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1
191 – 산타클로스
다섯 살 소녀와 서른 넷의 여자가 너구리를 흉내내듯이 마당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양주희가 묘사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낄 때 정석이 물었다·
“아주머니 딸인가요?”
“아줌마 아니라니까! 그리고 얘는 내 딸이 아니고 사장님 딸· 강나유· 사모님이랑 사장님이 워낙 바쁜 분들이셔서 아이 얼굴을 못 보다보니 내가 엄마인 줄 알아· 일단 들어와요·”
하채연이 홍미리와 양주희 그리고 정석과 정소진을 집 안으로 초대했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것처럼 보이는 집의 내부에도 활 사무라이 갑옷 정체모를 그림 같은 게 유리 케이스 안에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양주희에게는 이 장소가 꼭 가시방석 같았다·
부자의 냄새가 싫었다·
‘그래서 언니랑 엄마 아빠가 다 같이 있었던 고급 아파트가 불편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순간 정소진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가족 사진이었다·
“저거 봐·”
가족 사진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한 소녀와 아기가 함께 찍혀 있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제법 익숙하다·
그때서야 양주희는 이 집의 주인과 가족들이 누군지 알게 됐다·
부르릉-·
곧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사진 속 소녀와 닮은 여학생이 새까만 차에서 내렸다·
차분하고 차가워보이는 인상의 소녀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아이 나유가 총총-뛰면서 소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언니! 언니! 놀아줘!”
나유는 소녀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소녀는 나유를 바라보지 않았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그렇지만 둘은 몹시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석이 하하-웃었다·
“유다희·”
“강다희야· 지금은·”
“유다희!”
누군가 빽 소리쳤다·
양주희는 그 소리가 자신이 내지른 소리라는 것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양주희는 유다희를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이···이이이···이 나쁜년아아아앗!”
콰당-!
유다희가 바닥에 넘어지고 다섯 살 여자아이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약!”
“너! 이 개년아! 너 때문에!”
양주희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유다희의 위에 올라타서 그 뺨을 마구 두드렸다·
짝짝-짝짝짝-손바닥이 번쩍일 때마다 유다희의 고개가 좌우로 꺾였는데 유다희는 입에서 피가 흐르고 코에서 피가 나도 낯빛 하나 변하질 않았다·
양주희는 그런 유다희를 향해 소리쳤다·
“네가! 네가 몰아붙인 거야!”
양주희는 이 사태의 원인이 유다희에게 큰 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다희가 자꾸만 죽어버려서 그것을 멈추기 위해 하영원이 사라지고만 것이었다·
그랬던 유다희가 궁전 같은 부잣집에서 여전히 아가씨 행세나 하고 있다니 양주희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다 했어?”
바닥에 깔린 유다희가 양주희에게 물었다·
양주희가 “뭐라고?”라며 되물을 때 어느새 양주희의 몸이 뒤집히는가 싶더니 바닥에 깔렸다·
퍽-!
유다희는 이제 양주희의 코를 주먹으로 때렸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격이라서 양주희는 당황하고 말았다· 눈앞으로 별이 튀는 듯했다·
“꾸야악!”
퍽퍽퍽-!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얻어맞은 양주희· 유다희의 손이 생각보다 매워서 정신이 통 없었다· 복싱이라도 배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할 때 유다희가 소리쳤다·
“양주희! 나는 옛날부터 네가 싫었어! 너는 늘 네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 나는 사실 소원 같은 거 필요 없었어! 그냥 그대로도 좋았다고! 네가! 네가 언니를 찾고 싶다고 욕심만 안 부렸어도!”
“나도 네가 싫어! 내숭 부리는 여우 같은 년!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에! 멋대로 행동한 건 너잖아! 네가 자꾸 죽어서!”
엎치락뒤치락·
곧 양주희와 유다희가 서로 올라탔다가 깔아뭉갰다 하면서 마구 싸웠다· 완전 난장판이었고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반항아 모드의 정석도 “이게 뭔····”하고 당황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며 옆에 있던 다섯 살 소녀 강나유가 마구 울었다·
“싸우지 마! 싸우지 마! 나유가 잘못했어! 언니! 싸우지 마! 나유가 착한 동생이 될게! 엉엉! 언니한테 놀아달라고 안 할게! 싸우지 마! 흐어으어어으어응-·”
여러모로 정신 없는 분위기·
곧 부엌에서 과자를 구워온 가정부 하채연이 당황했다·
“뭐야 너희들 왜 그래!”
