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
촤르륵 콰아아아-!
고막을 찢고 들어오는 듯한 굉음.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검날의 파편들은 한 편의 폭풍이 되어 휘몰아친다.
나는 작게 중얼거린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강철의 파도 앞으로 서있는 것은 백금발의 소녀.
샬롯은 멍하니 제자리에 굳어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컨트롤 미스 때문이었을까.
곧바로 흐름을 되찾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촤르르륵-!
그렇기에 소녀는 모든 것을 홀로 떠안고자 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휘날리는 꽃잎들의 향연.
샬롯은 가만히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무리해 가면서 흐름을 비튼 건 나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나.’
설마 공격을 그렇게 되돌릴 줄이야.
덕분에 화려하게 패배한다는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니까.
방금까지는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중이었으면서 막상 위험한 상황에는 지키려고 나선다니.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4차원 소녀였다.
뭐… 그런 부분이 매력인 캐릭터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저대로 두면 다칠 것이다.
아무리 샬롯이라고는 해도 아직 어린 소녀.
원작의 초반부인 만큼 능력의 안정성도 떨어지고 스스로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지도 못한다.
성장 중에 있는 천재였다.
저대로 충돌할 경우 최소 가벼운 타박상 혹은 자상.
심하면 의무실에 실려갈 정도로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상시 대기 중인 사제들이 있으니 바로 낫기야 하겠지만… 좋아하는 캐릭터가 다치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젠장.’
그렇다고 직접 구해주기에는 망설여진다.
잃는 것이 너무 분명했으니까.
보일 듯 안 보이는 엑스트라로 전전하는 생활.
기껏 힘을 숨기며 약자를 연기 해왔는데 여기서 샬롯을 구해내면 다들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학생들은 결계에 가려서 보지 못한다.
허나 교직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이 상황을 관전하는 중이었으니까.
순간 마도구의 시야를 전부 가려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출력으로는 무리였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잠깐의 만족을 위해 샬롯을 구할지.
아니면 미래의 안정을 위해 그녀가 다치도록 내버려둘지.
‘이걸 어쩐다….’
5초가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친다.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멈춰있던 나의 등을 떠민 것은….
“…아프겠다.”
다름 아닌 한마디였다.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는 혼잣말.
담담하게 서있던 백금발의 소녀는 살포시 눈꺼풀을 덮는다. 마치 평온한 잠에 드는 것처럼.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하.”
저런 걸 보면 구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애초부터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것이 아니었나.
한 명의 조력자로서 그들의 곁을 지키고 싶어하는 주제에 자신의 책임마저 회피하려고 하다니.
“반성해야겠네요.”
따악-!
손가락을 튕긴다.
명쾌하게 울려 퍼지는 파열음을 따라서 시야가 점멸한다.
다음 순간.
나는 샬롯의 등 뒤로 이동한다.
샬롯은 충격에 대비할 생각도 없는 것인지 가만히 서있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슬며시 뻗은 손으로 소녀를 감싼다.
가녀린 체형을 품으로 당겨옴과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거짓말’을 갈무리한다.
쐐애애액-!
주변의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칼날의 파도를 향해서 손가락을 겨눈다. 적당한 힘을 담아서.
잠깐의 미소가 스친다.
입에 담는 것은 무엇보다 어둡도록.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 황홀하도록.
세상에서 가장 어린 납골당.
나는 별의 대행자 혹은 시위에 살을 걸리는 이빨.
“깨져라.”
입술을 달싹인다.
그리고.
콰아아앙-!
쏟아지던 강철의 파편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진다.
마치 거대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은 쪼개지고 또 쪼개진다.
견고했던 결계가 무너진다.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잿빛의 화원.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멸망을 닮아있는 장면이다.
하나의 세계였던 것은 역설에 잡아먹히며 서서히 아름다운 붕괴로 물들어간다.
‘조금 과했나.’
나는 태연한 감상을 곱씹으며 손을 털었다.
나름 힘 조절을 한다고는 했는데 결계가 불안정하다 보니 함께 부서지는 모양이었다.
“후우.”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면 곧 가슴팍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품 속에 안겨있는 백금발의 소녀.
투명한 벽안이 이쪽을 올려다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
“괜찮으십니까?”
나는 가볍게 질문하며 소녀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안도의 숨이 흘러나온다.
샬롯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 듯 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모습. 나는 일부러 그녀를 향해 장난스러운 말을 던졌다.
“이거 이거… 저에게 한 번 빚지신 거라고 봐도 될까요?”
“….”
“후후.”
입가에는 실실거리는 미소가 담겨있다.
나는 결계의 모든 면이 무너질 때까지 샬롯을 소중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
“기권할게.”
샬롯의 기권 선언으로 경기는 종료되었다.
