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4
“아아 쉽다 쉬워! 여러분 이것밖에 안 돼요? 이런 친구들이 그동안 내 방에서 훈수두고 있었던 거야? 오늘 치킨 기프티콘도 일부러 여러 개 준비했는데 이러다가 저 살쪄버리겠어요? 이번에 스프링 우승 못하면 님들이 책임지실 거예요?”
TK Pathos의 스트리밍 방에서는 한창 시청자들과의 일대일 대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페이소스는 어릴 때부터 중국으로 넘어가 오랫동안 2군을 전전하다가 작년 초에 TK에 입단하게 된 프로게이머였다·
TK 내부에서도 커리어 하나 없는 쌩신인을 왜 영입했냐는 의심어린 시선과 질타가 한때 쏟아졌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페이소스는 작년 스프링 성적은 5등으로 한때 방출될 위기까지 겪었지만 갑자기 서머에서 기량이 폭발해 준우승을 거머쥐고 롤드컵에서 파이널 MVP까지 받으며 자신을 제대로 증명해낸 선수였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지금 페이소스는 가장 먼저 TK와 재계약을 선언하면서 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롤드컵 때의 폼이 죽지 않았는지 스프링 플레이오프도 무난하게 승자조로 진출·
그리고 플레이오프 진출 프로게이머 중 유일하게 자진해 방송까지 켜면서 시청자들과 일대일 대전을 기획하였다·
-피지컬은 그냥 미쳤네ㅋㅋㅋㅋㅋㅋㅋㅋ
-유미로 대체 어케 솔킬따는 거임ㅋㅋㅋㅋ
-페이소스님은 진짜 탑을 했어도 잘하셨을듯
“그럼 이제 막판할까요? 마지막 한분만 더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이기는 사람한테 기프티콘 다 뿌려버릴까보다·”
이번에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방을 만들었다· 설정하는 동안에도 오디오를 비우지 않는 게 페이소스의 특기였다·
“탑이요? 저 롤 시작했을 때 주구장창 탑만 했어요· 그런데 영향력이 너무 없어가지고 아마추어 시절 챌린저 올라갈 때 원딜로 올려보자고 한 이후로 계속 원딜만 하게 된 거지· 이게 롤이 시즌마다 포지션 밸런스가 너무 안 맞는게 문제야· 어떨 땐 정글게임이고 올해도 까고 보니까 완전 바텀 메타죠? 탑 메타였던 적은 한번도 없어· 성재형이 대회 때 솔킬 따도 지고 솔킬 따여도 게임 이기는 거보면 다들 아시죠?”
-탑 영향력 1도 없으니까 겜을 무슨 솔랭처럼 하던데ㅋㅋㅋㅋ
-하데스 지표 보면 솔킬 1위 피솔킬 1위임 머리 걍 박으면서 함
-아씨 또 못 뚫었네
-비번 뭐였음?
-탑은 진짜 쓰레기라인이야
“아 들어오셨구나· 비번은 77이었습니다· 어디 우리 귀여운 시청자 패좀 까볼까?”
페이소스는 가볍게 상대의 티어를 확인했다·
“다이아 1? 귀여워·”
그래도 마지막 대전은 전판과는 달리 적당한 결투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색을 보아하니 시청자라고 하기에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보통은 팬이라고 악수부터 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그럼 겨자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와 진짜 이럴 수가 있나? 이분 진짜 일대일만 하러 오신 분 같은데?”
-아니 비번은 어케 뚫었노ㅋㅋㅋㅋㅋㅋㅋㅋ
-소오름
-롤하면서 어떻게 페이소스를 모름
-닉변빵으로 닉네임 바뀌어서 모르는 거일 수도?
