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2
152 – 너의 이름은 # 1
옛날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때의 일이다·
엄마가 내게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갖고 싶은 선물 있다고 기도했어? 이제 곧 자정 지나· 얼른 소원을 빌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지·”
“못 정하겠어!”
산타 할아버지에게 빌어야 하는 소원은 딱 하나·
대체 왜 하나만 소원을 빌어야 하는 걸까·
로봇도 주고 레고도 주고 피카츄 인형도 주면 안 되나?
나는 이렇게 하나를 골라야 할 때면 예전부터 패닉에 휩싸이곤 했다·
‘정했다!’
한참 고민하던 끝에 나는 내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당시 친구가 자랑했던 변신로봇이었다·
200만 원도 넘는다고 엄청 자랑해서 부러웠었다·
다음 날 아침·
내 머리맡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크레파스가 놓여 있었다·
내 소원은 변신 로봇이었는데·
그날 깨달았다·
소원이란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구나·
예전부터 내가 바라는 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소원’이라는 것은 나 하영원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일지도·
“걔네들 아직 살아 있어·”
다희의 이야기에 나는 영혼이 저 머나먼 우주까지 날아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친구들에게 나쁜 짓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 고심하고 고심했던 건데·
다희는 보기 좋게 공예린과 임희연의 뒤통수를 때리고 걔네들을 납치해 가뒀다·
혼자 한 일인가?
“혼자 한 일이야?”
“주희가 도와줬어· 아무래도 혼자 옮기는 건 힘들 것 같아서· 또 댄버스 아줌마랑 언니들도 도와줬고·”
“····”
“사실 비밀로 하자고 했는데 역시 영원이 너에게 거짓말은 못 하겠어·”
푸흐흐-하고 애교를 섞어 웃는 유다희였다·
“나는 너희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영원아· 우리는 네가 지켜줘야 할 만큼 약하지 않아·”
그건 듣고보니 그랬다·
나는 항상 지켜지는 포지션이었지 누굴 지켜준 적은 없구나·
다들 강했다· 붙잡힌 피치 공주 포지션은 사실 나였나···!?
대체 내가 지키고 싶어했던 모두의 일상(日常)이라는 건 뭐지?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여름날의 아지랑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들이라서 뭉쳤던 거야·
문득 다희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여자라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다희는 나를 위해 ‘죽어줄 수 있는 친구’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서 ‘죽여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영원아 오늘 같이 애들 보러 갈래?”
다희가 내게 물었다·
마치 ‘우리 집에 고양이 있는데 고양이 보러 갈래?’라고 묻는 느낌이다·
여기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자 다희가 내 눈치를 본 모양이었다·
“알아· 나쁜 짓이라는 거· 내가 싫어졌어?”
다희가 싫어졌냐고?
예전에 다희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 얼마나 꼴사납게 굴던지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그때는 그 말이 와닿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딱 그랬다·
“아니 전혀 싫어하지 않아·”
다희는 예쁘다·
나는 다희가 어떤 짓을 해도 다희를 미워하게 될 수 없으리라는 걸 이 순간 직감했다·
“누구누구 알고 있어?”
“나랑 주희만· 아니 이제는 영원이 너· 사실 왕자현도 잡고 싶었는데 걔는 남자라서 그런가 빠르게 도망쳐서 놓쳤어·”
무슨 몬스터볼이 부족해서 포켓몬을 놓친 사람처럼 말하네·
아무튼 둘이서 꾸민 일이구나· 저택 사람들도 도왔고·
나는 한참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따가 점심 먹고 난 후에 다 같이 보러 가자·”
무슨 견학가는 것처럼 말했는데·
친구가 납치한 여고생을 보러가자는 이야기라는 게 초현실적이었다·
나의 일상은 귀신이 나오는 악몽보다 더 아스트랄한 구석이 있었다·
# # #
「빨간 꽃 신사」
심연의 복도의 다음 시리즈는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빨간 꽃 신사·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빨간 꽃이 가득 피어난 일본식 사찰을 돌아다니는 게임이었다·
“이거 우리가 돌아다녔던 곳이랑 완전 똑같지 않아요?”
