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0
“왜··· 왜 그랬어!”
푹신한 탄성포장재 위로 하루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울분을 토해냈다·
찬란했던 환상은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만이 적막한 놀이터에 울려퍼졌다·
“왜 마법을 마음대로 끝낸 거야 왜···! 아직 엄마랑 얘기도 다 못 했는데!”
작디 작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팡팡 내리친다·
그래봤자 손만 아파질 뿐이라며 나는 하루를 일으켜 세워줬다·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야·”
“싫어 안 갈 거야·”
“밤에는 쌀쌀해서 감기 걸릴 수도 있어·”
“싫어 싫다고!”
일단은 친구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야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네 눈 내가 고쳐줄 수 있을 것 같아·”
“···! 의사 선생님도 못 고쳤는데 네가 어떻게 고치게···”
“내가 예전에 너한테 오러를 썼을 때 잠깐 색깔이 보였다고 했지? 이제 방법을 알았어·”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하루는 내 손을 기꺼이 잡아주었다·
우리 집 현관문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간간이 옆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체력은 썩 좋지 않은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하루는 나보다도 심한 수준이었다·
하루가 색채를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은 단순히 어머니를 잃은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알케미스트 속에서 형성된 물건이라 결국 가져올 수는 없었지만 하루가 받은 알약에는 분명 ‘흑마법’을 사용한 것과 같은 마력파장을 내뿜고 있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걸 알고 주었던 거라면 그녀의 어머니는 도저히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겠지·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하루를 앉혔다·
그리고 내 책상 의자에 앉은 유나를 침대 옆으로 끌고 와서 하루가 유나와 마주볼 수 있도록 했다·
“이하루 지금 유나 머리가 무슨 색으로 보여?”
“회색··· 아니 검은색···? 아니 회색···”
유나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변치 않고 새빨간 실가닥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눈 감아· 아프면 오른손 들고·”
퉁퉁 부어오른 눈에서 흘러나온 물기를 닦아주고 눈 위로 손바닥을 덮어 고유 오러를 흘려보냈다· 다만 저번에 사용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아··· 아파···!”
하루가 곧바로 내 손목을 붙잡으며 신음을 토해낸다·
“아프다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흐윽··· 잘 모르겠어· 나메야 나 무서워··· 그만 해주면 안 돼? 머리가 너무 아파···”
지금 내가 하는 것은 오러로 단순히 정화를 하는 절차였다·
이 과정에서 아프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는 단 하나도 없을 터·
하루가 오른손을 파르르 떨면서 어김없이 통증을 호소했다·
일단 하루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러면 역시 흑마법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쪽 세상에는 흑마법이 온전한 형태로 존재할 수 없을 터·
마나를 다른 차원에서 불러오는 ‘저장’ 단계가 있는 이상 인신공양 등의 간편한 방법으로 마법이 써질 리가 없었다·
그럼 남은 한가지는 내가 이전에 볼펜을 아토마이저로 둔갑시킬 때 사용했던 마법처럼 ‘각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마법을 썼다는 얘기이다·
알약 자체에 마법진을 각인한 다음 체내흡수로 발동시킨 건가·
[3서클 역시전: 각인 해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인된 마법진을 역으로 추출하는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하루의 눈에서 꾸불거리는 검은 문자와 수식들이 마치 뱀처럼 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밀려오더니 오른팔이 문신을 한 것처럼 룬어와 일그러진 서클들로 가득 찼다·
전신으로 퍼져나가려는 걸 간신히 오러로 틀어막아 가둘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이게 대체 뭐야?”
유나가 놀라서 내게 물었다·
“각인 마법· 아마도 내용은··· 6서클의 사고 가속인 것 같네·”
하루의 어머니는 이게 단순히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약인줄 알고 먹였던건가?
진실을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 * *
하루를 내 침대 위에 눕히고 유나에게 잠시 간병을 부탁했다·
지금 팔에 임시로 저장해놓은 각인술식이 지워지기 전에 파훼를 하러 가야했다·
“혹시 하루가 깨면 와서 말해줘·”
“하루도 어디 잘못된 건 아니지?”