-방송천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소리 정말 농ㅋㅋㅋㅋ하네
-오 피오라 대 이렐
페이소스는 이런 재밌는 상황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쪽이었지·
그래서 계속해서 도발을 걸었다· 나중에 일대일을 이기고 정체를 밝혔을 때 무슨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머스타드님같은 원거리 딜러들이 숟가락이라는 멸칭을 피하지 못하는 거예요·]
급기야 월척을 낚은 페이소스는 속으로 웃음을 참아내느라 고역이었다·
-롤드컵 우승자한테 숟가락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숟가락은 아니고 대형 포크레인쯤은 되지ㅋㅋㅋㅋㅋㅋㅋ
-잼민이 컨셉은 아닌가본데?
-상대도 탑- 그 자체네
-자 참교육 드가자~ 자 참교육 드가자~ 자 참교육 드가자~ 자 참교육 드가자~
-어? 쟤 노네임 아님?
“이 형님 입이 험하네· 자 평q평 이 자식! 아프지? 아 약점 까비!”
다이아답게 라인전 구도는 어느 정도 통달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런 사람들은 전력으로 상대해주는 게 인지상정·
“e를 여기다 깔겠지? 그럼 응수! 뻔해뻔해·”
-상대 거의 개피네 겜 끝났다
-이렐도 좀 치네
-피오라가 너무 유리하다 이건
-6렙까지 버티면 해볼만함
“아 이거 재생의 바람 룬 너무 사기네? 작정하고 사리니까 킬각이 안 나오잖아?”
이렐리아가 요새에 딱 붙어서 rs를 챙기는 동안 페이소스는 바로 앞에서 집으로 귀환을 타기로 했다·
“집 끊어야지? 이대로 보내줄 거야? 네가 그러고도 탑이야?”
집을 가도 이득 끊겨도 이득이었다·
그리고 99%의 탑은 무조건 집을 끊으러 올 수밖에 없다는 심리를 이용했다·
이렐리아가 q스킬로 돌진하는 순간 페이소스는 눈에 불을 켜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게 킬각일 줄은 몰랐지 이 자식?”
뼈방패 룬까지 활성화가 된 참이었다·
절대로 질 수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계속해서 도망치는 이렐리아를 뒤쫓았다·
요새까지의 거리는 아직도 충분했다· 피 차이가 두 배 이상이나 벌어졌을 때 그는 아껴놓았던 w스킬 응수까지 사용하여 슬로우를 묻혔다·
마지막 약점은 반대편 방향에 생성됐다· 피오라의 잡기술인 평타-점멸과 함께라면 무조건 잡겠다는 계산을 끝마친 페이소스가 뒤를 돌아보고 포기하려는 척 하다가 기습적으로 점멸을 사용했다·
번쩍-
번쩍-
“어?”
그러나 이렐리아가 정확한 순간에 점멸을 사용하며 피오라의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약점에 닿지 못했다·
애매하게 피가 남은 상황에서 이렐리아는 오히려 빼지 않고 길어진 평타 사거리를 사용해 피오라를 한 대 공격하며 그 찰나의 시간에 e스킬까지 적중시켰다·
한 대만 툭 쳐도 쓰러지는 체력이다· 보통 강심장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페이소스가 팔을 뻗어보지만 레이피어는 이렐리아까지 닿지 않았다·
근거리 카이팅·
근거리 챔피언들끼리도 사거리에 차이가 난다· 패시브 4스택을 쌓은 이렐리아는 피오라보다 근소하게 사거리 우위에 있었다·
이를 이용하여 억지로 평타 2대를 욱여넣은 상대를 보고 페이소스가 감탄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렐리아는 피오라를 이길 수 없다· 이미 벌어진 피 차이는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설령 e스킬을 맞아 생성된 표식으로 들어온다 해도 100이면 100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단정지었던 순간 이렐리아가 w를 반대편에 사용한다·
“무슨?”
그의 눈길이 돌아간 순간 아군 병사 하나가 그 스킬에 맞고 목숨을 잃었다·
“미친 6렙!”