게임은 권수아가 플레이 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인싸이자 아이돌인 권수아가 게임을 가장 잘했기 때문이었다·
귀신이 쫓아오고 아이템은 없어서 허덕이는 상황인데도 무서워하지 않고 잘 했다·
“안 무서워?”
나는 권수아를 보며 짐짓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실제로는 겁이 많았던 권수아가 공포 게임을 잘 하니까 좀 신기하다·
“게임이잖아요·”
게임은 게임이다 이건가·
“오오· 오오오· 대단하다· 대단해·”
“더 칭찬해도 좋은데요?”
“대단하다!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이예!”
다만 ‘그냥 게임’이라고 넘어가기에 이 「빨간 꽃 신사」는 신경 쓰이는 점들이 많았다·
일단 등장하는 괴물이 우리의 기억과 똑같았다·
팔이 여덟 개 달린 거미 여자·
붙잡히면 죽는다·
거미 여자를 따돌리려면 절대로 거미 여자에게 시선을 맞춰선 안 됐다·
찌르르릉-·
주변에 걸려 있는 방울이 경고음처럼 울리기 시작하면 고개를 바닥으로 박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공략법이 똑같아·”
어쩌면 이 「빨간 꽃 신사」는 3층의 복도를 그대로 따온 걸지도·
이 빨간 사찰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귀신은 신비한 주문을 외우는 음양사였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정석이 긴 침묵 끝에 한마디 했다·
“우리는 음양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잖아· 일부러 죽어보거나 게임 안에서 자료를 찾아보거나 하면 될 것 같아· 이 사찰을 돌아다니면 쪽지들을 모을 수 있으니까·”
게임 안에서는 「쪽지」라는 아이템을 모을 수 있었다·
느닷없이 이 사찰에 휘말리게 된 ‘주인공’이 누군가 남겨둔 「쪽지」와 「아이템」을 통해 비밀을 파헤치며 탈출을 도모한다─라는 게 게임 요지였다·
그렇게 얻을 수 있는 쪽지에는 귀신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느낌이다·
「음양사에 대한 쪽지1
불경한 진언을 외우는 남자다· 그 정체와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게 없다· 완벽한 미지(未知)의 존재다· 일단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음양사에 대한 쪽지2
교토에서 살던 사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랜 옛날 여섯 손가락의 스님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대신 그들의 소중한 것을 받아갔다고 했다· 스님이 지나간 후 이상한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막부는 스님을 요사스럽다고 여겨 영력 높은 무녀와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놈을 저지하려 했으나 모두가 이상한 병에 걸려 죽었다·」
「음양사에 대한 쪽지3
이상한 스님의 소문을 듣고 저 머나먼 스페인에서 신부가 찾아왔다· 이국의 신부는 천국문을 찾아 먼 일본까지 온 크리스챤이었다· 그는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짧은 몇 마디를 나눈 후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섯 손가락의 존재는 이물입니다· 이러한 이물들은 사람을 미혹하고 꾀어내는 존재입니다만· 이름을 알아내면 당해내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음양사에 대한 쪽지4
사람들은 많은 희생 끝에 스님의 이름을 알아내 그를 1000관(貫)의 쇠상자에 가두고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은 구덩이에 묻었다·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던 사람들의 건강도 나아졌다·」
「음앙사에 대한 쪽지5
이 붉은 사찰의 음양사에게는 여섯 개의 손가락이 있었다· 그 스님처럼 음양사에게도 이름이 있을 것이다· 이름을 알아낸다는 것은 주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근처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음양사에 대한 쪽지는 이게 끝이에요·”
게임 속 세상을 열심히 돌아다니던 권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찾아도 이름에 대한 힌트 같은 건 안 보이는데요?”
게임에는 공략법이 있기 마련이었다·
몬스터가 있다면 그리고 몬스터를 쓰러트릴 방법에 대해 적힌 쪽지가 있다면 응당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게임에는 음양사를 쓰러트릴 이름에 대한 힌트 같은 게 전혀 없었다·
“무료로 급하게 발매했다 싶었더니· 역시 미완성인가?”
인상을 찌푸린 정석·
나는 강바다 아저씨에게 연락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곧 봉지연이 물었다·
“진짜 있는 일이었을까?”
뭘 말하는 거지?
