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6
126 – 붉은 꽃 피는 신사 # 2
악몽의 복도 3층·
컴컴한 신사·
딸랑거리며 흔들리는 방울 소리에 겁먹고 근처의 신당 안으로 도망쳤던 우리는 양주희의 이야기에 크게 놀랐다·
“저게 너희 언니 옷이라고?”
양주희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이유는 실종된 언니를 찾고 가족의 행복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행복하게 살았던 가정의 추락·
그 과정을 몸소 겪어봤던 나였기에 양주희의 소원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나도 잘 알았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 아이에게 있어서 화목한 가정이란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거 봐! 교복에 양도희라고 써 있잖아!”
불당 위에 걸려 있는 옷에는 붉은 것이 잔뜩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극한으로 줄인 여성용 교복 상의였다·
이름표에는 ‘양도-’라고 적혀 있었는데 뒤로 한 글자가 더 있었지만 붉게 물든 얼룩 때문에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양주희는 저것이 언니의 교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니야! 언니가 여기에 있었던 거야!”
“쉿! 조용히 해!”
정석이 양주희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 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대고 쉬이이이─경고하듯이 소리를 냈다·
우리가 모두 침묵에 잠겼기 때문에 사당 바깥에서 들려오는 방울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찌링! 찌링!
찌리리리링!
찌링! 찌리리리링!
방울소리는 커지다 못해 찢어지는 것 같은 고음을 냈다·
화륵 화르륵-·
우리가 숨은 사당에 켜져 있던 촛불들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지 몰라도 나는 너무 무서웠고 추웠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진 나는 양주희의 옆구리를 잡고 그 뒤로 숨었다· 양주희의 등에 숨으면 이것저것 든든해졌기 때문이었다·
평소 옆구리를 잡을 때마다 “간지럽다고!”라며 화를 냈던 양주희였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도 없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딸랑 딸랑····
딸랑····
시끄럽게 울리던 방울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흔들리던 촛불도 안정 됐다·
···뭔지는 몰라도 지나갔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미신일 수도 있었지만 불길한 언어를 말하는 것으로 불운이 찾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꾸욱-·
나는 부적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문 살짝 열어서 내가 볼게· 밖에 뭐 있나 없나 봐야지· 계속 이 안에 있을 순 없으니까· 내가 볼게· 내가 부적도 있으니···나가서····”
나는 용기를 냈다·
여차하면 탈출하자는 각오로 드르륵-사당의 문을 열고 천천히 바깥으로 발을 뻗었다·
고요했다·
모든 것이 쥐죽은 것처럼·
손전등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후회하게 됐다·
“····”
횃불이 비치는 저 너머·
무언가 굵은 기둥 뒤에서 반쯤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먹처럼 까맣고 긴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얼굴이었다·
너무 창백해서 파랗게 보일 정도로 하얀 얼굴에 눈썹은 없었고 눈은 흰자위가 너무 커 동공이 점처럼 보이는 눈이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입이었다· 입이 검은 실 같은 것으로 무자비하게 꼬매져 있었는데 그 실밥이 불길하고 공포스러워서 오줌을 지리고 싶어졌다·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완전한 무표정(無表情)·
그 비인간적일 정도로 무감동한 얼굴이 내 심장의 온기를 빼앗는 느낌이었다·
“···헉····”
여러 귀신들을 만나왔던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은 1층에서 보아왔던 귀신들과도 다르고 2층에서 봤었던 것들과도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아이 시팔····”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흘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찌링! 찌리리리링! 찌링! 찌리리리링!
찌링! 찌링찌링찌링!
찢어지는 방울 소리가 귀를 고문하듯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성이 하얗게 날아가버리고 본능만이 남았다·
본능이 맞서기를 바라고 있었다·
꾸욱-·
손에 쥐고 있던 사진기를 들고 조준 후···버튼을 눌렀다·
파앙-!
