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5
175 – 뱀의 꼬리 # 4
“아아아아아아악!”
문을 열자 입구에 대기 중이었던 여자가 악에 받힌 비명을 내지르며 내게 덤벼들었다·
번쩍-·
손에 쥔 식칼이 흉흉하게 빛날 때 나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콰당-!
이대로 영락 없이 죽겠구나·
그렇게 생각할 때 권수아가 옆에 놓여 있던 화분을 집어 들고는 여자의 머리통을 쳤다·
“영원 님 조심해욧!”
퍽-! 쨍그랑-!
“악!”
비명을 내지르는 여자·
여자가 머리에 쓰고 있던 가면에 금이 갔다·
눈동자가 그려져 있는 가면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털들이 북실북실하게 달려서 마치 사자의 갈기 같았다·
쩌저적-!
마침내 깨져버린 토기 가면·
“이이익 내 가면이이이이!”
드러난 용모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왼쪽 눈 밑에 점이 두 개나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특징이었다·
그 얼굴은 일찍이 내가 어젯밤에 복도에서 보았던 여자와 똑같았다·
1층에서 나를 공격했던 작두녀·
유다희에게 나무토막으로 마구 맞아 죽은 여자·
이 장소는 그 여자의 집이었던 것이다!
“김미령· 네 집이구나·”
홍미리 선생님이 여자를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사이인가?
여자는 식칼을 우리에게 겨누면서 주변을 흘끔흘끔 봤는데 몹시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언제 미쳐서 우리에게 또 덤벼올지 모르는 일이니·
“선생님 아는 사이세요?”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정석이 물었다·
곧 홍미리 선생님이 말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정치인들이 대선 있고 지선있고 할 때마다 용한 처녀보살 찾아가서 당선 확률 점치고 한다는 거 못 들어 봤어? 그때 말하는 용한 처녀보살이 바로 쟤야·”
정치인들이 민생을 살피려는 게 아니라 무당이나 찾아가서 점을 친다니·
나라가 그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여기가 무슨 갑골문자로 점치던 중국 상고시대도 아니고·
“내가 아직 학교 다니고 있을 때 오성 회장 권오성이 고아원 운영하고 있을 때 쟤가 종종 동생이랑 같이 놀러왔거든· 자아는 비대한데 실력은 없는 애야· 동생은 착한데·”
“닥쳐! 너희들 모두 주거침입죄야! 경찰에 신고한다!”
“용의 꼬리도 뱀의 머리도 되지 못하는 뱀의 꼬리· 사미(蛇尾)· 별명이 사미령이었어· 요즘 이상한 예능 프로그램 나가서 돈 번다고 들었는데 권수아에게 접근 했을 줄이야·”
“예능···앗 그러고보면 저 작년 여름 때 흉가 같은 곳 가서 예능 프로그램 찍었는데· 그때 전문가라고 하면서 오셨던 언니가 있었는데 이 언니였어요! 이제야 생각 났다!”
권수아 및 홍미리 선생님과 인연이 있었던 여자인가·
나랑 다희랑도 인연이 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건 나뿐인 듯하지만 말이다·
나를 죽이려고 했었지·
그때 뭐라고 했더라·
─그런 장소를 지키는 귀신을 잡아다가 부리면 돈도 벌 수 있고 명예도 벌 수 있어· 신빨도 올라가겠지? 그러면 정치인 놈들도 다시 내게 찾아올 거고-·
복도에서 귀신을 잡아 무슨 포켓몬처럼 부리려고 했던 여자였다· 권수아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이유도 복도에서 악행을 벌인 이유와 똑같지 않을까?
“수아야 너 보이는 사람이잖아· 그때 그 흉가에 귀신이 있는 거· 너는 알아차렸잖아· 귀신이 숨어 있는 냉장고를 일부러 빙 피해갔잖아· 네 눈 줘· 네 눈! 보이는 눈!”
처녀보살 김미령은 완전히 미쳐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는데 어젯밤 다희에게 머리통을 마구 얻어 맞아서 죽은 후 ‘기벽’이 쌓여 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는 귀신에 붙잡힌 상태나 마찬가지인 거야·
“저도 좋아서 보는 게 아니라구요!”
호다닥-·
홍미리 선생님의 뒤로 숨은 권수아·
“저도 가능하다면 보기 싫어요!”