둘은 뭘 해도 떨어지질 않았다·
큰 접시에 찬물을 퍼온 가정부 하채연이 둘을 향해 끼얹은 후에야 비로소 괴상한 싸움이 끝이 났다·
# # #
“뭐 그 나이에는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나도 이 집의 사모님인 인나랑 고등학생 때 엄청 싸우고 그랬거든· 너희 보니까 그때 생각 난다· 왜 싸웠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채연이 양주희와 유다희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줬다·
“그래도 서로 얼굴만을 이렇게 집요하게 노릴 필요가 있었어? 예쁜 얼굴에 흉지겠다·”
유다희와 양주희는 여전히 서로를 흘겨보고 있었다·
둘은 이제야 솔직해질 수 있었다·
본디 억지로 한 자리에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구심점(求心點)이라고 할 만한 게 사라진 지금 둘은 함께 있을 필요가 없었다·
원래였다면 둘은 사는 장소도 취향도 달라 만날 일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언니! 언니이이!”
강다희의 동생 강나유가 의자에 앉아있는 언니에게 마구 달라붙었다· 물론 강다희라는 이름의 유다희는 그런 동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몹시 침울해진 여동생 강나유·
그 모습을 보면서 양주희가 툭-쐈다·
“저거 봐· 저거 못된 성격 나오잖아· 동생이 저렇게 놀아달라고 하는데 놀아주지도 않고· 나한테 저런 귀여운 동생 있으면 매일 업어주고 놀아줬을 텐데·”
“····”
“으르르 언니를 욕하지 말라는 것이야···!”
“으갹! 얘가 내 발을 깨물었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며 정석은 하나 깨달았다·
‘다희가 갑작스럽게 생긴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지난 기억과 이번 기억이 합쳐져서 혼란을 일으키는 건가? 아니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뭐가 됐든 해적단원이 하나둘 모이고 있었다·
정석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게 문제지·
“그럼 친구들끼리 잘 보내렴· 나유는 이모랑 같이 놀까?”
“응응!”
철커덕-·
닫힌 방문·
곧 유다희가 입을 열었다·
“너희라면 봉지연을 찾아갈 줄 알고 메시지를 남겨두었던 건데 잘 찾아왔구나·”
유다희는 강다희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아버지인 강바다는 업계에서도 유명한 게임 디렉터였고 엄마는 고전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였다· 이번 생에도 돈이라면 부족함이 없었다·
원래부터 부잣집 아가씨로 살아가야 했던 운명이었던 건가-정석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증명할 길이 없었다·
다희가 밴드 붙은 콧망울을 만지며 말했다·
“자유분방한 아버지와 다정한 엄마· 귀여운 여동생·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인 건 확실할 거야· 하지만 결국 이것들은 꿈에 지나지 않아· 깨고 나면 사라질 꿈·”
유다희는 이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이 가질 않고 애정을 쏟을 수 없었다·
느닷없이 생긴 여동생 강나유도 원래는 없었던 존재·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질 존재였기에 쉽게 정을 주기 어려웠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면 다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누구도 하룻밤의 꿈에는 애정을 쏟지 않아· 그런 거야·”
즐거운 생활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대로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교에 가고 졸업을 해 취직을 하거나 일을 하는 등의 이야기에 유다희는 따분함을 느꼈다·
유다희를 정말 싫어하는 양주희였지만 그 마음만큼은 이해했다·
그토록 바라던 가족의 결합을 손에 넣게 된 양주희였지만 매일같이 몸을 적시는 하품과 지루함은 참을 수 없었으니·
양주희는 몹시 분하지만 유다희와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확실히 정해둘 건 정해둬야 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내가 먼저 사귀었어· 내가 너보다 위야·”
“그건 없었던 일이 되었으니까 결국 무효야·”
원래라면 욕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어휘를 찾지 못해서 입술을 우물거려야 했을 유다희였지만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가 양주희와 좋은 승부를 보이고 있었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팔짱을 끼고 물은 정소진·
쿠키를 입에 마구 넣고 있던 홍미리 선생님도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물었다·
“그래 맞아· 나도 천씨 가문의 끈 떨어져서 내 쌍둥이 홍예리랑 비좁은 방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니까· 진짜 지옥이야· 얼른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야 대감집 돌쇠 자리라도 찾지·”
작전을 짤 때가 왔다·
앞으로의 행동방침이라고 봐도 좋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둔 방향이 있었던 정석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의 시계」에 대한 괴담을 만드는 거야· 사람들에게 그런 게 정말로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거지· 그걸 위해선 차례차례 단계적인 빌드업이 필요해·”
“내가 실종된 여고생을 연기하는 것도 그 빌드업이라는 것의 하나라는 거지?”
