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7
147 – 여자의 마음 # 1
양주희의 커다란 두 눈망울에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양주희가 《제물의 처녀》가 되어 힘들어하던 때에 귀엽게 굴었던 것으로 놀렸더니 반응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양주희가 울면 화내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내가 허둥지둥 하고 있자 양주희가 흥-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그래서?”
“유다희랑 뽀뽀해서 좋았냐? 아주 헤벌쭉해져서·”
“헤벌쭉 안 했어·”
“마음 속으로는 하고 있잖아!”
양주희가 관심법까지 쓸 줄 아나·
솔직히 말해서 다희처럼 예쁜 여자애에게 뽀뽀를 받았으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악몽의 복도에서 뽀뽀를 받았으니 사실 꿈이 맞긴 했다만····
“하영원 너! 나랑 유다희가 물에 빠져 있으면 누구 구할 거야·”
“너는 수영 잘하잖아· 저번에 여자애들이랑 수영하는 거 보니까 완전 인어공주던데·”
“···나랑 유다희랑 독약 먹고 쓰러졌는데 해독제 하나밖에 없어! 누구 구할 거야!”
여자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었다·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왜 둘 중 한 명을 꼭 구해야만 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거지?
내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양주희가 화가 난 것처럼 물었다·
“나랑 유다희· 둘 중에 누구랑 사귈 거야·”
이번엔 아주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정수리부터 원형탈모가 오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심했는데 좀처럼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내 상황에 화가 났다·
무더운 아침부터 내 머리에 열이 오르도록 만들다니!
양주희 괘씸한 녀석·
“나랑 유다희· 둘 중에 누구랑 사귈 거야! 얼른 말 해!”
“유다희· 집이 부자잖아· 그리고 너랑 사귀면 집안일 내가 다 해야할 것 같아·”
“···뭐어!?”
양주희가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
그 덕분에 다리를 까닥거리며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콰당 넘어지기도 했다·
양주희는 넘어져서 아팠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펑펑 울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내가 너 도와주려고 얼마나 고생하는데! 이 나쁜놈!”
주먹이라도 콱 날릴 줄 알았더니 그대로 콩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양주희였다·
엄청 서럽게 우는데 내가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장난삼아서 유다희라고 말해봤는데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할 줄이야·
“야 농담이야· 농담·”
애초에 나는 다희나 주희 둘 중 하나를 사귀어야 할 경우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선택은 화합을 깨트리기만 할 테니까·
“주희야 네가 나를 그렇게나 생각해주고 있는지 몰랐어· 내 어떤 점이 좋은데?”
“뭐래! 난 너 싫어!”
아무래도 달래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양주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양주희의 약점·
그것은 바로 간지럼을 잘 탄다는 것이다·
슥-· 간질간질-·
나는 엉덩이 아래로 삐죽 튀어나와있는 양주희의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그러자 참지 못하고 푸하하-웃은 양주희·
“크히힛! 야!”
웃다가 울다가 마구 화를 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세 감정이 섞여 있어서 매우 대단했다·
씨익 씨익-·
얼굴을 붉힌 채 아주 거친 숨을 내쉬던 양주희는 결국 참지 못했는지 내 이불을 향해서 확-들어가버렸다· 그리고 이불로 자신의 몸을 둘둘 감쌌다·
고치를 튼 번데기가 따로 없다· 아무래도 이 상태가 오래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크게 실수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의 마음이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로구나·
비싼 값으로 배웠다고 생각하자·
# # #
띵동-·
“더워!”
“안으로 들어와· 안은 에어컨 틀어서 시원해·”
양주희가 우리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후 다리를 껄렁하게 흔들며 내게 물었다·
“너· 유다희랑 어제 무슨 일 있었지?”
익숙한 질문에 익숙한 광경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100P나 주고 시간을 되감았으니!
이런 곳에 포인트를 사용해도 되는 건가 싶긴 했으나 한참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주희를 향해 말했다·
“너· 나 좋아하니?”
