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
056 – 유령의 저택 # 2
진짜 이상한 아줌마였다·
그 하얗고 끈적한 손이 내 얼굴을 만진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거 피부 트러블 일어나는 거 아니겠지·
뽀송뽀송한 피부는 내 몇 없는 자랑거리 중 하나란 말이다·
“영원아· 여기야· 여기 앉아· 내 옆자리!”
1층의 식당으로 내려가니 엄청나게 긴 테이블에 모두가 앉아 있었다·
유다희가 자신의 옆 의자를 뒤로 빼내고 나를 향해 손짓했는데 꼭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 아가씨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것과 비슷하긴 했지·
테이블 위에는 고풍스럽게 생긴 촛대와 접시 그리고 포크와 나이프가 놓였다·
어딘가로부터 나른하게 흐르고 있는 클래식 음악·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샹들리에와 여러모로 고급스러운 분위기까지·
나 같은 고등학생에게는 마치 빌려 입은 아빠 정장처럼 몸에 맞지 않고 영 느낌이 어색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가 현실 같은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다·
내게는 평생 살아가며 한 번 있을지 모를 이벤트 같은 이러한 식사가 누군가에게는 매일 같은 일상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좀 웃겼다·
나는 일단 그릇에 담긴 물이나 좀 홀짝이기로 했다·
후르릅-·
맛있었다·
에비앙 생수인가·
곧 유다희가 푸흐흐-웃었다·
“영원아· 그거 손 씻는 물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맛은 좋네· 그치 주희야·”
내가 뻔뻔하게 드립을 치자 나를 따라서 물을 마시고 있었던 양주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양주희는 그릇을 내려놓고 얌전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데? 벌써 10분은 기다린 것 같은데·”
주인공은 늦게 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다희의 할아버지 천대곤은 진짜 주인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호랑이도 제 말 한다면 나타난다는 말이 있듯이 철커덕-커다란 식당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었다· 체격은 약간 앙상한 편이었고 머리는 염색을 하지 않아서 온통 하얀색이었다· 눈이 움푹 들어가 얼굴이 전체적으로 그늘져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얼굴을 알았다·
자화상!
아까 복도에 그려져 있던 자화상의 주인이로구나!
“자리에 앉거라·”
노인의 목소리는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았다·
평범했다·
그래서 놀라웠다·
엄청난 부자도 목소리가 평범하다는 게 신기했거든·
스르륵-·
우리는 모두 자리에 앉았고 노인은 침침한 듯한 눈으로 우리를 천천히 살피는가 싶더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너희가 내 손주 다희의 친구들이구나· 반갑다· 나는 이 저택의 주인 천대곤이라고 한다· 보잘 것 없는 늙은이지· 오늘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구나· 그럼 식사를 시작하지·”
천대곤은 가장 상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길게 튀어나와 있는 곳에 앉았다는 말이다·
그가 자신의 테이블 앞에 설치되어 있는 벨을 달랑달랑 울리자 문이 열렸고 어디선가 젊은 여성들이 튀어나와 그릇을 우리 테이블 앞에 놓아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 모두 젊고 예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홍미리 선생님도 있었다!
“선생님· 여기서 뭘 하세요·”
“일·”
그렇구나·
교사는 투잡 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사립 학교 재단의 교사가 이사장 집에서 일한다는 게 뭐 문제 있나 싶기도 했다·
홍미리 선생님의 진짜 문제는 투잡 따위가 아니잖아!
아무튼·
우리 앞에 놓인 음식들의 종류는 한식부터 양식 중식 일식에 듣도 보도 못한 것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뭐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참 성장기인 고등학생들에게 이러한 자극은 절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슥-·
이사장 천대곤이 손을 들어올려 식사를 시작했고 우리도 곧 쭈뼛거리며 식사를 개시했다·
나는 동그란 대접 위에 놓인 고기를 제일 맛있게 먹었다·
무슨 고기인지 모르겠지만 엄청 야들야들하고 좋았다·
매콤한 소스도 찰떡이네· 이게 그 양고기인가?
“이거 더 없나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테이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으스스한 아줌마 댄버스 부인(가칭)이 우리를 향해 다가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있단다· 방금 막 잡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주아주 신선한 고기야· 아주 신선해· 무슨 고기인지는 궁금하지 않니? 응?”
