장이 멈춰버린 유다희 그리고 얼굴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은 양주희와 욕실에 둥둥 떠서 죽어버린 정석을 분명히 봤다고·
“야 정석· 너는 내 말 믿지?”
“하영원 우리가 여러 일을 겪긴 했어도 시간까지 되돌아간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 건지 솔직히 나도 의문이다· 그건 이미 귀신 어쩌구 하는 단계가 아니지 않냐·”
정석은 언제나처럼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녀석은 팔짱을 낀 채 한참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진짜라고 생각해· 하영원이 그런 거짓말을 해서 얻는 이득이 전혀 없어· 우리는 영원이 말처럼 다 죽었던 거야· 그리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어·”
정석의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내가 말한 것처럼 다들 피를 토하며 죽는 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무척 놀랍고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정석이 말했다·
“영원아 네 말대로라면 저녁식사 후 목욕 도중에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고 했지· 너랑 수아 님은 멀쩡했고? 왜 둘은 멀쩡했지? 여기에 힌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모두가 죽어가던 때 나랑 권수아는 멀쩡했다·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병’ 같은 거라도 괴담처럼 돌았던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권수아가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어쩌면 독이 아닐까요?”
“독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권수아가 매우 자신만만한 느낌으로 모두를 설득하듯이 설명을 덧붙였다·
“은방울꽃 독일 수도 있어요! 저는 댄버스 아줌마가 주신 해독제를 먹어서 오늘 하루 정도는 꽃 가까이 다가가거나 냄새를 맡아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영원 님은 내성이 있는 체질이고!”
“오? 오오!”
들어보니 매우 그럴 듯한 이야기 같았다·
곧 이 저택의 주민인 유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방울꽃이라면 저택 뒤쪽의 화단에 잔뜩 피어있는 거 말하는 거지? 나도 그 꽃은 함부로 냄새 맡지 말라는 말 들어봤어· 정조 잃은 여자들의 자결용 사약으로 쓰였대·”
문어 모양으로 자른 비엔나 소시지처럼 생긴 꽃이었다·
귀여운 꽃이었지만 치명적인 독이 있었다·
“무슨 그런 좆 같은 꽃을 화단에 심어놨어?”
양주희가 인상을 찌푸리고 화를 낼 때 고심 끝에 정석이 결론을 내린 듯했다·
“독살· 그럼 우리 모두 독살 당했다는 걸로 의견을 좁혀도 될 것 같아· 목욕탕에서 죽었다는 것도 신경 쓰여· 독과 목욕은 연관이 아주 커·”
“독과 목욕이? 더 자세하게 설명해 봐·”
나는 정석에게 추가적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정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한번 쓱 바라봤다·
“사극에 보면 사약 먹는 장면 나오지? 마시자마자 피를 뿜고 죽잖아· 그건 대체로 연출된 장면이고 실제 사약을 먹고 바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사약의 독이 체내에서 활성화 되려면 시간이 걸렸거든· 어떤 사람들은 반나절 이상도 아무렇지 않아했다더라· 그래서 사약 마신 사람들을 불을 뗀 사우나에 집어 넣어서 독을 활성화 시켜 죽이기도 했어·”
사약 먹고 피토하는 장면이 사실 거짓이었다니·
그건 또 처음 들어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결론을 내리자면 모종의 이유로 독에 중독된 우리가 목욕탕에 들어간 것으로 독이 활성화되어 죽었다─그렇게 보면 될 것 같아· 그리고 이런 결론 끝엔 하나 의문이 남아·”
“의문? 뭔데! 좀 뜸 들이지 말고 바로바로 연결해서 말해 봐!”
나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양주희도 정석을 향해 마구 화를 냈다·
“그래! 팍팍 좀 설명해 봐!”
“이 정도 말했으면 내가 설명 안해도 알만 하잖아· 우리가 독을 먹고 죽은 거야· 다 같이 독을 섭취했을 만한 시간이 언제일 것 같아?”
정석은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구하게 만드는 소크라테스 식 산파법을 좋아하는 듯했다·
나는 우리가 다 같이 독을 섭취했을 만한 시간을 어렴풋이 유추했다·
“저녁 시간?”
“그래· 저녁 시간에 우리가 독을 먹고 만 거야· 그럼 여기서 또 두 가지 의문이 생겨· 누가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독을 먹였는가· 우리를 왜 죽인 거지?”
“네 말은 이 저택에 범인이 있다는 말이야?”
유다희가 파르르-몸을 떨었다·
저택의 주민인 입장에서 저택 내부에 범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 퍽 두려웠던 모양이다·
물론 정석은 그런 감성에 공감 해줄 생각 같은 건 없었던 듯했다· 정석은 오히려 더욱 차갑고 냉정하게 무서운 사실을 밝혔다·
“우리 중에 있을 수도 있어·”
# # #
이 다섯 명 중에 모두를 독살한 범인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설마 우리 중에 범인이 있으리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고난을 함께 헤쳐온 우리가 이제 와서 서로를 독살해 죽일 이유가 있단 말일까? 곧 양주희가 입을 열었다·
“하영원· 네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유력한 용의자가 한 명 있어· 어떻게 보면 가장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독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고·”
양주희가 권수아를 슬쩍 바라보자 권수아가 크게 당황했다·
“저···저는 억울해요! 저는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저는 착해요! 선량한 사람이에요! 태어나서 범죄 같은 것도 해본적 없다구요!”
