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0
“루나야 큰일났어! 지금 잘 때가 아니야!”
“흐아암··· 아직도 새벽인데 잘 때가 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지젤···”
“넌 이 경보음을 듣고도 그런 말이 나와···?”
웨에엥 하는 사이렌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진 지젤이 천하태평한 룸메이트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루나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얼음 망토를 두르고서야 그녀는 피곤한 기색을 겨우 떨쳐낼 수 있었다·
“그래서 또 뭔 일인데?”
“아카데미에 습격자가 나타났어!”
“습격자? 미친 놈들인가?”
루나의 의문은 타당했다·
그도 그럴것이 악어 입속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간 얼룩말을 보고 습격자라고 칭하지 않는 것처럼 제국의 병력이 가장 집중된 곳에서 스스로를 습격자라고 칭하는 자들을 제정신이라 칭하기 어려웠다·
창 밖으로 폭발음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눈살을 찌푸린 루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못 잡은 거야?”
“상대가 상대인가봐··· 학장님이 우리 1학년에게도 전부 모집 명령을 내리셨어!”
“수는 얼마나 되는데?”
제국에서 정식으로 파견된 아카데미에 소속의 정예 병사만 1천이다· 거기다가 아카데미 교수진 수십· 관계자와 학생들까지 합치면 단순하게 계산해도 수백은 넘을 터·
루나의 계산적인 면모가 힘을 발휘해 얼추 적의 규모를 가늠해보았다·
“한명···”
“뭐어?”
그러나 이를 정면에서 깨부순 것은 지젤의 단순명료한 대답이었다·
“우리 또래의 여자 한명이래···”
“··· 무슨 악마라도 강림했냐?”
* * *
나메와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거리를 벌리고 서로 마주보고 대치했다·
머지않아 큰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류에 마른침을 삼키는 건 학생들 뿐만이 아니었다·
-큰거오냐?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구하러 간다는 선택지 고르면 게임 오버인게 맞네ㅋㅋㅋㅋ
-겨우 한명 잡으려고 쪼잔하게 수백명씩 우르르 나오는 게 맞냐? 진짜 렘넌트 아카데미는 전설이다
-노네임 덕분에 어지간한 1부 나이트메어 스토리는 다 맛보는 듯
-급조한 스토리라고는 하지만 은근 탄탄하잖어~
-ㄴ작가 짬빠 어디 안 감
하지만 기대감을 가진 이들은 의외로 몇 없었다·
오히려 나메의 게임실력에 대해 불신을 가진 시청자들로 수두룩했다·
-절대 못 깨는데 고집은
-어허 우리 방장님의 선택은 존중해주시죠
-또또 처음으로 돌아가겠네
-유다희씨 그만 보고 싶음ㅋㅋ
-ㄴ유다희가 누구임?
-ㄴYOU DIED
-ㄴ아ㅋㅋㅋㅋㅋ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이만큼 스토리모드 몰입해서 하는 스트리머가 또 어딨다고 걍 좀 봐라
롤에서 마스터를 무패로 찍을 수 있었던 건 같은 팀 근본 챌린저였던 혜밤의 도움 덕분이었다·
월오아에서 다채로운 마법 지식을 뽐냈지만 결론만 놓고 보자면 1부도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아델라를 도와주러 갈 때 불쑥 튀어나오는 전투 센스는 인정할만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진정으로 ‘월오아’라는 게임을 잘하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뒤따라왔다·
때문에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노네임의 실력을 두고 분석하려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노네임이 역대급 재능을 가진 이유·txt][72]
[반응속도 레전드·gif][122]
[얜 그냥 빼박 종군 마도사임][84]
[은근 컨셉빨로 과대포장된 새끼][171]
[노네임이 사용하는 브로드소드 검술에 대해 araboja][108]
[지금 ‘그 스트리머’는 걍 마법 깔짝대기 원툴ㅇㅇ][47]
그녀에게 반감을 가진 자들은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예컨대 마법 지식만 해박한 이가 일부러 일반 대중들을 기만하려고 나이를 속이고 방송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다수를 상대할 때 그녀의 검술 실력은 형편없다·
그런 식의 멘트가 채팅창과 커뮤니티에 쏟아져 나올 때마다 매니저 대살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한번이라도 그녀의 시점에서 봤으면 그런 말을 하지 못 해·’
평소에는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으로만 방송을 시청하고 있을 매니저들도 전부 캡슐에 접속해 그녀와 동일한 시야를 공유했다·
‘진짜 이걸 보고도 싸우겠다는 생각이 드나? 진심으로?’