흐응-가느다란 눈을 뜬 정소진·
정석의 사촌답게 생각 이상으로 이해가 빨랐다·
“그래· 우리는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비일상과 귀신을 만들 거야·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시계와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한 명의 남학생의 존재도····”
정석은 눈을 감았다·
어떤 남학생과 게임 이야기를 하거나 별것 아닌 일로 떠들었던 때의 일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원이가 우리 부탁을 거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그 녀석은 그런 존재였던 거야· 산타클로스 같은····”
산타클로스는 소원을 들어주고 선물을 주는 존재였다·
어쩌면 하영원도 처음부터 그런 존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어리숙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모두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렇다면 산타클로스의 소원은 누가 들어줘야 하는 걸까·’
그런 느낌으로 해적단의 회의가 끝났다·
유다희는 양지 고등학교로 전학 오기로 했다·
“갑자기 온 전학생·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거야·”
슥-·
이야기를 끝마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집을 나서는 그들을 향해 하채연이 손을 흔들어줬다·
“나중에 또 와· 너희를 보니까 왜인지 옛날 생각도 나고 기분 좋네· 항상 뭔가 굉장한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는데· 너희를 보니까 좀 낫다·”
이번 생에서 유다희는 하채연에게 하영원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질 않았다고 그랬다· 기억을 되찾은 그녀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 보면 나름의 배려였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고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벚꽃이 어느덧 바닥에 너저분한 꽃잎들을 떨어트리는 시간이 다가왔다·
여학생의 연이은 실종과 중간고사를 앞둔 4월의 어느날·
“···공예린이 며칠째 학교를 안 나오고 있잖아· 아까 경찰도 학교에 찾아왔고· 공예린도 정소진처럼 실종된 거 아니야?”
“시험이 아니라 휴교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옆 반의 구혜나도 사라졌다는데····”
학생들은 계속해서 실종되는 여고생들을 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토끼처럼 겁이 많은 임희연은 자신의 단짝이었던 공예린이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질 않았던 것을 생각하며 더욱 움츠러들어 있었다·
오후 8시· 임희연은 집에서 학교로 돌아왔다·
「예린 : 희연아 우리 반으로 와줘 급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빨리! 내 사물함 좀 봐줘!」
임희연은 공예린에게 받은 문자를 보며 살짝 긴장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실종된 공예린으로부터 메시지가 오다니·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도 없는 D반에 혼자 들어섰던 때였다·
달칵·
캄캄한 교실의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눌렀는데 이상하게 교실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복도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는데 어째서 교실만 불이 들어오질 않는 건지·
“끼릭 끼리리릭-·”
그때 캄캄한 교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끼리리릭-·”
“···예린아?”
혹시 공예린일까 싶었던 임희연은 천천히 핸드폰 불빛을 들어올렸다가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얼굴에 피가 묻은 여자애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 있었던 것이었다·
“끼릭 끼리리리릭!”
입에서는 영문 모를 소리를 계속 내뱉고 있는데 그 얼굴이나 미소 같은 게 도무지 인간의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몸을 괴상한 방향으로 비틀면서 임희연에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히으이익! 귀신!”
임희연은 그대로 소변을 지리며 쓰러졌다·
기절한 것이었다·
곧 교실에 숨어 있던 정석과 양주희 그리고 정소진이 튀어나왔다·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던 여고생 구혜나도 흐흐-웃었다·
“어때 내 연기가? 이 정도면 여우주연상은 예약 해놨지?”
구혜나는 자신의 귀신 연기에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토록 귀신 연기를 실감나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역할에 몰입해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 그 자체다·
“너희들 권수아랑 연결해준다는 약속 잊으면 안 된다? 나 어차피 학교는 그냥 졸업장 따려고 다니는 거고 사실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니까 미리 연예계에 발을 넓혀 놓는 게 좋거든·”
구혜나는 시장의 아들인 정석으로부터 돈과 인맥의 약조를 받아 실종된 여고생 및 귀신의 연기를 해주었다·
매우 큰 돈이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얘네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그보다 나를 보면서 오줌까지 지릴 줄이야· 내 귀신 연기가 그렇게 완벽했나? 대체 뭐지? 이 아랫배가 간질거리는 느낌은···?’
구혜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 겁을 먹는 게 어째선지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서 경비 아저씨에게 기절한 상태로 발견된 임희연은 다음날부터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학교에 ‘귀신’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금요일인 것입니닷···!!!
독자님들 모두 이번 평일 동안 고생이 많으신 바 즐거운 주말 동안 피로가 회복되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닷···!!!
그런 의미에서 독자님들께 찹쌀떡의 부두술을 걸어드립니닷···!!!
쭉쭉 늘어나는 찹쌀떡처럼 독자님들의 주말이 달고 길게 늘어나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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