어우 씨-·
밥맛 떨어지는구만·
그만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할 때 내 입에 무언가 머리카락 같은 게 씹혔다·
“····”
뭐지·
뭔가 싶어서 보니까 몹시 하얗고 긴 털이었다·
사람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안경을 낀 하우스키퍼 아주머니의 시선은 계속해서 유다희를 보고 있었다·
아까 전의 일이 떠올랐다·
유다희를 향해 도둑고양이라고 했지·
엄청나게 싫어하는 분위기였어·
아무런 문제 없어보이는 이 부잣집도 사실 여러 문제들이 있는 법이로구나·
그런 느낌으로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테이블 위에 놓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시장의 아들· 정석· 이렇게 보는 건 오랜만인가? 그때는 다섯 살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 애들은 쑥쑥 큰다니까·”
“안녕하세요·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이사장 천대곤과 구면인 정석이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정석은 겁쟁이지만 사실 시장의 아들로 나름 금수저라 할 수 있는 친구였다·
“너희 할아버지가 나랑은 친한 친구 사이였지· 그놈이 건강 관리를 안 해서 먼저 가버린 게 퍽 아쉽다만· 아버지는 잘 계시고? 이번 선거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하냐?”
“선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이야기는 잘 안 해주시거든요·”
“그래· 그럴 수 있지· 뭐─· 웬만큼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이번 선거도 문제 없을 거라고 너희 아버지에게 일러두거라· 내가 힘을 좀 써보마·”
마치 자신이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그냥 허세를 부리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이게 위정자들의 대화인가·
곧 이사장이 스읍-하고 숨을 들이마신 후 입을 다물었다·
한 10초 정도·
혹시 노환(老患)인가?
내가 살짝 긴장할 때 이사장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닮았구나· 닮았어· 역시 피는 못 속여·”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걸까·
평범한 고등학생들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양주희라고 했지· 너희 할머니가 젊었을 적과 아주 닮았어· 준코···아니 순자에게는 내가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을 때 여러모로 신세 졌었지· 아주 야무진 친구였으니·”
그런가·
양주희의 할머니는 여기 있는 이 남자가 일본에서 들여온 외래종 무당이었다·
이사장과 양주희 할머니의 사이가 조금 특별했다─그렇게 보면 될까?
“너희 할머니가 젊었을 적에는 인기가 아주 많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다 쳐다보고 차 한잔 마시자고 했었다· 보아하니 주희 너도 인기가 꽤 많을 것 같은데?”
“그냥 그래요·”
양주희가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완전 남의 집에서 빌려온 고양이 같구만·
엄청난 부자가 되면 저 양주희도 저렇게 얌전히 만들 수 있는 법이로구나·
이제 이사장의 눈은 봉지연에게로 향했다·
“너는 누구니?”
“저 저는 봉지연이라고 하구요· 다희랑은 친구가 된 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예전에 육상도 했었어요· 기억하실지는 모르겠는데···그때 제 목에 메달도 걸어주셨었는데····”
“아· 2년 전인가· 달리기 했던 애구나·”
“네! 맞아요!”
봉지연이 몹시 좋아할 때 이사장이 흠-침음했다·
“참 잘 달렸지· 나중에 올림픽에서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육상을 그만 둔 것 같더구나·”
“그게 다리가 다쳐서····”
“아· 그거 참 유감이다·”
노인은 애석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지금까지의 대화들로 보면 흔히 손녀의 친구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노인이 가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때가 있어도 눈만큼은 한 번도 웃지 않았다는 걸 명확히 눈치채고 있었다·
음흉한 할아버지다· 어쩌면 여고생들을 보면서 어떤 흑심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 내가 돈 많은 부자 할아버지였으면 그랬을 테니까· 누구라도 그럴 테지·
“그래서 너는 누구냐?”
이제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간단히 말했다·
“저는 하영원인데요·”
“하영원· 이름에 동그라미가 많구나· 다희한테 듣기로 다희가 너희 집에서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하던데·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라· 내 손이 닿는 데에서는 들어주마·”
다희가 우리 집에서 머무르고 갔던 것의 보상을 해준다는 걸까?
손이 닿는 거리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니·
사이즈를 모르겠다·
“저기 손이 어디까지 닿으시는데요?”
“씁· 하영원· 이사장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내 질문에 대답한 건 뒤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미리 선생님이었다·
물론 이사장은 홍미리 선생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됐어· 애들은 원래 궁금한 게 많아야 해· 우리 영지재단의 교육 목표이자 이념이 그거다· 궁금함을 갖게 만들자· 호기심은 중요한 거야· 비록 그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기도 하지만·”
슥-·
그때 이사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미안하구나· 급한 약속이 생겨서· 먼저 일어나겠다·”
# # #
부르릉-·
이사장이 탄 자동차가 저택을 나갔다·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긴장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얘들아· 오늘은 자고 갈래? 방도 많이 남는데·”
오후 9시 정도·
늦었다면 늦은 시각·
유다희가 저택에서 자고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완전 좋아!”
