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7
087 – 上 # 2
“이제 내가 정석이야!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과학실로 기어 들어갔던 정석이 아주 시끄럽게 웃기 시작했고 마침내 봉지연을 붙잡았다·
그리고 봉지연을 개구멍 안으로 집어 넣으려 했다·
“들어가! 얼른 안으로 들어가! 안으로! 너도 우리가 되는 거야· 너도!”
“꺄아악! 이 미친새끼야!”
비명을 지르는 봉지연·
정석은 봉지연이 날카로운 눈썰미로 구분한 것처럼 가짜가 분명했다!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양주희가 야구방망이로 정석을 힘껏 내리쳤다·
“이 미친새끼야! 그거 놔!”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정석의 몸이 깨졌다·
정말 도자기나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에 나뒹굴게 된 것이었다·
“내가 정석이야· 내가아아아아─·”
깨진 유리조각에 비치는 정석의 입술이 아직도 으스스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너무 놀랐고 그것을 발로 밟아 깨트렸다·
“꺼져!”
쨍그랑-·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은 분위기·
봉지연이 털썩 주저앉았다·
“정석 이 개새끼! 앞으로 나한테 말 걸기만 해봐라! 진짜!”
덜덜 아주 서럽게 우는 봉지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과학실 개구멍에서 누군가의 손이 쑥 나오는가 싶더니 봉지연의 다리를 잡았다·
“어엇? 꺄아아아아아아악!”
봉지연은 아주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과학실의 개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이건 정말 악몽이었다·
그로부터 한 5초 뒤에 과학실 안에서 봉지연이 말했다·
─와 여기 진짜 굉장하다· 너희들도 꼭 봐야 해· 아니다· 일단 내가 바깥으로 나갈게· 얘들아·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언가 복도로 나오려고 한다·
그건 봉지연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어도 봉지연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눈앞이 아찔해질 때 양주희가 내 손을 잡았다·
“야! 뭐하고 있어! 일단 도망치자! 얼른!”
파다다닷-!
나와 양주희는 정말 정신 없이 뛰었다·
아직 신상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2층은 진짜 좆같은 장소였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그런 생각밖에 없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두두두두두두두-·
누군가 몹시 발을 구르는 소리가 우리가 달리는 복도의 앞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댄싱 귀신···!?”
앞에서는 춤추는 귀신이 다가오는 상황·
─얘들아 어디가· 가자· 우리랑 같이 과학실 안으로 들어가자·
─거울 속은 좋아· 모든 것이 반짝반짝 해·
뒤쪽에서 들려오는 봉지연과 정석의 목소리·
진퇴양난·
나는 머리를 감싸쥘 수밖에 없었다·
“···진짜 좆 됐다·”
나는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울고 싶었다·
그런 나를 향해 양주희가 말했다·
“야! 하영원! 정신 차려! 아직 죽은 거 아니잖아!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내 언니도 찾고 너도 이 끔찍한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거잖아!”
“아니··· 우리 더는 숨을 곳도 없고····”
“야· 네가 이거 갖고 있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슥-·
양주희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양주희가 갖고 있던 탈출 부적이었다·
“야 이거 나 주면 너는···? 너 죽으면 다 잊어버린다니까?”
“난 안 죽어· 그리고 만약 죽으면····”
꽈악-·
양주희는 야구 방망이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정면을 양해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야아악!”
아주 악을 내질렀다·
마침내 춤추는 귀신과 양주희가 마주쳤다·
춤추는 귀신의 팔과 다리는 누군가 억지로 잡아늘린 것처럼 길쭉했으며 그 눈은 뻥 뚫려있고 입만이 히죽히죽거리고 있었다·
머리가 몹시 길고 입술에 빨간 칠을 한 여자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는 점이었다·
“우에우에우에우에우에─·”
“뭐라는 거야 이 씨발년아!”
후웅 퍽-!
양주희가 호기롭게 휘두른 방망이가 춤추는 귀신의 머리통에 맞았다·
파직-!
그 바람에 나무 방망이는 부서지고 말았지만 춤추는 귀신도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기쁨에 소리쳤다·
“됐어! 쓰러트렸어! 주희야! 네가 해냈어!”
“····”
하지만 양주희는 말이 없었다·
양주희는 그대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고 나를 향해 말했다·
“···영원아 여기서 당장 나가· 그리고 네가 날 기억해 줘·”
양주희가 손을 들어올렸다·
마치 작별인사라도 하는 사람처럼·
곧 양주희의 머리칼이 정전기라도 일어난 사람처럼 부스스-공중을 향해 떠올랐다·
“끄극-그그극····”
빠드득 콰득 빠직·
양주희는 이리저리 몸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팔과 다리를 꺾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때서야 고개를 들어 올려보게 됐다·
천장에 무언가 돋아나 있었다·
그 형태가 아주 흐릿해서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라면·
나는 더욱 눈에 모든 것을 집중했고 천장에 돋아난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하하하!”
