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7
가상현실게임의 제작 과정은 복잡하다·
풀다이브 캡슐이 나온 이래로도 막대한 자본을 투하하지 않으면 비슷하게 베끼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특히나 게임회사들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건 다름아닌 ‘로열티’라는 존재에 있었다·
‘오픈월드 로열티’와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로열티’는 출시 이전부터 게임의 상업성을 확신하는 것이 아닌 이상 경영진들은 주주들로부터 함부로 손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오픈월드 개발사는 현실 세계에서 관측한 특이점을 데이터베이스 센터로 옮겨 공간의 확장·재생성을 반복한다·
그러면 동일한 물리법칙을 반영한 오픈월드가 생성되고 각각에 대해 오픈월드 개발사가 게임 제작사에게 시드를 부여하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오픈월드의 면적이 커질수록 지불해야하는 로열티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기 때문에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라는 게임을 만든 웨어소프트는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ASI에 들어가는 로열티는 오픈월드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를 다루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인건비가 무시할 없는 수준이라는 게 문제였다·
캐릭터의 조형이나 디자인은 기존에 있던 부서에서 진행시킨다 하더라도 캐릭터의 서사 행동원리 판단준거 잠재력 등은 결코 빈칸에 수치를 집어넣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었다· 그렇게 간단한 구조가 아니었다·
월오아가 한차례 흥행에 성공하고 유저들의 스토리 피로도를 덜어주려고 웨어소프트가 ‘나이트메어’라는 난이도를 추가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개발 프로젝트가 끝나고 ASI 전문가들은 대거 다른 회사들로 이직하고 난 참이었으니 기존에 남은 인력만으로도 스토리 충돌 하나 없이 엔딩까지 단축시킬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웨어소프트는 보란 듯이 성공해보였고 심지어는 한 때 장점으로 손꼽혔던 과감한 스토리라인을 추가해 기존에 아쉬웠던 배경 설명을 보완하였다·
물론 월오아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토리 모드 때문이 아닌 6vs6 대전의 도입과 이스포츠의 흥행에 있었지만 빼어난 배경과 인물들도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월오아 VIP 유저 ‘냥스터콜’은 본편 스토리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아델라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이들 중 한명이었다·
그는 월오아 5주년 이벤트에 참석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델라가 1막에서 무조건 죽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냥스터콜은 아델라의 외모와 성격에 매료되어 있었다· 본편에서 지젤이나 루나처럼 최종보스까지 데리고 갈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스토리 극초반부터 탈락시켜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이들이 랭크에서 티어를 올리고 있을 때 그는 필사으로 나이트메어 1/1/1 난이도에서 모든 히든 기믹을 찾아냈다·
천문대 보스는 사실 스킵이 가능한 사실도 보스전이 끝나고 아카데미에 되돌아가면 주요 장비들을 파밍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두 그가 발견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수를 써도 아델라를 구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자신이 모르는 아델라를 살릴 수 있는 히든 루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 거기에는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만···”
개발진 중 한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나이트메어를 직접 플레이해보셨으면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으시겠죠· 그래도 말씀을 드려보자면 아델라는 이 난이도를 접하시는 유저분들을 위한 일종의 튜토리얼 NPC로 기획했었습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다양한 트롤짓을 일삼으며 게임의 난이도를 한층 올려버리는 존재였으니까·
“실제로 천문대 보스까지는 아델라의 도움을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클리어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처음부터 쉽게 죽어버린다면 나이트메어에 적응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나이트메어의 초반 진입장벽을 덜어주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타당한 말이었다·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아델라가 천문대 보스를 격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본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정한 ‘전투’ 시스템을 깨우칠 수 있었다·
“제가 아까 오전에 대답해드린 질문을 다시금 꺼내올 필요가 있겠네요· 못 들으신 분들도 계실 테니 나이트메어에만 ‘페널티’ 요소를 강제도입한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사측의 역량 부족도 분명 있었겠지만 오픈 월드의 기술적 특성상 많은 ASI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특히나 월오아는 다른 게임과는 달리 상당한 수의 ASI들이 월드에 존재했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초고지능 사고가 가능한 ASI의 수만 해도 일백이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억지로 수를 늘리다보니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나이트메어 난이도에서는 월드 리셋을 반복했을 때 AI의 자유도를 제어하는 모듈에 조금씩 변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럼 난이도가 조금씩 올라간다고 체감이 되는 게···?”
“네 자유도의 향상 때문이겠죠· 저희 사내 개발진들의 실수인지 아니면 오픈월드의 근본적인 호환성 문제인지는 아직까지도 원인소재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무튼 이 때문에 보스몹의 경우 처음에 설정되었던 난이도보다 지나치게 강해지는 케이스가 생겨 이를 방지하고자 번거롭지만 페널티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나이트메어로 돌입하기 직전으로 넘어와 모듈을 정비한 채 아예 처음부터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했으면 되지 않았나요?”
“아아 아예 세이브포인트가 없는 로그라이크 게임으로 만들자?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 저희 웨어소프트의 기본 신조와 너무 다른 방향이기도 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메피스토와의 전투에서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면 유저분들께도 아마 그게 더 고역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그래서 되도록 한 번만에 클리어하도록 유도는 하되 한두 번의 기회는 주자는 게 취지였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아델라랑은 무슨 상관이 있었나요?”
