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007 – 생환 O人 사망 O人
원래 괴롭힘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반에서 썩 평범한 학생이었고 눈에 띄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김건호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야 하영원 오늘 만우절이잖아· 재밌는 이야기 있는데 한번 들어봐· 아싸인 네가 이런 역할로는 딱이다· 딱!”
입학식으로부터 겨우 한 달이 지난 4월 초였지만 D반은 이미 중학생 때 놀았다던 김건호의 왕국이 되어 있었다·
김건호는 자신이 D반에서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또 어디까지 용납될지 시험해보듯이 장난과 무리수의 강도를 높였다·
“있잖아· 하영원 네가 양주희한테····”
김건호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시끄러운 나날을 야기할 게 뻔했다·
사정이 있어서 딱 ‘중간’의 생활을 보내고 싶었던 나는 놈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 어려운 제안도 아니었으니까·
“양주희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귀자·”
1교시 시작 전·
아이들이 꺄르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잡았다·
껄렁한 패거리도 깔깔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모든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귀어라!”
“사귀어라!”
“뽀뽀해! 뽀뽀해!”
“뭐야 만우절이라고 이딴 장난을 치는 거야? 하나도 안 웃겨! 노잼이거든! 아 꺼져! 찍지 마! 하지 말라고! 곧 있으면 선생님 오실 텐데 이게 다 뭐야!”
항상 도도하면서도 당차게 굴었던 양주희도 반 아이들이 합심해서 짜낸 이 장난과 거짓말에는 제법 쩔쩔매는 것 같았다·
“뭐야 쭈희가 싫어하는 눈치가 아닌데?”
“영원이 정도면 뭐 귀엽잖아· 키도 크고· 공부도 좀 잘하고!”
“진짜 사귀는 거 아냐? 꺅! 어서 대답해!”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양주희의 하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였다·
이제 약속대로 폭죽이나 빵-터트리겠거니 생각했는데─·
“아 씨발 존나 노잼이네· 여기까지 하자·”
─예정과 다르게 튀어나온 김건호가 상황을 종료시켰다·
“하영원 이 개새끼야· 양주희한테 실감나게 고백하라고 했더니 네가 연기를 좆도 못하니까 만우절 구라인 거 시작부터 들켰잖아· 이래서야 조회수도 안 나오겠네· 뒤질래?”
그때부터였다·
내가 김건호에게 노골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된 건·
지금 그 일이 떠오른 것은 지금의 양주희가 만우절이었던 그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황과 굴욕 그리고 부끄러움에 빨갛게 물들어 눈물까지 차오른 표정이 그날과 똑같았다·
“야 하영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일단 셔츠부터 벗어 보라고· 아니면···내가 벗겨줄까?”
악몽의 복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양주희를 다그쳤다·
남들을 협박하고 다그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대사가 다소 어색해서 긴장됐다·
힘들게 개방한 상점에서 「최면 어플」을 손에 넣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잖아·
물론 이것은 인도적이고 정의로운 일이었다·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위악(僞惡)의 독배를 마셔주리라·
“싫어· 내가 왜 네 말대로 해야 하는데?”
“하 주희야· 지금 내가 지금 나만 좋자고 이러는 줄 알아?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싫으면 여기서 교실에서 평생 살자! 나랑 너랑! 둘이!”
영원히 이 공포스러운 복도를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을 했다·
그 뒤로는 살살 구슬려보기도 했다·
“어차피 잠깐 보여주거나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너 남자친구 많이 사귀어봤을 거 아냐? 이런 거 익숙하지 않아?”
“진짜 죽을래? 영원이 네가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좀 알 것 같다· 찐따 새끼· 진심 역겨워· 우웩-· 내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 봐!”
“그래 그러면 그냥 여기서 살자· 나도 몰라· 시발· 난 여기가 좋아· 괴롭힘도 없고 누구 숙제 대신 해줄 필요도 없고! 아주 천국이야! 천국!”
드르륵-·
나는 책상들을 다 밀고 누울 자리를 만든 후에 그냥 그대로 누웠다·
귀신이 나오는 장소라기엔 생각보다 편안했다·
역시 달리는 것보다는 걷는 게 좋고 걷는 것보다는 눕는 게 좋구나·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스륵-·
무언가 얇은 섬유 같은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양주희가 신발을 벗고 있었다·
동급생이 내 앞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사실 자체가 솔직히 야릇했다·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뜰 것만 같구나!
“···하영원· 하나 확실히 약속해· 너 정말 여기서 탈출할 자신 있어? 약속하면 만지게 해줄게· 다른 곳은···안 되고···발···정도는·”
여기서 탈출할 수 있냐고?