몹시 크게 터진 사진기의 섬광·
사진을 찍는 나까지 인상이 찡그려질 정도로 눈부신 빛이었다·
눈앞으로 떨어진 벼락 같은 빛이었다만 여자는 전혀 눈부시지도 않다는 것처럼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그 비현실적인 장면에 나는 이성이 냉정하게 돌아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끄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나는 다시금 모두가 숨어 있는 사당 안으로 돌아왔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있어! 있어! 아직 있었어! 숨어 있었어!”
“···우리도 문 열고 봤어· 팔이 여덟 개인···· 거미 같은····”
정석은 뱀 앞의 쥐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 사당의 얇은 문이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짜 다 죽을지도 몰랐다·
드르륵-·
그때 단단히 닫았다고 생각한 사당의 문이 멋대로 열렸다·
스르륵-·
열린 문의 테두리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붙잡았다·
그리고 까만 머리칼 사이로 푸르스름한 여자의 얼굴이 바닥에 달라붙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영락 없이 죽겠구나·
“보석의 요정이여! 빛으로! 루루샤인 루비 파워!”
내가 삶을 포기했던 순간 양주희가 아주 괴상한 주문을 외웠다·
슈우우웅-·
양주희가 손에 쥔 장난감 요술봉이 빛을 뿜어냈다·
그래! 결계를 만드는 요술봉!
저게 있으면 대단한 악귀라도 접근을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안심하고 있을 때 생각보다 긴 팔이 사당 안으로 쑥-들어왔다·
손등에는 꽃 문신이 있었는데 무슨 꽃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정석이 발목을 붙잡힌 것이었다·
“아아아악! 살려줘! 아악!”
정석은 발목이 묶인 채 고속버스에 끌려가는 개처럼 비명을 내지르며 사당 바깥으로 모습을 감췄다· 무표정의 여자도 함께 사라졌다·
# # #
정석의 비명이 들리지 않게되자 방울소리도 멎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적막했다·
“···거미· 거미 같이 생기지 않았어?”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우리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양주희였다·
하지만 용감한 양주희도 지금은 제법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방금의 그것·
오직 상반신만 존재하던 여자에게는 여덟 개의 팔이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거미처럼 보였고 내가 알기로 양주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거미를 무서워했다·
“···대체 뭐야 그게! 무슨 그딴 귀신이 다 있어! 정석은 어떻게 된 거야! 그놈!”
박박박-·
자신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는 양주희·
두려움 때문에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달한 것 같았다·
그게 귀신이라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 안했다·
그건 귀신이나 악귀를 넘어서는 ‘무언가’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나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정상적인 진행은 불가했다·
사진기도 통하지 않았고 우리에게는 커터칼도 없었다·
하물며 가장 든든했던 양주희마저 투지를 잃은 상태·
이제 답이 없다고 생각할 때 계속 조용하게 있었던 유다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나가서 돌아다녀보고 올게·”
“다희야! 여기는 지옥이야!”
“그렇다고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 너희는 여기서 쉬고 있어·”
유다희의 태도가 제법 초연했다·
무섭지도 않단 말인가?
문득 다희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 : 유다희 Lv·5
특성 : 《우아함》
성향 : 천진난만
기벽 : 없음
보유 : 행운의 종이학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부잣집 아가씨입니다· 장난을 좋아하며 비밀을 만들고 간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소녀는 평소보다 큰 위기 상황에서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동료가 되어줄 것입니다·」
기품을 잃지 않는 우아함·
그것이 큰 위기상황에서 초인적인 결의를 보여주는지 모를 일이다·
“기다리고 있어·”
휙-·
유다희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사당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나와 양주희 둘만 남았다·
양주희는 언니의 교복으로 추정되는 옷가지를 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거미····”
거미·
거울 귀신이 도사린 과학실에도 주저 없이 들어갔던 양주희는 여전히 거미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무서운 벌레를 싫어하는 것이 여자애답긴 했지만 나는 용감하다 못해 피 끓는 양주희가 거미를 무서워하는 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미랑 무슨 일 있었어? 왜 거미만 그렇게 무서워 하는데?”