“뭣? 갑자기 무슨 소리야!”
콰당-!
의자에 앉아 위태롭게 기대고 있던 양주희가 콰당 넘어졌다·
넘어지는 장면도 아까랑 비슷했다·
“나는 양주희 너 좋아해· 예쁘게 생겨서· 간지럼을 잘 타서· 더운 걸 싫어해서· 언니를 찾으려고 노력해서· 또····”
내가 양주희를 좋아하게 된다면 좋아할 만한 이유가 셀 수도 없이 많아서였다·
내 고백이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하는 양주희·
“뭐래!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런데 나는 너를 좋아하면서 다른 애들도 좋아해· 모두가 내가 만났던 소중한 동료고 친구들이야·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결국 고민하다가 아무도 살려내지 못하고 다 죽고 말 거야·”
나는 지금이 좋았다·
어느 정도로 좋냐면 포인트가 많다는 경우에 매일매일을 영원히 반복해서 그 하루들을 진하게 음미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 또한 여러 일을 겪으며 성장했다·
내 철없는 짝사랑과 사춘기 애정이 지금 우리의 평화를 깨트리고 단합을 망가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도 이 일이 다 끝나면 내 선택을 보여줄게· 이건 내 남자로서의 약속이야·”
슥-·
나는 양주희에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양주희는 갑작스러운 내 이야기들에 조금 당황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으나 결국 새끼 손가락을 내게 내밀었다·
“···그래서 어제 유다희랑 뭐 했어· 둘이 뽀뽀라도 했냐?”
사필귀정(事必歸正)·
결국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인가····
이렇게 하나 또 배운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정말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지· 여기 봐· 봉세연 누나의 머리가 있잖아· 너희 언니도 곧 찾을 수 있게 돼·”
“와 씨 머리 뭐야·”
좋았어· 관심을 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여전히 양주희는 나를 가느다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넘어가준 느낌이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
조잘조잘-·
나는 비밀기지로 와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정석과 봉지연 그리고 권수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봉세연 누나의 머리를 꺼내기도 했다·
“이게 그 봉세연 누나 머리야·”
“으악 썅 이게 뭐야!”
언니 머리를 되찾아서 가장 기뻐할 줄 알았던 봉지연이 재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언니를 찾는 게 봉지연의 목표 아니었나·
조금 더 기뻐할 줄 알았는데·
“자 너희 언니야·”
“···새끼야! 저리 좀 치워!”
저리 치우라니·
자기 친언니에게 너무 하는구만·
슥-·
나는 테이블 위에 봉세연 누나의 머리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석도 크게 감탄했다·
“갑자기 눈을 뜨거나 하진 않지?”
“그러진 않을 것 같던데· 특별한 방법을 써야만 해·”
슬쩍-·
나는 커피를 홀짝이는 홍미리 선생님을 바라봤다·
홍미리 선생님은 레고 부품처럼 머리를 바꿔 끼울 수 있었다·
몹시 대단한 재주였다·
“꺄악!”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봉세연의 머리를 집어들었던 봉지연이 몹시 경악한 얼굴로 머리를 공중에 던졌다·
양주희가 “야!”라고 소리치면서 책상 위로 뛰어올라 그 머리를 받았다·
“뭐하는 짓이야 미친년아!”
“눈 떴어! 갑자기 눈 떴다고!”
눈?
대체 뭔가 싶어서 보니까 봉세연 누나의 눈이 정말 크게 뜨여 있었다·
흰자위가 아예 없이 새까만 눈이었다·
너무 무서웠고 나는 그만 다리가 풀렸다·
“···흐이미·”
이상한 소리도 내버렸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구도 내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곧 봉세연 누나가 입술을 뻐끔거렸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홍미리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여기가 어디냐는데?”