솔직히 반반이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내 몽정 전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서 그냥 죽느니 나 괴롭히던 여자애라도 한번 어떻게 해보고 죽는 게 낫지 않아?
그러다 탈출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뭐···어쩔 수 없는 거지·
뭘 해도 나는 이득을 보게 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약속해· 내가 꿈에서 깨어나면 네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가서 꼭 주희 너를 깨워줄게· 그럼 일단 양말 좀 벗겨 봐도 될까···?”
아까 정소진이 스타킹 벗는 거 보는데 여러모로 반응이 오더라·
내가 직접 양주희의 양말을 벗긴다면 똑같이···아니 더 큰 반응이 오겠지!
“····”
양주희는 말이 없었다· 그저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볼 뿐·
그럼에도 이 무언(無言)은 긍정 같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이제 내 심장은 귀신을 만났을 때보다 더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하지?
그런 느낌으로 손을 뻗을 때 탁-양주희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역시 그냥 만지게는 못 하겠어! 나는 사귀는 사람이 아니면 내 몸 건드리게 할 생각 없어· 네가 날 만지려면 나랑 사귀어야 해·”
“지금 우리 사귀자는 소리야?”
“또 나는 가볍게 사귀고 헤어지는 건 싫어· 사람을 사귀려면 언제나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의할 수 있어?”
결혼이라니·
이제 고등학교 1학년한테는 너무 먼 이야기 아니냐?
양주희에게 이런 면모도 있었구나·
“또 나랑 사귀고 싶으면 주일마다 교회도 나가야 해·”
교회 나가라고?
아 씨 그건 좀 싫은데 대충 둘러대자·
“알았어· 나 교회 많이 가 봤어· 그럼 이제 됐지?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거야· 그럼 된 거다?”
슥-·
나는 양주희의 손아귀에서 내 팔목을 떼어냈다·
이제 진짜로 탈출해야지·
여러 ‘악몽’으로부터·
탁-·
그때 또 양주희가 다시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는 일단 서로 손 잡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스킨십에도 진도라는 게 있잖아· 사귄 후라도 100일 정도는 손만 잡고····”
“아이 씨· 천하의 양주희가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너도 혼후순결인가 뭔가야?”
“···혼전순결 말하는 거야?”
“그거나그거나· 너 T야?”
나는 괜시리 짜증이 났다·
하지만···다시 생각해보니 손을 잡아본다는 건 제법 끌리는 일이었다·
혹시 알아? 손잡다가 분위기 타서 다른 곳도 만질 수 있을지─·
요즘 애들은 사귄 지 하루 만에 뭐 다 한다며·
그 요즘 애들인 나라면 이것저것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할 수 있다! 나라면!
“그럼 만질게·”
슥-·
나는 내 손목을 붙잡고 있던 양주희의 손을 맞잡았다·
“아으···왜 손을 그렇게 잡아···· 진따 새끼 아니랄까 봐····”
양주희가 몸을 살짝 떨었다·
가느다란 손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손톱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았지만 잘 정돈 되어 있었다·
“내가 손을 어떻게 잡았는데?”
“···변태같이 잡았잖아·”
평범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여자의 손은 이렇게나 작고 가느다랗고 여리구나·
나를 때릴 때는 매서웠던 손이 이렇게나 부드러울 수가 있나·
손도 이렇게 부드러우면 저 커다란 가슴은 대체 얼마나─·
“오옷─·”
그 순간 내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느낌은 위험했다·
# # #
“···겨우 손만 잡았는데?”
일어나자마자 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속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7시···!? 늦었다!”
일단 황급히 거실로 나갔다·
존나 큰 미국 바퀴벌레 한 마리가 부엌을 돌아다니다가 내 얼굴을 향해 부우웅 날아왔다·
“와 씨 깜짝이야!”
진짜 엄청 무서웠다·
엄지 손가락만큼 큰 미국 바퀴가 얼굴로 날아오는 게 꿈 속에서 귀신에게 쫓기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옷을 입고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에 도착한 건 7시 반 정도·
학교는 이미 떠들썩했다·
구교사 쪽에 경찰들도 와 있고 학생들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휴 실종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선생님·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큰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머지는 학교 측에서 처리해주시는 걸로····”
“네· 정말 감사드려요· 너희들! 정말 어쩌려고 그런 거니! 이런 곳에서 잠을 자고! 선생님이 일찍 출근해서 너희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너희는 지금 어떻게 됐을 것 같니!”