“아델라는 특히나 자유도 제어 모듈에 크게 영향을 받는 NPC였습니다·”
“네?”
툭툭·
성심성의껏 답변해주던 남성은 옆자리 여성이 손짓을 하자 그녀에게 들고 있던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번역 마법이 제대로 작동되는 걸 확인한 그녀는 굳게 닫혀있었던 입을 열었다·
“제가 첨언해서 설명드릴게요· 사실 아델라는 초기 스탯이 워낙 낮은지라 웬만해서는 1막에서 탈락되는 경우가 많아 저희도 큰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만약 그녀가 2막까지 살아남아버린다면 그 이후로 지나치게 뛰어난 전투 역량을 선보여 전체적인 게임 밸런스를 해쳐버리는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니 그럼 당신들 말대로 ASI의··· 그 뭐냐··· 잠재력 수치를 조절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스토리를 조정할 게 아니라·”
“뭔가 이런 자리에서 말씀드리게 되어서 면목이 없습니다만 저희가 계약한 ASI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제한?”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잠시 입을 다문 여성· 그녀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다·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어야만 했었던 아델라를 만들기 위해 가장 높은 잠재력 수치를 가진 최종보스 메피스토에 적용된 ASI를 그대로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영상공유 – ‘냥스터콜’님이 100000으로 공유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델라의 AI는 메피스토펠레스의 AI와 동일하다는 거네요·”
-와 반전 ㄷㄷㄷㄷㄷㄷㄷ
-결국 돌고돌아 얘가 흑막이었네?ㅋㅋㅋㅋㅋㅋㅋㅋ
-개소름ㅋㅋㅋ
-이건 트리위키에도 없던 내용이었는데 뭐냐
-1막에서 죽는데 어떻게 부할함?
-소오름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ㅋ
-록리인줄 알았는데 나루토였어!
-ㄹㅇ 식스센스급 반전이었다
-레게노다 진짜
“AI가 아니라 ASI? 어쨌든 영상에서 말하는 ASI에 대해선 자세하게 모르겠지만 결국 개발부서가 터져버리면서 새로운 ASI를 만들지 못해 기존의 것을 재활용했다·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
[‘냥스터콜’님이 5000원 후원!]
-네 맞아요 ㅠㅠㅠㅠㅠㅠ
아델라를 끝까지 살려둘 수 없었던 제작사는 마침 악마의 강림에는 육체가 필요하다는 설정도 있겠다 둘이 ASI도 동일해 크게 바꿀 것도 없겠다 싶어 스토리상 아델라를 메피스토의 제물이라는 설정을 도입해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와중에 냥스터콜 왜케 잘생김?
-비율도 모델급이네 시불거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우리와 같은 방구석 파오후 개백수여야만 해!
-이게 월갤러 평균···?
-잘생기셨다
-존잘이누
-저 얼굴 가지고 인생 낭비하고 있네ㅋㅋㅋㅋㅋㅋ 그럴 거면 나 주지
-ㄴ진짜 인생을 낭비하는 건 누군지 다시 생각해보자
-(매니저3) 일반인 언급 시 차단 대상입니다
침대에서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진 아델라를 안쓰럽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제 어떡함? 계정 영정 먹는 거 아니야?
-영정을 왜 먹음?
-원래 무조건 죽어야 하는 캐릭터라며
-아델라 지켜!
-지켜!
-무조건 지켜!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입맛을 쩝쩝 다시기까지 한다· 꿈 속에서 츄르라도 먹고 있는 걸까?
그녀를 단순히 가상의 인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AI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비록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가 모조리 거짓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제껏 함께 쌓아왔던 추억만큼은 모두 진짜였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은 많았다·
시청자로부터 웨어소프트의 개발 비화를 들었어도 갑자기 모든 회차에서의 기억이 전부 돌아온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버그인걸까 아니면 이조차 개발진들이 의도한 바였을까?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흘러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꼬르륵-
오랜만에 머리를 많이 쓰니 허기가 졌다·
아이템샵에서 구비해두었던 당근이 남아 그거라도 아삭 베어물었지만 역시 가상현실은 가상현실인만큼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방송 시간 – 7:39:18]
[시청자 수 – 21907]
‘이렇게나 오래 했었나?’
캡슐 밖으로 나가면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할 때라니·
잠깐 게임을 일시정지하고 대충 끼니를 챙겨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포션을 한번에 몰아먹었을 때 탈이 덜 나니까·
“음냐아··· 냐앙··· 당그니가 시러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귀ㅋㅋㅋㅋㅋㅋㅋ
-냥스터콜 센세···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당근 더 가져와! 아니 다 가져와!
-죽어도 여한이 없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ㄴ성불했네ㅋㅋㅋㅋㅋㅋ
-화장 다 지워졌는데 왜 더 이뻐보이냐···
-그게 사랑이니까
그 와중에 동기화된 미각을 깜빡하고 해제를 안 했는지 아델라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투정을 부리는 꼴이다·
“맛있는데 당근·”
아삭-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송이 아무리 좋아도 밥은 먹고 해야죠··!! 이번엔 무조건 켠왕이니까 안심하세요 여러분··!!
다시 잼민이 목소리로 돌아올 나메· 혹시 나메의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은 오지율 배우님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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