“····”
한참 얼이 빠져 있던 양주희가 내 얼굴을 슥-쳐다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는가 싶더니 우엑-하고 구역질을 시작했다·
“···지금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겨우 정신을 차린 양주희가 선을 그었다·
양주희는 언니의 교복을 더욱 꽉 끌어쥐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언니를 찾아야 해· 내 생각이지만 언니는 분명 여기 있었어· 이 옷이 그 증거야· 언니가 근처에 있었던 게 분명해·”
용기를 되찾은 양주희·
“하영원· 너는 내가 지켜줄게·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부적으로 튀어·”
양주희가 기운을 되찾으니 나도 어떻게든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당을 빠져나왔다·
아까 그 괴상한 거미 여자가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는데 정석을 납치해간 뒤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여자가 나타날 때면 주변에 달려 있는 방울들이 시끄럽게 울렸지·
경보라도 해주는 것처럼·
그걸 잘 이용하면 이 3층도 못 돌아다닐 게 없다고 생각했다·
투다다닷-·
저 멀리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유다희였다·
“얘들아 나왔구나! 내가 신기한 거 발견했어! 이리 와 봐!”
신기한 거?
유다희의 표정은 언제나 여유롭고 나긋한 편이었다· 지금은 그 얼굴에서 희망마저 감도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런 다희를 신뢰하고 싶어졌다·
지금 상황이라면 내게 보증 서달라고 해도 덜컥 서줄 것 같아·
“가까운 곳에 있어!”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하는 유다희·
우리는 이 불길하고 으스스한 신사를 걸었다·
곳곳에 무너진 돌 석상이 서 있었고 틈틈이 보이는 화단에는 빨간 꽃들이 잔뜩 피어있기도 했다· 꽃· 이런 곳에서 꽃을 볼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놀랄 때 다희가 말해줬다·
“석산이야· 다른 말로는 피안화라고도 해· 꽃말은 환생· 슬픈 기억· 죽음····”
피안화·
죽음의 꽃인가·
으스스했다·
“저기야·”
유다희가 가리킨 곳에는 피안화 사이에 자그마한 창고 같은 게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와 불이다·”
모닥불이 피어있는 장소였다·
여러모로 춥고 긴장 됐던 마음이 불꽃의 온기에 확 녹는 느낌이었다·
여기는 어딜까? 너비는 단칸방 정도다·
신기한 점을 꼽자면 엄청 어린 시절에 들러본 적 있었던 시골 문방구처럼 이런저런 물건들이 진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물건의 종류는 아주 다양해서 라이터 붕대 담배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도 있었고 좀처럼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도 잔뜩 있었다·
골동품 가게?
내 첫인상은 그랬다·
가게라고 표현한 것은 물건들 앞에 「100」 「200」등으로 숫자가 적힌 팻말이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가격표였다·
“저거 진짜 총이야?”
양주희가 벽에 걸려 있는 물건에 흥미를 보였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에 권총이 한 자루 들어 있었다·
케이스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무척 튼튼해 보였다·
“어때 따뜻하지?”
이 장소를 발견해 우리를 안내해준 다희가 푸흐흐-웃었다·
과연 숨어있기 딱 좋은 장소였다·
그때 내 눈앞으로 글자가 떠올랐다·
『신기한 상점』
『신비한 화폐를 이용해 다양한 아이템들을 사고 팔 수 있습니다·』
『단 물건은 절대 훔치지 마시오· 적발 시 책임 못 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월 26일···!!! 짤그랑···!!! 복도에 동전이 떨어졌다···!!! 누군가 그것을 얼른 주웠다···!!!
“므흐흐···신비한 상점에 손님들이 마구 온다는 것이야···!!! 쿠네노이가 엄선한 상품들을 보라는 것이야···!!!”
아앗-!!! 왕 코인을 보내주신 이문인 님!!! 1252 님!!! 후원 감사합니닷···!!!
자세한 감사의 내역은 공지사항을 살펴주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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