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1
161 – 악마 # 5
[2분이 지났다·]
“시발!”
120초가 이렇게나 빨리 흘러갈 줄이야·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2분을 날려버렸다·
사실 2분 안에 악마를 대화만으로 퇴마시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느냐· 두려워 말라·]
그래도 이 2분 동안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이 수술대 원 안에 있는 우리에게 악마 놈이 큰 해코지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게임 내용이 사실이라면 악마도 한번 봉인을 당했던 몸이야· 쓰러트릴 방법이 있다는 소리고·’
상대도 무적이 아니다·
어떻게든 상대법을 찾아서 이름을 알아내고 쓰러트려야만 했다·
곧 권수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이름을 알려주세요! 저희가 퇴치할 수 있도록! 퇴치당해주세요! 제발!”
권수아의 이야기에는 거짓이 하나도 담기지 않고 진심만이 묻어 나왔다· 그야말로 정공법·
유명 아이돌이 감정을 담아 호소하는 이 제안에 사내라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원 너머의 존재는 낮고 음울하게 웃었다·
[나를 퇴치해? 어째서지?]
“악마잖아요!”
[내가 악마라고?]
어둠의 존재가 다시금 자신의 정체를 반문했다·
자신이 악마라고 인정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너희에게 무슨 해악을 끼쳤느냐· 여자야· 보고 싶은 것을 믿지 말고 믿고 싶은 것을 보지 마라· 발을 뻗어 손을 내밀어라· 나는 여기 분명히 존재하노라·]
이렇게 된 이상 확 어둠을 향해 나가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호랑이와 싸우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마귀의 소굴로 들어간다는 것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그 안락한 땅에서 나와 저 문으로 무사히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몸이니· 단 저 문으로 나갈 수 있는 건 4명이다·]
어둠 속 목소리가 우리를 출입 문으로 내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갈수 있는 건 4명·
우리는 다섯 명이었다·
한 명은 남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내가·”
슥-·
그때 양주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나가본다·”
원을 넘어서 저 어둠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걸까?
양주희의 용기가 아주 대단했다·
다만 무모하기도 했다·
“야! 너무 위험해!”
“그렇다고 이대로 원 안에 있어도 답이 없잖아· 나는 제물의 처녀였어· 내가 바깥으로 나가서 저놈을 보면 뭔가 달라질지도 몰라!”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그런 이야기가 희망적으로 들릴 만큼 우리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팟-·
결국 양주희가 원 바깥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뚜벅·
단 한 걸음·
그것으로 양주희는 원을 벗어나 어둠 속에 섰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리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양주희를 바라봤다·
“야! 주희야! 괜찮냐!”
양주희는 어둠에 서 있었다·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양주희가 말했다·
“웨오오오오옹-·”
시끄러운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였다·
아주 소름끼치는 소리였는데 더욱 기괴한 것은 양주희가 인간성을 잃은 사람처럼 네 발로 샤샤샤샥-기어 저 어둠을 향해 아주 사라져버렸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권수아는 이제 질질 짜기까지 했다·
“너무 무서워욧!”
나도 그랬다·
오줌 지릴 것 같다·
대체 양주희는 어떻게 된 거지?
“야! 정석! 우리 어떻게 해야 하냐!”
“····”
정석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단단히 겁을 집어 먹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정소진은 어떨까?
정소진은 안경 뒤의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었다· 내 뇌피셜이지만 여차할 경우 우리를 미끼로 삼아 혼자라도 도망칠 궁리를 짜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바깥으로 나와 봐· 그 좁은 장소에 있지 말고·”
양주희의 목소리였다·
양주희가 어둠 속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나와 보라니까· 진짜 아무렇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기는! 너 갑자기 미쳐서 고양이 소리 내면서 네 발로 기었잖아!”
나는 거짓말을 하는 양주희에게 화가 났다·
물론 저건 진짜 양주희가 아니고 양주희의 몸을 빼앗은 악마의 소행일 게 분명했다만·
“네 발로 기어? 이렇게?”
팟-·
양주희가 원 앞에 다가왔다·
양주희는 네 발로 원을 빙빙 돌았다·
그르르르····
입에서는 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릉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리 나오라고·”
“나가면 어떻게 할 건데·”
“나도 몰라· 하지만 이 몸은 맘에 들지 않아· 바꿔 줘·”
쿡-·
정석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야 악마가 양주희의 몸을 차지했나 봐·”
“나도 보면 알아·”
“어떻게 하지?”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데·”
나랑 정석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양주희가 엉덩이를 깔고 바닥에 앉더니 자신의 발을 들어서 목덜미를 긁었다· 마치 고양이 같은 행동이었다·
저게 가능한가?
이런 상황이지만 양주희의 외모 때문인지 조금 웃기면서도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일부러 귀엽게 보이려고 그러는 건가? 그야말로 악마의 유혹이다·
짝-!
나는 내 뺨을 때렸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야· 정석· 한 악마가 동시에 두 명에 빙의하는 것도 가능할까?”
“그건 왜?”
“여러 귀신이 한 사람 몸에 들어가는 건 성경에도 쓰여 있잖아· 군대 귀신이 인간의 몸에 들어가서 고통스럽게 만드니까 그 귀신들을 돼지에게 깃들게 하기도 했고·”
하나의 몸에 여러 영혼이 들어가는 건 가능했다· 성경에서도 자신들을 ‘군대’라고 지칭할 만큼 많았던 귀신이 한 사람의 몸에 전부 들어가서 그를 자해하게 만들고 괴롭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하나의 영혼이 여러 몸에 들어가는 건···?
