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026 –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 3
“괜찮은 것 같지?”
나는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자의 기분으로 정석에게 물었다·
정석 또한 엘리베이터 속 양주희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야· 하영원· 너도 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볼 거야? 너희 어머니가 계신 4층 공간이랑 저 엘리베이터랑 연관 있다는 보장은 없어·”
정석의 말대로다·
우리 엄마가 사라진 장소와 이 엘리베이터가 데려다 줄 4층이 동일한 장소라는 보장이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석아· 네가 말했잖아· 이 향수가 괴기들에게 발견될 확률을 99퍼센트에서 1퍼센트로 줄여줘도 아주 0퍼센트가 아닌 이상 가능성은 남아 있는 거라며·”
“그건 그랬는데····”
“저 엘리베이터 새끼가 말하는 4층이 우리 엄마가 사라진 공간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잖아·”
이 엘리베이터의 공간 속으로 엄마가 사라졌을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일까·
90퍼센트?
1퍼센트?
중요한 건 얼마가 되었든 나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빠 없는 놈이라 불리는 것도 영 적응이 안 되는데 엄마까지 없어지면 나는 진짜 고아나 다를 바 없었다·
“난 간다· 석아· 너한테는 억지로 가자고 안 할게·”
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건 사자굴로 들어가는 행위였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위험하고 기괴할지도 몰라·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석에게 같이 가자고 강요하진 않았다·
“후···· 후···· 후읍 후····”
정석은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짝-치더니 내게 말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도와달라고· 네가 도와달라고 말하면 나는 도와준다· 약속했으니까· 사실 개인적인 흥미도 있어· 나도 간다· 저 안으로·”
“씨발 도와줘! 사실 존나 무서워!”
나는 위기를 무릅쓰려는 정석을 보며 크게 감동했고 그만 속마음이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
“나도 살고 싶어! 같이 가자! 같이!”
솔직히 저 엘리베이터로 들어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를 구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한다면····
혼자서 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죽음으로 이끄는 물귀신처럼 느껴져도 혼자 가는 것보다 남들이 같이 있어 주는 게 좋아!
팟-·
나와 정석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이 촌극을 보고 있던 양주희가 나랑 정석을 향해 말했다·
“아휴 쫄보들· 겨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아니·
이 경우에는 양주희 쪽이 오히려 너무 덤덤하고 겁이 없는 거 아닌가 싶은데·
사람이 이렇게 용감할 수가 있나·
양주희가 겁을 먹으려면 「악몽의 복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4층밖에 없네· 일단은 혹시 모르니까 열림 버튼 계속 누르고 있자·”
정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버튼은 열림과 닫힘 버튼을 제외하면 모든 층수가 「4」라는 숫자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스위치는 대략 100개·
1층부터 100층까지 있어야 할 항목에 모든 숫자가 4라고 쓰여 있어서 괴상했다·
“이게 뭘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버튼을 누르기 전 4층으로 도배된 엘리베이터에 대해 양주희와 정석에게 의견을 물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본 괴기 사건들의 경험으로 보건대 아주 사소한 것도 파훼의 해법이나 힌트가 될 수 있었다·
양주희가 말했다·
“몰라!”
양주희는 모르는 모양이다·
양주희가 일진치고는 공부를 잘한다고 했지만 공부머리와 이런 머리는 별개였다·
그렇다면 정석은 어떨까?
“석아·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
“한국 같은 동아시아권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4라는 숫자를 없앨 때가 있어· 이 4라는 숫자가 한자로 죽음을 뜻하는 죽을 사(死)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야·”
“오·”
“그래서 4층을 F로 나타내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 거지· 지금은 그런 경향도 좀 줄었지만 90년대나 2000년도 초반에는 그런 일이 많았대·”
정석은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핸드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읊고 있는 듯했다·
일단 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이 정상적으로 터진다는 뜻이리라·
슥-·
그때 빌라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우리 앞집 사는 아줌마로 태광 빌라의 관리자였였다·
아줌마는 엘리베이터 앞에 널브러진 종이와 테이프를 보며 화를 냈다·
“어휴 이게 다 뭐야! 누가 이런 쓰레기를!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니·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다고 이 지랄이야! CCTV를 달든지 해야지! 아휴 정말!”