체력과 성장스탯이 증가하는 레벨업· 그리고 6레벨부터는 궁극기를 배울 수 있었다·
점멸은 서로 없다· 따라서 이 거리에서 궁극기를 맞는 것은 확정· 아무리 피오라라고 해도 q를 세 번이나 사용하는 이렐리아는 막을 수 없었다·
대량의 칼날 다발이 눈앞에서 쏘아지고 페이소스의 몸이 얼어붙었다·
이렐리아 챔피언 위를 따라다니는 닉네임의 글자를 그제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NoName]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 * *
“언제까지 하실 건데요?”
“딱 한 판만 더··· 한 판만 어떻게 부탁드릴 수 없을까요?”
페이소스가 나메를 붙들고 늘어졌다·
벌써 3판 모두 나메가 일대일에서 이긴 상황이었다·
그때마다 페이소스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간청했지만 이번만큼은 나메의 마음을 움직이지 쉽지 않아보였다·
의문의 이렐리아 고수는 홀연히 자리를 떠나버리고 페이소스는 난장판이 된 채팅을 신경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3대0
-다딱이한테 털렸죠? 77ㅓ억~
-이렐 개10고수인데? 진짜 스킬 속도 보고 감탄만 나온다
-페이소스님은 원딜만 합시다···
-노네임 실화냐ㅋㅋㅋㅋㅋ 전부터 피지컬 쩐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갓네임!갓네임!갓네임!갓네임!갓네임!갓네임!
-치킨 기프티콘 빨리 보내주죠
“아니 이게 말이 안 된다니까?”
-암 말이 안 되고 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한 판을 안 져주네ㅋㅋㅋㅋㅋ
-하다하다 사내자식이 무릎도 꿇어?!
“뭐지? 패치 바뀌어서 지금은 이렐이 더 유리한가?”
-둘 다 최근 패치는 1년 전인데요?
-리오트 밸패진들에게도 잊힌 5티어챔 ㅠㅠㅠㅠㅠ
-쿨하게 인정합시다 탑을 못한다고
-눈호강 경기였다
-ㄹㅇㄹㅇ
손톱을 까득 깨문 페이소스는 찬찬히 노네임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전적확인 사이트에 들어가 그녀의 닉네임을 여섯글자를 입력했다·
[NoName – Diamond 1]
그리고 수많은 아스테리아를 플레이한 기록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기억났다! 이 사람이 그 탑 아스테리아 유행시킨 장본인이었죠? 그거 하나 때문에 솔랭을 얼마나 하기 싫었는데! 탑 아스테리아 미드 아스테리아 서폿 아스테리아· 우리 팀이 정글 아스테리아 했을 때는 프로고 뭐고 탈주 마려웠다니까 으아아악!”
-엌ㅋㅋㅋㅋㅋㅋ 쟤가 걔였음?
-상상도 못한 정체 ㄴㅇㄱ
-탑 아스테리아는 또 뭐냐ㅋㅋㅋㅋㅋㅋㅋㅋ
-시즌 초에 아스테리아 매드무비 영상이 한창 유행이었음ㅋㅋㅋ
-원딜은 제발 원딜로만 씁시다···
“워매 이거 뭐다냐 랭겜에서 열 스물··· 50연승?
-????
-사람인가?
-진짜 탑 아스테리아도 한판 했었네 이 사람ㅋㅋㅋㅋㅋㅋ
-10킬 안 넘는 판을 더 찾아보기가 힘듦
-이런 사람이 도대체 왜 다이아에···?
[‘lightandreft’님이 10000원 후원!]
-노네임님 지금 방송 중이세요!
“감사합니다· 아 역시 스트리머셨구나· 하긴 이 바닥에서 이런 재능을 가지고 썩히는 건 말이 안 되죠· 아씨 그럼 또 브이튜브에 박제 당하는 거 아니야?”
-노네임 브이튜브 없음
-걔가 안 해도 다른 렉카들이 퍼오잖아;;
-벌써 념글 갈 생각에 싱글벙글한 롤갤 유저면 개추ㅋㅋㅋㅋㅋㅋ
-치킨보다 값진 박제빵
-그러고보니까 친추도 안 걸고 나가버렸네
-치킨 이대로 꿀꺽 하는 건 아니죠?
