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9
[YOU DIED]
[모든 스탯이 재조정됩니다]
[최대 페널티를 초과하였습니다·]
[현재 페널티(5): -75%]
[NoName(NoName)]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 – 사제 나이트메어 10/10/10]
[방송 시간 – 5:22:41]
[시청자 수 – 19407]
“떠올려·”
“기억해·”
“잊지마·”
* * *
“아델라?”
“으응?”
상념을 파고든 말에 아델라의 고개가 돌아갔다·
“괜찮아?”
“아··· 어··· 응· 괜찮아·”
“손··· 피나고 있어·”
손잡이를 잡고 있던 게 아니라 날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노네임이 일깨워주었다·
그제서야 아델라는 손바닥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 단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힘들면 조금 쉴래?”
“아니야· 시간이 없잖아· 아카데미로 바로 가야지·”
“아직 본대로부터 신호가 올 때까지는 한참 남았어· 어차피 미행을 따돌리려면 우리도 한곳에서 몸을 숨겨야 해·”
사방에 시체가 즐비했다·
시체 대부분의 상태는 언뜻 보기에도 처참했는데 아델라가 곡검으로 그들의 장기를 헤집어놓은 까닭이었다·
월오아 AI 시스템의 자동 모자이크 기능 덕분에 나메는 방송이 정지당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너머로 풍겨오는 잔인한 향기까지는 여전히 감출 수 없었다·
노네임의 제안에 따라 북쪽 숲을 통과해 성도의 좁다란 골목길에 다다랐을 때였다·
“오늘따라 하늘이 예쁘네·”
빼곡한 건물 사이사이로 펼쳐진 검은 비단에 촘촘하게 박힌 보석들을 바라보고 꺼낸 말이었다·
도시의 뒷골목을 지날 때 아델라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고 걷는 습관이 있었다·
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가 견디기 힘든 탓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이런 곳에 처박혀 있어야만 하는 처지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자그마한 현실도피로부터 시작된 습관은 어느새 그녀의 취미가 되어 있었다·
“숲지기야 숲지기야·”
“왜?”
“넌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냥?”
갑자기 물어본 탓에 나메는 한참동안 질문을 곱씹어보았다·
“쉬운 방법과 어려운 방법이 있지·”
“쉬운 방법은?”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만 보고 살아가면 돼·”
잘날 게 없으니 자존감이 떨어질 일도 없었다· 명쾌하지만 찝찝한 답변이었다·
“그럼 어려운 방법은?”
“잘난 사람들보다 더 잘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
“역시 그렇구낭·”
우문현답에 맥이 빠져버린 아델라는 바닥에 누우려다가 튀어나온 돌부리에 머리를 콩 찍고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아으 여기에 왜 돌이 있는 거야! 하아···· 그거 아냥? 아까 재료창고에서 구해준 노예 아이들 말이야·”
“발럼의 서재에서 풀어준 사람들?”
“응· 나도 사실 어릴 때 똑같은 처지에 놓일 뻔했어· 엄마가 돈이 없다고 나를 노예상에게 팔려고 했었지·”
나메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전생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케이스였다·
의외로 모성애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던 터라 이제는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었다·
“난 항상 성도의 노예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그래도 쟤네들보단 낫지· 미래조차 빼앗긴 녀석들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그런데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아무 의미도 없지·”
“맞아· 결국 이러나 저러나 난 제자리였으니까·”
단검을 돌바닥에 끼익끼익 긁어대는 소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법 했지만 나메는 별 개의치 않아 했다·
그녀가 각인한 문자는 각각 ‘노네임’과 ‘아델라’였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네 이름?”
“응· 이번엔 안 틀리고 잘 쓰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냥? 대륙공용문자쯤이야 껌이라고! 아무튼··· 그래서 오늘부터 결심한 게 있어·”
나메가 턱을 괴고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월계수 도움 없이도 실력을 키워서 꼭 아카데미에 합격할거당·”
조금 부끄럽고 설레는 어투로 아델라는 찬찬히 자신의 포부를 설명했다·
“아카데미에 도전하는 건 한번뿐이라고 하지 않았어?”
“에이 나같이 연고도 없는 사람은 신분 위조쯤이야 쉬운 일이야· 그리고 나 꽤 동안처럼 보이지 않냥?”
아델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릴 때 노안이었던 애들이 자라면서 동안이 되긴 하지·”
“뭐어? 방금 무슨 의미로 말한 거냐 숲지기!”
한참을 별을 보면서 투닥거릴 때 나메가 돌연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카데미가 꼭 좋은 곳이라는 보장은 없어·”
“아카데미에 다녀본 적이 있는 거냥?”
“응· 자퇴했지만·”
“왜 그렇게 좋은 곳을 들어가놓고?”
나메는 입술을 깨물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카데미가 누군가의 천국이 되려면 결국 다른 누군가의 지옥이 되어야 균형이 맞잖아?”
“흠···”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수업이 너랑 안 맞을 수도 있고 교수들이 출신으로 널 차별할 수도 있어·”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네· 한번 다시 생각은 해봐야겠어· 그래도 말이야· 난 꼭 아카데미에 가는 게 평생소원이야· 가보지도 않고 지옥이라고 단정짓는 건 너무 내가 패배자 같잖아?”