“····”
나랑 정석은 이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오직 양주희만이 용감하게 지금 상황을 입밖으로 소리 냈다·
“우리가 안 보이나? 엘리베이터 문 열려있는데· 아줌마! 아줌마!”
4층의 관리자 아주머니는 1층에서 활짝 입구를 열어둔 엘리베이터와 그 안의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양주희가 크게 소리쳤는데도 말이다·
곧 정석이 작게 중얼거렸다·
“혹시····”
뭐 짚이는 바가 있나!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을 때 녀석이 좔좔 설명을 읊었다·
“아무튼 엘리베이터에서 4층이 의미하는 건 한자 사(死)· 곧 죽음이야· 이 엘리베이터는 모든 층수가 죽음이라는 뜻인 거지· 완전 죽음의 엘리베이터야·”
죽음의 엘리베이터·
우리는 지금 그 안에 타고 있는 셈이었다·
얘들아 그냥 내리자-·
10초도 안 되는 순간에 위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몇 번 반복했다·
슥-·
그때 양주희가 손을 움직여서 4층을 눌렀다·
나도 정석도 모두 이 과감하고 무모한 행동에 놀랐다·
정석의 경우에는 아예 인상을 찌푸리고 화까지 냈다·
“야! 그렇게 멋대로 행동하면 안 돼! 네가 그렇게 무모하고 조심성 없게 굴면 우리 진짜로 다 죽을 수 있어!”
“그러면 뭐 어떻게 할 건데· 그냥 여기서 평생 열림 버튼 누르고 있어? 결국 4층으로 가보기 전에는 정확히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잖아!”
정석의 의견도 옳고 양주희의 의견도 옳았다·
심지어 양주희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영원이네 엄마가 이상한 엘리베이터에 갇혔잖아· 이게 우리 가족들이나 엄마가 되지 말라는 법 있어? 엘리베이터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나타나서 사람을 실종시키면?”
“그건····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긴 한데···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우리 엄마나 아빠까지 또 실종되는 꼴은 나 못 봐·”
양주희는 언니 「양도희」의 실종으로 가정 파탄을 몸소 겪은 친구였다· 사람을 잡아먹는 엘리베이터가 가족들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던 모양이다·
“어쩌면 4층에 언니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갈 거야· 무서우면 너희들은 지금 내려· 지금부터 5초 뒤에 닫힘 버튼 누를 거니까· 5초 센다· 5-· 4-·”
양주희가 4(死)로 향하는 데스 카운트를 읊기 시작했고 나와 정석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먼저 손을 움직인 건 정석 쪽이었다·
슥-·
녀석은 뻗은 손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씨발· 가자· 가·”
녀석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야 시장의 아들이고 검사를 꿈꿀 만큼 똑똑하다고 해 봐야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것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우리 모두가 그랬다·
우리는 어른들의 보호에 의지해야만 할 만큼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그런 애매한 나이의 친구들이었다·
솔직히 겁도 나고 무서웠다·
그런 와중에도 함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인가···!
# # #
띵동-·
어느덧 도착한 4층·
「문이 열립니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너머로는 온통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정석이 물었다·
“영원아· 조언 기능은 뭐라고 말하냐?”