“꿀꺽 안 해요· 사람을 뭘로 보고· 아 근데 롤 클라이언트 나가셨네? 이럼 어떡하지?”
[‘케챱소스’님이 3000원 후원!]
-ipfs://www·twish·ch/noname 여기로 보내죠 ㄱㄱ
“아 원래 공식방송에서 다른 스트리머 도방하면 안 되는데· 매니저님 자리 비운 김에 잠깐만 들어갈 테니까 절대 이르지 마세요·”
같은 플랫폼에 등록되어 있으니 친구 추가만 받아준다면 선물 보내주기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페이소스는 노네임의 방송에 들어가 친추를 원한다는 댓글을 작성하려고 했지만 이는 곧 무산되고 말았다·
[채팅이 금지된 방송입니다·]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계속 레전드만 찍네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페이소스 올 것도 다 알고 하는 거 아니야?
-ㄴ그럼 진짜 소름돋을듯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방제 ‘온기가 그리운 사람’
-자기가 만난 적은 다 싸늘한 시체로 만들어버려서 그런건가?
-ㄴ완전 싸패가 따로없노
-차가워진 머스타드소스ㅋㅋㅋㅋ
다행히 노네임의 방송에 후원까지는 막혀있지 않았다·
페이소스의 팬들이 연달아 노네임의 방송에 찾아가 후원 메시지로 채팅을 풀어달라는 얘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가볍게 무시했던 후원들도 세 개 네 개가 쌓이자 마냥 무시할 수가 없어졌다·
나메는 할 수 없이 채팅 금지를 해제시켜주었다·
“왜 남의 방송까지 찾아와서 행패신가요? 아까 저랑 일대일 하셨던 분 같은데·”
“네? 아 저··· 그게···”
“어차피 몇 번을 다시 겨뤄도 이길 수 없어요· 저랑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더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찐으로 당황한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ㅈㄴ 웃기네 진짴ㅋㅋㅋㅋㅋㅋ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ㅇㅇ
-솔직히 다이아라고 너무 안일하게 게임했다
-롤드컵 우승자의 수모 오늘 제대로 겪네
“아 저를 이기신 분께 치킨 기프티콘을 드리기로 해서요! 열 장 모두 다 드리려고 하는데 혹시 친구추가를 받아주실 수 있나 해서·”
“친추는 왜요?”
“친추를 해야 귓말로 보내드릴 수 있으니까요···”
-ㅋㅋㅋ 왜 상황이 역전됨?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전략인가?
-노네임이랑 친추하는 건 페이소스도 힘들지ㅋㅋㅋㅋ
“친추는 좀··· 그냥 돈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네헤···?”
“한 마리가 3만원이니까 30만원 어치만·”
“아··· 이게 제가 공인 신분이다 보니까 이 계정으로는 후원을 할 수가 없어서요···”
“그럼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방송 시작해야하니까 빨리 나가주세요·”
나메는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전했지만 페이소스는 그렇다고 기프티콘 선물을 없었던 것으로 물릴 수 없었다·
점점 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 손톱을 까득 깨물고 사색에 잠긴 그는 기어코 좋은 생각이 났는지 얼굴히 환하게 피어올랐다·
“아 대신 기막힌 방법이 떠올랐어요! 아마 잘만 구슬리시면 30만원 정도는 뽕을 뽑고도 남을 거예요·”
“···?”
페이소스는 그 말을 끝으로 나메의 방송에서 홀연히 떠나버렸다·
얼마 후 조용했던 나메의 버츄얼 스페이스에서 띠링하고 알림음이 울렸다·
[TK Pathos님이 22851명을 호스팅했습니다!]
그가 답례로 보내준 건 다름 아닌 이만 명 가량의 시청자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상할 정도로 비번을 잘 뚫는 나메··!!
4500자를 두 편 올렸으니 사실상 3연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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