얼핏 보니 까만 여성용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단발로 자른 여자가 학생들을 엄하게 다그치고 있었다·
1학년 국어 선생님이었다·
올해로 서른 하나인데 미혼에 얼굴이 단아한 미인이라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나도 조금은 좋아했었던 선생님이다·
“아이 썅·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자고 있었지? 진짜 대가리 깨질 것 같네· 쌤 조금 조용히 좀 해 봐요· 머리 아프니까·”
키가 180은 훌쩍 넘긴 듯한 남학생이 뒤통수를 긁으며 몸을 바르르 떠는 게 보였다· 그 옆으로는 안경을 낀 여자애도 있었다·
“뭐야 지금 몇시···엥? 아침 일곱 시!? 큰일 났다! 엄마한테 죽었다 나는! 어떡해! 진짜로!”
김건호와 정소진이었다·
역시 둘 다 살아 있었구나·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가슴에서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 옆으로는····
“···아 뭐야· 교복 다 구겨졌잖아· 내가 왜 이딴 데서 잠들었지?”
머리가 이리저리 뻗친 채 짜증을 부리는 양주희가 있었다·
다들 왜 자신이 구교사 안에서 잠들어 있는지 의아한 듯했다·
당연히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너희 술 마셨니─본드 불었니─선생님 요새는 본드가 아니라 학생들이 마약도─주절주절─·
“대박· 너희 들었어? 김건호랑 양주희랑 정소진이랑 구교사에서 외박했대!”
“와 씨 간도 크다· 귀신 나올 것 같은 곳에서?”
1교시가 시작되기 전·
D반의 학생들은 아침부터 벌어진 사건에 대해 조잘조잘 마구 떠들었다·
드르륵-·
곧 교실 문이 열리더니 양주희와 정소진이 들어와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이들을 취조하던 선생님들이 일단 수업부터 듣도록 한 것이리라·
김건호는 집에 갔나?
아니 이제 그딴 놈이야 아무래도 좋다·
나는 내 뒷자리에 앉는 양주희를 보며 슬쩍 웃었다·
얘가 오늘부터 내 여자친구라니·
솔직히 믿기지 않았는데 기분은 좋았다·
“뭘 보니? 찐따야·”
“어허 주희야 미래의 서방님한테 그게 무슨 말 버릇이냐? 성경에 남편은 아내의 머리니까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 쓰여 있는 거 몰라? 일요일마다 교회 간다는 애가 성격이 아주····”
“뭐? 서방님? 너 돌았니? 찐따주제에 갑자기 무슨 자신감이야? 내가 교회 다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 너 혹시 내 뒷조사 했어···!?”
양주희가 급발진하듯 발끈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어젯밤의 일을 모르는 척하는 건가? 비밀 연애하자고?
나는 혹시나 해서 양주희에게 물었다·
“주희야 사귄 지 100일 째까지는 손만 잡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야 너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야? 아침부터 기분 거지 같은데· 김건호가 또 너한테 뭐 시켰어? 거짓말로 고백하라고?”
“아니 내가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100일까지는 손만 잡자고····”
“하영원 너한테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누구?”
“이제 없어졌어···· 바로 차였어·”
“프하하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근데 그년이 누구였는데? 내가 가서 존나 패줄까? 우리 영원이 누가 찼어! 응? 누구야? 우리 반 애야? 우리 학교? 분명 못생긴 애지?”
양주희는 꿈에 대해 전혀 기억 못 하는 듯했다·
「악몽의 복도」에 대해서도·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나는···사귀어 본 적도 없던 여자친구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소중한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어선 안 되는 사람을 잊어버린 기분·
이 감정을 어디에다 호소해야 하는 걸까····
전부 나 혼자만의 꿈이었나?
분했다·
진짜 꿈이었다면 그냥 가슴이나 좀 만져볼걸·
“상태창·”
나는 허탈한 마음에 허공으로 글자를 띄워보였다·
디링-·
다행인지 불행인지 글자는 떠올랐다·
그런데 보여지는 글자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악몽의 복도로부터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생환 1人 사망 3人 몫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사망 3人이 기벽을 획득합니다·』
『김건호 ◀ 선택하여 확인하기』
『정소진 ◀ 선택하여 확인하기』
『양주희 ◀ 선택하여 확인하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디 오후 6시 연재를···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야릇하고 으스스한 이야기를 오후 6시에 연재하는 것은···느낌이 이상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바···
오후 8시 연재도 괜찮지 않을까···생각이 드는 것입니닷···!!!
당분간은 연재 시간이 다소 조정될 수 있는바···
저 미츄리의 이야기의 이야기에 알림설정을 하시면···이 연재시간 괴담을 이겨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닷···!!!
그런 의미에서 일정한 시간의 부두술을 걸어드립니닷···!!!
무엇이든 일정한 스케쥴대로 예정대로 착착 흘러가는 부두술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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