그녀가 바라보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아카데미 학장과 바하무트 제국의 경비대장을 필두로 수백명의 인원이 도열해있었다·
게임이라 해도 도저히 위축되지 않을 수 없는 규모다·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공포심이 간담을 서늘케 한다·
월오아를 수도 없이 오래 플레이한 대살조차도 노네임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전력차는 절망적인 수준·
“알페리온은 어디 있죠?”
황금머리의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학장 옆에서 숨을 죽이던 나이 지긋한 학자가 단안경을 고쳐쓰며 고함을 질렀다·
“하! 버러지같은 네놈들에게도 동료애라는 건 있는 겐가?”
손짓 한번에 병사 두 명이 인파를 가로질러 사람 하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의식은 없지만 아직 숨은 붙어있다· 훔쳐간 월계수를 잠자코 돌려주면 아카데미의 병동 시설에 친절하게 인계해주지·”
“그리고 우리를 감옥에 쳐넣으려고?”
“죗값은 달게 받아야하지 않겠나? 사태를 이렇게나 키워놓고 내뺄 생각은 아니겠지?”
그들 사이에 타협의 여지는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하·”
의미 모를 웃음을 짓는 나메를 보며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녀는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압박감· 떨쳐낼 수 없는 진득한 살기·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면 오붓한 식당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되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었겠지만 운명적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었던 적들·
그러나 전투와 전쟁에서 도덕성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생과 사를 가르는 일에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뿐·
그리고 이는 나메가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라고 감히 내세울 수 있었다·
“전부 상대해줄게·”
한 때 에스타샤 황녀를 상대하기 위해 황제는 잃어버린 옥새를 대신하여 혈서로 쓴 칙명을 내렸으나
[질투의 마녀 토벌안]
[ALL FOR ONE]
국가 전 병력의 총공세를 명하는 칙서는 결국 황녀의 손에서 갈기갈기 찢어졌다·
* * *
나메는 아델라에게 한가지 가능성을 엿보았다·
특정 직업을 선택하면 그와 가장 어울리는 조합의 직업으로 나타나는 아델라·
다시 말해 그녀의 재능은 굳이 단검에 한하지 않았다·
시스템과 스토리 전개의 편의를 위해 조형된 캐릭터는 사실 육각형 아니 백각형이라 칭해도 모자란 오버밸런스적인 존재였다·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
키 150의 남성이 설령 백 년 천 년을 노력해도 자메이카 육상선수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상한선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한한 재능으로 태어난 그녀는 나메조차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만약 아델라의 경험이 회귀를 통해 축적되는 거라면 그녀의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경험치를 때려박을 수만 있다면 가설이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진 크로니클을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압!”
은빛 갑옷을 걸친 기사는 짧은 고함과 함께 번쩍이는 대검을 들어 올렸다·
나메의 몸통을 두동강내려고 호기롭게 달려든 이들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언제나 도망치는 게 옳았지만 그녀라고 항상 도망친 것만은 아니었다·
생명의 월계수와 임시적으로 동기화 계약을 맺은 나메는 오러의 힘을 전부 끌어다 썼다·
살덩이는 물론이고 뼈조차 추리지 못할 묵직한 공격이 허공을 가른다·
“커헉-!”
잔상만을 남긴 소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기사의 시선이 이윽고 자신의 복부를 향했다·
“말도··· 안 돼···!”
명치 한가운데에 손이 달려 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목숨은 허무하게 끊어졌다·
갑옷의 관절과 관절 사이를 예리하게 파고든 손을 거둔 나메는 쓰러진 기사의 검을 획득했다·
[현재 페널티(5): -75%]
가뜩이나 모든 공격은 반감되고 또 반감되어서 쏘아진다·
[현재 페널티: 공격력 –50% 방어력 –50%]
그것도 모자라 겨우 검을 들었다고 또 한번의 중첩 페널티를 얻으니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페널티 실화냐?