권수아는 거의 발작을 하듯이 몸을 떨면서 자신의 무죄와 무고함을 주장했다·
그 태도가 몹시 순수해보였고 진심을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나는 권수아를 믿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석이 냉정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이돌은 거짓말에 능해· 그러지 않고서야 온갖 사람들이 엮이는 연예계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심지어 권수아는 드라마에도 출연해서 연기파 배우로 칭찬 받았던 사람이야· 천재 아이돌에게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기야 어렵지 않다는 말이야·”
정석은 봉지연의 일을 제외하면 설령 그 상대가 초인기 아이돌이라 하더라도 냉정해질 수 있는 듯했다· 가슴에 호소하는 저 이야기를 듣고도 이토록 냉엄할 수 있다니·
“저는 정말 억울해요!”
정말 억울하다는 것처럼 펑펑 울기 시작하는 권수아·
나는 저 눈물이 연기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연기라면 그건 귀신도 울고 갈 정도의 연기력일 게 분명했고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양주희가 주먹을 쥐며 물었다·
“어떻게 하지? 마구 때려서 진실을 토해내게 만들까?”
“히익!”
권수아가 양주희를 보고 호랑이를 만난 사슴처럼 파르르 떨었다· 양주희가 복도 안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때려죽였는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양주희는 문자 그대로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영원 님! 저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고 말 해줘요!”
와락-·
권수아는 이제 내 뒤에 숨어서 나를 방패처럼 삼았다·
꾹-·
내 등에 닿는 압력이 정말 범상치 않았다·
이건 자신의 무고함을 알리는 의지 그 자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저녁 먹을 시간에 수아 님은 나랑 계속 같이 있었어· 저녁에 독을 넣었다면 조리 과정 중일 때가 가장 좋을 텐데· 부엌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어·”
권수아에게는 ‘독을 넣을 시간이 없었다’라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곧 권수아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쵸? 저는 아니에요! 오히려 저보다 정석 님 쪽이 더 범인일 확률이 있지 않나요! 공부 잘 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은 완벽한 범죄를 일으키기 좋다는 뜻이에요!”
“나?”
정석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궁금하니까 들어보고 싶다·”
권수아는 자신을 범인으로 몰았던 정석에게 감정이 남았는지 추리를 시작했다·
“흔히들 여자들이 질투하는 존재라고 말하지만 저는 남자들의 질투심 또한 얼마나 추악한지 잘 알고 있거든요? 정석 님은 영원 님을 질투하고 있어요! 저는 알 수 있다구요!”
정석이 나를 질투한다니·
왜지?
아니 남자가 남자를 질투할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잘생겨서?”
내 완벽한 추리·
그것이 잘 먹혀들었는지 정석이 울컥-했다·
“아냐· 내가 영원이를 부러워한 건 솔직히 사실이야· 상태창이 나한테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은 상상해보곤 하니까· 하지만 그 질투심에 상대를 죽일 정도는 아냐·”
정석이 나에 대한 부러움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애초에 나도 목욕탕에서 죽었다며? 모두를 죽이고 자기까지 죽는 범인이 어디있냐?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영원 네가 생각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냐?”
“사실 네가 죽은 건 정확하게는 파악 못했어· 그냥 피가 잔뜩 번진 목욕탕에 둥둥 떠 있는 것만 봐서 연기를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만····”
역시 정석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정석은 그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모두를 바라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중에 범인은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확신은 내리지 마· ‘거울 귀신’ 때 느낀 적 있잖아· 우리를 흉내 내고 있는 귀신이 우리 사이에 숨어있는 걸 수도 있잖아·”
“저희 사이에 귀신은 없어요·”
권수아가 팔짱을 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정석이 물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해?”
“츳츳 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이랑 귀신을 구분하기 위해 피가 말릴 정도로 노력한 사람이에요· 귀신과 사람 정도는 가뿐히 구분할 수 있어요·”
“증거는 없고 감이라는 소리잖아·”
“제 감은 거의 정확해요!”
“거의는 완벽하다는 말과 달라·”
정석과 권수아가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어색했던 둘 사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당히 나빠진 것 같았다· 선장은 해적단원들 사이의 호감도와 관계도에도 신경을 써야하는가·
“···왜 시간이 돌아간 걸까?”
한참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다희가 입술을 열었다·
그 나긋한 목소리가 갖는 어떠한 마력 같은 것이 모두의 이목을 쏠리게 만들었다·
“이상하잖아· 시간이 돌아가다니· 그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걸 솔직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야· 대체 어떻게 그런 걸까?”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떠한 귀신이나 괴담 등과 연관되어 있다면····
“푸흐흐 꼭 추리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네· 에드가 엘런 포· 코난 도일 같은 거·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거 말이야·”
유다희가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다니 참 비범했다· 모두가 피토하며 죽었던 그 지옥도를 못 봐서 그렇겠지·
“추리 소설· ···저택 속 살인 사건인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일을 잘 해결했을 때 포인트를 왕창 벌 수 있을지도 몰라· 범인을 찾아내자· 그리고 오늘 저녁은 모두 굶는 거야· 웬만하면 다 같이 뭉쳐 다니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월 20일···!!! 짤그랑···!!! 복도에 떨어지는 동전을 누군가 얼른 주웠다···!!!
“므흐흐···달력을 보니···2월도 얼마 안남았다는 것이야···!!! 이 쿠네노이는···봄이 좋다는 것이야···!!!”
헤흐헤흐 님!!! 후원 감사합니닷···!!!
아앗-!!! 왕 코인을 보내주신 1252 님!!! 후원 감사합니닷···!!!
자세한 감사의 내역은 공지사항을 살펴주는 것입니닷···!!!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