그것은 사람의 상반신이었다·
사람의 상반신 같은 것이 거꾸로 매달려 그 두 팔로 양주희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어설픈 인형극처럼 사방으로 잡아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뒤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쿵쿵 쿵쿵쿵-·
공중에 매달린 양주희가 벗어나기 위해 팔다리를 마구 버둥거리며 죽어가는 그 모습을 천장에 달라붙은 상반신은 몹시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처럼 웃으며 지켜봤다·
“하하하하!”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만큼 밋밋한 얼굴에 유난히 뻥 뚫린 눈동자만이 아주 새까만 어둠으로 돋보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는 춤추는 사람의 것이 아닌 천장에 붙은 놈의 것이었다· 놈은 양주희를 그리고 나를 큰 입으로 비웃고 있었다·
놈은 구혜나 같은 귀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악의(惡意) 그 자체였다·
“똑딱똑딱-· 뇌 빨아줄게-·”
“거울 속으로 들어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곳은 그 어떠한 사연이나 인과도 없이 오로지 조소와 악의만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티끌 같은 인간성조차 오물로 더럽혀지는 나락의 밑바닥·
지옥이었다·
이렇게나 무력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두렵고 또 분했다·
무섭고 화나서 눈물이 막 났다·
“두고 봐 이 개새끼들아·”
# # #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무언가 뭉실뭉실한 것이 내 몸 위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깜짝 놀라 집어 던졌다·
“어맛 깜짝얏!”
─웨에에에옹-!
저 멀리 날아가는 걸 자세히 보니 하얀 털의 고양이였다·
일찍이 내가 귀신으로부터 구해준 적 있던 고양이 말이다·
공주 같은 이름이었는데·
백설이?
하얀 고양이 백설이가 왜 내 방에?
나는 그때서야 내가 금요일 밤에 유다희의 저택에서 잠에 들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권수호와 함께 토요일 아침에 이사장 천대곤을 만나기 위해서였나·
“백설아 영원이 깨웠어?”
그때 누군가가 슬리퍼 신은 발로 내가 머무는 방에 들어왔다·
유다희였다·
갈색 가디건 아래로 잠옷처럼 생긴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유다희가 내 방을 슬쩍 들여다보고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영원아 안녕·”
슥슥슥-·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아직 악몽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몽사몽이었으니·
이제 보니 내 온몸이 식은땀이었다·
심장은 고장난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고 목도 말랐다·
하지만 물을 마시는 것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 물었다·
“다희야 너 어제 혹시 무슨 꿈 꿨어?”
“나? 나는 음···· 토끼들 나오는 꿈 꿨는데·”
악몽의 복도에 대한 꿈을 꾸지 않았구나·
역시 어젯밤 유다희는 복도에 없었던 게 분명했다·
“영원아 아주머니가 아침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오래·”
유다희는 하늘색 원피스의 치맛자락을 선녀옷처럼 하늘하늘 흔들며 저 멀리 사라졌다·
나는 방금의 짧은 대화를 통해 더욱 확실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어젯밤의 복도행은 완전 대실패였다·
비록 내가 계획했던 복도행이 아니라 ‘랜덤 매칭’의 변수가 있었다고는 해도·
그럼에도 나는 요 며칠 대부분의 일이 잘 풀려서 조금 자신감이라고 할 게 붙어 있었다·
어깨가 높았단 말이다·
하지만 복도 2층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만만하지 않았고 끔찍한 장소였다·
완벽한 패배·
나를 비웃었던 귀신들의 조소가 여전히 내 귓가에 머무르는 것처럼 들릴 정도다·
정석 사망-·
양주희 사망-·
봉지연 사망-·
내가 직접 매칭을 돌렸던 때와 다르게 포인트 결산 창이 떠오르지 않아 직접 상태창을 열어 친구들의 기벽을 확인 해야 했다·
「정석 – 《황금 화살》 : 사랑의 황금 화살은 사람을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누군가는 그 사랑을 위해 목숨마저 내던지죠·」
「양주희 – 《격렬한 질투》 : 질투의 죄를 지은 사람들은 눈이 꿰매져 무엇도 보지 못하는 형별을 영원히 겪는다고 합니다·」
「봉지연 – 《의심병》 : 신뢰와 사랑은 의심하는 마음에 깃들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 어떠한 믿음도 마음에 자리잡지 못하게 된 사람의 말로는 고독뿐입니다·」
세 명의 죽음·
세 개의 기벽·
지금 내가 가진 포인트는 282P·
3명의 기벽을 처리하려면 최소 300포인트가 필요했기에 내가 가진 현재의 포인트로는 조금 부족했다·
혹시 부적을 지니고 있었던 봉지연이 탈출을 한 건 아닐까 은근히 기대도 했었는데 과학실로 끌려들어간 이후 봉지연은 얄짤 없이 죽은 모양이었다·
“씁····”
조졌다·
세 명 중 두 명의 기벽밖에 치료를 못 하잖아·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컹컹-컹컹컹컹-컹컹-·
꺄아아아악!