-힐러만 아니었어도ㅠㅠㅠㅠ 힐러만 아니었어도ㅠㅠㅠㅠ 힐러만 아니었어도ㅠㅠㅠㅠ
-어어??
-?????
“전군 포위하라!”
경비대장의 명령 하에 발 디딜 틈도 없이 포위된 공간 속에서 수십개의 창이 한 점을 향해 쏘아진다·
챙 채챙-!
[시전: 관성텐서 조정]
급격하게 방향이 꺾인 죽음의 칼날 사이를 피해 기사의 목에 검을 던져 박았다·
“크악!”
그가 놓친 창을 다시 바로 잡아 한바퀴를 빙 휘두른다·
[시전: 점성 조절]
[1서클 상위시전: 플라즈마 진동수 조절]
비가 내려 끈적해진 진흙바닥에 발이 묶인 기사들은 급한 마음에 창을 거둔게 오히려 패착이 되었다·
찰나라도 거리를 허용한 순간 그녀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차례차례 목숨을 앗아갔다·
하나는 목을 90도로 꺾어버리고 하나는 두 발목을 절단시키고 또 하나는 옆구리에 창 3개를 박아 넣는다·
페널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져갔다·
-아니 페널티 왜 적용 안 받음?
-버그 아냐?
-설마?
고인물들은 눈치채기 시작했다·
도저히 나메가 펼친 공격들은 페널티를 받고서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들 뭣하고 있나! 당장 저 년을 막지 못할까!”
이번엔 고래고래 소리치는 조장 격으로 보이는 기사에게 가공할 기세로 날아들었다·
수년간의 습관으로 다져진 방어초식의 검술이 잡혔지만 나메가 공중에서 사선으로 한바퀴를 돌면서 기껏 내뻗은 공격이 허투루 돌아갔다·
“이게 대체···!”
“무기를 내놔·”
얼굴을 가르는 깔끔한 일격으로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무거운 육신이 고꾸라진다·
숨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기사의 손목을 탁 쳐서 다시 그의 검을 빼앗는다·
나메가 속으로 열을 셀 동안 그녀의 눈동자가 쉴새 없이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현재 페널티(5): -75%]
[현재 페널티: 공격력 –50% 방어력 –50%]
“하아··· 늦었잖아·”
다시 한번 페널티 알림음이 뜬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일갈한 나메는 얼굴에 묻은 피를 쓰윽 닦아내보았다·
주위를 빙 둘러보아도 더 이상 달려드는 기사는 없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핏발 선 눈으로 쳐다보는 경비병들을 애처롭게 바라볼 뿐·
오히려 더 번져버린 핏자국 때문일까· 아카데미 학생들은 공포에 치를 떨었다·
“하핫·”
-?
-?
-갑자기 웃는 거 ㅈㄴ 무섭네
-방장 사이코임?
급기야 배를 부여잡고 끅끅 웃어대는 나메는 다시 정색하여 적들을 바라보았다·
“코딩을 잘못해서 이거 어쩌나·”
휘익-!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 화살을 맨 손으로 잡아내기까지 했다·
나메는 입모양으로 또 한번 숫자를 셌다·
십··· 구··· 팔···
그리고 그 숫자가 0까지 향하기도 전에 나메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활을 주워 마나를 가득 담아 화살을 쏘았다·
“흐악!”
이마에 화살촉이 제대로 꽂혀버린 궁수의 시신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현재 페널티(5): -75%]
[현재 페널티: 공격력 –50% 방어력 –50%]
힐러는 활도 소지할 수 없다는 엄중한 경고음이 다시금 나타난다·
[‘약과’님이 10000원 후원!]
-설마 새로운 무기로 바꾸면 알림음 뜨기 전까지는 메인 페널티까지 같이 없어지는 거임?
“빙고·”
예리한 시청자의 지적에 핏기를 머금은 그녀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양한 맛(무기)의 나메를 즐겨보세요··!! 저는 나메가 스키아보나(Schiavona) 검을 사용할 때가 가장 멋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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