여러모로 공감 됐다·
귀신 같은 걸 보는 게 뭐가 좋다고· 기왕 본다면 예쁘고 좋은 것만 보면서 살아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 아닌가·
아름다운 동산 같은 거· 꽃이 피어난 봄 같은 거· 삶의 공포에서 눈을 돌리고 서로 마주 보게 된 연인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내 모습 같은 것·
다만 그런 설득 따위야 통하지 않았다·
무당 김미령은 칼을 쥐고 우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목을 베어서 홍미리 선생님의 머리통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야아아아악!”
툭-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홍미리 선생님의 머리·
그 모습을 보면서 봉지연이 경악했다·
“어맛 씨발 저게 뭐얏!”
“으악!”
슈퍼 겁쟁이 정석도 비명을 질렀고 나의 경우에는 너무 무서워서 머리를 바닥에 박고 브레이크 댄스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만 김미령은 몹시 통쾌하다는 것처럼 파하하-웃었다·
“부모도 없는 고아년이!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너희들도 이리 와!”
“얘들아 도망쳐! 도망쳐! 살아야 해!”
나는 정신력을 쥐어짜내 소리쳤다·
이대로 있다간 미친 여자의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진짜 미친 싸이코패스였다· 문제는 어느새 나타난 털복숭이 귀신이 입구를 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녕하세요?”
털복숭이 귀신 때문에 우리는 완전 독안에 든 생쥐가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김미령·
“너희들도 보이는 모양이구나· 역시 너희 눈을 뽑아야겠다! 바보들! 함정인 줄도 모르고 제 발로 찾아오다니! 너희 눈을 뽑아서 달여 먹을 거야!”
“미친년!”
“가서 권수아를 좇아!”
“안녕하세요?”
털복숭이 귀신이 네 발로 기며 권수아를 향해 다가갔다· 악령에게 노려진 권수아는 거의 졸도할 것처럼 몸을 떨었는데 정말 여러 가지로 바들바들 떨렸다·
권수아를 도와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권수아가 결심을 내린 것처럼 말했다·
“제가 구석 방으로 귀신을 유인할 테니까 다들 도망쳐요·”
스스로 미끼역할을 자청하겠다는 말인가·
겁 많은 권수아가 이토록 용기를 낼 줄이야·
“얼른!”
팟-!
구석 방으로 뛴 권수아·
하지만 털복숭이 귀신이 더 빨랐다· 네 발로 기괴하게 뛴 귀신은 권수아를 붙잡았고 그 목을 망설임 없이 졸랐다·
꾸아아악-·
권수아는 바닥에 쓰러져 마구 버둥거렸다· 팔다리를 뒤흔들고 고개를 흔드는데 털복숭이 귀신에게 자비란 남아있질 않았다·
퍽-!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아저씨가 털복숭이 귀신을 밀쳤다·
권수아의 아빠였다· 권수아의 아빠를 본 털복숭이 귀신은 손을 뻗어서 권수아의 아빠를 잡았는데 그 덕분에 목이 졸리던 권수아가 켁켁-숨을 몰아쉬었다·
“아빠!”
“이 미친 년아! 권수아를 노리라고! 귀신은 그만 잡아먹어도 되니까! 권수아를 노리라고! 쓸모 없는 년아!”
여러모로 난리가 난 상황·
슥-·
그때 다희가 자신의 가방에서 두꺼운 나무토막을 꺼내는 게 보였다· 목사 천애수의 명패였다· 다희가 저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나는 어젯밤 얼리엑세스로 보고 왔다·
그건 ‘꿈’이었으니까 괜찮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 끔찍할 터·
나는 하는 수 없이 소리쳤다·
“가라 기가노토!”
─붐부붐파우-·
파밧-·
# # #
김미령은 안달이 나 있었다·
눈동자들이 잔뜩 있는데 습득할 수가 없다니·
이게 다 멍청한 동생 때문이었다·
“쓸모 없는 년아! 권수아를 쫓으라고!”
권수아는 주시자의 재능이 훌륭한 여자애였다·
그 눈을 뽑아서 짓뭉갠 피로 특별한 눈동자 가면을 만들면 김미령 또한 우주와 진리의 장막을 들추고 봐서는 안 될 비밀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동생이 너무 쓸모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동생은 너무 착해 빠졌다·
손발을 부수고 굶겨 죽인 후 귀신을 먹여도 어중간한 원귀가 될 뿐·
김미령은 ‘보는 것’에 대한 재주는 적었으나 귀신의 급을 매기는 재능은 아주 훌륭했기에 정확한 평가라고 볼 수 있었다·
이래서야 영지 고등학교에 있는 악령들에게는 상대가 안 될 게 분명했다·
‘역시 내가 직접 나서야 해····’
김미령은 식칼을 쥐었다·
바로 그때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온몸에 개미가 타고도는 듯한 감각·
─붐부붐파우-·
아주 새까만 도마뱀이 김미령을 향해 덤볐다·
김미령은 크게 놀라서 식칼을 휙휙-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휘둘렀는데 작고 재빠른 도마뱀을 맞추기란 어려웠다·
결국 도마뱀은 김미령의 동생 김아령에게 달려들었고 김아령은 귀신이면서도 기겁을 하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사특한 원귀가 비명을 지르다니·
김미령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경악했다·
그리고 도마뱀을 내보낸 남학생을 노려보며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저런 것을 손에 넣었어!”