봉지연이 가장 먼저 수락했다·
양주희는 “오늘도 외박하라고?”라는 느낌으로 가느다란 눈을 떴다·
곧 정석이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아까 있었던 대화에서는 별로 알아낸 게 없지만 오늘 여기서 자고가면 이것저것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자고 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
어차피 나야 집으로 혼자 가봤자 바퀴벌레랑 같이 자기밖에 더 하겠냐·
그럴 바에야 호텔 뺨치는 다희네 집에서 자고 가는 게 이득이지·
그런 생각으로 우리들 모두 자고가는 게 결정 됐다·
엄청나게 넓은 방이었기 때문에 방이야 많았다·
나랑 정석이 같은 방·
그리고 유다희 봉지연 양주희 셋이 같은 방에서 자기로 했다·
물론 바로 자기엔 시간이 좀 일렀고 우리는 유다희가 꺼낸 「인생게임」을 하기로 했다·
“예전에 있던 아주머니가 선물로 주신 건데 나 이거 엄청 좋아해· 다들 같이 하자!”
유다희는 친구들과 인생게임을 할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부잣집 손녀 치고는 소박하구나·
“자신 있어? 나 인생 게임 개잘하는데·”
나 하영원· 주사위 굴리는 게임은 다 잘했다·
어려서부터 엄마랑 많이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게임은 양주희가 이겼다·
“나 변호사 됐다· 개이득· 돈 존나 많이 벌어·”
양주희는 고소득 직종을 골라 돈 받는 항목만을 착착 밟았다·
집도 사고 결혼해서 애도 낳고 완전 탄탄대로다·
“노잼·”
나는 몇 판 내리 꼴등을 한 후 푹신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어느덧 10시·
이제 슬슬 잘 준비를 해야지 생각할 때 유다희가 고개를 자꾸 두리번 거렸다·
“왜 그래?”
“아니· 백설이가 아까부터 안 보여서· 백설아· 야옹· 야옹·”
유다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고양이 흉내를 냈는데 아마 하얀 고양이 백설을 부르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유다희 말처럼 백설은 통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정석이 말했다·
“고양이니까 어디 숨어있는 거 아냐? 집도 크니까 숨어있을 곳은 많을 거 아냐·”
“아냐· 백설이는 웬만해서는 내 방 바깥으로는 잘 안 나가· 아주머니가 새로 오신 뒤로는 특히 내 방에서 밖으로 잘 안 나가는데····”
하얀 고양이 백설의 실종·
어떻게 된 일일까 싶을 때 봉지연이 열을 올렸다·
“다희야! 내가 찾아줄게! 자기도 좀 이른 시간이었는데!”
오늘 하루 종일 봉지연은 유다희와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문제는 정석이 그런 봉지연의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다 같이 찾으면 금방 찾겠지·”
졸지에 저택에서 고양이 찾게 생겼구만·
하지만···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내게 있어서 저택의 탐색은 그리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고양이를 찾는다는 핑계로 이 저택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게 되었으니까·
팟-·
그런 느낌으로 우리는 모두 흩어졌다·
나는 1층을 돌아다니기로 했는데 1층엔 하필 그 무서운 아줌마가 있었다·
“너· 뭐해· 11시 이후에 1층은 돌아다니면 안 돼· 얼른 올라가렴·”
각 구역마다 통금시간도 있나·
나는 귀신처럼 으스스한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저기· 고양이 찾고 있는데요· 하얀 고양이· 백설이요·”
“그 고양이?”
끄흐흐흐흐-음흉하게 웃는 아줌마·
곧 아줌마가 말했다·
“그 고양이라면 네가 아까 저녁에 먹었잖아· 아주 맛있게·”
“···!”
우엑-!
나는 곧바로 토가 나올 것 같았고 온몸이 간지러웠다!
내가 저녁에 먹은 게 고양이 고기였다니!
개시발!
여기는 역시 좆 같은 저택이었어!
아까 고기에서 나왔던 하얀 털은 고양이 털이었구나!
“거짓말이란다·”
“····”
아니· 뭐하는 아줌마지·
나는 화가 났다·
“아니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그런 나를 향해 아줌마가 말했다·
“나는 너 같은 겁쟁이 애들을 겁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단다·”
아주 비뚤어진 사람이었다·
커다란 저택에서 일을 하다보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걸까?
“고양이가 없어졌다라···· 1층은 내가 찾아 볼 테니 너희는 올라가렴· 그리고 11시 이후 1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라도 새벽 5시 이전에는 절대 1층으로 내려오지 말거라·”
“왜요·”
“절대로 내려오지 마· 네 친구들에게도 다 말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1월 19일입니닷···
119의 날···
119는···빨간색인 것입니닷···!!!
그런 의미에서 독자님들께 케찹의 부두술을 걸어드립니닷···!!!
빨간날인 주말이 한층 더 감칠맛 넘쳐지는 부두술···!!!
케찹으로 하는 요리들의 맛도 일품이 되는 부두술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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