“···?”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여자들이 꺄악-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여성의 비명이란 정말 어떤 상황이든 귀에 뾰족이 들리는 것이었다·
여자 비명이 유독 귀에 선명히 들리는 무슨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그랬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고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튀어나갔다·
2층의 어느 방이었다·
잠옷 차림의 저택 가정부 누나들이 반쯤 울상을 지은 채 경악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꺼져! 꺼져 개새끼야!”
“으르르르 컹컹-컹컹컹-!”
짖는 개를 무서워하는 누나들이었다·
어디서 미친 광견병 걸린 들개라도 저택으로 숨어들어왔단 말인가?
아니었다·
가정부 누나들의 앞에 네 발로 서서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권수호였다!
“컹컹! 컹컹컹!”
권수호는 마치 개처럼 네 발을 딛고 마구 짖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가 어젯밤 권수호가 악몽의 복도에서 기벽 하나를 보유했던 채로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즉 권수호에게는 현실에서 기벽 두 개를 얻게 된 셈이었다·
기벽 두 개를 가진 사람은 죽는 게 아니었나?
“상태창·”
나는 상태창을 조작해 권수호의 항목을 열어보려했다·
하지만 플레이어 목록에서 권수호의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
그의 기벽을 확인하거나 치료소에 넣어 그 기벽들을 해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고장 난 시계》의 조언 : 《기벽》은 육신과 영혼 그리고 마음에 들린 괴기입니다· 2개 이상의 기벽을 보유했을 경우 해당자는 사망합니다· 《기벽》은 상점에서 잠금 항목인 치료소를 개방하여 100P를 소모해 해주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내 특성이 조언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사망(死亡)·
권수호가 개처럼 변해버린 이게 사망이란 말인가?
“아침부터 대체 무슨 소란이냐!”
“이 이사장님! 얘 좀 봐요!”
“얘가 막 미쳐서 사람 물려고 하고! 꺄악! 이 변태새끼야!”
이사장 천대곤은 소란에 이끌렸는지 가정부 누나들의 방으로 와서 이 현상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마구 으르릉거리는 권수호와 그런 권수호를 무서워하는 가정부들을 한참 노려보더니 마침내 파하핫-웃음을 터뜨렸다·
“개망나니가 진짜 개가 되었구나· 혹시 미리 있느냐·”
“예 이사장님· 저 여기 있습니다·”
홍미리 선생님도 방으로 들어왔다·
홍미리 선생님은 으르릉거리는 권수호를 보면서 짧게 판단을 내렸다·
“얼핏 보면 조현병 증상이나 광견병 증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아무래도 아니겠죠· 안에 있는 내용물이 뒤바뀐 것 같네요· 이렇게 되면 저희가 손도 쓸 수 없겠어요·”
뒤바뀌다-·
나는 그 이야기를 어젯밤 악몽의 복도에서 봤었다·
금고 안에 들어있던 교장의 서신에 그런 이야기가 분명 있었어!
귀신과 인간의 뒤바뀜·
나는 이 순간 기벽이 두 개 쌓이는 자들의 말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벽이 두 개 쌓이는 자는 그 몸을 귀신에게 완전히 빼앗기게 되는 것이었다·
홍미리 선생님이 이사장 천대곤에게 물었다·
“관악으로 연락 넣을까요? 이런 건 그쪽 사람들이 전문일 텐데요·”
“아니· 권 원장에게 연락해라· 자기 아들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 미츄리는···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를···좋아하는 것입니닷···!!!
다음 작품을 쓰게 된다면···멋지고 귀여운 동물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닷···
그런 의미에서 독자님들께 야성이 증가하는 야성의 부두술을 걸어드립니닷···!!!
사람도 큰 의미에서는 동물···!!! 독자님들의 마음에 깃든 야성으로 한 주를 이겨내는 것입니닷···!!!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