“으아아! 몰라요! 청계천요! 청계천 애완동물거리!”
“지랄하지 마!”
“영원아! 위험해!”
퍽-!
눈앞이 반짝였다·
김미령이 고개를 돌리자 단단한 몽둥이 같은 것을 쥔 여자애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보니 저 여자애는 무당 같았다·
시력이 떨어졌어도 동업자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니· 손에 들고 있는 나무토막에서는 피냄새가 났는데 너무 지독해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저런 흉흉한 걸 들고 사용한다니· 정상은 아닌 꼬맹이구나· 애초에 이 집단은 뭐지? 뭘 하는 녀석들이지? 공통점이라는 건 어리다는 것 말고는 하나도 없는데·’
김미령은 나라 최고의 정치인부터 밑바닥 인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봐 왔다·
사람 보는 눈만큼은 아직 정확하다고 자부 했는데 이들이 무슨 무리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어·’
쓸모 없는 여동생에게 시간을 끌게 만든 후 도망가자고 생각했다·
# # #
위험한 상황이 왔다·
이대로 있으면 다희가 저 여자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깨트릴 게 분명했다·
아니면 저 여자의 칼날이 우리를 다 쑤셔버리던지·
뭐가 되었든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때 미친 처녀보살 김미령이 입구를 향해 팟-뛰었다·
도망칠 생각인가?
다만 김미령의 걸음은 우뚝 멈추고 말았는데 입구에 누군가 서 있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늘씬하게 다리가 뻗은 여학생이었다·
“너는 또 뭐야!”
김미령은 여학생을 향해 칼을 휘두르려고 했는데 여학생의 다리가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져서 김미령의 옆구리를 후려 갈겼다·
퍼억-!
크게 날아가 오피스텔의 거실에 널브러진 무당 김미령·
“그엑·”
김미령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마치 약 맞은 바퀴벌레 같다· 뼈가 몇 대는 부러진 게 틀림 없었다·
그런 김미령을 보면서 끔찍한 털복숭이 귀신이 무척 슬퍼했다·
“언니이이이이-·”
“뭐야 이게·”
집 안으로 들어오며 양주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됐든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양주희! 덕분에 살았어! 넌 우리의 영웅이야!”
나는 양주희를 향해 달려갔다·
이렇게나 반가운 마음이 들다니·
곧 양주희가 나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뭐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내가 너희들 목숨 한두 번 구해?”
아무튼·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악귀를 부리는 여자를 제압할 수 있었다· 홍미리 선생님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니긴 했지만 다친 건 아니니····
홍미리 선생님의 머리를 붙여주자 홍미리 선생님이 다시 멀쩡히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무당 김미령은 크게 놀라며 두려워했다·
“괴물! 대체 뭐야 너!”
“괴물은 너야· 여동생을 죽이고 사역한 나쁜년· 이렇게 된 이상 네가 간다라 무녀를 유인하는 데에 쓰일 미끼가 되어줘야겠다· 뱀 꼬리를 유인하는 역할· 너한테 딱이네·”
김미령은 뭐라 말하지 못하고 기절했다·
그런 김미령을 향해 털복숭이 귀신이 자신의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언니이이이-·”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미끼 역할이요? 무슨 역할이요?”
“열쇠는 동쪽에 있다고 했잖아· 음양사가 지키고 있는 서쪽은 저세상을 뜻해· 악몽 속 복도를 뜻하는 게 서쪽· 반면 동쪽은 이승을 비유하는 거야· 간다라 무녀의 본체는 진짜 학교의 지하에 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월 22일···!!! 구불구불 구불노이가 동전을 잔뜩 주웠다···!!!
“이 동전을 모았다가···구불노이 같은 임프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이 꼬리가 구불구불 떨린다는 것이야···!!!”
헤흐헤흐 님!!! 후원 감사합니닷···!!!
아앗-!!! 왕 코인을 보내주신 아토므스크 님!!! 말레이 님!!! 후원 감사합니닷···!!!
자세한 감사 내역은 공지사항을 살펴주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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