“응 다 치료했으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돼·”
하루가 색을 못 본다던가 환청을 듣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수준에 맞지 않는 고위 서클의 마법이 들어가 있어서 뇌에 일종의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전자는 정보처리에 필요한 뇌의 영역이 부족하니까 다른 감각기관을 침해한 케이스고 후자는 뇌파에 혼선이 온 경우였다·
오러하트에 의해 정제되지 않은 마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하루의 체내 밸런스가 많이 깨진 상태였다·
그래서 하루의 오러하트를 이용해 마나 불순물들을 제거하는 게 내가 진행했던 정화의 첫 번째 절차였고 각인술식을 완전히 제거한 다음 임시로 내 오러를 불어넣어준 게 두 번째 절차였다·
하루가 자는 동안 지금은 내 오러가 하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회하며 그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기관들을 복구시키도록 한 것이다·
철컥-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세면대 거울 앞에 마주서서 내 모습을 응시했다·
머리가 정말 길었다·
기껏 히아센이 정성스럽게 잘라줬는데 환상마법이 해제되면서 모두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이래서 자르기 싫었던건데···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고 술식부터 해제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한때 지겹도록 해보았던 절차였으니까 구태여 눈을 감아 집중하지 않아도 됐다·
금빛 오러가 흘러나오자 내 팔에 담긴 룬어의 활자 조합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러· 마나에서 파생된 확률 중첩 물질·
우리 몸의 혈액이 폐를 거쳐 산소를 보충하는 것처럼 마나도 오러하트를 거쳐 뇌파의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형이 일어난다·
즉 오러라는 물질을 가장 적절히 요약해보자면 ‘제어할 수 있는 인공 호르몬’이라 보는 게 타당했다·
일반적인 호르몬과 다른 점이라면 오러는 연속적인 호르몬의 분비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갑상선자극호르몬(TSH)이 티록신의 분비를 자극하고 티록신이 다시 물질대사를 촉진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면 오러는 이를 건너뛰고 전부 하나의 단계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오러는 어디까지나 마나에서 파생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실재(實在)하는 물질은 아니다·
이미 인간의 체내에 있는 비활성 호르몬을 군(群)을 이루어 새로운 호르몬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게 할 뿐이지 없던 게 생겨나지는 않는다·
즉 100m를 10초만에 달리게 만들 수는 있어도 인간이 치타나 페라리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물론 오러를 다루는 능력이 극히 뛰어나면 짧은 거리 내에서 체외로도 발산하는 게 가능할 테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치겠다·
솔직히 개인적인 의견이다만 인간이 오러하트를 달고 태어난 건 용족이 용언을 쓸 수 있는 것만큼이나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계는 비록 명확할지라도 영속적인 부작용이나 대가 없이 신체를 강화시켜주는 능력은 이미 그 자체로도 엄청난 축복일 지언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오러는 응용이 쉽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반대로 마나는 다루기 어렵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오러의 방식처럼 마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타났고 그들은 생명을 대가로 바치기도 하였다·
원리를 몰라도 저절로 발동되는 마법 한 때 우리는 그것을 은어로 ‘흑마법’이라고 불렀다·
똑같은 마법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서 그런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문신을 지우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하루의 머리에서 전부 뽑아낸 각인술식은 전부 흑마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루에게 주입된 결과물들이었다·
각인 마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산화에 성공한 마법인만큼 사람보다는 공장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알약에 담긴 마법도 인간이 한 게 아니라면 시전자 암호를 복호화 했을 때 참고할만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복호화의 과정은 디스펠과 유사했다·
다만 훨씬 까다로운 점은 디스펠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마류의 합을 ‘0’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기에 마류의 동적평형과 정적평형을 불문하지만 복호화는 정적평형의 절차만을 준용했다·
그래서 꼬여버린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듯 모든 시전 과정을 역순으로 행하여 술식을 해제시켰다·
복호화는 마법기록의 역순이다· 따라서 마법진을 기록할 때 가장 먼저 써야 할 ‘주체’는 가장 마지막에 남는 문자였다·
한국마력발전소에서 개개인에게 징수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저장’ 과정으로부터 얻어낸 ‘주체’를 복호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건···”
보기 흉한 문신이 모두 사라지고 손등에 글자 하나만이 남았을 때 나는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Walpurgis]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왜 이게 여기서 나오지?’
그냥 단순히 우연일까? 진위가 확실한 것도 아니다· 시전자와 달리 기계 주체의 명명법은 사용자가 이름을 붙이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이 끈적한 위화감을 도저히 지워낼 수 없었다·
심장이 멋대로 두근거린다·
일반인에게는 허가되지도 않는 6서클 마법을 고수하면서까지 불법 약물을 제조한 이들이 왜 하필 또 각인의 주체를 ‘발푸르기스’로 설정한단 말인가?
정말 그들이 관여된 일일까· 아니면 그저 예전에 박멸당한 단체라서 편의상 이름을 붙인 걸까·
어지러운 가설들이 한참동안 머리를 떠돌 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저기 나메야 아직이야?”
일단은 아이들한테는 비밀로 하자·
여전히 수중에 떨어진 정보가 적은 건 매한가지다·
[1서클 시전: 클린]
마지막 남은 문자까지 완전히 지워내고 밝은 얼굴로 유나를 맞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루의 어머니에게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하루의 언니 이보름은 왜 어머니를 그토록 싫어하는지도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심각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 예정입니다· 이제 파자마 파티를 즐겨야죠!!
Hingju7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일단 다음 주에 머리를 식히면서 좋은 스토리로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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