아직 최면의 여파가 남아있는 것인지 소녀는 다리를 비틀거리며 서있었다.
주변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갑자기 기권을 하신다고?
-그러면 거품 수석이 이긴 거야?
-말도 안돼.
-분명 전하께서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계셨는데… 결계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하께서 저런 수준 미달에게 지셨다니….
학생들은 결계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샬롯이 영역을 전개하기 이전 내가 버겁게 경기를 이어가는 모습 뿐이었을 테니.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철저하게 박살나는 전개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막상 까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튀어나왔다.
물음표가 우르르 쏟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솔직히 검을 다루는 솜씨만 보면 거품은 아니었어. 꽤 출중한 실력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전하를 꺾는 게 말이 되냐고!
-전하께서 일부러 봐주신 거 아니야?
소란스러운 학생들의 반응을 뒤로.
나는 내 앞으로 서있는 소녀를 바라본다.
“….”
“….”
샤를로테 또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대화 없이 이어지는 침묵.
그것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샬롯이었다.
“역시 맞았구나.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녀는 담백하게 중얼거린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싶었던 소녀는 다시금 입술을 떼며 말을 걸어온다.
“저기.”
“예 전하.”
“왜 구해준 거야?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었잖아.”
“글쎄요.”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능청스럽게 대답을 고민하는 척 했지만 이미 나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슬쩍 뻗은 손가락으로 소녀의 볼을 찌른다.
말랑하게 닿는 감촉.
샬롯은 고개를 갸웃한다.
“…?”
정말이지 순진무구한 눈동자였다.
투명하게 비치는 동공.
저절로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그저… 당신께서 다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온전히 진심이었으니까.
“대답이 되었을까요?”
“잘 모르겠어.”
“안타깝군요.”
“응.”
무뚝뚝하게 툭툭 돌아오는 목소리.
그런 반응을 듣는 것마저도 즐거웠던 나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평소처럼 불길함으로 가득한 미소였다.
이럴 때는 특성이 참 불편하단 말이지. 마음 놓고 웃지도 못하게 한다니….
한탄 아닌 한탄을 뒤로 침음하고 있던 때.
“웃는 거 예쁘다.”
뜬금없이 칭찬이 날아온다.
화자는 다름 아닌 어린 왕자.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에 나는 물음표를 여럿 띄우며 되물었다.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대체 어떤 부분이?”
“깨끗한 색이야. 그래서 예뻐.”
깨끗한 색이라는 건 또 뭘까.
내가 미심쩍은 눈빛을 하는 사이 소녀의 입가는 희미한 미소를 그린다.
“조금은 지켜봐도 될 것 같아.”
“흐음?”
“아직은 네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거든. 그래서 응. 지켜보려고.”
“판단 보류라는 말씀이시군요.”
“비슷해.”
이건 좀 의외였다.
내가 가진 불길한 힘을 알게 된 이상 적어도 꺼려하는 모습 정도는 보일 줄 알았는데.
샬롯은 오히려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으니까.
괴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어린 왕자’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혹시 나쁜 사람이야?”
“어떨 것 같습니까?”
“모르겠어.”
“전하께서는 신비로운 안목을 지니셨군요. 아마 열에 아홉은 저를 나쁜 사람 같다고 말했을 겁니다.”
“열에 하나라고 해서 항상 틀리는 건 아니잖아.”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간단한 몇 마디를 나누고 있으면 시험의 종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제 7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학생들은 교직원의 안내에 따라 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응.”
“가보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각자 천천히 걸음을 떼어낸다.
언제 대화를 나누었냐는 것처럼 서로를 등지고 저마다 입장했던 통로를 향해서 나아간다.
《샤를로테 리틀 폰 슈타우펜의 기권. 승자는 유다 스네이커스입니다.》
그렇게 반 배정 시험이 끝났다.
***
한편 교직원 대기실.
넓은 공간 안으로 학장을 비롯한 모든 교직원들이 모여있었다.
반 배정 시험의 평가를 위해 앉아있는 것이었다.
중요한 학사 일정 중 하나인 만큼 진중하게 진행 되어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대기실은 소란으로 가득했다.
“내가 방금 대체 뭘 본 거지?”
“빨리 아까 장면으로 돌려보십쇼! 뭔가 잘못 찍힌 것 아닙니까?”
“…말도 안돼.”
“이게 학생의 수준에서 가능한 마법이라고…?”
저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교수들.
마도구를 통해 송출되는 화면에는 제 7시험에서 일어났던 한 장면이 반복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깨져라.》
가볍게 영창을 중얼거리는 실눈의 소년.
직후 견고했던 강철의 화원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결계의 모습을 보며 교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저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작게 울려 퍼지는 한 교수의 중얼거림.
교직원들은 멍하니 바라본다. 불길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의 소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