띠용-·
우리 모두 홍미리 선생님을 쳐다봤다·
“나도 머리 하나 키우고 있잖아· 계속 보고 있다보면 입술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게 돼·”
“과연 독순술이네요·”
정석이 아는 척을 했다·
독순술이 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봉세연 누나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홍미리 선생님이 잘린 머리 전문가였다·
뻐끔뻐끔-·
잘린 머리가 다시 금붕어처럼 입술을 오물거렸다·
“졸리다는데?”
스르륵-·
봉세연 누나가 눈을 감았다·
그 후로 봉세연 누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잠을 자는 모양이다·
“경찰서에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예요? 살인사건의 머리라면서요!”
권수아는 겁에 질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정론(正論)이기도 했다· 경찰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머리다·
봉세연 누나의 가족들도 머리를 찾아달라고 경찰서까지 찾아가 울고 그랬다지·
이걸 돌려주면 가족들은 좋아할 터였다·
“안 돼· 우리 언니에 대해서 물어봐야 해·”
하지만 양주희는 이 머리를 제출하는 것에 반대했다·
봉세연 언니의 머리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이유다·
“봉지연· 네 생각은 어때?”
나는 혈육인 봉지연에게 물었다·
이 장소에서 머리의 선택권이 있다면 여동생인 봉지연에게 있을 것 같았으니·
봉지연이 우리에게 협력을 했던 것도 바로 이 ‘머리’를 찾으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머리를 찾았으니 목숨을 내놓아가며 우리와 협력할 이유도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언니 머리가 필요하다면· 경찰에 내는 건 조금 늦어져도 돼·”
봉지연의 결단에 모두가 안도했다·
말은 안 했지만 저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나보다·
그럼 이제는 앞으로의 행동방침만 정하면 될 듯했다·
“오늘은 학교에 가보자· 진짜 학교·”
꿈에서는 악몽의 복도를 탐사하고-·
현실에서는 실제 구교사를 탐사하고·
“이렇게 투 트랙으로 탐험을 하는 게 어떨까?”
나는 모두에게 내 작전을 말했다·
다만 친구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큰둥하다·
언니의 머리를 찾은 봉지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석과 권수아도 살짝 시큰둥해보였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양도희 누나의 행방도 거의 다 찾은 것 같고· 복도도 4층이 끝이라고 하잖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모두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나는 목표를 확실히 다잡았다·
결승점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으니 다시금 마음을 단단히 먹을 때였다·
슬쩍-·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저기-·”
권수아다·
권수아가 작게 말했다·
“···그 끝에 도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희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요? 귀신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아마 그렇겠지· 다들 그게 좋지 않아? 귀신은 무섭잖아·”
권수아는 어려서부터 보인 귀신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귀신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권수아가 자신없는 것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지금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매일 아빠를 볼 수도 있고····”
“···아빠?”
“저희 아빠가 집에 있어요· 앞으로 평생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귀신이지만····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 같이 권수아의 집에 놀러갔던 때가 떠올랐다·
권수아의 아빠 귀신이 있었고 우리는 그를 퇴치하지 않고 되돌아왔다· 요 며칠 사이 권수아는 그렇게 남겨진 아빠 귀신과 정이 든 모양이었다·
“4층이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그러잖아· 너희 아버지를 살려내는 것도 가능해· 다들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4층까지만 가면 돼·”
나는 모두를 다독였다·
모두 말하지 못할 소원 하나 정도는 있을 터·
4층에 가면 그것을 전부 이룰 수 있을 거다·
“몰라· 남을 사람은 남아· 나는 갈 거야·”
슥-·
양주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결국 실제 학교의 지하를 향한 원정이 다시 시작 됐다·
각자의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저마다 꿈을 품은 채·
어둠으로 어두운 지하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 미츄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한 주에서 가장 힘든 요일은 바로 목요일인 것입니닷···!!!
그런 목요일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는 바···독자님들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는 것입니닷···!!!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 주···!!!
주말까지 버티실 수 있도록 저 미츄리가 활력을 불어 넣어드리는 것입니닷···!!!
풍선의 부두술···!!! 불어넣어드린 바람으로 체력이 빵빵해지는 부두술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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