나는 요즘 조언 기능을 최대한 아껴두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존해둔 것이다·
“조언·”
『《고장 난 시계》의 조언 : 입구가 있는 것에는 출구도 있습니다·』
심플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문장이 품고 있는 희망의 밝기는 제법 밝았다·
“입구가 있는 곳에는 출구가 있대·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반드시 어디론가 나갈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아·”
“야· 하영원· 이거 봐·”
양주희가 긴 손가락으로 층수 패널을 가리켰다·
「4」라는 숫자 아래로 「정원 초과」라는 글자가 보였다·
엄마가 찍었던 사진과 똑같은 구도다·
“버튼도 열림이나 닫힘 버튼 말고는 조작이 안 돼·”
엘리베이터를 살피고 있던 정석의 이야기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이다·
“우리 선택지는 두 개야· 이 엘리베이터에 계속 남아 있거나· 아니면 바깥으로 나가거나·”
“내가 먼저 가볼게·”
후-·
양주희는 작게 심호흡을 한 뒤에 어둠 속으로 발을 뻗었다·
나와 정석은 그런 양주희를 조심스럽게 살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 네모난 상자로부터 뿜어지던 빛이 사라지자 「4층」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끈적한 먹물처럼 피부에 달라붙는 이 캄캄함·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라 생각할 때 눈부신 광채가 얼굴을 때렸다·
정석이 핸드폰을 꺼내본 것이었다·
“통화권 밖이야· 그보다 핸드폰 화면이 아예 깨지고 있어· 시간도 이상하고· 조작 자체가 안 돼· 혹시 너희들 핸드폰은 어때?”
나도 양주희도 핸드폰을 꺼냈다·
나와 양주희의 핸드폰도 정석의 것과 마찬가지로 통화권 밖이었으며 글씨가 깨졌다·
고장 나버린 느낌·
우웨에에에엑-·
치지지지지직-·
그때 우리의 핸드폰에서 끔찍한 소음이 들렸다·
그것은 누군가 일부러 고장 낸 라디오가 불쾌한 단말마를 내지르는 것 같았다·
모두 당황할 때였다·
달그락 달각· 달그락· 다각-·
저 어두운 통로 너머에서 무언가 기척 같은 게 느껴졌다·
사람?
혹시 엄마일까?
정석과 양주희가 말했다·
“저기서 뭔가 오는 것 같은데?”
“영원이네 엄마 아닐까? 이 소리 하이힐 굽 소리 같은데·”
한번 크게 불러볼까 생각했던 나는 어딘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우리 엄마는 하이힐 같은 걸 신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엄마는 운동화와 단화 쪽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핸드폰은 먹통이고 계속해서 무서운 소리가 흘러 나와서 버렸어·
일찍이 악몽의 복도에서 들었던 정소진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어둠도 저 멀리서 느껴지는 기척도 내게 있어서는 낯설지 않았다·
“야· 주변에 사물함이나 상자 있나 찾아보자· 얼른! 일단 이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해! 분명 있을 거야! 상자나 사물함 같은 거! 핸드폰은 버리고!”
나는 정석과 양주희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정말 기가 막히게도 우리 셋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쓰레기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 길가의 모퉁이에 놓여 있을 법한 대용량 쓰레기통이었다·
그 안으로 버둥거리며 들어가자 내부에 얼키설키 부적들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지독한 쓰레기 냄새에 코가 비뚤어질 것 같다고 생각할 때-·
까드득 끄득 까드득-· 또각· 또각·
무언가 관절과 뼈가 부자연스럽게 꺾이고 부딪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우리가 숨은 쓰레기통 바깥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저···저게 뭐야····”
“쉿· 정석· 조용히 해·”
나는 이 순간 깨달았다·
이 사(死) 층·
이곳은 현실과 뒤섞인 악몽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2월 27일···!!! 짤그랑···!!! 복도에 떨어지는 동전을 누군가 얼른 주웠다···!!!
“이렇게나 동전이 많으면···신상품을 들여올 수도 있다는 것이야···!”
헤흐헤흐 님!!! 달려가아 님!!! HKM813 님!!! 후원 감사합니닷···!!!
자세한 감사의 내역은 공지사항을 살펴주는 것입니닷···!!!
어제 연재 분의 내용에서 수정이 살짝 있었던 것입니닷···!!!
경비 아저씨가 선생님께 전화를 건 것이 아닌···선생님으로부터 경비 아저씨에게로 전화가 온 것으로 수정된 바···
사소한 디테일은 변형되었으나 전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닷···!!!
그런 의미에서 픽스의 부두술을 걸어드립니닷···!!!
이것저것 수정하고 고치는 것에 아주 놀라운 효율을 보이는 부두술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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