우리 모두 봉지연을 바라보자 봉지연이 말했다·
“이 이상한 스님에 대한 이야기· 진짜 있었던 일일까?”
봉지연은 게임에 익숙하지 않았다·
게임에 나오는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 순진함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정석이 봉지연의 이런 면을 좋아하는 건가·
다만 이 게임이 평범한 게임이 아니라는 건 우리도 잘 알았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홍미리 선생님· 여기 나오는 스님이···그 지하의 음양사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사장님은 불단사를 지을 때 대부분의 일을 무녀에게 일임했다고 들었어· 절의 재료들도 일본에서 비싼 돈 들여서 공수해온 것들이야· 이 스님이 갇힌 쇠상자가···그때 한국에 들어와서 봉인이 풀렸다면···음양사와 스님이 동일인물일 확률도···· 비행기로 옮겼을 것 같진 않고· 배로 들여왔을 테니까 당시 통관 기록들 보면 남아있지 않을까? 내가 연락 해볼게·”
내 생각이지만 옛 일본의 스님과 음양사는 동일인물이 맞는 것 같았다·
내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들어맞았으니까·
문득 화가 났다·
괴승이 갇힌 상자 따위를 왜 한국으로 들여온 거야·
만나본 적도 없는 양주희네 할머니를 향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
그래서 괜히 양주희를 흘겨보게 됐다·
양주희 이 녀석·
나한테 비밀로 하고 공예린과 임희연을 납치하다니·
우리 사이에 비밀을 만들어?
아주 괘씸했다·
옆구리를 찔러줘야 속이 좀 풀릴 느낌이었다·
쿡-·
그렇게 양주희의 옆구리를 찌르자 양주희가 느닷없이 찬물 맞은 고양이처럼 놀라서 천장에 부딪힐 정도로 튀어 올랐다·
“햑!”
“뭐야! 왜 그래요!”
화들짝 놀란 권수아가 컴퓨터 책상에서 일어나고 모두의 시선이 몰릴 때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양주희가 내 팔을 꼬집었다·
“얘가 내 옆구리 찔렀어!”
“얘들아 다 좋은데 애정행각은 둘이 있을 때만 해·”
흐흐-웃는 홍미리 선생님·
어쩐지 분위기가 무안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모두의 관심을 돌릴 겸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게임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다희네 집으로 가보자· 다희랑 주희가 창고에 여고생들 납치해서 감금 해뒀대·”
내 입으로 설명하는 것이지만 참 현실 같지가 않았다·
정석과 봉지연 그리고 권수아와 홍미리 선생님이 크게 술렁이고-·
양주희가 화를 냈다·
“야 유다희!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역시 모두에게는 비밀로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구만·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비밀은 없었다·
# # #
유다희네 저택의 뒤편에는 컨테이너가 많았다·
무수히 많은 쇠상자에 사람 한 명 가둬둔다고 해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철커덩 기이익-·
컨테이너를 개방하자 어둠이 걷히며 꽁꽁 묶인 여고생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피에 젖어 있었고 눈은 사냥꾼을 마주한 토끼처럼 두려움에 잠겼다·
“으으읍!”
“으읍!”
여고생들은 눈부신 빛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주춤주춤 물러나려고 애썼다·
손발이 묶여 있기 때문에 꼭 굼벵이나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무서운 것이리라·
반대로 내가 김건호에게 납치 되었다고 쳐 봐· 컨테이너에 갇혀 있다가 왕자현 및 공예린 그리고 임희연과 김건호가 그 문을 열고 나를 쳐다봤다면?
진짜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을 게 분명했다·
“이건 상상도 못 했는데·”
정석이 작게 말했다·
정석이 생각해도 이 상황은 초현실적인 듯했다·
“하지만 효과적이야·”
그렇지만 정석은 차가운 소년이었다·
당황한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감탄하고 있던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월 10일···!!! 떨어지는 큰 동전을 누군가 얼른 주웠다···!!!
“사실 이 쿠네노이는 이 동전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야···!!! 초콜릿 맛이 난다는 것이야···!!!”
아앗-!!! 왕 코인을 보내주신 아토므스크 님!!! 후원 감사합니닷···!!!
자세한 감사의 내역은 공지사항을 살펴주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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