“넌 원래 그런 성격이었지· 나랑 달리 가서도 적응을 잘할 거라고 생각해·”
“그런 소리는 살면서 너한테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아델라가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살살 긁었다·
[아카데미 북문으로 이동해서 ‘어비스’와 합류하십시오·]
나메에게만 보이는 스토리 진행 문구와 함께 하늘에서 폭죽이 펑 터졌다·
“만약에 알페리온과 시시엘라가 잘못 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합류할 채비를 마친 아델라에게 나메가 물었다· 아델라는 그게 무슨 초 치는 말이냐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구하러 가야지!”
“설령 임무를 실패한다해도?”
“응·”
* * *
아카데미 본청에 다다르자 아델라는 마음 한켠에 피어오른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고양이 수인의 감은 때때로 좋아서 근미래에 벌어질 나쁜 일들을 피해나간다는 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시끄러운 경보음이 땡땡땡 울리는 것 같았다·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어 피투성이가 된 시시엘라가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시시엘라! 대체 무슨 일이야!”
“씨이··· 영감탱이 말이 다 맞았구만· 안타깝게도 반만 맞았지만···”
“잠깐· 뽑지 마·”
시시엘라가 자신의 허벅지에 꽂힌 화살을 뽑으려는 손을 숲지기가 확 잡아챘다·
“지금 뽑으면 출혈이 심해·”
“이대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싸워? 이 몸으로? 대체 무슨 생각인데!”
아델라가 발을 동동 굴렀다·
“위험한 임무에 왜 너희 둘만 보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 우리 쪽 용병들은 전부 배신했어· 어비스 15지구의 사람들이 전부 아카데미 편에 붙었다고!”
“그럼 알페리온은!”
“경비병 분대와 관계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어·”
“진짜 가려고? 안 돼 못 가! 절대 안 돼!”
“월계수는 여기 있어· 난 다시 알페리온을 도우러 가야만 해· 숲지기 아델라를 꼭 버리지 말아줘· 꼭이야·”
아델라의 만류에도 곰 수인은 매몰차게 그녀를 내쳤다·
어떻게 대신 말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메는 하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퍽-!
예리하게 세운 손날로 그녀의 뒷덜미를 세게 쳐서 기절시켰다·
“데려가·”
“대체 어디로?”
“아무데나· 알페리온의 신변은 내가 확보할게·”
“지금 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번에는 꼭 살아서 돌아올게·”
생명의 월계수를 장착한 나메는 그 말을 끝으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아델라의 머리가 뜨겁게 달구어지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처지를 깨달았다·
아니 애초에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노네임은 자신이 합류할 것을 걱정해 일부러 시시엘라를 기절시켰다·
그녀를 살리고 싶으면 당장 여기를 떠나라는 의미였다·
[떠올려·]
“대체 뭘 떠올리라는 거야!”
아델라는 월계관이 머리를 조여오는 것만 같은 환통을 느꼈다·
[기억해·]
“뭘 기억하라는 거냐구!”
[잊지마·]
아델라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화마에 타오르는 도시를 뒤로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팔방으로 쏘아다니는 취객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몸무게의 가히 두배는 될법한 동료를 업고 도망쳤다·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이미 발바닥이 모두 까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힌 아델라의 육신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하아··· 하아··· 이씨 진짜···!”
이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카데미 본관의 고고한 시계탑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터라 방향도 생각 안하고 전혀 모르는 곳으로 흘러들어왔음을 깨달았다·
‘북쪽이니까 18구? 20구일지도 모르겠네·’
수도의 16지구 이상의 구역들은 전부 똑같이 생겨서 건물의 생김새만으로는 위치를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었다·
시시엘라는 출혈은 멎었지만 그동안 흘린 피가 너무 많아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아델라는 잠시 휴식을 취할 심산으로 돌벽에 몸을 기대었다·
밤 중의 차가운 한기가 등을 타고 찌르르 올라왔다·
뚝-
빗방울 하나가 그녀의 콧등 위로 떨어졌다·
그녀가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보자 소나기가 후두두 내려 그녀의 소매를 적셨다·
“재수없게 비까지···”
찬란했던 별빛들이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필시 먹구름이 이들을 가리는 것이리라·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는 듯 번개가 번쩍 치더니 암전되었던 세상이 잠시동안 환해졌다·
“어···?”
맞은편 돌담을 보고 아델라의 눈이 커졌다·
품에 숨겨놓았던 단검을 손에 꽉 쥐고 그녀는 한발자국 한발자국 천천히 돌담으로 다가갔다·
“그럴 리가···”
우르르 쾅-!
지축을 뒤흔드는 천둥소리에 반사적으로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는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번개가 제 차례를 맞이하였을 때
“말도 안 돼···”
[노내힏] [아델라]
[노내임] [아델라]
[노네임] [아델라]
[노네임] [아델라]
[노네임] [아델라]
음각으로 새겨진 이름들이 줄을 세우고 있었다·
우르르 쾅-!
“하으읏!”
아델라의 머리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자신의 단검을 문자의 틈새에 끼워보니 그 폭과 깊이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분명 자신의 검으로 새긴 것이다·
“여긴 와본 적도 없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세상에 도플갱어라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이어 내리치는 번개에 비추어진 문자들은 노네임과 대화를 나눌 적 자신이 바닥에 새겼던 것과 부정할 수 없는 동일한 필체였다·
아델라는 월계수의 힘을 빌려 숲지기가 알려준 마법 하나를 발동시켰다·
[시전: 라이트]
그리고 돌담 가장 아래쪽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얕고 희미하게 각인된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돌아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설연0731님 2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500화쯤 가면 나메는 과연 몇 살일까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일까요? 어쩌면 여전히 초등학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른짤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정말 행복합니다··!! 나메의 스트리머로서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관심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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