그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실제로 방금 악마에 빙의된 양주희는 ‘몸을 바꿔 줘’라고 말했다·
나였다면 동시에 두 개의 몸을 차지했을 텐데·
“야이 미친 악마 놈아! 양주희 몸에서 나와!”
나는 짐짓 바깥에 있는 양주희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발로 턱을 긁고 있던 양주희가 흐흐-웃었다·
“그럼 대신 들어갈 몸을 내놔· 나와서 내 몸의 어느 곳이라도 만져라· 그럼 나는 옮겨갈 수 있어·”
슥-·
자신의 손을 내미는 양주희·
이런 상황이지만 어느 곳이든 몸을 만지라는 말이 조금 야릇하게 들렸다·
아무튼 악마는 몸을 갈아탈 수 있는 듯했다·
악마는 하나의 몸에만 들어갈 수 있다-·
이걸 머릿속으로 되내이며 나는 작전을 하나 짰다·
내 생각이지만 아주 기똥찬 작전이었다·
“얘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 #
나는 내가 생각한 작전을 아주아주 작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놀랐다·
“···너무 무모한 거 아니에요?”
크게 놀란 권수아·
정석과 정소진도 말은 안 했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눈빛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다만 내 생각에 이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좋아· 내가 나가서 널 만질 테니까 내 몸에 들어와·”
나는 천천히 원 바깥을 향해 발을 뻗었다·
그리고 완전히 원 바깥으로 나왔다·
뚜벅·
단지 그것만으로 주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것처럼 피부가 찌릿했고 목덜미의 솜털이 우스스 곤두섰다·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슥-·
양주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향해 내 손을 천천히 뻗는 척하다가─·
“지금이야! 모두 원에서 나와!”
모두를 원에서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양주희의 손을 잡은 후 내 몸을 원 안으로 집어 던졌다·
양주희를 만져서 내 안에 악마를 불러들인 뒤에 내 스스로를 비좁은 원 안에 가둘 생각이었다· 이 원이 악마를 막고 가두는 경계가 되는 것 같았으니까·
이렇게 용기 있는 행동은 양주희를 제외하면 《강심장》을 가진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나선 것이었다·
“으으으!”
다만 양주희를 만졌던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지렁이가 백 마리는 넘게 기어다니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을 만큼의 통증이었고 심장도 아파서 비명이 나왔다·
“얘들아! 얼른 나가!”
나는 아마 2초 뒤에 몸을 빼앗길 게 분명했다·
원 바깥으로 나갔던 양주희가 정신을 잃기까지도 딱 2초가 걸렸으니·
《시계》의 특성을 가진 내가 카운팅 했던 숫자였기에 시간 자체는 정확할 것 같았다·
“얼른! 절대 내 몸에 닿지 말고!”
“나가야 해요!”
“나가자! 나가!”
권수아와 정석이 허겁지겁 원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작전 성공인가·
내 몸을 빼앗기는 건 최악이었으나 이 악마 놈을 넓은 수술실이 아니라 원 안에 가둬두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게 분명했다·
팍-!
그때 무언가 강렬한 것이 내 어깨를 힘껏 밀었다·
앞으로 잔뜩 내민 두 손바닥에는 사람 한 명분의 무게에 더해서 여러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엇-·”
나는 뒤로 콰당 넘어지며 원을 빠져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정소진이 앞으로 뻗었던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팍으로 당기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고 그 어떠한 설명도 없었으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정소진이 원 안에 혼자 갇혀있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내 몸에 손을 대 악마를 자신의 몸에 끌어안고서·
“···왜?”
“다들 문으로 가· 저 문은 진짜야·”
슥-·
정소진이 수술실의 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 출구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넷·
원에 갇힌 정소진을 제외하면 우리도 넷·
때마침 딱 맞는 숫자였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정소진이 이번 원정에서 내 등을 밀칠 것이라고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그 밀침이 악의 구렁텅이로 떠미는 악의가 아니라 선의에서 비롯된 희생이 될 줄은 몰랐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실존하는 악마의 존재 같은 것보다 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영원아 너도 날 구해줬잖아· 내가 혼자 양호실에서 무서워하고 있을 때· 그리고 저번 주에도 공룡한테 잡아먹히는 꿈에서 날 구해줬고· 저저번 주에는 바다에서 건져줬잖아·”
그건 그냥 꿈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악마가 말했었던가·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본다고·
그리고 보고 싶은 것을 믿는다고·
누군가에게는 꿈도 진짜가 될 수 있는 법이었다·
정소진에게 나는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이었다·
꿈에서 벌어진 선행·
그 작고 사소한 계기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내가 포기해왔던 많은 사람들과 가능성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람들은 바뀌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할 수도 있었지만 그 반대도 가능했다·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악마가 도사린 수술실 온기 하나 없이 입김조차 얼어버릴 그 지옥 속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신뢰하지 못했던 여자로부터 희망을 느꼈다·
희망·
귀신과 악마들은 가질 수 없는 인간들만의 빛·
나는 가능성을 봤다· 그 가능성이 내게 힘을 줬다·
“이 악마야! 네가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영혼까지 느낄 수 있도록 납득시켜주마!”
이번에야말로 악마조차 삶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게 만드는 금단의 퇴마이론이 지상에 펼쳐질 시간이었다· 이번엔 진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화이트데이···라는 것입니닷···!!!
세상에는 사탕을 좋아하는 신기한 친구들이 존재하는 바···
독자님들께 벌꿀 사탕의 부두술을 걸어드립니닷···!!!
독자님들의 삶에 당분 같은 행운이 많아지는 부두술···!!!
밥을 먹고 난 후 10분 정도 산책을 하면 혈당 조절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닷···!!!
건강이 최고라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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